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동결 이유' 뜯어보니…한국은행도 '위기'로 알고 있다

'금리 동결 이유' 뜯어보니…한국은행도 '위기'로 알고 있다

2023.05.26. 오전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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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동결 이유' 뜯어보니…한국은행도 '위기'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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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하다" 한국은행의 익숙한 화법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2월과 4월에 이어 세 번 연속 금리 동결이다. 이번에 또다시 동결을 발표하면서 <통화정책방향 의결문 전문>을 공개했다. 이 전문에는 비슷한 문장 구조가 반복된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①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지속하겠지만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
② "세계 경제는 예상보다 양호한 성장 흐름을 나타내고 있지만…성장세가 점차 둔화할 것으로 예상"
③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
④ "소비가 서비스를 중심으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지만 수출과 투자 부진이 이어지면서 성장세 둔화 지속"
⑤ "국내 경제는 낮은 성장세를 이어가겠지만 물가상승률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

"… 지만 … 하다" 이런 문장 구조가 전문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이뤄진다. 위 4문장을 정리하면 결국 ①물가상승률은 여전히 목표 상회 ② 세계 경제 성장세 둔화 예상 ③ 인플레이션도 여전히 놓아 ④ 국내 성장세 둔화 지속 ⑤ 올해 기준 금리 인하 어려워…

한국은행의 '한마디,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물론 한국은행의 틀린 전망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매파든 비둘기든 한쪽에 쏠리는 메시지를 주는 걸 극도로 경계한다. 이러다 보니 "… 지만 … 하다"라는 문장 구조가 자주 나타난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 중앙은행만 그런 게 아니다. 미 연준 의장인 파월도 이런 비슷한 '화술'을 자주 쓴다. 이럴 때 시장은 혼란스러워하고 그만큼 불확실성도 높아진다.

성장 둔화지만 이미 '위기' 진입으로 인식

'금리 동결 이유' 뜯어보니…한국은행도 '위기'로 알고 있다

"… 지만 … 하다"는 문장 구조를 쓰는 건 결국 '이것저것 다 살피고 고려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정리하면 한국은행의 경제 진단과 전망은 한마디로 '둔화'다. 이번에 올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존 1.6%에서 1.4%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코로나 위기가 시작된 2020년 -0.7%,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0.8%, 외환위기인 1998년 -5.1%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단계의 성장률을 전망했다. 지금의 전망치 추세로 보면 '위기' 진입 단계로 보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앞서 국내외 기관 모두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종전 1.8%에서 1.5%, 국제통화기금은 1.7%에서 1.5%, 경제협력개발기구는 1.8%에서 1.6%, 무디스도 1.6%에서 1.5%로 낮췄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대부분 1% 남짓으로 낮춰 잡았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모두 올해 경기가 상반기 부진에서 하반기 회복으로 가는 '상저하고'로 전망했지만 이렇게 되면 '상저하저'로 갈 가능성이 점점 커지게 된다.

'소비'로 겨우 버티는 한국 경제

'금리 동결 이유' 뜯어보니…한국은행도 '위기'로 알고 있다

한국은행도 인정했듯이 현재 소비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지만 수출 부진은 이어지고 있다. 한국 경제 성장 동력이었던 '수출'이 막히면서 '상저하저' 전망에 좀 더 힘을 보태고 있다. 수출주도형 성장은 사실상 끝났다는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 진단과 비슷하다. 통계로도 나온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10년(2013~2022년) 동안 한국의 수출증가율은 2.8%로 세계교역 증가율(3.1%)보다 낮았다. 한국은행 자료에도 최근 10년간 수출 증가율은 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주도형 성장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근거다.

무엇보다 최대 교역국인 중국의 리오프닝, 즉 경제활동 재개 효과가 지연되고 있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대중 수출은 지난해 6월부터 지난달까지 11개월째 감소세를 보였다. 이달 들어서도 23% 이상 크게 감소했다. 수출이 수입보다 뒤처지면서 무역적자는 1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데 지난 1995년 1월 ∼ 1997년 5월 이후 처음이다. 무엇보다 반도체 분야 부진이 제일 크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미중 반도체 전쟁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기로에 서 있다. 미국의 선제적 조치에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로 보복에 나서면서 한국 정부와 반도체 기업은 '대체자 역할'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정작 '무역 전쟁'을 벌이는 미중의 지난해 교역량은 사상 최대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얻을 건 확실히 얻어야 한다는 걸 미국과 중국은 이미 알고 있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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