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국가장, YS의 마지막 길은? ①

첫 국가장, YS의 마지막 길은? ①

2015.11.26. 오후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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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추은호, YTN 해설위원

[앵커]
한국 민주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죠. 대한민국 정치사의 큰 별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이제 영면으로 가는 마지막 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저희가 스튜디오에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김 전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취재했었던 당시 청와대 취재기자인 추은호 YTN 해설위원, 그리고 정치학자 박명호 동국대 정외과 교수를 모셨습니다. 추은호 해설위원은 좀더 감회가 각별하실 것 같기도 하고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더불어서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이고 두 큰 별들이 이렇게 6년 시차를 두고 갔다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한 세대가 이제 마감이 됐다. 그래서 우리가 이분들이 이룬 민주화를 바탕으로 해서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해야겠다라는 그런 생각들을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더군다나 가는 길에 마지막 메시지로 교수님, 화합과 통합, 화해라는 그 메시지를 남긴 것이 우리 사회에 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문화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가는 과정인데 김대중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한국 정치의 두 거목이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통해서라도 우리 향후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바를 설정해 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앵커]
이 시각 현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유해가 운구차량까지 도착을 했습니다.

[앵커]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인 손명순 여사와 2남 3녀를 두고 있죠. 큰아들 인철 씨 그다음에 현철 씨 그리고 세 딸이 있습니다. 혜영 씨, 혜정 씨, 혜숙 씨, 이렇게 2남 3녀를 두고 있습니다.

[앵커]
현철 씨를 제외하고 모두 미국에 있고요. 눈발이 조금씩 날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형제로는 5명이 계시고요. 다 생존해 계시고요.

[앵커]
김 전 대통령의 가는 길, 하늘의 마음일까요. 눈발이 날리고 있습니다.

[앵커]
박근혜 대통령이군요.

[앵커]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나왔습니다.

[앵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조문을 하는.

[앵커]
유족들을 만나 위로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운구가 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함께 지켜보고 유족들이 만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영결식의 일부 일정에 감기 때문에 참석을 할 것이라고 했었는데 여기서 운구되는 이 모습을 마지막 유족들과 함께 지켜보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제 곧 운구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눈발이 날리고 있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아마 김 전 대통령, 한시대를 함께 했었던 지도자.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해가 실린 운구차량이 이제 막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습니다. 당초 예상시간보다는 조금 앞당겨져서 당초 예상대로라면 1시 25분쯤 이곳을 떠날 예정이었는데 지금 10분 정도 앞당겨진 것 같습니다.

[앵커]
원래 예정시간보다 운구차량 출발이 시작됐고요. 우리가 함께 한 시대를 호흡했었던 지도자를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는 마음처럼 눈발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지금 흩날리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족들이 고인의 가는 길,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길, 마지막으로 지켜보면서 배웅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근혜 대통령은 당초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 영결식에 참석을 할 예정이었죠. 하지만 오랜 해외 순방으로 인해서 감기, 체력저하. 이런 것들이 발목을 잡고 또 일요일부터 해외순방이 예정돼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참모들과 주치의가 추운 날씨에 장시간 야외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게 건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대신 가시는 고인의 길을 빈소를 찾아서 마지막 배웅을 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아마 대통령 주치의가 추운 날씨 속에 외부 노출, 1시간 반 밖에 계속 있어야 하는 일정을 자제해야 한다, 감기 증세가 매우 심하다, 그리고 이번 일요일에 해외순방, 파리 기후변화협약 총회에 참석을 하기 때문에 몸상태도 고려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주치의가 밝혔고. 청와대는 그래서 최대한의 예우를 표시하기 위해서 대신에 빈소를 다시 찾는 것으로 오늘 영결식장 대신 빈소를 찾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라는 조금 전 청와대 발표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세종로 거쳐서 마포 거쳐서 저 운구차량이 국회의사당으로 향하게 되는데요.
일단 아직 출발하지 않고 저기서 기다리는군요.

