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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년 여를 끌어온 헌정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심판 사건 절차가 어제 최후 변론을 끝으로 마무리됐죠.
핵심 쟁점은 북한과의 연결성이었습니다.
법무부는 1992년 설립된 지하당인 민혁당 출신 급진 세력이 민노당을 장악했고, 민노당의 후신이 통합진보당이라고 주장합니다.
통진당의 인적구성 핵심에도 여전히 민혁당의 잔존세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겁니다.
반면 통진당은 자신들이 민혁당의 잔존 세력에 조종된다는 말은 터무니없다며 북한과의 연계성을 부인합니다.
오늘 이슈대담에서는 한국내에서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이어떻게 운영됐는지 집중 분석해보겠습니다.
[앵커]
앞서도 말씀을 들으셨습니다마는 어제 통진당 해산심판의 최후변론이 있었는데 핵심은 통진당과 북한이 과연 연결이 있는가, 연결이 직간접적인 연결이 되고 있는가 이런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 고리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 법무부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지하당, 그 지하당이라는 건 민혁당을 지칭하는 건데요.
이 민혁당을 과연 어떻게 바라볼 수 있고 그래서 민혁당 문제가 지금 새롭게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존재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로 이 민혁당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집중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두 분 나와계신데요.
주사파 출신으로 과거 민혁당 비밀조직 RO의 조직원이셨죠.
자유조선방송의 이광백 대표, 그리고 민혁당 등 남한내 지하당을 구축하고 관리했던 북한 대외연락부 소속 남파공작원이었죠.
김동식 씨, 두 분 나와계십니다.
참고적으로 김동식 씨는 선글라스를 착용하신 점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 이광백 대표께서 나왔는데 제가 RO 조직원이자 주사파 출신 민혁당 출신 RO 조직원이라고 이렇게 소개했는데 맞습니까?
[인터뷰]
당시에 민혁당은 18개의 RO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앵커]
18개의 RO? RO덩어리네요.
[인터뷰]
그 중에 한 개의 RO의 조직을 맡았습니다.
[앵커]
그게 지하당마다 다 있는 거죠, RO라는 게.
[인터뷰]
사실상 조직체계로 보면 있어야 맞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사파 혁명조직은 당파로 밑에 준당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혁명조직, 그러니까 이른바 RO들을 준당조직으로 다 거느리고 있었죠.
[앵커]
준당조직, 참 일반 시청자 여러분들은 이름도 생소하실 텐데 우리 김동식 선생님은 과거 두 차례 남파경험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예전에 225국에 소속이 되어 있었다, 맞죠?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그런데 여기가 대외연락부라고 불리는 곳인가요?
[인터뷰]
기존에는 연락부였다가 그다음에 사회문화부로 명칭을 바꿨다가 또다시 대외연락부로 바꿨다가 나중에는 225국으로 바꿨습니다.
[앵커]
그런데 여기서는 대남 공작하는 데죠?
[인터뷰]
대남공작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대외연락부에서 하는 공작은 대한민국이나 또는 해외 공작원들을 파견해서 현지에서 현지인들을 포섭해서 그 사람들로 대한민국 내 지하당 간첩망을 구축하는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 225국입니다.
[앵커]
지하당을 구축한다.
그러면 민혁당도 225국 관리하에 있었나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러면 우리 김 선생님도 민혁당에 대해서 좀 많이 아시겠네요?
[인터뷰]
제가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은 저도 민혁당에 대해서는 한국에 와서 알게 됐습니다.
[앵커]
남파되셨을 때는 그러면 다른 조직을 만들려고 오신 거군요?
[인터뷰]
제가 했던 건 과거에 중부지역당이라고 하는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이라고 하는.
[앵커]
중부지역당 사건이 있었죠?
[인터뷰]
92년도에 있었는데 그 조직을 제가 만들었었죠.
[앵커]
그렇군요.
중부지역당.
하여간 지역당들이 굉장히 많았던 건 사실입니다.
저희가 역대 지하당 사건, 한번 그림으로 만들어 봤는데요.
화면 좀 주시죠.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죠.
중부지역당 제일 먼저 나오네요.
김 선생님 말씀하셨던 것 구국전위, 민혁당. 민혁당이 민족민주혁명당의 약자죠.
일심회, 왕재산 간첩단.
여기까지 쫙 역대 지하당인데 우리는 민혁당 관계자가 나오셨고 아무래도 중부지역당 관련해서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는 남파되셨던 분들 두 분 나와계시니까.
민혁당 당원이 몇 명인지 아세요?
[인터뷰]
민혁당 당원은 100명이었습니다.
[앵커]
그거 알 수가 있네요?
점조직이라서 몰랐을 줄 알았는데.
[인터뷰]
당시에는 누구든지 몰랐죠.
97년도에 민혁당이해산되고 98, 99년도에 민혁당 사건이 나면서 대부분 실체를 저희들도 그때 알았죠.
아, 규모가 이런 정도였구나.
[앵커]
그러시구나.
그러니까 민혁당에 계실 때는 몰랐는데 잡히고 문제가 수사가 끝나고 나니까 이 정도 규모구나.
[인터뷰]
심지어는 민혁당의 총책임자가 강철 김영환이라는 사실도 저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죠.
사건의 실체가.
[앵커]
그것도 모르셨어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그러면 뭘 아셨어요?
[인터뷰]
제가 아는 것은 김정일 장군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혁명한다는 거였죠.
[앵커]
그거 하나만.
그런데 이게 점조직으로 하다 보면 실제적으로 우리 이 선생님 밑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선 말고 다른 선은 모르는 거죠?
[인터뷰]
그렇죠.
원칙적으로 몰라야 맞습니다.
지하당조직 운영 원칙 때문에 자기 소조 또는 자기 지도 책임선 외에는 몰라야지 맞죠.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하고 학생운동을 9년, 10년씩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원칙은 몰라야 하지만 실상은 또 다 압니다.
