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65년의 기다림"

이산가족 상봉..."65년의 기다림"

2015.10.20. 오전 10:53.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 김희준,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 / 정영태, 통일연구원 박사

[앵커]
이산가족 상봉행사 이모저모에 대해서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김희준 YTN 통일외교 전문기자 그리고 정영태 통일연구원 박사와 함께 하겠습니다.

지금 조용성 기자의 얘기로는 남측 사무소는 이미 지나갔고 지금 어디에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죠?

[기자]
남측출입국사무소에서 군사분계선까지 한 2km가 되는데 잠시 뒤에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북측으로 향하게 됩니다.

북측 군사분계선에서 금강산지구까지는 한 18km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실 차로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아서 바로 직행하면 좋겠습니다마는 북측에서의 검문검색 절차가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아무래도 500여 명의 인원들이 검색을 받다보니 1시간 정도 걸리게 되고요.

그래서 북측 금강산지구에는 오후 12시 반에서 1시쯤 도착할 예정입니다.

[앵커]
지금 아직은 그러면 군사분계선은 통과하지 않은 거군요?

[기자]
화면이 곧 들어올 텐데요. 아직 오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저희가 확실히 추정은 못하겠습니다마는 아마 조만간 군사분계선을 넘었거나 넘거나 그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면 오후에 오찬을 시작을 해서 상봉이 시작이 되는데 어느 일정이 예정이 돼 있습니까?

[기자]
오찬은 12시 반쯤 북측 휴게시설인 온정각에 도착을 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12시 반에서 1시쯤 도착을 해서 그때 북측 가족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남측 가족들끼리 개별적으로 점심식사를 하게 되고요.

드디어 오후 3시 반. 원래는 상봉시간이 3시입니다마는 그동안에 북측이 평양시를 적용하면서 30분이 남측보다 늦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각으로는 3시 반에 금강산면회소에서 60여 년을 기다려 온 첫 단체상봉이 시작이 됩니다.

이후 한 2시간 정도의 단체상봉이 이어지고요. 이어 잠시 휴식시간을 가진 뒤 다시 저녁 7시 반부터 함께 저녁을 나누는 만찬상봉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앵커]
오늘 일정이 그렇고요.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1년 8개월 만인데 이산가족 당사자들에게는 물론 엄청난 의미가 있는 행사지만 남북 관계에도 의미가 있는 일이죠?

[인터뷰]
네, 그렇죠. 물론 불행한 사건 때문에 8. 25 합의가 이뤄지기는 했습니다마는 거기에서 8. 25합의 내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추진하기로 한다는 것을 그야말로 못을 박았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이렇게 본다면 여기에 출발해서, 그리고 또 8. 25합의 내에 당국간 회담을 개최하기로 한다는 합의까지 또 있거든요.

그렇다면 이번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행사 이것을 어떤 의미에서 출발점으로 해서,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남북한 대화라든가 이런 것이 다각도로 이뤄지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앵커]
유난히 이번에 고령자가 많습니다. 상봉단 중에서 직계가족을 만나는 가족이 얼마되지 않는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번 상봉단 1차 때는 북측이 남측 가족을 만나고 싶어하는 96가족에 대한 389명. 또 2차에는 남측에서 북측 가족을 찾은 90가족이 만나는데 모두 180여 가족이 만납니다마는 이 가운데 부모, 자식 간의 직계상봉은 단 18 가족, 그러니까 10분의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부상봉도 이번 1차 상봉단의 경우 단 2차례에 불과를 하고요. 지금 현재 이산가족의 연령대별 분포를 살펴보면요. 현재 1988년에 우리 정부 이산가족통합정보센터에 등록한 이산가족이 모두 13만 명이 넘습니다.

이 가운데 6만 3000여 명이 세상을 떠나셨고 6만 6000여 명이 생존해 있는데 이 가운데 80대 이상이 절반이 넘습니다.

그리고 70대 이상을 고령자라고 본다라고 할 때 80%가 넘는 분이 70대 이상의 고령자에 속합니다. 그래서 이번 20차 상봉단에서도 80세가 넘는 고령자가 모두 95%. 그러니까 거의 전부 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최고령자는 이번 1차 상봉에서 북측의 여동생을 만나게 되는 김남규 할아버지인데 95살입니다. 김남규 할아버지는 김남규 할머니는 여동생을 보기 위해서 제대로 상봉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산책을 하고 운동을 했다는 그런 얘기까지 전해지고 있죠.