조금씩 앞선 선두차량들이 움직이고 있고요. 지금 바깥 날씨는 꽤 쌀쌀합니다. 오늘 서울 사시는 분들, 시청자들께서는 아시겠지만 날씨가 많이 추워졌고요. 영하까지 떨어진 날씨. 눈발이 조금씩 이곳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이곳, 종로구 연건동쪽에는 눈발이 조금씩 흩날리고 있습니다. 여의도에도 눈발이 날리는지 모르겠는데요. 아마 바깥에서 오랜 시간 참석하는 분들한테는 조금 춥게 느껴질 수 있는 그런 날씨인 것 같습니다.

[앵커]
이제 운구차량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출발하고 있습니다.

[앵커]
저희가 정치학자 또 한 분 모셨습니다. 양승함 연세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희 YTN 객원 해설위원이십니다. 양 교수님도 삶의 많은 부분을 김영삼 전 대통령 지켜 보시고 함께 하셨을 텐데 어떠십니까, 감회가.

[인터뷰]
정말 많은 생각들이 교차합니다. 사실 저는 70년대부터 대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운동, 특히 1987년에 이한열 열사가 연세대에서 장례식을 하고 신촌 연세대 정문 앞에서 노제를 하고 신촌 로터리를 거쳐서 시청 앞으로 갈 때 그때 아현동인가에서 김영삼, 김대중 당시 야당 정치 지도자가 참여를 했죠. 그래서 시위대가 그때 한껏 사기가 올라갔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때 숫자는 100만이라는 얘기도 있고요.

사실 시위대 선두그룹이 시청에 도착했을 때 아직도 신촌로터리에서 계속 대열을 이어가는. 저는 그때 당시 유학 중에 잠깐 귀국했을 때 현장에 있었습니다마는 그래서 두 분 야당지도자가 합류하면서 정말 시위대가 그야말로 나중에는 광화문을 거쳐서. 본래 시청까지가 계획이었는데 광화문을 거쳐서 청와대까지 가려다가 물론 광화문에서 저지가 됐습니다마는. 그때 당시에 하여튼 민주화의 하나의 거목이죠. 그리고 전체적으로 그분이 있었기 때문에 밑으로부터 민중의 열기,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살 수 있었지 않았나. 그러니까 그런 열기들을 불사르는 데 아마 굉장히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이제 고인의 운구차량이 서울대 장례식장을 떠나서 마포대교를 지나서 국회의사당까지 도착을 하게 되는데 가는 길목이 다 그동안 김영삼 전 대통령이 걸어왔던 족적이 담겨 있는 길들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의회주의자이시기 때문에 거리에서 투쟁도 많이 하셨지만 결국 여의도에서, 여의도 국회에서 활동을 하신 분이고 그렇기 때문에 장례식장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가는 과정에서 중림동은 거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마포 이런 데서 옛날 신민당사 있던 곳들. 이런 길들을 쭉 시청앞, 이렇게 쭉 지나가면서 그것이 바로 한국 민주화의 성지들이었고. 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화 과정에서 쭉 거쳐왔던 그런 정치역정을 담은 그런 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앵커]
이제 국회의사당에 도착하면 영결식이 시작될 텐데요. 어떤 순서로 진행이 되는지 설명을 드릴까요. 지금 저희가 그 현장 화면을 보여드리려고 하고 있는데요. 현장으로 다시 한 번 가보겠습니다. 여기가 아시는 대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바로 벗어나면 보이는 앞길이죠.

[인터뷰]
여기가 창경궁 입구 같습니다. 이곳을 지나서 세종로, 경복궁 입구쪽에서 광화문 사거리에서 시청 앞으로 가는지 제가 길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마는 쭉 오게 될 것 같은데. 지금은 출발 시간을 맞추고 뒤에 유족들이 탑승한 버스나 이런 차량들을 맞추기 위해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그런 모습인 것 같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오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사상 처음으로 국가장으로 치러지게 되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국가장이 지금까지는 국장 그리고 국민장 이렇게 나눠져 있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오히려 불필요하게 누구는 국민장하고 누구는 국가장하느냐, 이런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작년 11월 19일에 발효된 법에 따르면 국가장법을 새로 발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전현직 대통령 아니면 대통령 당선인 그리고 국가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미친 분들을 국회의 심의를 거쳐서 국가장 대상으로 하도록 돼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첫 번째 국가장을 치르는 분이고요. 닷새 동안의 장례기간을 둡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는 조기를 게양하고 장례위원장은 당현직으로 국무총리가 맡는 식으로 해서 국가가 주가 돼서 치러지는 장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오른쪽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이고요. 그리고 왼쪽이 창경궁. 그 길에서 출발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출발하기 위해서 2시에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이 시작되고 영결식이 1시간 20분가량 진행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이동을 해서 국입현충원에서 안장식은 4시쯤에 거행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오늘 영결식에 불려지는 노래가, 들으셨죠? 청산에 살리라라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곡이 선정된 것인가요?