자기 학교에 누가 누가 RO의 조직인지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앵커]
이 대표님 지금 화면에 그림 나오고 있죠.
RO, VO 맞습니까?
[인터뷰]
민혁당 네 단계로 조직을 구성해서 운영을 했죠.
제일 위에 있는 것으로 보면 민혁당입니다.
[앵커]
저게 김영환 씨라든지 저기에 들어가 있는 거죠?
[인터뷰]
그렇죠.
저 당원은 100명이었고요.
그 밑의 RO는 준당조직입니다.
[앵커]
이 대표님이.
[인터뷰]
그 준당조직 RO는 18개 정도.
그밑에 RMO라고 해서 혁명대중조직인데 저건 다른 게 아니고 대중조직 가운데 학생회라든가 농민회라든가 노동조합 같은 전교조 같은 대중조직 가운데 열성적인 혁명분자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따로 관리합니다.
그게 바로 이른바 외곽조직이라 부르는데 저걸 활동가 조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은어로 RMO라고 불렀어요.
숫자는 대략 3000명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관리하는 광범위한대중단체들이 있는 거죠.
전교조, 농민회, 학생회 등등 수많은 대중단체가 그 밑에 있는 것이죠.
[앵커]
이 그림 잠깐 놔둬보십시오.
제가 김 선생님께 여쭤볼게요.
김 선생님 오셔서 지하당 조직 만드실 때 그러면 무엇을 만드시는 거예요?
VO를 만드신 거예요?
[인터뷰]
그렇죠.
VO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요.
가장 중요한 건 VO를 핵심적으로 끌고 갈 총책을 저희가.
[앵커]
VO 위에 있는?
[인터뷰]
그러니까 VO를 총괄하는 책임자, 김영환 씨가 민혁당 총책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김영환 씨가 와서 포섭을 하는데 그때 저하고 같이 공작원을 했던 윤택림이라고 하는 그분이 와서 김영환 씨를 포섭해서 김영환 씨한테 당을 만들어라라고 지령을, 지시를 주니까 김영환 씨가 주축이 돼서 만들었던 것이 VO죠.
[앵커]
그게 VO군요.
그러면 중부지역당 사건에 관련하셨다고 그랬는데 그때도 그러면 김 선생님 오셔서 그 VO를 만들 사람을 포섭을 하신 거군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앵커]
그러면 거기서 알아서 조직이 늘어나는 모양이에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앵커]
그러면 중부지역당이든 뭐든 간에 직파되신 것 아니에요, 북에서.
그러면 최소한도 어느 규모가 직파된 사람들이 알 것 아닙니까?
[인터뷰]
그게 아직까지 제가 아마 한국에 와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오늘 처음 얘기합니다마는 저희가 여기에 남파돼서 VO를 만들 사람을 포섭을 하거든요.
포섭을 하고 북한에 복귀를 하게 되면 그 결과에 대해서 전부 다 서면보고를 합니다.
서면보고를 한 다음에 그다음에 저희도 손을 뗍니다, 거기서.
그래서 VO나 그 밑의 RO나 이런 것들이 도대체 몇개가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조직이 되는지 그 부분은 저희가 모릅니다.
[앵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한다면 씨 뿌리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씨에서 나무 키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 이 말씀이시죠?
[인터뷰]
나무 키우는 사람 따로 있고 관리하는 사람 따로 있고.
[앵커]
관리하는 사람 따로 있고.
그렇게 관리하는구나, 북한이.
[인터뷰]
그래서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가 됩니다.
저희도 역시 그때 중부지역당 사건이 92년도에 터졌는데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노동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 사건이 터진 것은.
그런데 노동신문을 보고 거기에 저희가 모르는 이름들이 막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그냥 몰랐죠.
몰랐는데 나중에 연락부 부부장, 차관인데 그런 분들 들어와서 이 사람은 누구냐? 그랬더니 그때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 사람이 밑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렇게 얘기를 해서 그때 알았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남한에 오셔서 딱 씨만 뿌리고 올라갔는데 그다음부터 나무가 어떻게 자랐는지도 몰랐다는 거죠.
[인터뷰]
그건 저희가 알 수 없습니다.
[앵커]
그렇구나. 그런데 그게 또 조직도 RO강령이 있는 모양이에요.
저희가 판넬로 준비했는데요.
판넬 한번 비춰주시면 여기 가리키는 게 여기 있어요.
깜찍하죠.
깜찍한 것으로 저희가.
깜찍한데 끔찍한 걸로 가르키는데.
전체 조직이 드러나지 않게끔 한두 명, 4, 5명 세포모임만 한다.
윗선은 내 자신의 지휘성원 말고는 만날 수 없다.
김일성 추종사상을 타 지하당보다 2, 3배 강력히 교육시킨다.
맞습니까?
[인터뷰]
민혁당, 특히 민혁당 산하 RO 같은 경우는 당연히 비밀조직이니까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죠.
그리고 간첩, 그러니까 그러니까 소규모 간첩일 때는 단선연결이라고 해서 한 사람과 연결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 지하당 같은 경우 남한대의 지하당 같은 경우 규모가 작다 보니까 관리가 불가능하죠.
그래서 소조 운영을 했습니다.
두 명 또는 세 명.
적은 데는 1:1 소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대여섯 명 소조도 있습니다.
어쨌든 기본단위는 소조로 운영했고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소조원이거나 자기 책임자가 아니면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보면 민혁당이 다른 조직에 비해서 특히 강조한 게 주체의 혁명관. 혁명관의 핵심내용은 주체의 수령관입니다.
