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엽의 세상읽기] 식물경제에 동물국회, 봄이 봄이 아니다

[송태엽의 세상읽기] 식물경제에 동물국회, 봄이 봄이 아니다

2019.04.26. 오후 1:45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송태엽의 세상읽기] 식물경제에 동물국회, 봄이 봄이 아니다
AD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의 소용돌이에서 막 빠져나올 때쯤인 1999년 가을, 클린턴 행정부의 로렌스 서머스 재무장관을 단독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가 롯데호텔에서 이규성 당시 재경부 장관과 만난다는 정보를 듣고 카메라 기자와 함께 따라붙었다. 중국을 거쳐 막 한국에 도착한 그에게 던진 첫 번째 질문은 “중국이 위안화 평가 절상한다고 하던가?”였는데 그에 대한 답은 얻지 못했다. 대신 그는 좀 한가한 얘기를 했다. “공항에서 오다 보니 거리에 차가 많더라. 한국경제가 되살아나는 걸 실감했다.”

지난 일요일 성묘를 다녀오는데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았다. 보통 때 같으면 5시간은 걸렸을 귀경길이 3시간 반밖에 안 걸렸다. 봄나들이 철인데 사람들이 안 움직이는 이유가 뭔가. 그 답이 한국은행의 1분기 국내총생산 (GDP) 속보치에서 나왔다. 1분기 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0.3%를 기록한 것이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이고,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2017년 4분기 (-0.2%) 이후 5분기 만에 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경기 불안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다 보니 상춘객마저 줄어든 것이다.

한국 실물경제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는 앞으로도 더 증폭될 전망이다. 세계 경제 위축 속에 수출은 감소하고 주력산업인 반도체마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저성장이 이미 기조로 자리 잡은 가운데, 인구 감소 이슈는 장래를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소비가 부진하고 투자도 미흡하면 정부라도 돈을 써야 하는데, 올해는 세수 진도율이 썩 좋지 않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정부가 쓸 돈이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 ‘적자추경’이라고 비판하지만 이럴 때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는데는 재정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기획재정부는 24일 ‘미세먼지’ 대책을 포함한 6.7조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발표했다. “한국경제에 역풍이 불고 있으며, 한국 정부가 성장률 목표 (2.6~2.7%)를 달성하려면 GDP의 0.5% 이상 (약 9조원)의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한 지난달 IMF의 권고보다 한참 모자란 금액이다. 기자회견장에서 2차 추경 얘기가 나오자 홍남기 부총리는 “추경을 발표한 날 또 추경을 얘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기재부 관계자들의 얘기는 좀 다르다. “추경을 더 하려고 해도 적절한 사업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송태엽의 세상읽기] 식물경제에 동물국회, 봄이 봄이 아니다


경제가 이렇게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는데 정치권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선거제도 개편과 공수처 설치를 둘러싼 여야 공방으로 여의도는 모처럼 야생의 활기(?)를 되찾은 듯하다. ‘패스트트랙’이니 ‘사보임’이니 하는 수수께끼 같은 용어를 공부해봐도 국민들은 누가 옳은지 판단하기 어렵다. “선거제도 개편은 자기들끼리 하자고 한 것 아닌가? 공수처 설치 등 사법개혁은 대선후보 모두의 공약 아니었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대다수 서민들은 정치권의 이전투구가 제발 딴 나라 얘기이기를 바란다. 지도자들이 정파적 이해관계와 망국적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민생을 생각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추경에 이어 금리 인하를 얘기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올해 경기하강을 늦추지 않으면 내년이 훨씬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들어야 한다.

송태엽 해설위원실장 [taysong@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