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 보기
![[와이파일] 신냉전과 미국의 ‘민주평화론’ …역사는 반복될까](https://image.ytn.co.kr/general/jpg/2022/0526/202205260600016714_d.jpg)
윤석열 대통령과 바이든 미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 출처 : 연합뉴스
AD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1일 한미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오랫동안 말씀드렸다시피, 미국에 반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 편에 서라는 바이든의 말은 내 편, 네 편으로 가르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국제관계에서 ‘동맹’이라는 말과 ‘세력 균형’이라는 용어도 이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 말은 미국 대외정책의 오랜 전통인 ‘민주평화론’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 것이 민주평화론의 기본 개념이다. 칸트의 '영구평화' 개념에 근거해 자유 민주주의를 확산시켜 평화를 달성하겠다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냉전시대 소련이나 중국을 비롯한 공산주의권을 겨냥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미국의 패권을 이념적, 이론적으로 완성하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주의만으로 전쟁을 막지 못한다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민주평화론은 미 클린턴 행정부(1993-2001) 대외정책의 이론적 기반이 됐고, 조지 W. 부시 대통령(2001-2009)의 ‘테러와의 전쟁’의 명분이 되기도 했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민주주의 국가 대 독재국가(전제국가)의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며 양분법으로 다시 선명하게 구분했다. 중국이 결국 민주평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은 만큼, 이번에는 민주주의 국가들끼리 뭉쳐보자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일본에 가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어쩌면 변형된 민주평화론일 수 있으나 바이든 대통령의 어록을 따라가면, 그는 민주평화론이 신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신고립주의’에 비견되는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올리거나 철군까지 거론하며 동맹국이나 우방국들을 힘들게 한 것과는 대비된다.
중국 해군 실사격 훈련 모습, 출처 : YTN
바이든 대통령의 신념이 녹아든 미국의 대외정책은 동북아를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한 의도를 담고 있다. 미국은 중국 시진핑 주석이 2040년대까지 중화민족의 부흥을 목표로 ‘중국몽’과 ‘군사굴기'를 완성해 아시아에서 만큼은 미국을 제끼고 ‘지역 패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침범한 푸틴의 사례에서 보듯 러시아의 팽창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다시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돈바스 지역에 맹공을 퍼붓는 것과 중국의 팽창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 이익이 더 크다는 인식이 바탕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나토의 위협을 명분으로 지리적 거점을 확보해 흑해와 지중해를 거쳐 대서양으로 나가겠다는 의도를, 중국은 남중국해를 발판으로 아시아 패권을 장악하려는 속내가 있다는 분석이 주류다. 16세기 스페인과 19세기 영국, 20세기 이후 미국에서 보듯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강대국 혹은 초강대국 반열에 올랐고 최소 지역 패권을 장악했던 역사를 되풀이 하려는 시도일 수 있 다. 강대국 간의 패권 다툼이 전쟁을 불러온다는 오래된 국제관계이론을 따르자면 불확실한 미래가 그려지기도 한다.
바이든 정부는 이같은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와의 연대를 추진 중에 있고, 그 핵심적 요소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다. ‘경제협의체’만으로 중국의 팽창을 막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미국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이 급격히 확대된 부분을 노렸다는 판단이다.
전통적 차원의 군사강국의 필수적 요소는 경제와 인구다. 인구는 병력을 공급하는 원천이 되고, 경제는 전쟁비용이나 국방력 강화를 조달하는 핵심이다. 따라서 인구가 많지만 경제력이 없거나 경제력이 있어도 인구가 부족하면 군사강국이 될 수 없다. 중국은 이 모든 것을 갖춰 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국이 ‘군사굴기’를 확립하기 전 중국의 경제에 타격을 가해 군사적 패권 국가로 도약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경제안보를 넘어 소프트웨어의 핵심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동맹’까지 거론한 것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일본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에 강하게 반대하며, 인권 문제를 포함한 중국을 둘러싼 여러 과제와 관련해 미국과 일본은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며 발언의 강도를 높였다.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 간의 미일 정상회담, 출처 : 연합뉴스
문제는 이같은 미중 갈등에 우리나라가 끼어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팽창 욕구와 미국의 대응이 충돌하며 ‘신냉전’을 불러오는 상황이 생긴다면, 냉전시대 그랬던 것처럼 ‘균형외교’가 아닌 한쪽에 적극적으로 ‘편승’ 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 냉전기에는 국제정치가 국내정치에 영향을 미쳤지만, 탈냉전기에는 주권 국가의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됐다. 이에 따라 다시 경제든 안보든 블록을 중심으로한 신냉전이 도래한다면 지정학과 지경학적 국제정치에 얽매어 있는 우리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 강화에 나선 윤석열 정부는 일단 미국의 민주평화론을 존중하되, 국익에 맞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새로 세우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으로 보인다. IPEF에는 적극 참여하지만 중국을 더 자극할 수 있는 비공식 안보협의체 ‘쿼드’에는 분야별로 참여 입장을 밝히고 있다. 쿼드에 부정적이었던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기조다. 세계 질서가 경제를 매개로 한 신냉전 시대로 가면 장기적으로 맞는 방향일 수 있지만 당장의 우리 경제안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또한 중차대한 상황이다.
일본은 중국의 팽창을 명분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에 적극적으로 편승하면서, 무엇보다 ‘군사 대국화’의 기회를 엿보는 것 같다. 기시다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에서 “지역 안보 환경에 대한 위협이 더욱 증가하는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과 미일 동맹의 억지력, 대처력을 조속히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재확인 했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지하다시피 한일관계는 특수한 상황이다. 다시 도발에 나선 북한과 한미관계와 한중관계, 일본까지 신경써야 하는 엄중한 현실을 맞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안보와 경제로 대표되는 국익이 최우선적으로 강조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 없다.
김문경
통일외교안보부장
YTN 김문경 (mkkim@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