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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미래를 현실로 가져온 듯한 애플의 비전프로. 하지만 지나치게 비싼 가격과 부담스러운 디자인 탓에 기대에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 말았죠. 이렇게 애플이 체면을 구기는 사이, 라이벌 구글은 다음 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스마트 안경 출시를 앞두고 글로벌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의 지분을 인수하며 ‘디자인’에 승부수를 둔 건데요. 오늘은 구글의 공식 파트너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토종 한국 브랜드, ‘젠틀몬스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 구글이 선택한 젠틀몬스터...1450억 투자 뒤에 숨은 진짜 이유
얼마 전에 기사 하나를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구글이 스마트 안경 부문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젠틀몬스터 운영사인 아이아이컴바인드에 약 1,450억 원을 투자, 지분 4%를 확보했다는 내용인데요. 연말에 공개될 예정인 이 스마트 안경은 안드로이드 XR을 기반으로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제조를, 젠틀몬스터가 디자인을 맡았다고 해요. 아니 근데 삼성전자는 그렇다 쳐도 젠틀몬스터는 좀 의외지 않나요?
구글의 이 같은 행보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여요. 2013년 증강현실 스마트 안경 ‘구글 글래스’를 출시했다가 2년 만에 사업을 접은 뼈아픈 기억이 있거든요. 당시에 한쪽에만 디스플레이가 붙어있는 비대칭 구조, 투박한 프레임, 눈에 띄는 카메라 등… 한 마디로 “디자인이 총체적 난국”이라는 혹평이 쏟아졌고요. 그래서 이번엔 아예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인 젠틀몬스터와 손잡고 설욕전에 나선 겁니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사용자가 안경을 썼다는 사실을 잊게 하고 패션으로 기능해야 한다”며 “파트너들과 긴밀한 기술 협력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요즘 핫한 스마트 안경 시장,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메타는 안경 제조사 레이밴과 협업해 ‘레이밴메타’를 내놨고요, 샤오미도 6월에 ‘샤오미 AI 안경’이라는 자사 첫 스마트 안경을 선보였죠. 애플도 비전프로 2세대 개발에 몰두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구글이 젠틀몬스터라는 독특한 파트너를 선택한 건, 단연 눈에 띄는 전략일 겁니다.
젠틀몬스터는 일찍이 글로벌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아왔는데요. 2017년에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투자 운용사로부터 7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고요. 메종 마르지엘라, 펜디 등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 컬렉션은 물론, 비욘세, 지지 하디드 등 셀럽이 찾는 제품으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실적 역시 가파르게 성장 중이에요. 젠틀몬스터의 매출은 지난 2020년 2,034억 원에서 6,150억 원으로 성장했습니다. 같은 기간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매출은 2,096억 원에서 7,891억 원으로 증가했고요. 최근 추세라면 내후년쯤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어떻게 이런 성장세가 가능한 걸까요? 여기에는 단순한 디자인 이상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 선글라스가 아닌 '경험'을 파는 브랜드...공간 마케팅의 비밀
젠틀몬스터는 명품 브랜드조차 2년 이상 유행을 이끌기 힘든 패션 시장에서 꾸준히 신선한 이미지와 감각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선글라스라는 아이템에만 머물지 않고 패션 그 자체를 정체성으로 삼으며, 매해 독창적인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죠. 이번에 나온 ‘2025 포켓 컬렉션’도 그 일환입니다. 접어서 휴대할 수 있는 선글라스와, 브랏츠와 협업한 인형이 함께 구성된 컬렉션은 인형에 가방 등 액세서리를 교체할 수 있는 독특한 패키지로 출시됐습니다. 정가는 45만 원이지만, 리셀 시장에서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죠.
서울 성수동에 있는 팝업 스토어 건물 위에는 대형 브랏츠 인형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매장 내부에는 실제 제품과 같은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쓴 인형들이 전시돼 있고요. 마치 공간 전체가 브랜드 스토리를 담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는데요. 이 지점에서 젠틀몬스터의 또 다른 강점이 드러납니다. 바로 ‘공간 마케팅’입니다.
