이규태 vs. 유병언 '비밀의 방'...공통점은?

이규태 vs. 유병언 '비밀의 방'...공통점은?

2015.03.30. 오후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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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보시는 화면은 서울 시내 한 교회 안에 있는 서재입니다.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된 일광공영 이규태 회장이 자신이 장로로 있는 교회 3층에 마련한 집무실인데요. 빼곡하게 책이 꽂힌 평범한 책장처럼 보이지만,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됩니다. 그럼 영화처럼 책장이 회전하면서, 비밀 은신처가 나타납니다.

10제곱미터, 3평 남짓한 공간입니다. 이 곳엔 교회 곳곳을 감시할 수 있는 CCTV가 있고요, 금고와 긴급 탈출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같은 비밀 공간은 또 있었습니다. 도봉산 등산로 근처에서 비밀 문서를 숨겨놓은 컨테이너가 발견된 건데요, 이 안에는각종 거래장부와 USB, 녹음 테이프 같은 비밀 자료들이 빼곡하게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규태 회장 외에단 두 명만이 컨테이너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이런 비밀 공간, 낯설지 않습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기억하시죠? 유 전 회장도, 교회 안에 집무실을 만들어 넣고, 별장에도 비밀의 방을 만들었었습니다. 두 회장의 비밀의 방,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이슈대담에서 파헤쳐보겠습니다.

[앵커]
비밀의 방, 저는 헤리포터에만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비밀번호까지 누르고 들어가는 비밀의 방이 있다고 하죠. 이 문제를 비롯해서 다양한 주제들을 오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세 분이 나와 계신데요.

백기종 전 수서 경찰서 강력팀장 그리고 김태현 변호사 그리고 전 북한 총리 사위셨죠. 경민대학교 강명도 교수 세 분 나와 계십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이규태 회장의 비밀 은신처가 발견이 됐는데 물론 이규태 회장 같은 경우에는 지금 수사 중이고 구속은 된 상태죠. 그러니까 지금 의혹수준이라는 걸 분명히 말씀을 드리는데 1.5톤급 콘테이더, 아주 아이디어들이 기발해요.

조금 아까 설명을 했지만 책장이 딱 붙어 있고 이걸 쫙 열으면 거기에 비밀번호를 누르는 버튼이 나오고 그걸 누르면 문이 쫙 열리면서 CCTV 9개가 있는 3평짜리 방이 있다. 이건 정말 영화에나 나오는 것인데 어떻게 보세요, 우리 백 팀장님?

[인터뷰]
이규태 회장 그러면 사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원래 경찰 간부 시험을 봐서 한 경찰에 2, 3년 정도 재직을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어느 순간에 갑자기 무기 로비스트 사업에 뛰어들게 되셨는데 불곰 사업이라는 것이 먼저 떠오르죠.

구 소련 때 우리가 1991년도에 14억 7000만 달러 차관을 줬죠. 그런데 이게 93억 달러로 늘어났는데 이자금 포함해서요. 결국 이규태 전 회장이 그 당시 2006년도 러시아 쪽 무기 에이전트로 활동을 한거죠.

그렇게 돼서 사실상 3400억 상당 지대공 미사일을 도입을 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돈을 횡령을 해서 구속이 됐었는데 이번 같은 경우에는 아마 그때 당시에 수사를 받아서 구속이 되면서 노하우가 상당히 지금 비축이 된 것이 아니냐. 이유는 뭐냐하면 사실 교회 3층, 교회 같은 곳은 접근을 하기 쉽지 않거든요, 수사기관에서도요.

[앵커]
좀 꺼려지죠?

[인터뷰]
꺼려지는 것도 있고 사실 교회가 또 인맥이 탄탄합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수사방해가 되고 또 위축이 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데 3층에 바로 회사에서 한 100여 m 떨어진 곳에 비밀의 방을 만들어놓고요.

유병언 전 회장이 모니터에서 보셨지만 떠오릅니다. 들어가도 모르는 거죠. 배선이라든가 버튼이 여러 개 있고 하니까 어느 걸 눌러야 되는지를 알면서도 못 찾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거기에다가 이제 작년 11월에 합수단, 방위사업비리 합수단이 11월에 발촉이 되면서 김기동 수사단장이 시작을 했는데 그걸 대비를 한 거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중요한 건 수사가 되면 1월 말부터 다 여기에다 숨기라고 지시를 했던 것이 측근 진술에서 나왔고요. 그다음에 의정부 도봉산 자락에 1.5톤급 컨테이너를 수백 개가 있는데 그중에 한 군 데를 골라서 무기 로비스트 활동을 하면서 또 방산 관련된 사업을 하면서 거기에 근거된 서류를 여기에다가 모든 증거자료 10년치를 1톤 무게정도까지 저장을 했어요.