그러니까 수령과 조직에 대한 충실성을 대단히 강조한 조직이 민혁당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제 기억에 제가 RO교육팀장을 하면서 북한에서 내려온 세기와 더불어라는 책이 미처 나오기 전에 그걸 타이핑해서 제본해서 각 대학에 내려보낸다거나 아니면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이라는 조선의 우상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복제해서 각 대학에 내려보내서 교육시킨다거나 이런 교육을 특히 많이 한 곳이 민혁당 RO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위장명칭도 사용하고 그랬다고 그러던데.
[인터뷰]
그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앵커]
그러면 예를 들면 이 대표님은 뭐라고 부르셨어요?
[인터뷰]
저희들은 그냥 조직의 명칭 자체를 거의 말하지 않는, 그러니까 처음에 결성했을 때 저희 RO의 이름은 반미구국 청년학생동맹이었는데 처음 에 가입했을 때 그 이름 한번 딱 듣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말 안 했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죠.
[앵커]
이름은 압니까, 조직원들끼리?
[인터뷰]
RO에 가입한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어느 조직인지는 알았죠.
[앵커]
이름도, 실명도 알고요?
[인터뷰]
실명은 전혀 알 수 없고 저는 당시에 이정훈이라는 가명으로 활동을 했었습니다.
[앵커]
선생님, 이런 것들도 다 내려오셔서 교육하십니까, VO, 씨 뿌릴 때?
[인터뷰]
기본적인 교육은 다 시킵니다.
[앵커]
기본적인 게 뭐예요?
[인터뷰]
가명 쓰는 것은 여기서 알아서 하는 것이고요.
저희가 교육시키는 건 교육 조직을 만들 때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라.
예를 들면 아까 우리 이 대표님 말씀하신 것처럼 아랫사람들, 밑에 선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책임자 외에는 다음 단계, 두 단계 위에 있는 라인에 대해서는 절대로 모르게 해라. 그런 교육들을.
그게 실무교육인데 그런 교육들을 확실하게 시킵니다.
[앵커]
그런데 남파되실 때 어떤 사람을 찍으면 된다라는 건 북한에서 딱 마음을 먹고 내려오시는 거 아니에요?
[인터뷰]
여기에 남파될 때 포섭대상인데요.
말하자면 아까 VO의 책임자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저희가 봤을 때는 포섭대상인데 그 포섭대상들은 북한에서 확실하게 확정해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확정하는 과정은 구체적으로 저희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학생운동하고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면서 그 과정에 구속도 되고 하여튼 이름도 날리고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북한공작부서에서 그런 사람들 속에서 뽑아내는 것이죠.
뽑아내서 나름대로 아마검증을 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다음에 저희가 나올 때는 확실하게 찍어줍니다.
누구누구누구 나가서 포섭을 해라, 그런데 그렇게만 하는 것이 아니고요.
그 사람과 관련된 일체의 자료, 그러니까 개인파일을 다 갖댜줍니다.
[앵커]
어릴 때 부터 쭉 어떻게 자랐는지.
[인터뷰]
그러니까 그 당사자가 어릴 때부터 자료가 있으면 좋고 학생운동할 때 부터 자료가 있으면 어쩔없고.
하여튼 그 사람과 관련된 것은 일체 모든 것을 다 가져다 줍니다.
어떤 사람은 한 페이지짜리도 있습니다, 자료가 없는 사람은.
그리고 어떤 분은 제가 실제로 파악을 했던 분은 거짓말 안 보태고 이만큼 사이즈의.
그리고 어떤 사람이냐 하면 작가.
[앵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많고.
A4용지 한 장 짜리 사람도 있고.
[인터뷰]
아주 굉장히 극과 극입니다.
[앵커]
A4짜리 한 장짜리는 단순하게 인생을 사신 모양이죠.
그래서 내려와 그런다.
그런데 제가 우리 이 대표님께 여쭤볼 게 실제로 민혁당 RO조직에 몸을 담으셨을 때 김영환 씨도 나중에 알았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하고 뭔가 연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민혁당이?
[인터뷰]
사실은 실제로 연계되어 있느냐와 그 관계 없이 저희들은 조선노동당을 사실상 혁명전위로 인정했고 그 밑에서 대남사업을 하는 구국의 소리방송과 한국민족민주전선, 모두가 우리 전위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연결이 됐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저희도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앵커]
그러니까 끝난 다음에 사건이 다 드러난 다음 에 아셨다.
그렇죠?
[인터뷰]
네.
[앵커]
이건 그냥 여쭤보는데 그런데 왜 마음 바뀌셨어요, 이 대표님은?
[인터뷰]
사실 저뿐만 아니라 당시 민혁당 활동했던 핵심세력들도 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난을 보면서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됩니다.
그전에는 책으로 배웠죠.
북한 사회는 자주적이고 그다음에 지상낙원이라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잘 건설한 나라라는 식으로 배웠지 그 실체는 제가 생각하기에 잘 몰랐던 듯합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에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현실을 보면서 실상을 눈으로 봐버린 거죠.
그러면서 민혁당 지도부도 당을 해산하고 혁명을 포기했고 저도 그밑에 산하 RO원이니까요.
말단 조직원이니까요.
당연히 저도 혁명을 더 하고 싶어도 조직이 없어서 할 수 없었고 저도 선배님들의 생각과 똑같이 이것은 진보의 길이 아니구나, 오히려 남한의 민주화 운동보다 북한 민주화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죠.
[앵커]
김 선생님, 이게 딱 왔을 때 접촉하신 분들의 주체사상이나 이런 것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던가요?
[인터뷰]
사실 저희가 접촉했던 분들하고 그 주체사상에 대한 부분은 얘기는 안 해 봤습니다. 안 해 봤는데.
[앵커]
그러면 무슨 얘기하세요?
어떻게 잘 안다, 이런 얘기만 하나요?
[인터뷰]
그런 얘기죠.
주로 그런 얘기, 일반적인 얘기하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저희가 포섭만 하는 것이 아니고 포섭해서 그 사람들이 여기서 자생적으로, 자립적으로 활동을 하려면 북한 공작지도부하고 연결되어야 합니다.