[인터뷰]
고인이 좋아하던 노래라고 하고요. 아무래도 민주화 투쟁의 오랜 고통의 시간을 가지셨던 분 아니겠습니까. 본인의 언급대로 영광의 시간은 짧았고 고통과 고뇌의 시간이 길었던 부분이었고 특히 우리나라 민주화의 계기와 어떤 진전을 이루는 데 크게 이바지하신 분이기 때문에 추은호 기자 말씀하신 대로 9선 의원이었지 않았습니까? 공동으로 최다선 기록을 갖고 있는데. 마지막 의회주의자로서의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국회 앞에서 영결식을 거행하면서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터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 가곡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물론 찬송가도 많이 좋아하셨지만. 그래서 지난 83회 생일, 2010년으로 기억이 되는데요. 이때도 이 노래를 듣고 싶다 해서 이 노래가 축하곡으로 불렸었고요.

[앵커]
그러면 청산에 살리라, 가사가 굉장히 의미심장하더라고요. 저도 다시 생각해 보니까. 한번 다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지금 운구차가 이동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청산에 살리라, 나는 숲을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세상 번뇌, 시름 잊고 청산에 살리라. 다시 곱씹어보니까 정말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은.

[인터뷰]
이 곡은 한양대 총장을 지내신 김현준 씨가 작사작곡한 곡이고요. 그분이 1973년 윤필용 필화사건 에 연루돼서 구치소에 수감돼서 그때 만드신 곡이라고 그럽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좋아하셨지만 여기서 청산이라는 것은 이상향을 뜻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평화를 뜻하기도 하고.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앵커]
거산이 청산을 향한다고 하니까요.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인터뷰]
아무래도 청산에 살리라, 그 노래가 나올 때츰에는 우리나라 산하는 황폐해져 있었고 옛날 60년대, 적어도 70년대 산림녹화가 되기 전까지는 청산이라는 게 우리들한테는 상당히 바람직한 이상향, 어느 거죠. 그런데 아마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민주주의에 관한 신념이 투철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청산을 민주주의가 잘 실행이 되는 그런 고향 같은 그런 의미가 있었지 않겠나. 그래서 나름대로 정말 대도무문 같은 민주주의를 향한, 결국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그런 민주주의의 실현을 보는, 그런 나라에서 살기를 원하는 뜻에서도 아마 좋아하셨을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세상사로 인한 번뇌, 고통을 청산으로 승화한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 참 영광도 많았지만 힘든 시련도 참 많지 않았습니까.

[앵커]
지금 운구차량 이동이... 원래 출발이 25분이었는데. 아직 출발을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 정리하는, 준비하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국회에서는 어떻게 준비가 되고 있는지 국회 현장을 연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국회에는 이종구 기자와 이승현 기자가 현장에서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기자, 준비됐으면 나오십시오. 지금 영결식이 앞으로 1시간 정도 남았는데 지금 준비 상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자]
체감온도 영하 5도 안팎의 추운 날씨지만 거산의 마지막 가는 길, 또 9선 의원의 마지막 국회 등원을 위한 준비 작업은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오후 2시부터 영결식이 거행이 됩니다.

장례위원 등 참석자들을 위한 간이 의자1만여 개가 준비돼 있습니다.

지금은 리허설이 한창입니다.

그럼 여기서 정치부 이승현 기자와 함께 영결식에 대해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이승현 기자, 원래 계획대로라면 창경궁 앞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1시 25분에 출발을 해서 여기에 1시 55분에 도착할 것으로 예정이 됐는데 한 5분 정도 늦게 출발할 것 같습니다.