젠틀몬스터는 국내외에서 감각 있는 인재들을 영입해 매장을 디자인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본사 상주 직원의 절반 이상이 공간 팀 소속일 정도로 공간 꾸미기에 진심이라고 하는데요. 그 시작은 2014년, 홍대 쇼룸에서 선보인 ‘퀀텀 프로젝트’였습니다. 쇼룸이지만 1층에는 그 어떤 제품도 전시되지 않았고요, 작품과 공간을 모두 즐긴 뒤에야 선글라스를 구경할 수 있는 파격적인 방식이었죠. 매달 테마를 바꿔가며 2년 5개월간 무려 36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2015년에는 북촌의 오래된 공중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배스 하우스’가 공간 업사이클링의 대표 사례로 화제를 모았고요. 압구정에 자리한 ‘하우스 도산’은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브랜드인 젠틀몬스터, 누데이크, 탬버린즈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젠틀몬스터 매장에 한 번이라도 가본 분들은 아실 거예요. 사진 찍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잖아요. 그래서인지 젠틀몬스터에 방문한 MZ세대 사이에서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거울 셀카를 찍어 SNS에 업로드하는 문화가 생겼고요. 자연스럽게 자발적인 바이럴 마케팅으로 이어졌습니다. 제품을 들이밀기보다 공간을 먼저 경험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젠틀몬스터가 구축한 독보적인 브랜딩 전략입니다.
■ 명품 감성에 가격은 절반? MZ세대 저격한 포지셔닝
젠틀몬스터, 과연 얼마나 벌고 있을까요?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30%에 달합니다. 안경 마진이 많이 남는다고 하지만, 대부분 안경 도소매 업체의 영업이익률은 10%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거든요. 그런데 이 회사는 차원이 다릅니다. 명품 브랜드들과 비교하는 게 좀 더 어울릴 정도예요. 같은 해 샤넬의 영업이익률은 32.5%, 에르메스는 40.8%에 달했거든요. 이렇게 영업이익률이 높은 이유는 낮은 매출원가율에 있습니다. 지난해 매출 7,891억 원 중 매출원가는 1,236억 원으로, 매출원가율이 약 15.7%에 불과합니다. 30만 원짜리 선글라스의 제조 원가가 5만 원도 안 된다는 얘기죠. 저렴한 원가의 선글라스를 비싸게 판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동시에 고도의 브랜딩이 성공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살 사람이 줄을 섰다는 뜻이니까요.
젠틀몬스터는 가격 전략을 아주 촘촘하게 세웠습니다. 명품 브랜드와 비슷한 이미지를 지니면서도,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설정했거든요. 우선 신제품을 소량으로, 한정된 기간만 판매해 희소성을 높였고요. 글로벌 스타들을 모델로 내세우고, 세일이나 프로모션은 전혀 하지 않는 방식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자, 이쯤에서 가격을 다시 살펴볼까요? 젠틀몬스터의 안경과 선글라스 가격은 보통 20~30만 원대인데요, 70만 원을 훌쩍 넘기는 명품 제품들에 비하면 오히려 합리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전략은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다른 브랜드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뷰티 브랜드 탬버린즈는 출시 초기 2만 원대 핸드크림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주목받았는데요, 감각적인 패키지와 천연 향료를 활용한 브랜딩 덕분에 선물용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죠. 여기에 이솝, 르라보 등 해외 니치 향수 브랜드와 비슷한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가성비 감성템’으로 각인됐습니다. 얼마 전 런칭한 모자 브랜드 어티슈도 마찬가지예요. 최고가 16만 8천 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캡은 일반 스포츠 브랜드 모자보다는 확실히 비싸지만, 시선을 조금만 옮겨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미, 아크네스튜디오 등 MZ세대가 열광하는 패션 브랜드의 모자는 통상 20~40만 원은 줘야 살 수 있거든요. 결국 아이아이컴바인드는 ‘명품은 부담스럽지만, 감성과 희소성은 포기할 수 없는’ 젊은 세대의 심리를 정확히 읽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럭셔리를 제안한 겁니다.
