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기재부의 수상한 과세면제 확대...수백억 날린 책임은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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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6. 오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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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재벌가들의 편법 증여는 극에 달했습니다. 재벌 총수 일가에게 "어떻게든 증여세를 안 내고 그룹을 아들딸에게 넘겨줄 것인가"는 언제나 최우선 관심 사안이었습니다. 당시 경영권 승계가 임박한 삼성이나 현대차그룹 할 거 없이 총수 일가에 유행처럼 번진 편법은 바로 '일감 몰아주기'였습니다. 그룹 내 비상장사 주식을 헐값에 물려준 뒤 계열사의 매출을 모조리 몰아주는 내부거래를 통해 그 회사의 가치를 집중적으로 부풀리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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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2·3세들이 수천억, 수조 원대 그룹을 차지하면서 증여세는 고작 헐값 주식 증여분에 대한 푼돈만 내는 일탈이 반복되자 사회적 공분이 들끓었습니다. 이에 정부와 국회, 학계는 '일감 몰아주기'를 실질적 증여 행위로 보고 증여세를 부과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방안을 구상합니다. 그리고 2011년 8월, 정부가 한국조세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맡겨 나온 여러 안 가운데 채택된 것이 바로 현재의 증여세 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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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논의 끝에 이룬 합의로 재벌가의 고질적 편법 증여에 경종을 울린 것처럼 보였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후퇴했습니다.

■ 편법 증여에 경종?…시행령 하나에 규제 무력화

총수 일가가 대주주인 기업들의 내부거래 비율은 급격한 변화가 없었는데, 오히려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세수와 신고 인원은 크게 감소했습니다. 내부거래 비율이 규제 기준인 30%를 크게 웃도는데도 총수 일가가 증여세를 전혀 안 내거나 푼돈만 내는 사례가 속출했습니다. 도대체 규제 어디에 문제가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상속·증여세법 본안도 아닌 하위 시행령의 한 조항에 숨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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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내부거래로 매출을 올렸어도 그것이 수출 목적이고, 해외 법인과 거래한 것이면 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혜택을 줬습니다. 규제에 커다란 빈틈이 생긴 겁니다. 기재부의 명분은 수출 위축 우려였습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국내 계열사와 매출을 올리면 적용이 안 됩니다. 당연히 해외 계열사가 많은 그룹일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면 증여세는 기업이 내는 돈이 아닙니다. 편법으로 사적 이익을 취한 총수 일가만 내는 돈이죠. 원칙적으론 수출 위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은 실제 기업의 내부거래 비율을 크게 낮추는 데 일조했습니다. 심지어 내부거래 비율을 계산하면서 총매출액(분모)에선 해외를 포함하고 내부거래 매출(분자)에선 해외를 빼는 모순된 계산식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그 계산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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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해외 계열사 매출을 빼기로 했다면 분모의 매출액에서도 그 금액을 제외해야 맞습니다. 이런 상식 밖의 계산 덕분에 해외 계열사와의 내부거래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분모와 분자의 괴리가 커져(분모↑ 분자↓…내부비율 급감), 총수 일가는 손쉽게 증여세를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이후 비판이 잇따르자 2017년 무렵에야 이 계산식을 마지못해 바꿉니다.

■ 몸통(법) 흔든 꼬리(시행령)…논의조차 없다 ‘갑툭튀’

국회에서 개정하는 본 법령도 아니고 하위 시행령안에 들어간 조항 하나에 증여세가 줄줄 샐 것이라고 미리 알아챈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선행 연구용역 보고서나 관련 이슈 페이퍼까지 뒤졌지만, 이 조항을 논의한 출처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공론화 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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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입법 예고안에서 더 수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당시 시행령 초안에 '제품'으로만 한정됐던 매출액 적용 범위가 어찌 된 일인지 실제 신설안엔 '제품·상품'까지로 슬쩍 바뀌어있는 겁니다.

■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

많은 세상일이 그렇듯이 독버섯 같은 조항은 늘 눈에 잘 띄지 않는 세부사항 속에 숨어있는 법입니다. 딱 단어 하나만 추가됐지만, 수혜를 입는 총수 일가의 범위는 극적으로 확장됐습니다. 세법에서 ‘제품’은 제조업체가 실제 제조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만 해당하고, 물건을 사서 유통하기만 한 건 ‘상품’으로 분류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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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법에서 '제품'을 분류하는 이유는 제조업이 일자리 창출 효과나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반면 유통은 일감 몰아주기의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업종입니다. 긴 유통 과정 중간에 총수 일가 기업을 끼워 넣으면 티 나지 않게 통행세를 받아 일감을 몰아줄 수 있지만, 적발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엄격히 봐도 모자랄 판에 기재부가 되려 유통업까지 과세 면제 조항의 대상으로 포함시킨 건 주무부처의 행동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사입니다. 또 이런 사안을 한 달여에 불과한 짧은 입법 예고 기간에 결정한 것도 이례적입니다. 그래서 아예 작정하고 봐준 게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 뜻밖의 행운(?)에 미소 지은 현대家
- 현대글로비스 내부거래 비율 81.72% → 37.37%

