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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렇다면 구원파 신도들이 이처럼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다고 부단하게 주장해온 오대양 사건이 뭐였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87년 일어났던 오대양 사건을 김기봉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에 있던 공예품 공장 '오대양'의 구내식당 천장에서 32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오대양 대표인 박순자 씨와 자녀, 그리고 종업원들이었습니다.
충격적인 집단 변사사건으로, 타살 등 갖가지 추정이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대표였던 박순자 씨도 함께 숨진 상태였기 때문에 수사는 난항을 겪었습니다.
수사당국은 대표 박순자 씨가 신도들을 통해 거액의 사채를 끌어썼다는 사실도 포착했지만 사채와 자살의 직접 연관성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또 박순자 씨가 한 때 구원파에 몸 담았기 때문에 끌어모은 돈의 일부가 구원파 목사였던 유병언 씨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수사 결과 돈이 직접 오갔다는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대양사건은 '광신도들의 집단 자살극'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1991년, 구원파 신도 6명의 증언으로 수사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집단 자살 이전에도 구원파 계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총무 등 3명을 살해 암매장 했다는 진술이었습니다.
당시 검찰은 유병언 씨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해 수사를 했지만 오대양사건과의 연관성은 밝혀내지 못했고, 다만 신도들의 돈을 갚지 않은 혐의에 대해서만 처벌했습니다.
검찰은 이번에 구원파가 오대양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함으로써, 의혹과 진실 사이에 다시 분명한 선을 그었습니다.
YTN 김기봉입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관련 반론보도문
YTN은 위 기사에서 고 유병언 전 회장이 기독교복음침례교회 목사로 재직했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이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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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구원파 신도들이 이처럼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다고 부단하게 주장해온 오대양 사건이 뭐였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987년 일어났던 오대양 사건을 김기봉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에 있던 공예품 공장 '오대양'의 구내식당 천장에서 32명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오대양 대표인 박순자 씨와 자녀, 그리고 종업원들이었습니다.
충격적인 집단 변사사건으로, 타살 등 갖가지 추정이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대표였던 박순자 씨도 함께 숨진 상태였기 때문에 수사는 난항을 겪었습니다.
수사당국은 대표 박순자 씨가 신도들을 통해 거액의 사채를 끌어썼다는 사실도 포착했지만 사채와 자살의 직접 연관성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또 박순자 씨가 한 때 구원파에 몸 담았기 때문에 끌어모은 돈의 일부가 구원파 목사였던 유병언 씨에게 흘러들어갔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수사 결과 돈이 직접 오갔다는 증거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오대양사건은 '광신도들의 집단 자살극'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1991년, 구원파 신도 6명의 증언으로 수사는 다시 시작됐습니다.
집단 자살 이전에도 구원파 계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총무 등 3명을 살해 암매장 했다는 진술이었습니다.
당시 검찰은 유병언 씨를 배후세력으로 지목해 수사를 했지만 오대양사건과의 연관성은 밝혀내지 못했고, 다만 신도들의 돈을 갚지 않은 혐의에 대해서만 처벌했습니다.
검찰은 이번에 구원파가 오대양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함으로써, 의혹과 진실 사이에 다시 분명한 선을 그었습니다.
YTN 김기봉입니다.
기독교복음침례회 관련 반론보도문
YTN은 위 기사에서 고 유병언 전 회장이 기독교복음침례교회 목사로 재직했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기독교복음침례회 측이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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