■ 평범한 직장인의 절망에서 시작된 글로벌 브랜드
이 회사, 대체 누가 만든 건지 슬슬 궁금해지는데요. 젠틀몬스터는 놀랍게도 한 회사원의 ‘절망’에서 시작됐습니다. 젠틀몬스터를 창립한 김한국 대표는 원래 금융 대기업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그런데 입사 3개월 만에 “내가 이렇게 살려고 뼈 빠지게 공부했나?”라는 자괴감에 빠졌고, 곧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이후 그는 작은 영어 교육회사에 입사해 1년 반 만에 이사로 승진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죠. 그러나 정부 규제가 심한 사교육 시장의 한계를 느낀 그는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총 10개의 신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그중 마지막 10번째 아이템이 바로 ‘안경’이었어요. 트렌드가 바뀌어도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자, 대기업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 거죠. 그렇게 김 대표는 2011년, 회사에서 투자받은 자본금 5천만 원으로 아이아이컴바인드를 창업하고, 젠틀몬스터 브랜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젠틀몬스터는 국내 최초로 ‘홈트라이’를 시도했습니다. 고객이 온라인에서 고른 안경 5개를 집으로 배송받아 직접 착용해 본 뒤, 마음에 드는 것만 고르고 나머지는 반송하는 서비스인데요.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택배비는 모두 회사에서 부담했어요. 상당히 획기적인 판매 방식이었지만, 시장 반응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당시 소비자들은 안경원에서 직접 검안을 받고, 현장에서 추천받은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에 더 익숙했기 때문이죠. 결국 젠틀몬스터는 창업 7개월 만에 폐업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반전은 ‘제품 디자인’에서 시작됐어요. 협업하던 타투이스트로부터 “제품이 안 예쁘다”는 날카로운 피드백을 들은 김 대표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모든 마케팅·홍보 예산을 디자인에 집중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디자이너들을 선발하고, 외부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제품 디자인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어요.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배우 전지현이 젠틀몬스터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오면서 ‘천송이 선글라스’로 큰 화제를 모은 건데요. 놀랍게도 이 제품은 협찬을 통한 PPL이 아니라, 스타일리스트가 순수하게 ‘예뻐서’ 고른 거였다고 합니다. 제품 디자인에 집중한 전략이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한 순간이었죠. 앞서 말씀드렸던 거처럼, 구글이 젠틀몬스터를 선택한 이유 역시 이 ‘패션으로서의 기능’에 주목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후 김 대표는 2017년 화장품 브랜드 탬버린즈, 2020년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까지 성공적으로 론칭시켰습니다. 체급을 키운 젠틀몬스터는 해외로 눈을 돌려 본격적인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는데요. ‘전시회 같은 매장 구성’은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되었고, 뉴욕타임스는 “극장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국 MZ세대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2023년에는 베이징의 명동으로 불리는 싼리툰 거리 한복판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현재 젠틀몬스터는 전 세계 12개국에서 65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며 전체 매출의 약 4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 젠틀몬스터는 브랜드 확장의 핵심을 ‘공간’에서 찾고 있어요. 서울의 주요 상권인 성수동, 신사동 도산공원, 한남동 등 트렌디한 지역에 건물과 부지를 대거 확보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간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죠. 공간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한국 대표. 이번에도 그 전략이 통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알면 돈이 되는 경제 이야기 '이게머니', “세상을 놀라게 하라”는 철학 아래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해 온 젠틀몬스터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설레게 할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https://youtu.be/McGiezLfbQc?si=FV0fD4Yow742qMKq
YTN digital 서미량 (tjalfid@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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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이 선택한 젠틀몬스터...1450억 투자 뒤에 숨은 진짜 이유
얼마 전에 기사 하나를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구글이 스마트 안경 부문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젠틀몬스터 운영사인 아이아이컴바인드에 약 1,450억 원을 투자, 지분 4%를 확보했다는 내용인데요. 연말에 공개될 예정인 이 스마트 안경은 안드로이드 XR을 기반으로 삼성전자가 하드웨어 제조를, 젠틀몬스터가 디자인을 맡았다고 해요. 아니 근데 삼성전자는 그렇다 쳐도 젠틀몬스터는 좀 의외지 않나요?
