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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강진원 앵커, 박상연 앵커
■ 출연 : 이명찬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역사적인 오늘 안장식의 의미를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앵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앵커]
위원님, 지금 현장에서 유해 안장식이 열리고 있는데 먼저 지금 78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오늘 유해 안장식,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명찬]
최근에 한일 관계가 썩 그렇게 좋지도 않은데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의 독립이랄까. 이런 정신을 기린다는 측면에서는 그 시대에 참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활동하셨던 분을 기린다는 건 상당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떻게 보면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그동안 오랫동안 봉환이 못 됐었는데 마침 아주 적절한 시기에 봉환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광복절인 지난 15일에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서거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고요. 오늘 유해안장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위원님께서 홍범도 장군이 어떤 인물인지 설명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명찬]
아마 우리 일반 국민들도 대체로 그렇겠습니다마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봉오동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아마 그 정도가 대부분의 지식이 아닐까. 자세한 건 잘 모를 텐데 저 역시도 일반 국민들하고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데 왜냐하면 제가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만 최근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도 살펴봤더니 처음에 머슴살이를 하셨어요. 그렇게 출발한 거 보면 우리나라 역사를 되돌아보면 항상 의병들은 특별한 높은 지위를 가지신 분들이 아니고 그렇게 보면 사회에서, 어떻게 보면 힘겹게 살아온 분들이 더 국가를 위해서 나라를 지키겠다고 일어선다는 게 참 놀라워요.
그런 부분에서는 홍범도 장군도 예외가 아니시고. 특히 그 부분이 상당히 놀라웠고. 그리고 보면 그 과정 자체가 의병 활동을 하면서 전투를 치르는 그 과정들을 보면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나는 반드시 독립운동을 해야겠다, 그런 차원에서 출발한 게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한국의 의병들은 일제가 잔혹하게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거기에서 의분이 일어나고 어떻게 저럴수 있나, 그런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의병 마인드가 솟아오른단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홍범도 장군도 그렇게 출발했는데. 그런데 이분의 신장을 보면 190이 넘어요.
그 당시 신장으로 보면 상당히 큰 편이잖아요. 그래서 호랑이라는 얘기도 들었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그렇게 출중한 활동을 하신 것 같아요.
[앵커]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이 시각 대전현충원의 모습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에 이어서 지금 현재는 추모공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추모공연에 이어서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 운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지금 78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 뭐라고 보십니까?
[이명찬]
일단 홍범도 장관의 출생지가 북한이잖아요. 북한이다 보니까 처음에는 북한에서 안장을 할 생각을 했나 봐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과 북한의 외교적인 마찰들도 초기에 발생했다고 해요.
서로 유치하려고. 그래서 늦어진 부분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조정이 잘 안 되고 하니까 그 지역에 있는 우리 고려인들이 그냥 여기에 둬라, 서로 싸우는 모습 보니까 보기 안 좋았겠죠. 그냥 우리가 모시겠다.
그렇게 해서 그게 늦어진 부분도 있고 또 한 부분은 어쨌든 이분이 북한 출신인 데다가 또 그 당시에 냉전시대 때 레닌이나 스탈린으로부터 평가를 받고 거기에 회의에 참석도 하고 그렇게 본다면 그 당시에 우리나라 반공국시하고도 여러 가지 마찰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본다면 늦어진 부분이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아닌데 어쨌든 우리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나서는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완화되고 북한에 대해서도 상당히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쉽게 풀린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지금 보고 계신 화면, 이 시각 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홍범도 장군 유해안장식입니다. 지금 조금 전에 추모공연이 끝났고 잠시 뒤면 유해 운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앵커]
순국 78년 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안장식이 이 시각 현재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참배 묘역에서 거행이 되고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까지 오르면서 독립운동의 기념비적인 사건인 봉오동전투에서 승리를 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죠. 안장식이 거행이 되고 있는데요.
현장음을 잠시 좀 들어보겠습니다.