[앵커]
저희가 화면으로 본 것처럼 연세들이 많이 드셔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데. 홍 통일부 장관도 이산가족 정례화를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는데 이게 가능할 것이라고 보시나요?

[인터뷰]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행사 정례화 문제, 이것을 좀더 제도화하고자 하는 문제. 이런 것을 우리가 끊임없이 요구해 왔고 사실은 추진하려고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기점으로 해서 남북한 관계 개선이라고 하는 물꼬를 트려고 하는 그런 움직임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정례화를 위한 앞으로의 실무적인 접촉이라든가 이런 것을 통해서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조심스러운 예상도 해 볼 수 있겠습니다.

[기자]
지금 화면을 보면 하도 고령자분들이 많다보니까 휠체어에 의존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안타깝게도 두 분은 지금 엠뷸런스에 실려서 가고 있습니다.

모두 다 북측의 오빠를 만나는 분인데 한 분은 천식증세가 심해져서 앰뷸런스에 산소호흡기를 달고 가고 계시고 또 한 분은 허리디스크 때문에 또 앰뷸런스에 의지해 가고 있는데 박사님이 아주 잘 말씀해 주셨듯이 상봉정례화가 시급합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남측의 이산가족이 6만 6000여 명인데 대부분 80세가 넘는 고령자이다보니까 사실 평균수명에 따르면 모두 상봉이 이뤄져야 이분들이 한 번씩은 상봉하지 않을까 하는 추산을 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의 1년에 6000명의 가족이 만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지금 불가능한 상태이고요.

그렇다 보니까 생사확인만이라도 하고 지금 살아 있는지 돌아가셨는지 몰라서 제사를 지내는 분도 적지 않은데 전면적인 생사확인이 가장 시급하겠고요.

이와 함께 서신. 편지와 사진만이라도 서로 소식을 주고받는다든가 아니면 현장에서 대면상봉은 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적십자사가 지어놓은 화상상봉을 통해서 화면만으로라도 서로 육성을 듣고 상봉할 수 있게 한다거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시급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저희가 화면을 통해서도 북측 가족에게 전달할 선물보따리들을 가득 버스에 싣는 모습도 봤는데 제일 인기있는 선물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기자]
아무래도 개성공단이 가동된 이후로 북측 근로자들에게 제공되는 어느 한 회사의 과자를 얘기하기는 그렇지만 초코파이가 대명사가 됐기 때문에 초코파이가 가장 단연 인기있는 선물입니다.

이분들이 간식으로도 좋고 장마당에서 실제 거래하면서 외화벌이도 되고 있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어제 속초 숙소들을 찾아가서 선물 보따리들을 취재진들이 많이 확인을 했는데 초코파이가 제일 많았고 이밖에 곧 겨울이 다가오니까 아무래도 북측 지역은 춥고요. 그래서 내복과 방한복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와 함께 건강도 생각해야 되니까 많은 다양한 의약품들 그리고 아프고 결릴 때 파스, 이런 것들도 있었고요.

의약품들마다 일일이 복용법을 적어서 하루에 3번 드세요, 일하다가 힘들 때 드세요. 이런 것들을 다 일일이 꼼꼼히 적어서 북측 가족들에게 전하는 그런 사랑의 마음도 저희가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치약, 칫솔 같은 생필품들. 이런 것들이 다양하게 선물로 준비되어 있다고 합니다.

[앵커]
혹시 북측 가족도 남측 가족들에게 줄 선물 같은 것을 가지고 오기도 하나요?

[기자]
물론 가지고 오는데요. 남측처럼 이렇게 개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당국에서 일괄적으로 지급한 것이 많습니다. 북측에서 유명한 술들 이런 것이나 토산품들, 이런 것들이 많이 있죠.

[앵커]
잠시 뒤에 상봉단이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통과를 해서 일단 앞서서 말씀하신 것처럼 북한 통행검사소에서 한 차례 더 북한측의 심사를 받은 뒤에 금강산관광지구에 도착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금강산으로 출발을 했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현금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요. 사실 달러가 정해진 금액이 있다고요?