통신연락이 돼야 하니까 저희는 제일 집중하는 것이 통신연락체계 구축해 주는 일입니다.
[앵커]
통신연락체계.
[인터뷰]
그러니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무전기를 사용했는데 그 무전기를 작동하는 방법, 그다음에 전문을 작성하는 방법, 그다음에 북한에서 지령 나오면 그것을 받아서 해독하는 방법, 해문하는 방법 이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교육시키고 그다음에 아까도 얘기했지만 지하당조직을 어떻게 만들어서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 그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앵커]
보통 교육하는데 얼마나 걸리세요, 지하당 조직까지?
[인터뷰]
그런데 보통 학생운동하는 분들이 다 머리가 좋은 분들이라 금방 금방 알아먹습니다.
그렇게 크게 시간 걸리는 것은 없습니다.
[앵커]
이 대표님이 운동하실 때는 통신연락체계가 무전기는 아니었을 것 아닙니까?
[인터뷰]
북한과 무전을 가지고 통신을 할 정도면 그 지하당의 최고 책임자와 연락책임자 정도일 겁니다.
저희들 같은 경우 RO원, 특히 일반 당원들도 직접 북한과 연락할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앵커]
물론 그렇죠.
그런데 조직원들끼리 연락은.
[인터뷰]
조직원들끼리는 연락이 아니라 직접 만나는 것이죠. 직접 만나서 회의를 하는 방식으로 저희들은 회의를 하는 방식으로 합니까?
[앵커]
회의를 하는 방식으로.
그런데 요새는 여러 가지 은어도 쓰고 PC방 사용해서 이메일로 하고 그러는 모양이죠?
북한도 이메일을 가지고 있는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무래도 시대가 많이 변했으니까.
[인터뷰]
9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무전기를 가지고 활용했는데 90년대 후반 말부터 인터넷이 대량적으로 보급이 되면서 북한도 인터넷을 통해서, 사이버를 통한 연락을 아주 중시를 하게 되고요.
실제로 민혁당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때는 제가 한참 정신없을 때라 잘 모르겠는데 일심회 사건이라든가 왕재산 간첩단 사건 때 보면 이메일을 통해서 다 주고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메일을 통해서 주고 받을 때 그냥 신문기사처럼 이메일을 열면 나옵니다.
나오면 거기에다 암호 프로그램을 작동을 시키면 그것이 그대로 한글 프로그램으로 글자로 나오는 거죠.
[앵커]
그러면 교육시킬 필요가 없고 그냥 프로그램만 주면 되겠네요?
[인터뷰]
그런 경우는 굉장히 쉽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요새도 이렇게 김 선생님처럼 직파된 공작원이 지하당 조직을 만들려고 시도를 할 거라고 보십니까?
[인터뷰]
제가 봤을 때는 많지는 않겠지만 그때처럼 저희가 90년대 초반 그때는 아주 상당히 많이 나왔습니다.
[인터뷰]
우르르 나온?
[인터뷰]
그때는 저희 세대가 80년대 중반부터 해서 북한 출신들로 공작원들을 선발을 했거든요.
그래 가지고 대량적으로 양성해 놨었는데 사실은 88년도에 올림픽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한국사회가 민주화가 되면서 활동할 수 있는 어떤 환경, 여건이 상당히 좋아집니다.
그러니까 그때 양성해 놨던 사람들을 그냥 한번씩 다 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어떤 사람들은 두 번씩 왔다 나간 사람도 있고요.
[앵커]
김 선생님도 두 번 나오셨어요?
[인터뷰]
저는 90년대에 나왔다 95년도에 나왔는데 저도 두 번 나온 건데 제가 두 번 나오기 전에 제가 알고 있건대는 두, 세 명 정도가 두 번씩 나왔다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은 영웅 칭호를 두 번 받았거든요.
[앵커]
한번 갔다오면 영웅칭호 주는 군요.
[인터뷰]
그건 아닌데 어쨌든 와서 임무수행을 완벽하게 했기 때문에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았고 그중에 한 사람은 공작에 있습니다.
있는데 그때는 많이 나왔는데 그게 95년, 96년,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에 경제난도 닥치고 그리고 특히 우리 한국에서 운동권에 있든, 말하자면 그렇게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 다 전향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여건이 안 좋아집니다.
그러면서 숫자나 비율은 상당히 줄어들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대신에 해외를 통해서 우회침투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해외에 가서 국적세탁을 해서 우회침투, 직접 들어오는 건 위험하니까요.
[앵커]
교민 비슷한 이런 타이틀을 가지고 들어오는 거죠?
[인터뷰]
그러니까 필린핀 사람으로 국적세탁해서 여권 갖고 들어오고 그다음에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마는 단국대 교수 깐수.
[앵커]
깐수 씨, 그 사람은 다 외국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는데 잠꼬대도 아랍어로 했대요.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분도.
[인터뷰]
그 정도로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고 완벽을 기합니다, 사실은.
[앵커]
이 대표님, 지금도 지하당 조직이 있다고 보세요?
[인터뷰]
사실 일단 지금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이석기 RO그룹이라는 것이 제가 알고 있기로는 그당시 민혁당 18개 RO 가운데 이석기 의원이 관리했던 RO가 4개 정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RO를 지금 해산하지 않고 현재까지 유지하면서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이죠.
그런데 이석기 RO 말고도 또 다른 형태의 지하조직이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다만 문제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북한의 대남공작이 생각보다 많이 약화됐고 또 남한내 사람들의 분위기, 특히 학생운동이 급격히 몰랐했기 때문에 그 규모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봅니다.
[앵커]
대남공작이 약화됐다고 보시는군요.
[인터뷰]
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앵커]
이유가 뭐죠?
[인터뷰]
북한 대남공작 자체가 과거에 비해서 많이 줄어든 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 개인적으로 판단되더라고요.