그렇게 치밀하게 한 것으로 봐서 굉장히 대비를 했는데 결국 날카로운 수사에 걸려들고 말았다고 저는 봅니다.

[앵커]
그런데 아이디어는 대단한 것 같아요. 그걸 콘테이너에 넣을 생각을 했다는 것도 대단하고 그런데 이게 어떻게 발견을 했을까요?

[인터뷰]
제보자 아니면 발견을 못 하죠.

[앵커]
본인이 얘기를 할 거면 컨테이너까지 집어넣지 않았을 텐데요.

[인터뷰]
지금 안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보면 지금 일광그룹의 이규태 회장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마 그럴 거예요. 절대 얘기를 안 할 겁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나온 다음에도 제기를 해야 된다고 이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는 걸 보여줘야 되겠죠, 여기저기에.

절대 이야기를 안 할 것이고 문제는 측근, 그러니까 금고지기로 불리는 사람들이 지금 하나둘씩 입을 열고 있다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일광그룹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측근들의 입에서 어떤 흔적들이 나와서 교회 찾고 컨테이너 찾고 이렇게 하나씩하나씩 찾아나갔다는 것 같은데 어차피 특수수사라는 것이 고구마줄기라고 보시면 돼요.

고구마 하나 나와서 꺼내면 계속 줄기에 따라서 고구마들이 줄줄이 나오잖아요. 그렇게 보시면 되는 거니까 근고지에서 부터 교회가 나오고 교회에서 비밀의 방이 압수수색이 되고 거기에서 컨테이너로 가고 이 과정으로 이해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
11일에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김태현 변호사께서 설명을 잘해 주셨는데요. 그래서 투트랙을 수사를 했어요. 현장에 직원과 관련된 사람들을 추궁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핵심이라고 분류가 되는 두 사람에 대한 이런 통신 특수기법으로 수사를 했는데 의정부쪽에 계속 왕래한 기지국 수사도 했어요.

그래서 통신수사 특수기법으로 발견을 해서 결국 추궁을 해서 핵심측근들이 직접 도봉산 자락에 가서 지정을 해 주어서 그래서 열어서 알게 된 이런 사안입니다.

[앵커]
그런데 어쨌든 제가 볼 때에는 구치소 바닥이 딱딱해서 밤에 잠을 잘 수 없다, 이규태 회장이. 죽이 아니면 밥을 못 먹는다는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하는데 구치소 밥을 못 먹으면 죽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변호사로서 접견을 하면 그런 걸 호소하는 고객도 있을 거 아닙니까?

[인터뷰]
사식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사식이라고 해서 그게 아무것이나 다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무슨 갈비먹고 싶다고 해서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식도 지정된 게 있어요. 그걸 이제 일반 접견해서 사석으로 넣어주는 거거든요. 제가 알기로는 사식 중에 죽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닭다리 훈제 같은 것이 하나있고 계란 이런 게 있고 김 이 정도는 있는데요. 글쎄요, 일광그룹의 이규택 회장님. 제가 그렇게 많이 재벌회장도 많이 들어가 있고 그랬지만 방바닥 딱딱하다고 불만이라고 이걸 어떻게 좀 해달라고 했던 사람은 지금 이규태 씨가 최초인 것 같은데요. 글쎄요. 적응 하셔야 될 것 같아요. 당분간 오래 계실 것 같아요.

[앵커]
죽은 안 되나봐요.

[인터뷰]
사안에 따라서야 그렇지만 저도 오래 근무를 해 봤지만 죽을 갖다가 원한다고 해서 제공을 해 준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앵커]
그렇군요. 비밀의 방, 아까 우리 팀장님도 유병언 전 회장과 비교를 많이 해 주셨는데 이게 종교단체 안에 비밀의 방을 만들어 놨다는 그런 공통점이라든지 물론 성격이나 종교단체의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마는 유사점이 그래도 비밀의 방을 만들어놨다는 것 이런 유사점이요. 이게 유병언과 이규태 회장 두 사람의 수사를 받고 감방에도 갔었고 이런 기억 때문에요. 그게 가능한가요?