[사회자]
이제 홍범도 장군님의 유해를 묘역으로 모시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경건한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께서는 자리에 앉아 예를 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내외분께서 함께 묘역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국가보훈처장, 국방부 장관,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 대한고려인협회 회장님께서도 함께 이동하시겠습니다. 의장대가 하관 준비를 위해 관포 태극기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안장식장에 계신 참석자분들께서는 무대 우측 LED를 통해 묘역 현장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관포 태극기를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에 전달하시겠습니다.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는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름 없이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분들을 찾아 그들의 업적을 조명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유해 하관을 위해 의장대가 이동하겠습니다. 하관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장군님의 유해를 하관하겠습니다. 대통령 내외분께서 허토를 하시겠습니다.
오늘 허토할 흙은 이곳 대한민국 대전국립현충원의 흙과 카자흐스탄 대통령께서 직접 전달하신 크즐오르다주 홍범도 장군 묘역의 흙을 합토한 흙입니다. 먼저 대통령께서 허토하시겠습니다. 다음은 여사님께서 허토하시겠습니다.
꿈에 그리던 조국의 땅에서 영면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영원한 안식과 명복을 빌며 이상으로 홍범도 장군 안장식 장군의 귀환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앵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신 고 홍범도 장군의 유해. 보신 것처럼 고국 땅에 서거 78년 만에 안장됐습니다. 위원님, 이렇게 78년 만에 고국 땅에서 영면에 들어가신 건데 지금 이곳 대전현충원에는 홍 장군 외에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신 많은 애국지사분들이 모셔져 있는 거죠?
[이명찬]
기록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데 보면 국립대전현충원에는 많은 애국 지사들이 잠들어 계시는데 지난 2019년에 카자흐스탄에서 먼저 조국으로 돌아오신 황운정 지사 부부 그다음 장군과 함께 봉오동전투에서 싸웠던 이화일, 박승길 지사.
청산리전투에서 함께 싸웠던 김운서, 이경재, 이장녕, 홍충희 지사가 잠들어 계십니다. 그러니까 먼저 와 계신 분들하고 같이 옆자리에 누우시면 마음이 많이 편하시겠죠.
[앵커]
내가 죽고 우리나라가 해방되면 꼭 고국에 데려가라, 이런 유언이 타계 78년 만에야 이뤄진 것이고요. 머나먼 길을 돌아서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홍범도 장군 편히 영면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최고의 예우를 갖춰서 안장식이 진행됐습니다.
아무래도 무장투쟁했던 상징적이고 상당히 전설적인 인물, 이런 영웅이 봉환됐고 또 이런 부분들이 아무래도 국가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의미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명찬]
특히 이번에 홍범도의 군의 의의라면 지금 우리 정부도 그렇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고 많이 하잖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홍범도 장군은 고향이 북한이고 또 북한에서도 안장을 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했던 게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걸 상징적으로 북한과 연결을 맺을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크고요.
또 하나는 지금까지는 한국의 과거에 독립운동하셨던 분들도 좌, 진영이 나눠져서 좌파에 가까웠던 분들은 한국에서는 등한시한다든가 그분들을 기리는 데 주저했던 부분들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홍범도 장군께서는 북한이고 또 좌파적인 마인드도 계셨고 그 당시에 소련과의 관계도 깊었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에 이렇게 모시는 것은 좌, 우 갈등을 좀 봉합하고 남북 관계를 좀 더 좋게 할 수 있는, 이걸 잘 봉합하게 되면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위원님께서 조금 전에 소련 말씀을 해 주셔서 질문을 드리는 게 홍 장군이 찍힌 영상, 희귀 영상이 공개가 됐는데 그게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상황이더라고요. 어떤 내용입니까?
[이명찬]
그때 어떤 회의가 있었는데 거기에 대표로 참석을 하셨어요. 그런데 보니까 워낙 키가 크시니까 아주 돌출돼 보이시던데. 자료가 있나요.
[앵커]
지금 이 영상입니다.
[이명찬]
영상이 나오는데. 반병률 외국어대 교수님께서는 소장하시던 자료를 제공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보면 이 동영상이 사실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닌데 잘 보관하셨다가 이렇게 제공을 하셨네요.
[앵커]
당시 모습, 결국 모스크바에서 열린 이른바 독립투쟁전략을 논의하러 간 영상인 거죠?
[이명찬]
그렇습니다.
[앵커]
장군의 생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고도 하는데 여전히 흩어져 있거나 공개되지 않은 다른 여러 자료들을 발굴하고 모으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겠어요.