왜냐하면 유능한 공작원을 육성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이 과거에 비해서 많이 줄어 든듯하고 일단 남한에 와서 성과도 옛날 같지 않기 때문에 최근에는 굉장히 고도로 훈련된 남파공작원보다 탈북자라든가 몇몇 사람들을 단순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식으로 공작하고 있는 정도로 많이 좀 약화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앵커]
동의하세요, 대남...
[인터뷰]
동의를 합니다.
그 부분은 일부는 동의하고 그렇지만 아직도 과거에 뿌려놓은 씨앗들, 종자들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앵커]
그니까 그건 과거 지하당 조직을 말씀하시는 거죠?
[인터뷰]
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아직도 활동한다.
이게 왜 그러냐면 상대적으로 이 대표님 말씀하신 것처럼 약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경제난도 그게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저희가 95년도에 나오는데 저희는 피부로 느꼈거든요.
경제가 상당히 악화됐다는 걸, 훈련을 하려면 해상에 가서 훈련을 해야 하는데 평양에 바다가 없지 않습니까?
이동을 해야 하거든, 차를 타고. 기름이 없어서 못 갑니다.
그 정도로 훈련량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래서 고도의 훈련된 이런 인원들을 유지를 하려고 하면 그만큼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그게 한 사람 유지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 그걸 다 유지할 수 없죠.
그래서 사실은 북한이 제가 있을 때 90년대 초반에 대남공작부서를 제가 있던 부서를 한 반으로 줄였습니다.
반으로 줄였고 그 이후에 제가 95년도에 나온 이후에는 제가 알 수가 없는데 나중에 온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상당히 훈련량이라든가 강도가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더라고요.
[인터뷰]
그런데 이런 문제는 있다고 봅니다.
[앵커]
간단하게. 시간관계상.
[인터뷰]
지하조직 자체, 모체는 예전에 비해서 예를 들면 민혁당 같은 경우 3500 규모가 2, 300으로 줄었단 말이죠.
그런데 영향력은 커졌어요.
그게 뭐냐하면 과거 386세대라고 해서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 가운데 이른바 주사파 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고 이들이 지금 오늘날 3, 40대로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가깝다는 거죠.
이런 것이 아이러니죠.
[앵커]
그렇죠, 알겠습니다.
두 분이랑 얘기하다 보니까 시간이 금방 지나갔어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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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여를 끌어온 헌정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심판 사건 절차가 어제 최후 변론을 끝으로 마무리됐죠.
핵심 쟁점은 북한과의 연결성이었습니다.
법무부는 1992년 설립된 지하당인 민혁당 출신 급진 세력이 민노당을 장악했고, 민노당의 후신이 통합진보당이라고 주장합니다.
통진당의 인적구성 핵심에도 여전히 민혁당의 잔존세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겁니다.
반면 통진당은 자신들이 민혁당의 잔존 세력에 조종된다는 말은 터무니없다며 북한과의 연계성을 부인합니다.
오늘 이슈대담에서는 한국내에서 북한과 연계된 지하당이어떻게 운영됐는지 집중 분석해보겠습니다.
[앵커]
앞서도 말씀을 들으셨습니다마는 어제 통진당 해산심판의 최후변론이 있었는데 핵심은 통진당과 북한이 과연 연결이 있는가, 연결이 직간접적인 연결이 되고 있는가 이런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 고리 중의 하나가 바로 대한민국 법무부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지하당, 그 지하당이라는 건 민혁당을 지칭하는 건데요.
이 민혁당을 과연 어떻게 바라볼 수 있고 그래서 민혁당 문제가 지금 새롭게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존재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로 이 민혁당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집중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두 분 나와계신데요.
주사파 출신으로 과거 민혁당 비밀조직 RO의 조직원이셨죠.
자유조선방송의 이광백 대표, 그리고 민혁당 등 남한내 지하당을 구축하고 관리했던 북한 대외연락부 소속 남파공작원이었죠.
김동식 씨, 두 분 나와계십니다.
참고적으로 김동식 씨는 선글라스를 착용하신 점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오늘 이광백 대표께서 나왔는데 제가 RO 조직원이자 주사파 출신 민혁당 출신 RO 조직원이라고 이렇게 소개했는데 맞습니까?
[인터뷰]
당시에 민혁당은 18개의 RO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앵커]
18개의 RO? RO덩어리네요.
[인터뷰]
그 중에 한 개의 RO의 조직을 맡았습니다.
[앵커]
그게 지하당마다 다 있는 거죠, RO라는 게.
[인터뷰]
사실상 조직체계로 보면 있어야 맞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주사파 혁명조직은 당파로 밑에 준당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혁명조직, 그러니까 이른바 RO들을 준당조직으로 다 거느리고 있었죠.
[앵커]
준당조직, 참 일반 시청자 여러분들은 이름도 생소하실 텐데 우리 김동식 선생님은 과거 두 차례 남파경험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예전에 225국에 소속이 되어 있었다, 맞죠?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그런데 여기가 대외연락부라고 불리는 곳인가요?
[인터뷰]
기존에는 연락부였다가 그다음에 사회문화부로 명칭을 바꿨다가 또다시 대외연락부로 바꿨다가 나중에는 225국으로 바꿨습니다.
[앵커]
그런데 여기서는 대남 공작하는 데죠?
[인터뷰]
대남공작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대외연락부에서 하는 공작은 대한민국이나 또는 해외 공작원들을 파견해서 현지에서 현지인들을 포섭해서 그 사람들로 대한민국 내 지하당 간첩망을 구축하는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 225국입니다.
[앵커]
지하당을 구축한다.
그러면 민혁당도 225국 관리하에 있었나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러면 우리 김 선생님도 민혁당에 대해서 좀 많이 아시겠네요?
[인터뷰]
제가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은 저도 민혁당에 대해서는 한국에 와서 알게 됐습니다.