[기자]
1시반쯤에 운구행렬이 출발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2시 반쯤에 이곳 영결식이 치러지게 될 국회의사당에 운구행렬이 도착을 하게 됩니다.

2시부터 한 1시간 20분에서 1시간 반 정도 영결식이 진행이 되고요.

영결식을 마친 뒤에 고인이 40년 넘게 보냈던 상도동 자택을 잠시 들르고 이후에 현충원으로 이동을 해서 안장식이 진행이 됩니다.

[기자]
영결식,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시죠.

[기자]
일단 장례위원회 한 2000명 수준으로 꾸려졌습니다. 위원장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맡았고요.

황교안 국무총리의 조사가 있고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동지이자 대표적인 상도동계로 꼽히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낭독을 하게 됩니다.

이후 4대 종교의 종교의식이 진행이 되고요.

추모곡, 헌화 등의 절차를 거친 뒤에 1시간 반 정도에 걸친 영결식이 마무리가 됩니다.

[기자]
지금 창경궁 운구행렬의 모습을 생중계로 보여드리고 있는데 지금 시각이 1시 27분, 앞으로 한 3분 뒤에 30분쯤에 출발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1만여 개의 의자가 준비되어 있는데 아직 식이 시작되려면 35분 정도 남아 있고 날씨가 추운 탓인지 아직 많은 인파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영결식이 시작될 즈음에는 많은 분들이 오셔서 마지막 조의를 표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앞서 저희가 생중계로 보여드렸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영결식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운구행렬이 시작되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지켜보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오늘 박근혜 대통령은 이곳 영결식장, 국회의사당에는 참석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전직대통령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이 참석할지도 궁금한데 어떻습니까?

[기자]
일단 참석 가능성이 현재로서 높은 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거 첫 날 빈소 조문을 했고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김 전 대통령이 지지선언을 한 만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오늘 영결식 참석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제 빈소를 찾아서 조문을 하기는 했는데 실제 영결식장을 오늘 찾을지는 좀 지켜봐야 될 것 같습니다.

또 생각할 수 있는 게 노태우 전 대통령인데 노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현재 병상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빈소 조문도 사실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대신하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오늘 영결식 참석은 어렵다고 보는 게 조금 높을 것 같습니다.

[기자]
지금 화면으로 광화문의 모습 그리고 창경궁 앞 대로에 준비되어 있는 운구행렬을 보고 있는데 앞으로 한 2분 뒤면 출발을 할 것 같아요. 지금 이동경로는 어떻게 되죠?

[기자]
일단 오늘 장례절차의 큰 갈래에서 포인트가 세 군데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운구행렬이 출발하게 되는 서울대병원 주변의 종로 일대가 될 거고요. 또 한 곳이 국회의사당 주변 여의도 일대, 그리고 상도동 저택에서 국립현충원까지 이동경로가 되는데 일단 1시 반부터 서울경찰청의 일대 구간에 대해서 교통통제가 지금 시작이 됐습니다.

[기자]
광화문, 세종대로, 충정로를 거쳐서 마포대교를 건너서 노들길을 따라서 이곳 국회의사당까지 오게 되는데 도착시간은 1시 57분쯤에 도착이 돼서 운구행렬이 국회의사당 안으로 들어오면서 2시에 김동건 아나운서의 사회로 영결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1시 29분이니까 앞으로 한 1, 2분 뒤면 운구행렬이 이곳 국회의사당 영결식장을 향해서 출발할 것 같은데요.

오늘 이곳 영결식이 1시 57분, 2시에 시작이 되면 한 1시간 20분에서 30분 정도 진행이 된 다음에. 그렇다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해는 국립현충원으로 바로 향하게 되는 건가요?

[기자]
바로는 아닙니다.

오늘 영결식을 마친 뒤에는 고인이 40년 넘게 머물렀던 상도동 자택을 잠시 들르게 되고요.

또 인근에서 조성되고 있는 김영삼 기념도서관에도 방문을 하게 됩니다.

이 두 곳을 잠시 들린 뒤에 국립현충원이 안장이 되는 겁니다.

[기자]
지금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영결식 준비로 이곳이 한창 바쁘다는 모습을 전해 드렸고요.

운구행렬이 이제 막 출발을 했습니다.

스튜디오 받아주십시오.