[이명찬]
아마 앞으로 이게 계기가 돼서 일반인들도 혹시 가지고 계신 게 있으시면 제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는 상당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앵커]
지금 이렇게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서거 78년 만에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할 일은 이런 홍 장군의 뜻을 계속 기려나가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겠습니까?
[이명찬]
지금 우리나라가 아주 상당히 상승하고 있잖아요. 이게 정신의 문제가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특히 최근에 일본하고 비교를 해 보면 일본은 과거에 전쟁 치렀던 범죄 국가라고 볼 수 있다고 보는데 지금 최근에 8.15 어땠습니까?
야스쿠니 신사 참배 또 했잖아요.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범을 기리러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정말 의병활동을 하면서 국가를 지키는 그런 어떤 정신적으로 아주 굉장히 본받을 만한 그런 장군을 우리는 모시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후세들에게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좋을 것 같고. 또 하나는 사실 식민지국가들 중에서 한국만큼 이렇게 독립에 대해서 강한 열망을 가진 나라가 없어요.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나라들은 100년, 200년씩 식민지를 당하다 보니까 민족 교육이랄까 민족혼이 사실은 사라져버리거나 도태돼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35년 한 세대밖에 없었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홍범도 장군같이 이런 분들이 저렇게 아주 강렬하게 독립운동을 하시면 그 밑에 후세가 그걸 보고 본받고. 35년밖에 통치가 안 되다 보니까 한국의 민족혼을 말살을 못했던 거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독립운동 했던 분들을 높이 기리는 것은 앞으로 한국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정신적인 기초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의 총책임자이시기도 하셨고 사실은 어떻게 보면 늦은 감이 있죠. 지금까지 이분을 이렇게 안 모셨을까. 아마 일반 국민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북한과의 관계도 있었고 그리고 또 우리나라의 어쨌든 좌, 우의 갈등이 좀 심했잖아요. 지금도 북한과의 관계도 있고.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한다면 어쨌든 시한이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지금 이렇게 모시게 된 건 너무나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명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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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이명찬 /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역사적인 오늘 안장식의 의미를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앵커]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앵커]
위원님, 지금 현장에서 유해 안장식이 열리고 있는데 먼저 지금 78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오늘 유해 안장식,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명찬]
최근에 한일 관계가 썩 그렇게 좋지도 않은데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의 독립이랄까. 이런 정신을 기린다는 측면에서는 그 시대에 참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활동하셨던 분을 기린다는 건 상당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어떻게 보면 시의적절하기도 하고 그동안 오랫동안 봉환이 못 됐었는데 마침 아주 적절한 시기에 봉환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광복절인 지난 15일에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서거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고요. 오늘 유해안장식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위원님께서 홍범도 장군이 어떤 인물인지 설명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명찬]
아마 우리 일반 국민들도 대체로 그렇겠습니다마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봉오동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아마 그 정도가 대부분의 지식이 아닐까. 자세한 건 잘 모를 텐데 저 역시도 일반 국민들하고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데 왜냐하면 제가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다만 최근에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저도 살펴봤더니 처음에 머슴살이를 하셨어요. 그렇게 출발한 거 보면 우리나라 역사를 되돌아보면 항상 의병들은 특별한 높은 지위를 가지신 분들이 아니고 그렇게 보면 사회에서, 어떻게 보면 힘겹게 살아온 분들이 더 국가를 위해서 나라를 지키겠다고 일어선다는 게 참 놀라워요.
그런 부분에서는 홍범도 장군도 예외가 아니시고. 특히 그 부분이 상당히 놀라웠고. 그리고 보면 그 과정 자체가 의병 활동을 하면서 전투를 치르는 그 과정들을 보면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나는 반드시 독립운동을 해야겠다, 그런 차원에서 출발한 게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보면 한국의 의병들은 일제가 잔혹하게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거기에서 의분이 일어나고 어떻게 저럴수 있나, 그런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의병 마인드가 솟아오른단 말이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홍범도 장군도 그렇게 출발했는데. 그런데 이분의 신장을 보면 190이 넘어요.
그 당시 신장으로 보면 상당히 큰 편이잖아요. 그래서 호랑이라는 얘기도 들었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그렇게 출중한 활동을 하신 것 같아요.
[앵커]
지금 보고 계신 화면은 이 시각 대전현충원의 모습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에 이어서 지금 현재는 추모공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추모공연에 이어서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 운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지금 78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 뭐라고 보십니까?