[앵커]
남파되셨을 때는 그러면 다른 조직을 만들려고 오신 거군요?
[인터뷰]
제가 했던 건 과거에 중부지역당이라고 하는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이라고 하는.
[앵커]
중부지역당 사건이 있었죠?
[인터뷰]
92년도에 있었는데 그 조직을 제가 만들었었죠.
[앵커]
그렇군요.
중부지역당.
하여간 지역당들이 굉장히 많았던 건 사실입니다.
저희가 역대 지하당 사건, 한번 그림으로 만들어 봤는데요.
화면 좀 주시죠.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죠.
중부지역당 제일 먼저 나오네요.
김 선생님 말씀하셨던 것 구국전위, 민혁당. 민혁당이 민족민주혁명당의 약자죠.
일심회, 왕재산 간첩단.
여기까지 쫙 역대 지하당인데 우리는 민혁당 관계자가 나오셨고 아무래도 중부지역당 관련해서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는 남파되셨던 분들 두 분 나와계시니까.
민혁당 당원이 몇 명인지 아세요?
[인터뷰]
민혁당 당원은 100명이었습니다.
[앵커]
그거 알 수가 있네요?
점조직이라서 몰랐을 줄 알았는데.
[인터뷰]
당시에는 누구든지 몰랐죠.
97년도에 민혁당이해산되고 98, 99년도에 민혁당 사건이 나면서 대부분 실체를 저희들도 그때 알았죠.
아, 규모가 이런 정도였구나.
[앵커]
그러시구나.
그러니까 민혁당에 계실 때는 몰랐는데 잡히고 문제가 수사가 끝나고 나니까 이 정도 규모구나.
[인터뷰]
심지어는 민혁당의 총책임자가 강철 김영환이라는 사실도 저도 나중에 알게 된 것이죠.
사건의 실체가.
[앵커]
그것도 모르셨어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그러면 뭘 아셨어요?
[인터뷰]
제가 아는 것은 김정일 장군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혁명한다는 거였죠.
[앵커]
그거 하나만.
그런데 이게 점조직으로 하다 보면 실제적으로 우리 이 선생님 밑에 일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선 말고 다른 선은 모르는 거죠?
[인터뷰]
그렇죠.
원칙적으로 몰라야 맞습니다.
지하당조직 운영 원칙 때문에 자기 소조 또는 자기 지도 책임선 외에는 몰라야지 맞죠.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들하고 학생운동을 9년, 10년씩을 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원칙은 몰라야 하지만 실상은 또 다 압니다.
자기 학교에 누가 누가 RO의 조직인지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앵커]
이 대표님 지금 화면에 그림 나오고 있죠.
RO, VO 맞습니까?
[인터뷰]
민혁당 네 단계로 조직을 구성해서 운영을 했죠.
제일 위에 있는 것으로 보면 민혁당입니다.
[앵커]
저게 김영환 씨라든지 저기에 들어가 있는 거죠?
[인터뷰]
그렇죠.
저 당원은 100명이었고요.
그 밑의 RO는 준당조직입니다.
[앵커]
이 대표님이.
[인터뷰]
그 준당조직 RO는 18개 정도.
그밑에 RMO라고 해서 혁명대중조직인데 저건 다른 게 아니고 대중조직 가운데 학생회라든가 농민회라든가 노동조합 같은 전교조 같은 대중조직 가운데 열성적인 혁명분자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따로 관리합니다.
그게 바로 이른바 외곽조직이라 부르는데 저걸 활동가 조직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은어로 RMO라고 불렀어요.
숫자는 대략 3000명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관리하는 광범위한대중단체들이 있는 거죠.
전교조, 농민회, 학생회 등등 수많은 대중단체가 그 밑에 있는 것이죠.
[앵커]
이 그림 잠깐 놔둬보십시오.
제가 김 선생님께 여쭤볼게요.
김 선생님 오셔서 지하당 조직 만드실 때 그러면 무엇을 만드시는 거예요?
VO를 만드신 거예요?
[인터뷰]
그렇죠.
VO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요.
가장 중요한 건 VO를 핵심적으로 끌고 갈 총책을 저희가.
[앵커]
VO 위에 있는?
[인터뷰]
그러니까 VO를 총괄하는 책임자, 김영환 씨가 민혁당 총책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김영환 씨가 와서 포섭을 하는데 그때 저하고 같이 공작원을 했던 윤택림이라고 하는 그분이 와서 김영환 씨를 포섭해서 김영환 씨한테 당을 만들어라라고 지령을, 지시를 주니까 김영환 씨가 주축이 돼서 만들었던 것이 VO죠.
[앵커]
그게 VO군요.
그러면 중부지역당 사건에 관련하셨다고 그랬는데 그때도 그러면 김 선생님 오셔서 그 VO를 만들 사람을 포섭을 하신 거군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앵커]
그러면 거기서 알아서 조직이 늘어나는 모양이에요.
[인터뷰]
네, 그렇습니다.
[앵커]
그러면 중부지역당이든 뭐든 간에 직파되신 것 아니에요, 북에서.
그러면 최소한도 어느 규모가 직파된 사람들이 알 것 아닙니까?
[인터뷰]
그게 아직까지 제가 아마 한국에 와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오늘 처음 얘기합니다마는 저희가 여기에 남파돼서 VO를 만들 사람을 포섭을 하거든요.
포섭을 하고 북한에 복귀를 하게 되면 그 결과에 대해서 전부 다 서면보고를 합니다.
서면보고를 한 다음에 그다음에 저희도 손을 뗍니다, 거기서.
그래서 VO나 그 밑의 RO나 이런 것들이 도대체 몇개가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조직이 되는지 그 부분은 저희가 모릅니다.
[앵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한다면 씨 뿌리는 사람이 따로 있고 그 씨에서 나무 키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 이 말씀이시죠?