[기자]
남측 가족들에게 정해진 선물 품목을 보면 달러, 현금은 500달러 이내로 제한이 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많은 고액의 액수를 가져다가 보면 북측 당국들이 모두 회수한다. 이런 얘기도 있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500달러를 준비하더라도 가능한 소액권으로 1달러, 2달러짜리로 준비를 해서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이렇게 쓸 수 있도록 하라. 이런 안내가 내려지기도 합니다.

[앵커]
가족들이 관계자에게 가장 많이 물어본 질문이 뭐냐 했더니 북측 가족이 선물들을 집까지 무사히 가져갈 수 있느냐라고 합니다. 과연 가져갈 수 있는가요?

[인터뷰]
그것은 아마 어려울 겁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거예요. 예를 들어서 물건 중에 현금의 경우에는 북한이 일단 회수를 할 거예요.

어느 정도 회수를 하고 그것을 다시 일정한 액수를 되돌려준다든가 그런 측면이 또 하나 있고. 여러 가지 물품들 같은 경우에 상품명이라는 것들이나 이런 것들이 분명히 밝혀진 것이 있고 하니까 이것은 대한민국의 상품이 지나치게 북한 장마당이라든가 여러 가지로 이것이 확산이 됐을 때 자기들은 그것을 차제에 부정적으로 미친다고 생각할 가능성도 갖고 있거든요.

또 이런 데 대해서 일정 부분은 아예 그 상품명이 없는 그런 형태로 뜯어서 준다든가 이런 형태로 해서 여러 가지 물품을 주기는 하는데 상당한 부분, 북한 당국에서 이것을 회수하는 형태로 되어 있다 하는 것이 일반적인 판단입니다.

[앵커]
60년의 기다림 끝에 오늘 드디어 가족들을 만났는데 여러 가지 애끓는 사연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영상으로 준비를 했는데요.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살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그런 상황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번에 상봉 대상자 최종명단을 교환하면서 우리측에서 사망자의 경우에는 정확한 사망날짜를 알려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북측이 허용을 했었죠?

[인터뷰]
그런데 이번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성의껏 우리 요구를 응해 줬다고 하는 데는 좀 이례적이라고 통일부 당국자들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반적으로 봤을 때 북한은 남북한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이제까지 북한이 강하게 군사적 긴장을 조성을 해 놓고 자기들의 군사 영향이라든가 이런 것을 일단 시위를 했다고 볼 수 있죠.

여기에 근거해서 이제는 남북한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하는 표현이 있기도 하니까 그것의 첫 단추로써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다라고 해서 가급적 우리가 하는 요구들, 이런 것을 상당히 성의껏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판단을 해 볼 수 있죠.

[앵커]
김희준 기자, 지금 화면에 저희 상봉단을 태운 버스가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 군사분계선은 통과를 하지 않은 거죠?

[기자]
잠시 뒤 통과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고성 CIQ에서 비무장지대까지 한 2km 정도 되니까요. 잠시 뒤 출발을 할 것으로 보이고요.

우리측 남측 상봉단 389명과 또 지원단 등을 태운 버스와 엠뷸런스까지 해서 모두 33대의 차량이 차례로 북측 군사분계선을 향해서 지나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1호차에는 이번 이산가족상봉의 남측 단장이 되는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타고 있고요. 나머지 이산가족상봉단들이 이버스에 탑승을 하고 떨리는 가슴으로 북측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번에 참가자 대부분이 80세 이상 고령자인 만큼파견 의료진도 많이 늘렸다고요.

[기자]
그렇습니다. 작년 같은 경우에 12명 정도의 의료진이었는데 올해는 20명 정도의 의료진이 동행을 합니다.

의료진들이 어제 저녁부터 상봉자들의 방을 회진을 하면서 혈압도 체크하고 건강상태를 다 체크를 했는데요. 만에 하나 북측에서도 건강이 악화되거나 이런 분들이 나올 경우를 대비해서 의료진들이 대거 동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휠체어도 원래 36대 정도를 준비를 했는데 이 가운데 24대가 대여가 됐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죠.

[앵커]
지금 군사분계선을 향해 가고 있는 이산가족상봉단을 태운 버스의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앞서 북측이 이번에는 준비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협조적이다라는 얘기를 하셨는데 작별상봉 시간도 우리측에서 연장하자는 얘기를 했는데 이것도 받아들였어요?