사진=구글 제공
구글의 이 같은 행보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여요. 2013년 증강현실 스마트 안경 ‘구글 글래스’를 출시했다가 2년 만에 사업을 접은 뼈아픈 기억이 있거든요. 당시에 한쪽에만 디스플레이가 붙어있는 비대칭 구조, 투박한 프레임, 눈에 띄는 카메라 등… 한 마디로 “디자인이 총체적 난국”이라는 혹평이 쏟아졌고요. 그래서 이번엔 아예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인 젠틀몬스터와 손잡고 설욕전에 나선 겁니다.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사용자가 안경을 썼다는 사실을 잊게 하고 패션으로 기능해야 한다”며 “파트너들과 긴밀한 기술 협력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요즘 핫한 스마트 안경 시장, 경쟁이 아주 치열합니다. 메타는 안경 제조사 레이밴과 협업해 ‘레이밴메타’를 내놨고요, 샤오미도 6월에 ‘샤오미 AI 안경’이라는 자사 첫 스마트 안경을 선보였죠. 애플도 비전프로 2세대 개발에 몰두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구글이 젠틀몬스터라는 독특한 파트너를 선택한 건, 단연 눈에 띄는 전략일 겁니다.
젠틀몬스터는 일찍이 글로벌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아왔는데요. 2017년에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투자 운용사로부터 7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고요. 메종 마르지엘라, 펜디 등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 컬렉션은 물론, 비욘세, 지지 하디드 등 셀럽이 찾는 제품으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실적 역시 가파르게 성장 중이에요. 젠틀몬스터의 매출은 지난 2020년 2,034억 원에서 6,150억 원으로 성장했습니다. 같은 기간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매출은 2,096억 원에서 7,891억 원으로 증가했고요. 최근 추세라면 내후년쯤 1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어떻게 이런 성장세가 가능한 걸까요? 여기에는 단순한 디자인 이상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 선글라스가 아닌 '경험'을 파는 브랜드...공간 마케팅의 비밀
젠틀몬스터는 명품 브랜드조차 2년 이상 유행을 이끌기 힘든 패션 시장에서 꾸준히 신선한 이미지와 감각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선글라스라는 아이템에만 머물지 않고 패션 그 자체를 정체성으로 삼으며, 매해 독창적인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죠. 이번에 나온 ‘2025 포켓 컬렉션’도 그 일환입니다. 접어서 휴대할 수 있는 선글라스와, 브랏츠와 협업한 인형이 함께 구성된 컬렉션은 인형에 가방 등 액세서리를 교체할 수 있는 독특한 패키지로 출시됐습니다. 정가는 45만 원이지만, 리셀 시장에서 1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죠.
사진=젠틀몬스터 제공
서울 성수동에 있는 팝업 스토어 건물 위에는 대형 브랏츠 인형이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매장 내부에는 실제 제품과 같은 디자인의 선글라스를 쓴 인형들이 전시돼 있고요. 마치 공간 전체가 브랜드 스토리를 담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는데요. 이 지점에서 젠틀몬스터의 또 다른 강점이 드러납니다. 바로 ‘공간 마케팅’입니다.