[인터뷰]
굉장히 유사한 경향이 많아요. 사실은 유병언 전 회장도 유명한 사건으로 결국 그게 발달이 돼서 구속이 돼서 갔고요. 지금 이규태 회장도 사실상 구속이 됐다가 나중에 항소심 집행 유예로 풀여나기는 했지만 결국 이런 수사를 받았던 수감이 됐던 이런 부분들이 굉장히 앞으로 내가 이런 일을 하면서 수사에 대비를 해야 되겠구나.

그래서 결국 유병언 전 회장이나 이규태 회장이나 똑같은 유형이라고 보고요. 다만 제가 판단을 하는 건 이규태 회장은 역시 측근을 믿었다는 이런 부분이 유병언 전 회장하고는 다른 것 같습니다. 유병언 전 회장은 측근을 믿지 않았고 모든 걸 본인이 다, 만기칠람하는 그런 형식의 틀로 갔었고 그런데 이분은 측근을 굉장히 많이 믿은 것 같아요.

그래서 비밀의 방에 직접 심부름을 시키고 본인도 옮기기는 했지만요. 그래서 결국 믿었던 고 모, 김 모씨 부분에 의해서 노출이 된 것인데 이게 보면 사람의 성격이나 특성 차이인 것 같습니다.

[앵커]
비밀의 방이라고 하니까 왜 자꾸 해리포터가 생각이 나는지요. 그런데 어쨌든 그런 의뢰인들을 보실 때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던 분들하고 없었던 분들과 대응방식이 많이 차이가 나나봐요?

[인터뷰]
당연하죠. 속된 말로 한 번 들어갔다 오신 분들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한 번 갔는데 내가 두 번도 못 가시겠어 그런 분들도 계시고 요즘 블루 컬러는 그렇고 화이트 컬러는 안 그래요. 너무 힘드니까요. 그러니까 나 다시는 그거 안 간다고 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는 그런 경우들이 많은데 저는 두 분이 상황이 다르지 않나 생각을 해요.

유병언 씨의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본인의 입장이 굉장히 급박한 상황에서 송치를 급하게 만들었던 것인데 이규태 씨는 급박한 상황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미리미리 저렇게 준비를 했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더 치밀하고 무서운 사람인 거예요.

왜냐하면 교회, 그러니까 저희가 비밀의 방을 중점 있게 보는 거는 사무실을 집에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다 만들었다는 겁니다. 교회는요. 함부로 못 들어갑니다, 경찰에서는. 확증이 없는 상태에서 못 들어 가는데 교회에다가 비밀의 방을 만들어놓고 거기에다가 CCTV를 9대를 달아놨다는 것은 본인이 유사시에 거기를요, 예를 들면 전쟁을 하면 벙커처럼 사용을 하면서 버티겠다는 겁니다.

만약에 이규태 씨가 그동안 무기중개사업을 하면서 각종 로비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속된 말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로비장부를 가지고 거기에서 열흘이고 며칠을 버티게 되면 그러면 나는 유사시에도 살 길이 생긴다고 보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봐서 저는 이규태 씨가 유병언 씨보다 고단수이고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어쨌든 혐의 단계이니까 이것이 어떻게 그 혐의가 확증이 되는지 저희가 지켜보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주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30년이 지나서 외교문서, 26만여 쪽이 오늘 새롭게 공개가 됐습니다. 30년 전 1984년도죠.당시에는 전두환 정권이 집권을 하고 있었던 시절이고요.

이른바 제5공화국 그러니까 전두환 소장이 군사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은 바로 제5공화국 시절의 외교문서입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얘기들이 세상에 밝혀지게 됐습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1984년에 우리 정부가 김일성이 연내 퇴진할 것이다, 이런 설이 제기가 되니까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했다는 얘기인데요. 오늘 이 부분을 잠깐 짚어보겠습니다. 강 교수님, 북한에 84년도에 계셨잖아요. 이때 북한 내에서도 김일성이 84년에 퇴진할 것이라는 얘기, 비교적 고위직에 계셨으니까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나요?

[인터뷰]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앵커]
오늘 처음 들으셨어요?

[인터뷰]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상당히 분위기를 보면 제가 그때는 나이도 어렸지만, 제가 어린 나이는 아니었는데 59년생이니까 25살 때입니다. 제가 국제부에 근무를 하고 있을 때인데 저희 형님들은 다 차관급은 아니지만 상당히 고위직에 있었기 때문에 친척들도 마찬가지이고요. 만약 그랬다면 알았을 겁니다.

