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키워드로 살펴본 북한 내부의 변화

노동신문 키워드로 살펴본 북한 내부의 변화

2020.04.24. 오후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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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북한 권력의 내부 상황에 대한 갖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폐쇄적인 북한의 특성상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올해 보도된 북한 노동신문 기사를 정밀 분석해보니, 북한 체제의 속내와 미묘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함형건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코로나19 방역 체제에 돌입한 북한은 미흡한 의료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평양 종합병원 건설에 급히 착수했습니다.

[조선중앙TV : 조건은 어렵고 난관은 많지만 우리의 행복과 우리의 미래는 누가 가져다주지 않으며 오직 우리 자신의 손으로 개척하고 투쟁으로 쟁취하여야 한다는 자각들을 가지고….]

경제와 외교적 난관에 더해진 감염병 위험도 자력으로 대응하겠다는 기세인데, 북한 관영매체 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체제 내부의 다른 분위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YTN 데이터 저널리즘팀이 올해초부터 최근까지 북한 노동신문 1면에 실린 기사 475건의 어휘 빈도를 분석해 봤습니다.

북한 체제가 지난해부터 내세워온 화두인 '자력갱생'이란 단어의 출현 빈도는 1월 초와 2월 중순에 일시적으로 급증한 뒤 이후로는 오히려 더 뜸해졌습니다.

지난달과 이달에는 아예 1면 기사에서 이 표현이 사라진 날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대북 제재의 극복을 위해 자력갱생이란 단어와 함께 강조해온 '난관' 그리고, '정면돌파'와 같은 키워드의 쓰임 역시 시간이 갈수록 더 줄어들었습니다.

이같은 변화는 코로나19에 대한 강도 높은 방역과 국경봉쇄, 그리고 이에 따라 깊어진 경제적 고충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 신종 코로나의 발생으로 인해서 (북한 당국이 기존에 추진하던) 정면 돌파라든지 자력갱생 노선의 강조점이 조금 약화하면서 새로운 사태, 새로운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지도부의 고민의 흔적이 반영이 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데이터 분석 기법으로 노동신문 1면의 코로나19 연관어를 조사하니, 초특급, 전파, 위험, 긴급 조치, 불안, 절대 복종 등의 단어가 확인됩니다.

체제 존속을 위협할 수도 있는 감염병 위기에 대한 높은 긴장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의 노동신문 기사는 지난해와 올해 많이 쓰인 어휘가 뚜렷하게 달랐습니다.

작년 태양절 기사에는 사회주의, 혁명, 건설, 자력갱생 등의 공식적인 성격의 단어가 많았지만, 올해는 사랑, 꽃, 품, 가슴, 어버이 등이 두드러졌습니다.

자력갱생과 건설 같은 어휘는 지난해보다 사용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고, 어버이, 가슴, 꽃은 2배 정도 많이 썼습니다.

정작 생일의 주인공인 김일성이란 이름은 작년보다 덜 사용하고, 김정은을 지칭할 때도 쓰는 어버이란 단어는 더 적극적으로 쓴 셈입니다.

문맥을 보면, 아이들을 가슴에 안아주는 어버이의 사랑에 최고지도자를 빗대어 우상화하거나, 꽃이 만발한 봄 풍경을 묘사하는 감성적인 표현을 구사했습니다.

이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있었을 것이란 의견이 나옵니다.

[정성장 /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 올해 들어 노동신문에 감성적 표현이 많이 등장하고 어버이 품 같은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김여정의 영향력 확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선전선동부 업무를 넘어 최근에는 당 인사 등을 총괄하는 조직지도부에도 관여하며 관영매체와 전반적인 당 정책에도 깊숙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YTN 함형건[hkhahm@ytn.co.k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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