[인터뷰]
그것도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어요. 사실 이제 20차례나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했는데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도 이 시간을 늘려달라고 하는 그런 요구를 오래 전부터 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1시간으로 단축한 상태에서 이끌어오다가 이번에 우리가 2시간을 요구를 했을 때 북한이 상당히 협조적으로 이것을 받아들였다고 하는 그런 내용들이 사실 있죠.

[기자]
지금 보면 앰뷸런스도 동행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작년 제19차 상봉 때도 내가 죽더라도 금강산에서 죽겠다며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 앰뷸런스에서 2박 3일을 보내셨던 할아버지도 계셨고요.

[앵커]
지금 일부는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고 합니다.

[기자]
그랬을 겁니다. 2km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기 때문에요. 모두 33대의 차량이 행렬을 하고 있어서 군사분계선을 차례로 넘고 있을 것으로 보이고요.

잠시 뒤는 북측의 출입국사무소에서 다시 한 번 검색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사실 고성에서 금강산까지 단 1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 직행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한반도의 허리가 잘려 있고 그렇다보니까 남과 북에서 각각 출입국절차를 밟다 보니까 이게 총 4시간 정도로 늘어났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앵커]
예전에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우리측에서도 진행한 걸로 알고 있는데 2002년부터인가요? 북측 금강산지구에서만 하고 있는 거죠?

[인터뷰]
사실은 이게 이산가족 상봉행사 자체는 평양을 방문한다든가 아니면 북한의 고향에 방문하는. 그리고 북한측 가족들은 우리 남한의 서울을 방문한다든가 아니면 고향을 방문하는. 이런 형태로 상호 교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는데 북한은 언제부터인가 자꾸 판문점이라고 하는 이런 정전협정 체제 하에 놓여 있는 이러한 시설이라든가 이것을 이용을 안 하고 뭔가 새로운 형태의 남북한에 대화를 하는 장소로 모색한 측면이 있죠.

그래서 금강산 자체를 아예 정전협정 체제 하에 있는 판문점이 아닌 금강산을 아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할 수 있는 면회소를 짓도록 해서 거기에서 아주 정례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으로 바꿨다고 할 수 있죠. 이것은 북한이 지속적으로 정전협정체제를 사실은 무실화시키고 새로운 평화협정체제로 가야 한다고 하는 그런 새로운 요구를 정당화하기 위한 하나의 일환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앵커]
북한 당국이 이산가족 행사 등으로 인해서 북측 주민이 남측으로 와서 남측의 문화를 접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인터뷰]
대단히 크죠. 만약에 그런 것들이 없다고 한다면 이산가족 상봉행사 자체는 이렇게 뉴스가 될 정도로 할 필요가 없다고 볼 수 있죠. 예를 들면 북한에 들어간 우리 남측에 있는 가족들이 북한의 고향 방문할 수 있는 것도 자유롭게 개방적으로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필요한 의료시설을 우리가 지원해서 지어준다든가 또 가족들을 위해서 여러 가지 지원을 해 준다든가 이런 것을 할 수 있을 터인데 북한은 그것조차도 개방을 한다든가 이런 것 자체가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북한 주민들이 사실 외부 상황 자체를 모르게 하는 것이 북한체제를 유지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의 사정을 알게 하는 것이 그만큼 부담스럽다고 볼 수 있죠.

[앵커]
잠깐 뉴스속보 전해 드리고 계속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윤상현, 김재원 정무특보가 사의를 표명했고요. 박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총선 준비를 위한 사의표명인 것 같습니다. 윤상현, 김재원 정무특보가 사의표명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산가족 상봉 내용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 이유 때문에 남측의 이산가족들이 북측으로 가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됐는데 어제였죠. 그 이산가족들이 숙소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그게 일정이 들어 있는 거죠?

[기자]
항상 이산가족 행사를 할 때 남측은 방북교육을 받습니다. 북측에 가서 조심해야 될 언행들. 특히 최고존엄을 자극하는 그런 발언들을 삼간다거나 북측에게 남측의 잘사는 모습, 이런 부분들을 너무 강조해서 북측을 자극하지 말아야 된다거나 이런 방북교육을 항상 받게 되고 있고요.