[앵커]
국회에서 이종구 기자, 이승현 기자가 전해 드렸습니다. 막 운구차 이동이 시작됐습니다. 원래 예정됐던 시각보다 5분이 늦어져서 1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도착하는 시간은 맞춰서 도착을 하겠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일정은 시간 엄수를 할 겁니다. 많은 분들이 추위에서 기다리고 있고 국가적인 행사이기 때문에 일단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앵커]
친족들이 탄 버스가 뒤를 따라 가고 있고요. 박근혜 대통령은 조금 전 저희가 화면을 보여드렸습니다마는 오늘 영결식에는, 그러니까 부분만 참석하는 것으로 그렇게 정리가 됐습니다.

[인터뷰]
대통령의 사정이 영결식에 참석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입니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씨이기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순방 일정이 잡혀 있다보니까 대통령께서는 아마 고심 끝에 영결식 참석보다는 빈소에서의 마지막 배웅으로 예를 다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되고요. 대통령께서 하실 만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박 대통령이 오늘 사실 참석하느냐, 안 하느냐가 많은 분들의 관심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유족들의 입장으로 봐서는 조금 섭섭할 수도 있는 부분이고 그러나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감안하면 일부러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

[인터뷰]
우선 감기 증세가 있다고 하니까. 또 앞으로 얼마 후에는 외국에 다시 나가야 되고요. 상당히 바쁜 일정 속에서 그런 게 있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국가장 아닙니까. 국가장이고 그러면 사실 웬만하면 나가서 같이 영결식에 참여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물론 야외니까 추울 수 있는데 온열기 같은 거 갖다놓으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두 분 사이의 그런 것도 작용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절대적으로 완전한 상호간의 친숙관계가 다소 껄끄러운 이런 것도 자연히 생각하게 됩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도 사실 건강이 아주 좋지히 않았는데 1시 20분에 출발을 국회의사당으로 했다고 합니다. 조금 전 저희가 세종로, 청와대가 멀리 보이는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마는 저곳을 거쳐서 청와대에서 5년 동안 영욕의 시간을 보냈었던 청와대 앞까지 갔다가 거기서 마포를 거쳐서 여의도로 향하게 되는 길입니다.

[인터뷰]
운구행렬은 선두에 사이카 그리고 선도차,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 그다음에 영구차. 이어서 상주, 유족대표 그리고 친족들이 탄 수행차량이 있고요. 뒤에 구급차, 후미 사이카, 이런 순서로 이동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1시 30분에 운구차 이동이 시작됐습니다. 여기서 여의도까지는 교통통제를 하면 3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2시 정각에 영결식 시작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아마 2시 전에는 도착을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
지금 시각으로는 1시 55분이면 영구차가 장례식장에 들어갈 것 같고요. 2시에 개식 선언하고 행사가 진행이 되니까 5분 전에 영구차가 입장을 해서 의장대, 도일병 받들어 총, 조공이 계시가 되고 운구차는 도열병 사이를 통과를 하고 그다음에 장례 영결식이 2시 정각에 열리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앵커]
지금 왼쪽이 아시는 대로 인사동쪽이고요. 조금만 더 진출을 하면 청와대와 광화문이 나타나게 됩니다. 광화문을 거쳐서 거기에서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길. 김영삼 전 대통령, 의회주의자였고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치 평생의 정치역정, 일생의 여정을 되짚어가는 것 같은 그런 길입니다. 아마 이 길을 따라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음도 우리들 인생 속에 하나하나 다 있는 김영삼 대통령의 말, 생각들, 이런 것들이 담겨 있지 않겠습니까? 그 길을 같이 따라간 것 같은 그런 마음일 것 같습니다.

[앵커]
오늘 일단 유족측은 장례를 검소하게 해 달라라고 정부에 요청을 했고 장례위원은 2220여 명으로 정해지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장례위원보다 수는 적게 잡았고요. 그리고 유족들이 검소하고 간소하게 치러달라, 이것은 아시다시피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손명순 여사나 두 분 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검소함이 몸에 배이신 분들입니다. 칼국수라든가 이런 것을 즐겨 드리고 검소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장례식도 비교적 검소하게 치렀으면 좋겠다는 의사표현을 하셨고요. 그래서 노제, 추모제도 별도로 열리지는 않습니다.