이 조치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현대차그룹, 특히 경영권 승계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였습니다.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올라있는(2014년 31.88% 보유, 현재 23.29%) 계열사로, 오래전부터 현대차그룹은 이 글로비스를 중심으로 한 그룹 개편 방안을 진행해 왔습니다. 물론 이 지배구조 개편이 성사되려면 글로비스의 규모가 충분히 커져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글로비스는 계열사 내부거래 비율이 높습니다. 실제 규제가 도입된 2012년 당시에도 글로비스는 내부거래 비율은 81.7%에 달할 만큼, 거의 모든 매출을 계열사의 도움으로 올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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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글로비스는 제조업이 아닌 ‘유통물류 기업’입니다. 만약 기재부가 과세 면제 조항을 '상품'까지 확대해주는 기적(?)이 없었다면, 정 부회장은 꼼짝없이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를 물 수밖에 없는 위기였습니다. 때마침 '상품'이 추가되면서 정 부회장은 2012년 한 해에만 200억 원가량의 증여세를 피했습니다. 현재까지 따지면 최소 천억 원가량의 이득을 본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런데 이건 현대글로비스에 대해 정 부회장이 내야 할 증여세에 국한된 얘기입니다. 현대글로비스에 대해 정몽구 회장이 냈어야 할 증여세 지분도 따로 따져봐야 합니다. 이밖에 그룹 내 다른 계열사, 총수 일가의 다른 가족도 있죠. 이를 각각 계산하고 나아가 재계 전체로 범위를 확대해보면 이 조항 하나로 빠져나간 세금이 얼마나 될지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몇천억 원에 이를 것이란 추산만 가능합니다. 참고로 2016년 한 해 통틀어서 일감 몰아주기로 거둬들인 증여세액이 고작 68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 기재부가 이런 조치를 아무 생각 없이 했을 리 없습니다.

■ 기재부, 알고 했나 모르고 했나…“무능이거나 봐주기거나”

당시 시행령안을 설계한 건 기획재정부 재산세제과였습니다. 왜 해당 시행령안 조항이 '상품'까지 확대됐는지를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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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이나 제품이나 그게 그거죠, 뭐. 하나하나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는 거 같은데요. 뭐 이렇게 법 고치다 보면 상품만 들었네, 제품도 넣어야지 하면 뭐 넣을 수도 있고 그런 거지.” (前 재산세제과 규제 설계 담당자)

"그 상품, 제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처음에는 제품 범위였는데, 상품 범위까지 확대했다는 기록도 내용이 전혀 없어요." (現 재산세제과 책임자)

기재부에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도 '제품'과 '상품'은 다른 것이 없고, 이를 바꾼 근거나 관련 기록도 전혀 없다는 거였습니다. 당시 규제 설계 담당자는 오히려 의미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지 말라며 여유있는 웃음도 지었습니다. 그러나 세제 분야 최고 두뇌들이 모였다는 기재부 재산세제과가 설마 '제품'과 '상품' 차이도 모르고 바꿨을 리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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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었을 가능성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의 문건을 통해 더욱 짙어졌습니다. YTN이 확보한 전경련 문건에는 '상품'까지 조항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요구가 조목조목 담겼습니다. 이 문건은 입법 예고 기간 정확히 기재부에 전달됐습니다. 그리고 시행령안은 얼마 뒤 약속이나 한 듯 바뀌었습니다. 전경련이 왜 다른 걸 제쳐놓고 이 조항을 '상품'까지 확대해달라고 했는지 생각하면 이 조항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답이 나옵니다. 범위 변경을 논의한 기록이 없다던 기재부 주장과 달리, 이 문건은 기재부에 잘 보관돼있었습니다. 보도가 나가자 그제야 재산세제과는 그런 사실이 있었다며 앞뒤 다른 해명자료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본인들의 조치로 수천억 원의 증여세가 날아간 데 대한 입장은 언급조차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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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재부, 과세면제 범위 확대 집착하는 이유는?

기재부는 불과 얼마 전에도 슬그머니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 면제 범위를 더 확대해주겠다고 나섰다가 과세 취지를 흐린다는 호된 비판을 맞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이쯤 되면 기재부가 무슨 연유에서 이토록 과세 면제 조항 확대에 집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하기 위해 규제를 설계한 건지, 아니면 총수 일가를 봐주기 위해 고심한 건지 말입니다.

정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일감 몰아주기에 더 강력한 규제를 마련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러면서 시행령안 조항 하나로 수백, 수천억 원의 증여세가 빠져나간 사실은 모른 척합니다. 시행령은 정부가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개정할 수 있습니다. 일감 몰아주기를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보여주기식이 아니라면, 국회와 재계에 책임을 떠밀고 뒤로는 편법의 길을 터주는 이중적인 행태는 중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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