[이명찬]
일단 홍범도 장관의 출생지가 북한이잖아요. 북한이다 보니까 처음에는 북한에서 안장을 할 생각을 했나 봐요. 그러다 보니까 한국과 북한의 외교적인 마찰들도 초기에 발생했다고 해요.
서로 유치하려고. 그래서 늦어진 부분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조정이 잘 안 되고 하니까 그 지역에 있는 우리 고려인들이 그냥 여기에 둬라, 서로 싸우는 모습 보니까 보기 안 좋았겠죠. 그냥 우리가 모시겠다.
그렇게 해서 그게 늦어진 부분도 있고 또 한 부분은 어쨌든 이분이 북한 출신인 데다가 또 그 당시에 냉전시대 때 레닌이나 스탈린으로부터 평가를 받고 거기에 회의에 참석도 하고 그렇게 본다면 그 당시에 우리나라 반공국시하고도 여러 가지 마찰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본다면 늦어진 부분이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아닌데 어쨌든 우리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나서는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완화되고 북한에 대해서도 상당히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쉽게 풀린 게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지금 보고 계신 화면, 이 시각 대전현충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홍범도 장군 유해안장식입니다. 지금 조금 전에 추모공연이 끝났고 잠시 뒤면 유해 운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앵커]
순국 78년 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안장식이 이 시각 현재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참배 묘역에서 거행이 되고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까지 오르면서 독립운동의 기념비적인 사건인 봉오동전투에서 승리를 하는 등 항일 무장투쟁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이죠. 안장식이 거행이 되고 있는데요.
현장음을 잠시 좀 들어보겠습니다.
[사회자]
이제 홍범도 장군님의 유해를 묘역으로 모시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경건한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께서는 자리에 앉아 예를 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내외분께서 함께 묘역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국가보훈처장, 국방부 장관,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 대한고려인협회 회장님께서도 함께 이동하시겠습니다. 의장대가 하관 준비를 위해 관포 태극기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안장식장에 계신 참석자분들께서는 무대 우측 LED를 통해 묘역 현장을 보실 수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관포 태극기를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에 전달하시겠습니다. 홍범도 장군 기념사업회는 홍범도 장군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이름 없이 순국하신 독립운동가분들을 찾아 그들의 업적을 조명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유해 하관을 위해 의장대가 이동하겠습니다. 하관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장군님의 유해를 하관하겠습니다. 대통령 내외분께서 허토를 하시겠습니다.
오늘 허토할 흙은 이곳 대한민국 대전국립현충원의 흙과 카자흐스탄 대통령께서 직접 전달하신 크즐오르다주 홍범도 장군 묘역의 흙을 합토한 흙입니다. 먼저 대통령께서 허토하시겠습니다. 다음은 여사님께서 허토하시겠습니다.
꿈에 그리던 조국의 땅에서 영면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영원한 안식과 명복을 빌며 이상으로 홍범도 장군 안장식 장군의 귀환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앵커]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신 고 홍범도 장군의 유해. 보신 것처럼 고국 땅에 서거 78년 만에 안장됐습니다. 위원님, 이렇게 78년 만에 고국 땅에서 영면에 들어가신 건데 지금 이곳 대전현충원에는 홍 장군 외에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신 많은 애국지사분들이 모셔져 있는 거죠?
[이명찬]
기록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데 보면 국립대전현충원에는 많은 애국 지사들이 잠들어 계시는데 지난 2019년에 카자흐스탄에서 먼저 조국으로 돌아오신 황운정 지사 부부 그다음 장군과 함께 봉오동전투에서 싸웠던 이화일, 박승길 지사.
청산리전투에서 함께 싸웠던 김운서, 이경재, 이장녕, 홍충희 지사가 잠들어 계십니다. 그러니까 먼저 와 계신 분들하고 같이 옆자리에 누우시면 마음이 많이 편하시겠죠.
[앵커]
내가 죽고 우리나라가 해방되면 꼭 고국에 데려가라, 이런 유언이 타계 78년 만에야 이뤄진 것이고요. 머나먼 길을 돌아서 고국 땅을 밟았습니다. 홍범도 장군 편히 영면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최고의 예우를 갖춰서 안장식이 진행됐습니다.