이산가족들뿐만 아니라 함께 가는 취재진들이나 또 동행하는 다른 지원인력들까지 모두 함께 이런 부분을 받게 되는 겁니다. 박사님이 아까 말씀하셨는데 어쨌든 남과 북의 평양과 서울 동시 상봉이 이뤄진 게 남북관계가 아주 좋았던 김대중 정부 시절에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단 세 차례였습니다.

당시에는 서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평양의 모습도 보고 북측 가족들이 남측에도 내려왔는데 남측에 와서 남측의 선진화된 그런 문물들을 보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측에 이산상봉 가족들이 가서 아무래도 좀더 세련된 외모나 좀더 부유한 모습이 보여지는 것.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북측이 상당히 부담을 느꼈다고도 볼 수 있겠죠.

[앵커]
과거에는 야외상봉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부분은 빠졌다고요?

[기자]
사실은 과거의 김대중 정부 시절, 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 관계가 좋았을 때는 보통 야외상봉, 꼭 두 번째 날에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금강산 아주 절경이 좋습니다마는 거기 산 오르기는 힘들고 해금강이나 삼일포 등 주변에 좋은 경관들을 찾아서 야외 소풍하듯이 나가서 돗자리를 깔고 서로 간식을 나누며 정말 60여 년 동안 못했던 소풍, 나들이를 했는데요. 하지만 2008년도에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에는 이런 야외상봉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대신 호텔이나 상봉장 로비에서 서로 돗자리를 깔고 잠깐 소풍기분을 내기도 했습니다마는 일단은 지금 추워지고 있고요.

그리고 지난 19차 상봉도 1월에 이뤄졌기 때문에 겨울이어서 야외상봉이 불가능했었고 이번에도 고령자들이 많다 보니까 아무래도 거동이 왔다갔다 바닥에 앉아계시기도 힘들기 때문에 야외상봉은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북한 경제난에 대해서 얘기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데요. 지난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열병식 행사에서 너무 돈을 많이 썼다, 이런 얘기도 나오고. 그래서 이산가족상봉의 비용을 대기가 힘들었지 않았을까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요.

[인터뷰]
아마 그런 부담도 있었을 거예요.

사실 우리와 같이 이산가족 자체가 우리처럼 컴퓨터화돼서 이런 정보 자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우리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것에 비해서 우리는 또 많은 것이 축적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만약에 우리가 100명이라고 하는 가족을 저쪽에 신청을 했을 때 이 100명을 그들은 아마 자전거를 타고 아니면 버스를 타고 이런 식으로 해서 굉장한 많은 시간과 또 그리고 인력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죠.

이렇게 보다 보면 그다음에 북한에 있어서는 이 사람들한테, 가족들한테 일일이 교육을 시키고 이 사람들이 평소에 입지 않는 어떤 의복이라든가 여러 가지 선물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다 준비를 해 줘야 된다라는 이런 측면이 있죠.

그러다 보니까 소위 저쪽에서 국가 차원에서 준비해 줘야 될 게 너무 많다는 거죠. 이렇게 본다면 물론 물가라고 하는 것이 우리하고는 많이 다릅니다마는 그러나 그 사회에 있어서도 그것도 작은 예산이 아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죠.

[앵커]
사실 지난 이산가족 상봉 때는 겨울이어서 고령자들이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번에는 날씨로 인한 불편함은 없을 것 같아요.

[기자]
그런데 현지 기상센터의 예보를 보면 조금 날이 흐리고 비도 올 수 있다고는 하는데요. 그래도 아직은 가을 초입이고 하기 때문에 큰 추위로 인한 불편함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현지 시설에서 동파가 된다거나 해서 숙박시설이 조금 불편할까, 이런 우려도 있었지만 이미 시설점검단들 14명이 방북을 해서 다 이미 점검을 마쳤고요. 아주 따뜻하게 잘자고 편안하게 상봉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이산가족의 상봉역사를 저희가 그래픽으로 만들어 봤는데 설명을 해 주시죠.

[기자]
처음으로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진 것은 1985년도입니다. 당시 우리가 분단이 되고 나서 생긴 1000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생겼는데요.