수령님이 은퇴한다는 이런 얘기를 조금이라도 친척들, 집안에서 강 씨 집안이든 그 집안과 많이 다녀서 알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요.

[앵커]
강 교수님은 그러니까 어머니쪽이, 강만석 그쪽 집안이시죠?

[인터뷰]
그러다 보니까 대체적으로 다 알게 되는데 전혀 없었습니다. 이걸 처음 들었어요, 사실은요. 이만큼도 의심해 본 적도 없고요. 왜 그런가 하면 그때 당시 보면 알지만 북한에서는 상당히 중요시하지 않습니까? 35돌보다 30돌을 중요시하고 또 35돌을 중요시합니다.

30돌. 제가 1975년에 당창건 35돌을 75년 10월 10일날 했습니다. 그때 굉장히 처음으로 당창권 30돌 기념 회사에 참가했던 사람들에게 김정일 조선노동당 이름으로 몽땅 일제 TV를 선물했습니다. 그렇게 대규모로 했습니다.

84년에 은퇴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40돌 기념 행사를 큰 규모로 준비를 하고 있던 이 행사를 김정일이나 김일성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였는데 그러면 85년도 당 창권 40돌 가장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은퇴한다는 거는 말도 안 되는 겁니다. 규모의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요.

[앵커]
그런데 이 출처가 일본 외무성 동북아 과장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터뷰]
그 전부터 상당히 허무맹랑합니다. 불가리아 외교관이 김일성과 볼가리아 대통령하고 면담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를 아마 듣고 일본 주재 고위 외교관한테 아마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김일성이가 은퇴하려는 것 같다. 말을 들어보니까 직접 자기 입으로 말했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조금 직접 참여는 안 했지만 그때 정황으로 봐서는 김일성이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면 나도 이제 쉴 때가 됐다.

쉴 때는 모든 직위를 내놓고 쉬는 것이 아니라 내 후계자 김정일이가 80대년에 등장하지 않습니까? 김정일이 후계로 지목이 되고 그때는 당중앙으로 불리다가 80년대 당창건 6차 당대회 때, 당창건 6차 당 대회때 그때 공식적으로 발표됐습니다. 조직비서 당중앙으로 불리면서요.

그때 나왔으니까 그다음에 4년이 지난 후 80년도에 당 후계자로 공식지명이 되고 공식적으로 언론플레이를 할 때가 벌써 이미 4년이 흘렀습니다. 그때는 많은 김정일이 모든 정치, 경제, 문화, 군사를 다 틀어지고 있기 때문에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잖아요.

84년도까지는 74년에 조직비서가 돼서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당, 정치, 군사를 다 봤기 때문에 이미 탄한했었죠. 그러니까 김일성이 마음 놓고 김일성이 해외에 못 나간 게 비행기가 무서워서 못 나간 것도 있지만 해외에 나갔을 때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57년도의 쿠데타는 유명하잖아요.

대포까지 걸어놓으면서 들어오면 쏘으려고 했던 이런 게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김정일이 있기 때문에 마음놓고 외국으로 나갈 수 있고 격렬 대통령의 담화에서 이제는 내가 쉴 때가 됐다.

마음놓고 쉴 수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아마 이걸 통역이 잘못 알아듣고 김일성이 나는 이제 은퇴를 하려고 한다, 이렇게 번역을 하지 않았나. 이러니까 볼가리아 거기에 참여했던 외교 고위 관료가 일본 고위 외교관한테 김일성이 은퇴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잘못 말 할 수 있죠.

[앵커]
그런데 휴민트라고 우리가 얘기를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북한에 가서 고위 정보를 빼내고 그랬다는 것은 좀 힘들지만 거기에 가서 북한 고위층한테 정보를 흘려주는 이런 게 우리나라에 강했다고 하는데 안 그런 모양이죠? 이게 일본에서 이런 얘기를 듣고 대책까지 세운 걸 보면.

[인터뷰]
그것도 일본에 부수상도 아니고 장관도 아니고 한 개 동북아 과장이 이야기를 한 것을 확인도 없이 거기에서 대책 회의를 하고 물론 확인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확인했다는 자료는 안 나오거든요. 그 대책 회의를 하고 이 정보 유통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이 정보가 흘러나온 게 동북아 외무성 과장이라고 하니까 아마 이걸 진짜로 믿고요.