젠틀몬스터는 국내외에서 감각 있는 인재들을 영입해 매장을 디자인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본사 상주 직원의 절반 이상이 공간 팀 소속일 정도로 공간 꾸미기에 진심이라고 하는데요. 그 시작은 2014년, 홍대 쇼룸에서 선보인 ‘퀀텀 프로젝트’였습니다. 쇼룸이지만 1층에는 그 어떤 제품도 전시되지 않았고요, 작품과 공간을 모두 즐긴 뒤에야 선글라스를 구경할 수 있는 파격적인 방식이었죠. 매달 테마를 바꿔가며 2년 5개월간 무려 36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2015년에는 북촌의 오래된 공중목욕탕을 개조해 만든 ‘배스 하우스’가 공간 업사이클링의 대표 사례로 화제를 모았고요. 압구정에 자리한 ‘하우스 도산’은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브랜드인 젠틀몬스터, 누데이크, 탬버린즈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사진=젠틀몬스터 제공
젠틀몬스터 매장에 한 번이라도 가본 분들은 아실 거예요. 사진 찍어서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잖아요. 그래서인지 젠틀몬스터에 방문한 MZ세대 사이에서는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거울 셀카를 찍어 SNS에 업로드하는 문화가 생겼고요. 자연스럽게 자발적인 바이럴 마케팅으로 이어졌습니다. 제품을 들이밀기보다 공간을 먼저 경험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젠틀몬스터가 구축한 독보적인 브랜딩 전략입니다.
■ 명품 감성에 가격은 절반? MZ세대 저격한 포지셔닝
젠틀몬스터, 과연 얼마나 벌고 있을까요?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30%에 달합니다. 안경 마진이 많이 남는다고 하지만, 대부분 안경 도소매 업체의 영업이익률은 10%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거든요. 그런데 이 회사는 차원이 다릅니다. 명품 브랜드들과 비교하는 게 좀 더 어울릴 정도예요. 같은 해 샤넬의 영업이익률은 32.5%, 에르메스는 40.8%에 달했거든요. 이렇게 영업이익률이 높은 이유는 낮은 매출원가율에 있습니다. 지난해 매출 7,891억 원 중 매출원가는 1,236억 원으로, 매출원가율이 약 15.7%에 불과합니다. 30만 원짜리 선글라스의 제조 원가가 5만 원도 안 된다는 얘기죠. 저렴한 원가의 선글라스를 비싸게 판다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는 동시에 고도의 브랜딩이 성공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살 사람이 줄을 섰다는 뜻이니까요.
그래픽=강소윤 디자이너
젠틀몬스터는 가격 전략을 아주 촘촘하게 세웠습니다. 명품 브랜드와 비슷한 이미지를 지니면서도,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설정했거든요. 우선 신제품을 소량으로, 한정된 기간만 판매해 희소성을 높였고요. 글로벌 스타들을 모델로 내세우고, 세일이나 프로모션은 전혀 하지 않는 방식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자, 이쯤에서 가격을 다시 살펴볼까요? 젠틀몬스터의 안경과 선글라스 가격은 보통 20~30만 원대인데요, 70만 원을 훌쩍 넘기는 명품 제품들에 비하면 오히려 합리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전략은 아이아이컴바인드의 다른 브랜드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뷰티 브랜드 탬버린즈는 출시 초기 2만 원대 핸드크림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주목받았는데요, 감각적인 패키지와 천연 향료를 활용한 브랜딩 덕분에 선물용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죠. 여기에 이솝, 르라보 등 해외 니치 향수 브랜드와 비슷한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가성비 감성템’으로 각인됐습니다. 얼마 전 런칭한 모자 브랜드 어티슈도 마찬가지예요. 최고가 16만 8천 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캡은 일반 스포츠 브랜드 모자보다는 확실히 비싸지만, 시선을 조금만 옮겨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미, 아크네스튜디오 등 MZ세대가 열광하는 패션 브랜드의 모자는 통상 20~40만 원은 줘야 살 수 있거든요. 결국 아이아이컴바인드는 ‘명품은 부담스럽지만, 감성과 희소성은 포기할 수 없는’ 젊은 세대의 심리를 정확히 읽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럭셔리를 제안한 겁니다.