[인터뷰]
나무 키우는 사람 따로 있고 관리하는 사람 따로 있고.
[앵커]
관리하는 사람 따로 있고.
그렇게 관리하는구나, 북한이.
[인터뷰]
그래서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가 됩니다.
저희도 역시 그때 중부지역당 사건이 92년도에 터졌는데 저는 북한에 있을 때 노동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 사건이 터진 것은.
그런데 노동신문을 보고 거기에 저희가 모르는 이름들이 막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그냥 몰랐죠.
몰랐는데 나중에 연락부 부부장, 차관인데 그런 분들 들어와서 이 사람은 누구냐? 그랬더니 그때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 사람이 밑에 있었던 사람이다.
그렇게 얘기를 해서 그때 알았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남한에 오셔서 딱 씨만 뿌리고 올라갔는데 그다음부터 나무가 어떻게 자랐는지도 몰랐다는 거죠.
[인터뷰]
그건 저희가 알 수 없습니다.
[앵커]
그렇구나. 그런데 그게 또 조직도 RO강령이 있는 모양이에요.
저희가 판넬로 준비했는데요.
판넬 한번 비춰주시면 여기 가리키는 게 여기 있어요.
깜찍하죠.
깜찍한 것으로 저희가.
깜찍한데 끔찍한 걸로 가르키는데.
전체 조직이 드러나지 않게끔 한두 명, 4, 5명 세포모임만 한다.
윗선은 내 자신의 지휘성원 말고는 만날 수 없다.
김일성 추종사상을 타 지하당보다 2, 3배 강력히 교육시킨다.
맞습니까?
[인터뷰]
민혁당, 특히 민혁당 산하 RO 같은 경우는 당연히 비밀조직이니까 자신을 드러내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죠.
그리고 간첩, 그러니까 그러니까 소규모 간첩일 때는 단선연결이라고 해서 한 사람과 연결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 지하당 같은 경우 남한대의 지하당 같은 경우 규모가 작다 보니까 관리가 불가능하죠.
그래서 소조 운영을 했습니다.
두 명 또는 세 명.
적은 데는 1:1 소조도 있지만 많은 경우는 대여섯 명 소조도 있습니다.
어쨌든 기본단위는 소조로 운영했고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소조원이거나 자기 책임자가 아니면 모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보면 민혁당이 다른 조직에 비해서 특히 강조한 게 주체의 혁명관. 혁명관의 핵심내용은 주체의 수령관입니다.
그러니까 수령과 조직에 대한 충실성을 대단히 강조한 조직이 민혁당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제 기억에 제가 RO교육팀장을 하면서 북한에서 내려온 세기와 더불어라는 책이 미처 나오기 전에 그걸 타이핑해서 제본해서 각 대학에 내려보낸다거나 아니면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이라는 조선의 우상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를 복제해서 각 대학에 내려보내서 교육시킨다거나 이런 교육을 특히 많이 한 곳이 민혁당 RO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위장명칭도 사용하고 그랬다고 그러던데.
[인터뷰]
그건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앵커]
그러면 예를 들면 이 대표님은 뭐라고 부르셨어요?
[인터뷰]
저희들은 그냥 조직의 명칭 자체를 거의 말하지 않는, 그러니까 처음에 결성했을 때 저희 RO의 이름은 반미구국 청년학생동맹이었는데 처음 에 가입했을 때 그 이름 한번 딱 듣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말 안 했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죠.
[앵커]
이름은 압니까, 조직원들끼리?
[인터뷰]
RO에 가입한 사람들은 당연히 내가 어느 조직인지는 알았죠.
[앵커]
이름도, 실명도 알고요?
[인터뷰]
실명은 전혀 알 수 없고 저는 당시에 이정훈이라는 가명으로 활동을 했었습니다.
[앵커]
선생님, 이런 것들도 다 내려오셔서 교육하십니까, VO, 씨 뿌릴 때?
[인터뷰]
기본적인 교육은 다 시킵니다.
[앵커]
기본적인 게 뭐예요?
[인터뷰]
가명 쓰는 것은 여기서 알아서 하는 것이고요.
저희가 교육시키는 건 교육 조직을 만들 때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라.
예를 들면 아까 우리 이 대표님 말씀하신 것처럼 아랫사람들, 밑에 선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책임자 외에는 다음 단계, 두 단계 위에 있는 라인에 대해서는 절대로 모르게 해라. 그런 교육들을.
그게 실무교육인데 그런 교육들을 확실하게 시킵니다.
[앵커]
그런데 남파되실 때 어떤 사람을 찍으면 된다라는 건 북한에서 딱 마음을 먹고 내려오시는 거 아니에요?
[인터뷰]
여기에 남파될 때 포섭대상인데요.
말하자면 아까 VO의 책임자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저희가 봤을 때는 포섭대상인데 그 포섭대상들은 북한에서 확실하게 확정해서 나옵니다.
그러니까 확정하는 과정은 구체적으로 저희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학생운동하고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면서 그 과정에 구속도 되고 하여튼 이름도 날리고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북한공작부서에서 그런 사람들 속에서 뽑아내는 것이죠.
뽑아내서 나름대로 아마검증을 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다음에 저희가 나올 때는 확실하게 찍어줍니다.
누구누구누구 나가서 포섭을 해라, 그런데 그렇게만 하는 것이 아니고요.
그 사람과 관련된 일체의 자료, 그러니까 개인파일을 다 갖댜줍니다.
[앵커]
어릴 때 부터 쭉 어떻게 자랐는지.
[인터뷰]
그러니까 그 당사자가 어릴 때부터 자료가 있으면 좋고 학생운동할 때 부터 자료가 있으면 어쩔없고.
하여튼 그 사람과 관련된 것은 일체 모든 것을 다 가져다 줍니다.
어떤 사람은 한 페이지짜리도 있습니다, 자료가 없는 사람은.