[앵커]
과거 전직 대통령들의 장례식 때는 노제를 했었죠?

[인터뷰]
그렇죠. 했었죠. 이번에는 하지 않고 상도동 사저를 잠깐 들리기는 합니다. 그래서 한 10여분 정도 유족들이 영정을 들고 둘러보고 그리고 개관을 앞두고 있는 기념도서관 앞을 차량들이 지나는 것으로 이렇게 간략하게 행사를 정리를 했습니다.

[앵커]
두 분 교수님들께서는 오늘 국가장의 의미, 키워드, 제일 상징적인 부분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인터뷰]
우선 유언으로 통합, 화합을 말씀하셨고요. 그다음에 국가장이 치러지는 과정을 보면 우리가 최근에 경험했던 두 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이나 국장과는 다르게 상당히 검소하게 치러지고 있다. 그러니까 물론 검소하다고 그것이 우선적인 가치는 아니겠습니다마는 국민들의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대체적으로 간소하게 추리는, 그러니까 뭔가 칼국수대통령으로서 검소했던 것, 떠나시면서 가능한 간편하게 간소하게 떠나겠다. 이런 것이 많이 작용을 한 것 같고요. 단지 노제 같은 것, 그전 같으면 시민들이 행렬을 쫓아간다든지. 특히 시청앞 부근에서. 그런 데서 쫓아가고 이런 행렬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혀 없이 떠나시는 것으로 그렇게 보입니다.

[앵커]
지금 현재 운구차량이 광화문사거리를 지나서 마포쪽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죠.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지금 국회의사당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박명호 교수님, 어떤 의미로 보고 계십니까?

[인터뷰]
한국 정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대통령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직까지도 YS키즈라고 불렸던 분들이 한국정치를 거의 주무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고요. 특히 동교동계, 상도동계로 협력과 경쟁의 관계였는데 이번에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모두 상주가 됐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영남과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서도 그렇고 고인의 마지막 유언에서도 그렇듯이 통합과 화합이라고 하는 메시지를 장례의 마지막 부분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앵커]
이번에는 다른 곳으로 가보겠습니다. 헬기에서 바라보고 있는 운구차 이동행렬입니다. 국회에 도착을 하게 되면 먼저 개식선언을 하게 되고요. 이어서 국기에 대한 경례, 그리고 약력보고를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사는 황교안 국무총리, 장례위원장이 맡게 됩니다. 이어서 추도사가 있고요. 그다음에 종교의식이 치러집니다.

[앵커]
오늘 영결식에는 유족과 친지 100여 명, 장례위원회 위원 2000여 명. 주한외교사절 80여 명, 그리고 각계 인사 7900여 명 등 모두 1만 명 정도가 참석할 예정입니다.

[앵커]
오늘 추모공연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추모노래를 청산에 살리라.

[인터뷰]
그렇습니다. 아까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83회 생신에, 그당시에 김무성 대표가 노래를 선곡해 달라, 이렇게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당시 선구자, 메기의 추억, 이런 것을 고려를 했었는데 김무성 대표가 청산에 살리라가 좋겠다라고 해서 축가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했는데. 청산이라는 걸 제가 생각을 해 보니까 우리 고려가요에 청산별곡이라는 노래가 생각이 나시죠. 그리고 70년대 유신, 암혹한 시대 때 양성우 시인이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이런 식으로 해서 청산이라는 것이 우리 한국인들의 마음에는 이상향, 미래,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 이런 것을 담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영삼 전 대통령도 청산에 살리라라는 노래를 통해서 마음의 위안을 많이 받으신 것 같습니다.

[앵커]
매기의 추억도 좋아하셨나보죠? 그 노래를 부르는 영상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지금은 어려울 것 같고. 나중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부르는 매기의 추억도 저희가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지금은 운구차량이 충정로를 지나서 마포대교쪽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보고 계십니다.

[인터뷰]
오늘 영결식에서 추도사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하시죠.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지금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 장을 하고 계시고요.

[앵커]
연세가 꽤 되시죠.