아무래도 무장투쟁했던 상징적이고 상당히 전설적인 인물, 이런 영웅이 봉환됐고 또 이런 부분들이 아무래도 국가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의미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명찬]
특히 이번에 홍범도의 군의 의의라면 지금 우리 정부도 그렇지만 북한과의 관계를 좋게 하려고 많이 하잖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홍범도 장군은 고향이 북한이고 또 북한에서도 안장을 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했던 게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걸 상징적으로 북한과 연결을 맺을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크고요.
또 하나는 지금까지는 한국의 과거에 독립운동하셨던 분들도 좌, 진영이 나눠져서 좌파에 가까웠던 분들은 한국에서는 등한시한다든가 그분들을 기리는 데 주저했던 부분들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홍범도 장군께서는 북한이고 또 좌파적인 마인드도 계셨고 그 당시에 소련과의 관계도 깊었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에 이렇게 모시는 것은 좌, 우 갈등을 좀 봉합하고 남북 관계를 좀 더 좋게 할 수 있는, 이걸 잘 봉합하게 되면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위원님께서 조금 전에 소련 말씀을 해 주셔서 질문을 드리는 게 홍 장군이 찍힌 영상, 희귀 영상이 공개가 됐는데 그게 모스크바에서 있었던 상황이더라고요. 어떤 내용입니까?
[이명찬]
그때 어떤 회의가 있었는데 거기에 대표로 참석을 하셨어요. 그런데 보니까 워낙 키가 크시니까 아주 돌출돼 보이시던데. 자료가 있나요.
[앵커]
지금 이 영상입니다.
[이명찬]
영상이 나오는데. 반병률 외국어대 교수님께서는 소장하시던 자료를 제공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보면 이 동영상이 사실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닌데 잘 보관하셨다가 이렇게 제공을 하셨네요.
[앵커]
당시 모습, 결국 모스크바에서 열린 이른바 독립투쟁전략을 논의하러 간 영상인 거죠?
[이명찬]
그렇습니다.
[앵커]
장군의 생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라고도 하는데 여전히 흩어져 있거나 공개되지 않은 다른 여러 자료들을 발굴하고 모으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겠어요.
[이명찬]
아마 앞으로 이게 계기가 돼서 일반인들도 혹시 가지고 계신 게 있으시면 제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는 상당히 의미 있다고 봅니다.
[앵커]
지금 이렇게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서거 78년 만에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할 일은 이런 홍 장군의 뜻을 계속 기려나가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어떤 노력들이 필요하겠습니까?
[이명찬]
지금 우리나라가 아주 상당히 상승하고 있잖아요. 이게 정신의 문제가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특히 최근에 일본하고 비교를 해 보면 일본은 과거에 전쟁 치렀던 범죄 국가라고 볼 수 있다고 보는데 지금 최근에 8.15 어땠습니까?
야스쿠니 신사 참배 또 했잖아요.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범을 기리러 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정말 의병활동을 하면서 국가를 지키는 그런 어떤 정신적으로 아주 굉장히 본받을 만한 그런 장군을 우리는 모시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 후세들에게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좋을 것 같고. 또 하나는 사실 식민지국가들 중에서 한국만큼 이렇게 독립에 대해서 강한 열망을 가진 나라가 없어요.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나라들은 100년, 200년씩 식민지를 당하다 보니까 민족 교육이랄까 민족혼이 사실은 사라져버리거나 도태돼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35년 한 세대밖에 없었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홍범도 장군같이 이런 분들이 저렇게 아주 강렬하게 독립운동을 하시면 그 밑에 후세가 그걸 보고 본받고. 35년밖에 통치가 안 되다 보니까 한국의 민족혼을 말살을 못했던 거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독립운동 했던 분들을 높이 기리는 것은 앞으로 한국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정신적인 기초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의 총책임자이시기도 하셨고 사실은 어떻게 보면 늦은 감이 있죠. 지금까지 이분을 이렇게 안 모셨을까. 아마 일반 국민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북한과의 관계도 있었고 그리고 또 우리나라의 어쨌든 좌, 우의 갈등이 좀 심했잖아요. 지금도 북한과의 관계도 있고. 그런 것들을 다 감안한다면 어쨌든 시한이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지금 이렇게 모시게 된 건 너무나 반가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명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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