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양심, 실천적 종교인

시대의 양심, 실천적 종교인

2009.02.16. 오후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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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김수환 추기경은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에도 정부에 대한 권고와 일침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

한나라의 종교 수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주역으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민주화 여정을 김세호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고 김수환 추기경은 서임된 이듬해인 1970년 성탄메시지에서 종교계의 사회참여를 촉구했습니다.

교회가 사회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71년 비상대권체제 당시, 전국에 중계된 성탄 미사에서 본격적인 시국 비판에 나섰습니다.

또 74년 성탄메시지에서는 정치와 언론의 자유가 침해된 곳에 종교 자유만이 따로 건재할 수 없다며 종교의 사회 참여 필요성을 재천명하기도 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메시지 발표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경우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갔고 국가 원수를 향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74년 지학순 주교 구속 때는 지 주교를 접견한 직후 박정희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또 82년 3월에는 전두환 대통령에게 고문금지와 법률적 지원 보장을 요구했고, 83년 1월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석방자를 내방하기도 했습니다.

87년 1월에는 고 박종철 군 추모 미사를, 6월에는 4.13호헌 조치 철회를 촉구하는 특별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민주화에 대한 갈망이 극에 달했던 87년 6월.

당시 명동 성당에 집결한 시위대를 내보내지 않으면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경찰에 맞서 자신을 밟고 지나가라고 외치며 민주화에 대한 소신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습니다.

김 추기경과 명동 성당은 지금도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YTN 김세호[se-35@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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