[인터뷰]
연세가 정확히 모르겠는데 오랫동안 민주화 투쟁을 같이 하신 분이고, 동지죠. 비서, 이런 개념이 아니라 동지라는 개념으로 보시면 될 것 같고요. 그리고 종교의식은 본인이 기독교 장로시죠, 오랫동안 3대째 개신교,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순으로 진행이 됩니다. 기독교 의식은 특히 수원중앙침례교회 목사가 집전을 하시는데 이분은 김영삼 대통령과 인연이 깊습니다.

특히 김현철 씨 문제로 김영삼 대통령이 고심을 많이 하고 있을 때 김장환 목사, 조용기 목사가 청와대에 가서 충고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구속을 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건의도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힘들 때마다 목사님들을 불러서 말씀도 듣고. 교회를 다니시지 못하니까 일요일마다 돌아가면서 목사님들 불러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하는데. 지난 입관식에도 김장환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고요. 그리고 오늘 발인예배 때도 김장환 목사가 설교하는 것으로 그렇게 돼 있습니다.

[앵커]
대한민국 기독교계의 원로시죠.

[인터뷰]
역대 대통령과 무척 가깝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고요. 모든 대통령들과 상당히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윤 목사가 우리나라에 와서 설교를 할 때 그때 통역을 맡으면서 알려진 분입니다.

[앵커]
이 시각 현재 운구차량이 공덕오거리를 지나서 마포대교를 지나고 있는데요. 2시 안에 국회의사당에 도착을 하겠군요.

[앵커]
저 공덕오거리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가면 통일민주당 당사가 있거든요. 한국경제신문 근처에 있고. 거기가 바로 87년 대선 때 통일민주당이 있었던. 아마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개인사에서도 잊을 수 없는 곳일 거고. 한국 현대정치사에서도 기념이 될만한 장소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1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상도동계이기는 하지만 동지에 가까운.

[인터뷰]
정치적 동지이자 평생을 함께해 온.

[인터뷰]
민주화추진협의회 등 이런 민주적인 운동을 평생을 같이 한 분이고요. 김 대통령 밑에서 국회의장을 하고 사실 추도사를 하는 분은 고인과는 아주 진실하고 상당히 가까운 정신을 함께 하는 그런 분들이 추도사를 하죠.

[앵커]
고인의 유언, 유지가 통합과 화합 아니겠습니까? 오늘 영결식도 이런 유지를 잘 받아들여서 상도동, 동교동계할 것 없이 다 모이는 자리가 되겠군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공동상주를 맡고 있고요. 장래위원도 동교동, 상도동계 인사들이 다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청 앞의 분향소에도 김동영,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또 권노갑. 어떻게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라고 할 수 있죠. 그 두 분이 상주역할을 맡아서 그런 화해하는 모습들도 가신 분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앵커]
오늘 전직 대통령들 특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고문으로 참여를 하게 되고 그런 것들도 그런 의미들을 다 담고 있는 화합과 통합의... 고인이 우리 사회에 남기고 가는 하나의 큰 중요한 유산 중에 유산이고 또 선물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최다선 의원이고 최연소 의원이고 이런 기록은 저희가 많이 들었습니다마는 이런 기록도 있더라고요. 최다선 윈내총무도 했었고 최연소 야당 당수도 기록을 했었고. 참 많은 기록을 남긴 정치인입니다.

[인터뷰]
제가 기억하기로 원내총무 5번으로 기억을 하는데 46살에 야당 총재를 하셨으니까. 물론 많은 기록을 가지고 계십니다. 만 26살 이때부터 국회의원이 됐으니까 그런 기록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오기가 불가능한 기록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화려한 이면에는 저분은 철저한 의회주의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철저하게 갖고 계신 분이었기 때문에 결코 국회를 포기하지 않으신 그런 분이었다라고 생각이 듭니다.

[앵커]
지금 마포대교를 건너고 있지 않습니까? 이 마포대교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마포당사에서 주로 야당 총재로서 하다가 국회에 등원할 때는 저 다리를 아마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넜던, 김영삼 전 대통령한테는 아마 평생에 제일 많이 건너다녔던 다리가 아닐까, 그 다리를 지금 김영삼 전 대통령이 건너가고 있습니다. 건너면 바로 국회입니다.