왜냐하면 그런 관련 자료들. 김일성 주석이 그때 볼가리아도 가고 루마니아도 가고 동부권을 순환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대통령들을 만나서 면담회의장에서 나왔던 얘기라고 하니까 김일성이 직접 이야기를 했다고 하니까 믿은 것 같은데요.

그 말은 자기가 모든 직위를 다 내려 놓고 허수아비처럼 밑에서 은퇴를 해서 별장 가서 노는 게 아니고 김일성이 죽기 전까지 다 안 줬잖아요. 10년 뒤까지, 자기가 죽을 때까지 아무 것도 안 줬어요. 그런데 준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최고 사령관이라는 그 직책만 물려주지 않았습니까. 총비서관이라든가 전혀 물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84년도에 제가 봐서는 물려줄 생각도 없었고 단지 그냥 모든 것을 후계자한테 맡기고 자기가 직위를 물려주고 은퇴하는 게 아니고 자기 직위는 다 가지고 있으면서 이제는 조금 마음 놓고 쉴 수 있고 내가 해외에 다닐 수 있는 이런 여건이 마련됐다, 왜? 후계자가 있기 때문에요. 이런 이야기가 와전이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한 가지 더 여쭙겠는데요. 휴민트라고 제가 얘기를 하니까 얼마 전 TV에서 보셨죠? 우리나라 국민 2명이 억류가 됐는데 TV 화면에 나와서 하는 얘기가 뭐냐하면 자기가 간첩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간단하게 얘기를 한다면요. 군복을 훔친다는 등 제가 볼 때는 말도 안 되는데요. 그런 것을 보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강 교수님?

[인터뷰]

그러니까 저는 그걸 봤는데 기자회견도 직접 봤는데 똑같은 패턴이 벌어집니다, 북한에서는요. 2014년 10월에 김정은이라는 선교사. 유인을 해서 지하교회를 만나게 해 주겠다고 해서 북한에 밀입국을 해서 파트너를을 통해서요. 가자마자 체포를 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은 단순히 믿고 넘어갔고요. 그래서 감투를 뒤집어 쓰어서요. 어쩔 수 없습니다.

북한이 끌려가면 하는 대로 돼 있어요. 자기가 순교할 생각을 가지지 않는 이상 무조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상황 자체가요. 그러니까 그것도 자기도 간첩혐의를 받고 왔다고 하는데 이번에 똑같아요. 이 분 중 한명은 선교사입니다. 이미 대한민국에 선교사가 맞다고 밝혔거든요.

북한 탈북자들이 나오고 그러면 도와주는 선교사인데 이분도 밀입국을 했다는 걸 보니까 공식적으로 비자받아서 들어가신 분은 아니고 김정욱 선교사도 똑같은 경우로 끌려가서 이미 데려갈 때부터 간첩 누명을 씌우고 데려갔다고 봐야 되죠. 왜, 지금 북한이 코너에 몰려있는 것이 리퍼트 대사를 테러한 다음에 그리고 한미 군사훈련이라든가 지금 북한의 인권문제가 상당히 코너에 많이 몰려 있거든요.

UN에서 이번에도 탈북자 북송 조치 결의안이 통과되고 하다 보니까 간첩이라는 혐의에 대한 패턴을 바꿔야 되는데 한국은 항상 우리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고 이렇게 간첩을 자꾸 보낸다는 걸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되지 않습니까? 국내용이고 또 국내외용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자기가 코너에 몰려있기 때문에요.

[앵커]
저분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인터뷰]
이미 간첩이라는 한 이상 총살은 안 하더라도 20년 징역을 내립니다. 김정욱 씨가 20년 징역을 선고받지 않았습니까?

[앵커]
지금도 있죠?

[인터뷰]
이미 간첩이라고 자기가 말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앵커]
그러면 저분들도 국제사회에서 아무리 압력을 넣어도 나오기가 힘들어진다는 거죠?

[인터뷰]
간첩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했기 때문에 그게 시켜서 했던간에 강압적으로 했던 자기 입으로 간첩이라고 죄를 밝혔기 때문에 국정원이 파견한 간첩이라고 했잖아요. 그런 이상 이제는 20년형 선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정부도 개입할 수가 없고 국제사회에서도 압력을 넣을 수 없습니다. 간첩이라고 자기가 말 했는데 어떻게 압력을 넣을 수 있습니까?

[앵커]
알겠습니다. 어쨌든 저희가 오늘 김일성이 1984년에 퇴진을 하겠다라는 얘기가 오늘 외교문서를 통해서 나와서 그 얘기를 해 봤고요. 오늘 세 분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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