이후 남과 북의 적십자가 서로 계속 합의를 해서 이산가족 상봉론을 추진해 왔지만 잘되지 않다가 30여 년이 1985년 처음으로 고향 방문단 교환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첫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남북간의 합의가 원활하지 않아서 2진 고향 방문단 교환 사업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고요.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이산상봉이 본격화됐습니다.

그해 8월 15일을 비롯해서 서울-평양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해서 이산가족 상봉이 계속 이뤄진 뒤에 지금까지 모두 20차례, 그러니까 이번 상봉까지 합쳐서 20차례의 이산가족상봉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니까 한 15년 동안 한 20차례인지 모두 1년에 1. 3회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고요. 이를 통해서 우리측 가족 2000여 명, 북측 2000여 명 정도 해서 4000여 명이 상봉을 했습니다.

물론 20차례의 이산가족상봉뿐만 아니라 7차례의 화상상봉까지 포함을 해서 한 4000여 명이 만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조금 전에 저희가 날씨로 인한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저희 취재기자가 방금 확인을 해 보니까요.

내일과 모레 금강산 현지에는 비바람이 좀 심할 것이라고 합니다. 건강관리 잘하셔야겠습니다.

북한이 앞서서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협조적이다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 박 대통령의 UN총회 연설도 비난을 했었고요. 한.미정상회담도 공식적으로는 아닙니다마는 비난을 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그런데 그 UN총회 연설에 대한 비난 그리고 또 우리 한.미정상회담에 관련된 비난. 하나의 심각도를 보면 오히려 평소보다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는 그런 이례성이 사실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김정은 체제 들어와서 김정은 자신이 이제까지 명실상부하게 유일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스스로가 굳혀오는 그런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그것을 주로 군사적 긴장조성에서 군사적 지도권, 군사적 장악. 여기에 초점을 뒀다고 한다면 이것을 기반으로 해서 앞으로는 국제적으로도 보다 더 공세적으로 개방을 한다든가 이런 측면이 하나가 있고. 또 외교적 공세를 펴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대남, 소위 남북관계 개선이라고 하는 이런 일종의 대화공세를 펼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 이것은 어디까지나 앞으로 북한이 나아가야 된다고 하는 것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김정은 체제 들어와서 어떤 새로운 자기의 목표를 뭔가 달성을 했다고 하는 것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만큼 소위 민족 간의 문제를 풀었다. 민족 간의 문제를 상당히 개선시켰다는 이런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서도 남북한 관계 개선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이번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사실은 부정적인 타깃이 많았죠.

지난 목함지뢰 도발 이후에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하느냐, 마느냐 또 한.미정상회담, 한. 중정상회담 각종 이런 것을 통해서 북핵에 대한 여러 가지 압박이라든가 이런 공조를 많이 과시하기는 했죠. 사실은 기존에 봤다면 이런 것을 가지고도 아마 남북한에 대해서, 특히 남한에 대해서, 우리 대통령에 대해서 입에 담지 못할 그런 비난이라든가 이렇게 했을 가능성이 큰 것이죠.

그러나 이번 경우는 그런 정도는 아니었고 아주 지나가는 의례적인 비난 수준에 그쳤다고 하는 것에 우리가 초점을 둘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기자]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이었죠. 이를 앞두고 북한이 김정은 체제의 공고함을 과시하기 위해서 장거리미사일 발사라든가 핵실험까지 위협을 하면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마저 무산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좀 많았습니다.

사실 인도주의적인 차원의 이산가족상봉은 남북의 정치적인 굴곡의 영향을 받지 말고 이뤄져야 하는데 늘 조마조마하면서 상봉행사를 치러야 하는데 북측이 일단은 박사님 말씀하신 대로 아주 유화적인 태도로 나와서 이산가족상봉은 무사히 잘 치러낼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북측이 아마 이런 인도주의적인 차원의 이산가족상봉을 무산시키는 데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고요.

이번 상봉행사를 잘치른 다음에 남북 당국간 회담이라든가 이런 부분으로 나아가고 또 북. 중 간 관계도 개선을 해 나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금 더 얻어가려고 하지 않을까라고 전망해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어찌됐든 지금 남측의 이산가족상봉단, 군사분계선을 조금 전에 넘어서 잠시 뒤인 12시 반쯤에는 금강산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본격적인 상봉행사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오늘 두 분 말씀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