[앵커]
이제 운구행렬이 10분 정도 뒤에 국회 영결식장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앵커]
여기서 건너면 바로니까요.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 이제 마포대교를 거의 지나서 여의도로 진입을 해 가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에는 아까 이종구 기자가 전해 드린 것처럼 이미 모든 준비는 다 끝났고 영결식이 잠시 뒤면 시작될 예정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경남중학교 때는 수영선수도 했었더라고요.

[인터뷰]
수영은 워낙 좋아하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고요. 그리고 좋아하시는 운동은 조깅은 상징처럼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퇴임 이후에는 주민들과 배드민턴 많이 치시기도 했었고. 조깅에 대한 일화는 많습니다. 클린턴 대통령과도 했다는 얘기, 또 해외출장 가실 때마다 경호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는 꼭 하시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베를린 갔을 때는 손기정 선수가 우승한 베를린스타디움을 도시기도 했고 그리고 칠레를 방문했을 때는 육군사관학교 남녀 생도들과 같이 조깅을 한 그런 일화도 있습니다.

[앵커]
해외순방하면 항상 아침마다 조깅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경호가 가능한 범위내에서는 하려고 애를 많이 쓰셨던 것 같습니다.

[앵커]
포털업체에서 분석한 최근의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한 뒤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트윗된 단어들 분석한 결과가 오늘 공개가 돼는데 보니까 1위가 조깅이더라고요. 1위가 조깅, 2위는 뭐였을 것 같습니까?

[인터뷰]
칼국수?

[앵커]
네, 칼국수가 2위고요. 3위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도 3위는 맞히기가 어려웠는데요. 최영주 앵커, 뭐인 것 같습니까?

[앵커]
승부사 아니었을까요?

[앵커]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더라고요. 닭이었습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말 때문에 닭이 3위를 차지 했습니다.

[인터뷰]
세 단어 모두 김영삼 대통령을 상징하는 단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인터뷰]
70년대 생각을 해 보면 민주화 상징의 어록같은 게 김지하 시인이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80년 이후에 노래로 만들어졌습니다마는 그 시.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것을 가지고 두 말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고 힘을 얻었던, 그런 말들인 것 같습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런 말도 했더군요. 민주제단에 피를 뿌릴 각오로 싸우겠다. 이것도 그 당시에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회자가 됐었던 그런 어록입니다.

[앵커]
지금 막 국회의사당에 운구차가 도착을 했습니다.

[앵커]
고인의 마지막 등원이라고도 표현을 하더라고요. 9선 의원의 마지막 등원입니다. 손명순 여사, 제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미 1시 20분쯤에 상도동 자택에서 국회로 곧바로 출발을 했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있지 않았고요. 건강 문제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상도동 자택에서 국회로 바로 출발을 했고. 지금 아마 영결식장에 도착을 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이제 잠시 뒤 2시면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이 공식적으로 시작됩니다.

[앵커]
김영삼 전 대통령, 26살 때, 물론 그때 국회는 여의도는 아니었겠습니다마는 그때 처음 발길을 들여놓았던 국회에 마지막 발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등원,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지금 유해가 입성을 했습니다. 아까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은 눈발이 조금 날리는 모습이었는데요. 여기는 눈발은 날리지 않은 것 같고요. 마침 그때에만 맞춰서, 막 유해가 운구차에 실려서 출발할 때 그때 눈발이 날리는 모습이 상징적이고 인상적이었는데. 지금 이곳은 눈발은 날리지 않고 있고요. 날씨도 아침보다는 조금 풀려서 여기서 한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되지 않습니까, 영결식이요?

[앵커]
1시간 20분 정도 진행이 되고요.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조사를 맡게 됩니다. 그리고 추도사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상도동계 핵심인사죠,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추도사를 맡게 됐고요. 국가장인 만큼 4대 종교의식이 차례대로 거행될 예정입니다.

[앵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도 국회에서 진행됐었죠, 영결식이?

[인터뷰]
그렇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영결식이 국회에서 진행이 됐고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은 경복궁, 광화문쪽에서 진행이 된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앵커]
네, 맞습니다. 광화문에서 진행됐고요.

[인터뷰]
그리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경우도 경복궁 앞뜰에서 진행이 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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