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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도발'이냐 '위협'이냐...그것이 고민이 軍](https://image.ytn.co.kr/general/jpg/2022/0420/202204200600020768_d.jpg)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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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사용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도발’과 ‘위협’이다. 2021년 10월 21일 서욱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SLBM 발사가 ‘도발’이냐는 질문에 ‘위협’이라고 답변해 논란을 빚었다. 서 장관은 그러면서 우리의 영공과 영토, 영해 등 국민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도발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3월 24일 북한이 이른바 레드 라인을 넘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을 발사했을 때에도 ‘도발’이란 명칭 대신 ‘발사’ ‘강력규탄’ ‘심각한 위협’ ‘심각한 도전’ 등으로 표현했다.
국방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도발’이라는 표현 대신 ‘위협’이라고 말한 것은 근거가 있다. 먼저 서욱 장관이 답변한 대로 우리의 통합방위법은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북한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도발이 아니다. 통합방위법 제2조 제10항은 도발에 대해 “적이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국민 또는 영역에 위해를 가하는 모든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또 ‘위협’에 대해 통합방위법 제2조 제11항은 “대한민국을 침투-도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적의 침투-도발 능력과 기도가 드러난 상태”라고 정의한다. 또 침투에 대해 동법 제2조 9항은 “적이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대한민국 영역을 침범한 상태”라고 규정한다. 국방부가 2년마다 발간하는 국방백서 상의 ‘북한의 대남침투-국지도발 일지’를 보면 보수-진보정권의 국방부를 가리지 않고 직접적인 피해에 대해서만 도발로 통계를 내왔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문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정부가 일관성이 갖추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2017년 8월 29일 북한이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 정부는 주로 외교부나 통일부가 대신 발표하는 성명을 통해 “국제사회가 엄중한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북한이 또 다시 도발을 한 데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우리 군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갔는데, 당시 우리 합동참모본부의 규탄성명을 그대로 실어본다.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우리 군의 입장]
북한은 우리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오늘(8.29.) 오전 05:57경
평양시 순안 일대에서 또다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하였다.
이는 올해 들어 13번째 탄도미사일 발사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UN안보리 결의'에 대한 노골적 위반이며,
한반도 및 동북아,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발 행위이다.
북한이 소위 '괌 포위 사격'을 운운한 데 이어 이에 준하는 사거리로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은 우리 군과 한미동맹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우리 군은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
또한 우리 군은 북한의 또 다른 도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추가 도발을 중단할 것을 경고한다.
우리 군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추가 도발을 또다시
감행한다면, 우리 군과 한미동맹의 강력하고 단호한 응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군은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만반의
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2017월 8월 29일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이 짧은 규탄 성명 속엔 ‘도발’이란 단어가 모두 5차례 등장한다. 그때 우리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있어서 ‘도발’이란 표현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넣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군은 통합방위법을 위반한 셈이 된다. 국방부가 북한의 SLBM 발사나 ICBM 발사에도 도발이라는 표현을 쓰고 안 쓰는 것이 그때그때 다르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다. 그런데, 이 ‘도발’ 표현은 남북대화-북미대화가 무르익으면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2020 국방백서가 밝히고 있는 2018년 이후 북한의 도발로 인정된 행위는 2020년 5월 3일 있었던 철원지역 GP 총격사건 딱 하나뿐이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국어사전을 보면 ‘도발’의 의미에 대해 ‘남을 집적거려 일이 일어나게 함’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보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 행위는 남을 집적거리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때마다 우리는 ‘심각한 위협’이나 ‘도전’이라는 반응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육해공군이 맞대응 사격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통합방위법’이 아닌 ‘국어사전’의 뜻에 따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로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도발’이라는 표현을 쓰든 ‘위협’이라는 표현을 쓰든 그건 규정에 따라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군의 이런 일관성없는 단어 선택이 또 다른 남남갈등을 불러온다는 데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 서욱 장관의 ‘도발’ ‘위협’ 발언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던 점이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이러한 군의 행보가 군의 자체 판단에 근거했느냐 여부이다.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이 애용돼온 ‘발사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언어의 상징화가 의미하는 건 그 집단의 인식을 대변해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한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예나 지금이나 줄기차게 사용한다. 주민들에게 끊임없이 주입해 삶을 지배하는 단어로 만들어 마치 ‘혁명적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되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일성 광장 하면 우리가 ‘열병식’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즉 ‘도발’이란 말을 계속 사용하면 통합방위법에 상관없이 북한의 모든 행위는 도발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도발로 인식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최근 들어 우리는 ‘도발’이라는 표현을 심심찮게 마주하고 있다. 북한의 계속된 미사일 발사때문이다. 북한은 또 진짜 핵실험까지 나설 태세다. 북한이 자기네 땅, 그것도 함경북도 산골짜기 동굴에서 핵실험을 한다면 또 뭐라고 부를지 관심이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도록 軍 만이라도 자율성이 조금 더 강화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남갈등의 단초 가운데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YTN 김문경 (mk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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