사진=어티슈 제공
■ 평범한 직장인의 절망에서 시작된 글로벌 브랜드
이 회사, 대체 누가 만든 건지 슬슬 궁금해지는데요. 젠틀몬스터는 놀랍게도 한 회사원의 ‘절망’에서 시작됐습니다. 젠틀몬스터를 창립한 김한국 대표는 원래 금융 대기업에 다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그런데 입사 3개월 만에 “내가 이렇게 살려고 뼈 빠지게 공부했나?”라는 자괴감에 빠졌고, 곧 회사를 그만두게 됩니다. 이후 그는 작은 영어 교육회사에 입사해 1년 반 만에 이사로 승진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죠. 그러나 정부 규제가 심한 사교육 시장의 한계를 느낀 그는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총 10개의 신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그중 마지막 10번째 아이템이 바로 ‘안경’이었어요. 트렌드가 바뀌어도 반드시 필요한 제품이자, 대기업과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낀 거죠. 그렇게 김 대표는 2011년, 회사에서 투자받은 자본금 5천만 원으로 아이아이컴바인드를 창업하고, 젠틀몬스터 브랜드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젠틀몬스터는 국내 최초로 ‘홈트라이’를 시도했습니다. 고객이 온라인에서 고른 안경 5개를 집으로 배송받아 직접 착용해 본 뒤, 마음에 드는 것만 고르고 나머지는 반송하는 서비스인데요.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택배비는 모두 회사에서 부담했어요. 상당히 획기적인 판매 방식이었지만, 시장 반응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당시 소비자들은 안경원에서 직접 검안을 받고, 현장에서 추천받은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에 더 익숙했기 때문이죠. 결국 젠틀몬스터는 창업 7개월 만에 폐업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반전은 ‘제품 디자인’에서 시작됐어요. 협업하던 타투이스트로부터 “제품이 안 예쁘다”는 날카로운 피드백을 들은 김 대표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모든 마케팅·홍보 예산을 디자인에 집중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디자이너들을 선발하고, 외부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제품 디자인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어요.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배우 전지현이 젠틀몬스터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나오면서 ‘천송이 선글라스’로 큰 화제를 모은 건데요. 놀랍게도 이 제품은 협찬을 통한 PPL이 아니라, 스타일리스트가 순수하게 ‘예뻐서’ 고른 거였다고 합니다. 제품 디자인에 집중한 전략이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한 순간이었죠. 앞서 말씀드렸던 거처럼, 구글이 젠틀몬스터를 선택한 이유 역시 이 ‘패션으로서의 기능’에 주목했기 때문일 겁니다.
사진=탬버린즈 제공
이후 김 대표는 2017년 화장품 브랜드 탬버린즈, 2020년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까지 성공적으로 론칭시켰습니다. 체급을 키운 젠틀몬스터는 해외로 눈을 돌려 본격적인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는데요. ‘전시회 같은 매장 구성’은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되었고, 뉴욕타임스는 “극장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중국 MZ세대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2023년에는 베이징의 명동으로 불리는 싼리툰 거리 한복판에 매장을 열었습니다. 현재 젠틀몬스터는 전 세계 12개국에서 65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며 전체 매출의 약 4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 젠틀몬스터는 브랜드 확장의 핵심을 ‘공간’에서 찾고 있어요. 서울의 주요 상권인 성수동, 신사동 도산공원, 한남동 등 트렌디한 지역에 건물과 부지를 대거 확보하며, 브랜드의 정체성을 공간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죠. 공간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한국 대표. 이번에도 그 전략이 통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에 대해 살펴봤는데요. 알면 돈이 되는 경제 이야기 '이게머니', “세상을 놀라게 하라”는 철학 아래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해 온 젠틀몬스터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설레게 할지, 기대해 보겠습니다.
https://youtu.be/McGiezLfbQc?si=FV0fD4Yow742qM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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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digital 서미량 (tjalfid@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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