그리고 어떤 분은 제가 실제로 파악을 했던 분은 거짓말 안 보태고 이만큼 사이즈의.
그리고 어떤 사람이냐 하면 작가.
[앵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많고.
A4용지 한 장 짜리 사람도 있고.
[인터뷰]
아주 굉장히 극과 극입니다.
[앵커]
A4짜리 한 장짜리는 단순하게 인생을 사신 모양이죠.
그래서 내려와 그런다.
그런데 제가 우리 이 대표님께 여쭤볼 게 실제로 민혁당 RO조직에 몸을 담으셨을 때 김영환 씨도 나중에 알았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하고 뭔가 연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민혁당이?
[인터뷰]
사실은 실제로 연계되어 있느냐와 그 관계 없이 저희들은 조선노동당을 사실상 혁명전위로 인정했고 그 밑에서 대남사업을 하는 구국의 소리방송과 한국민족민주전선, 모두가 우리 전위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연결이 됐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저희도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앵커]
그러니까 끝난 다음에 사건이 다 드러난 다음 에 아셨다.
그렇죠?
[인터뷰]
네.
[앵커]
이건 그냥 여쭤보는데 그런데 왜 마음 바뀌셨어요, 이 대표님은?
[인터뷰]
사실 저뿐만 아니라 당시 민혁당 활동했던 핵심세력들도 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난을 보면서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됩니다.
그전에는 책으로 배웠죠.
북한 사회는 자주적이고 그다음에 지상낙원이라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잘 건설한 나라라는 식으로 배웠지 그 실체는 제가 생각하기에 잘 몰랐던 듯합니다.
그런데 90년대 중반에 수백만명이 굶어죽는 현실을 보면서 실상을 눈으로 봐버린 거죠.
그러면서 민혁당 지도부도 당을 해산하고 혁명을 포기했고 저도 그밑에 산하 RO원이니까요.
말단 조직원이니까요.
당연히 저도 혁명을 더 하고 싶어도 조직이 없어서 할 수 없었고 저도 선배님들의 생각과 똑같이 이것은 진보의 길이 아니구나, 오히려 남한의 민주화 운동보다 북한 민주화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이죠.
[앵커]
김 선생님, 이게 딱 왔을 때 접촉하신 분들의 주체사상이나 이런 것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던가요?
[인터뷰]
사실 저희가 접촉했던 분들하고 그 주체사상에 대한 부분은 얘기는 안 해 봤습니다. 안 해 봤는데.
[앵커]
그러면 무슨 얘기하세요?
어떻게 잘 안다, 이런 얘기만 하나요?
[인터뷰]
그런 얘기죠.
주로 그런 얘기, 일반적인 얘기하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저희가 포섭만 하는 것이 아니고 포섭해서 그 사람들이 여기서 자생적으로, 자립적으로 활동을 하려면 북한 공작지도부하고 연결되어야 합니다.
통신연락이 돼야 하니까 저희는 제일 집중하는 것이 통신연락체계 구축해 주는 일입니다.
[앵커]
통신연락체계.
[인터뷰]
그러니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무전기를 사용했는데 그 무전기를 작동하는 방법, 그다음에 전문을 작성하는 방법, 그다음에 북한에서 지령 나오면 그것을 받아서 해독하는 방법, 해문하는 방법 이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교육시키고 그다음에 아까도 얘기했지만 지하당조직을 어떻게 만들어서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 그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교육을 했습니다.
[앵커]
보통 교육하는데 얼마나 걸리세요, 지하당 조직까지?
[인터뷰]
그런데 보통 학생운동하는 분들이 다 머리가 좋은 분들이라 금방 금방 알아먹습니다.
그렇게 크게 시간 걸리는 것은 없습니다.
[앵커]
이 대표님이 운동하실 때는 통신연락체계가 무전기는 아니었을 것 아닙니까?
[인터뷰]
북한과 무전을 가지고 통신을 할 정도면 그 지하당의 최고 책임자와 연락책임자 정도일 겁니다.
저희들 같은 경우 RO원, 특히 일반 당원들도 직접 북한과 연락할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앵커]
물론 그렇죠.
그런데 조직원들끼리 연락은.
[인터뷰]
조직원들끼리는 연락이 아니라 직접 만나는 것이죠. 직접 만나서 회의를 하는 방식으로 저희들은 회의를 하는 방식으로 합니까?
[앵커]
회의를 하는 방식으로.
그런데 요새는 여러 가지 은어도 쓰고 PC방 사용해서 이메일로 하고 그러는 모양이죠?
북한도 이메일을 가지고 있는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아무래도 시대가 많이 변했으니까.
[인터뷰]
9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무전기를 가지고 활용했는데 90년대 후반 말부터 인터넷이 대량적으로 보급이 되면서 북한도 인터넷을 통해서, 사이버를 통한 연락을 아주 중시를 하게 되고요.
실제로 민혁당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때는 제가 한참 정신없을 때라 잘 모르겠는데 일심회 사건이라든가 왕재산 간첩단 사건 때 보면 이메일을 통해서 다 주고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메일을 통해서 주고 받을 때 그냥 신문기사처럼 이메일을 열면 나옵니다.
나오면 거기에다 암호 프로그램을 작동을 시키면 그것이 그대로 한글 프로그램으로 글자로 나오는 거죠.
[앵커]
그러면 교육시킬 필요가 없고 그냥 프로그램만 주면 되겠네요?
[인터뷰]
그런 경우는 굉장히 쉽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요새도 이렇게 김 선생님처럼 직파된 공작원이 지하당 조직을 만들려고 시도를 할 거라고 보십니까?
[인터뷰]
제가 봤을 때는 많지는 않겠지만 그때처럼 저희가 90년대 초반 그때는 아주 상당히 많이 나왔습니다.
[인터뷰]
우르르 나온?
[인터뷰]
그때는 저희 세대가 80년대 중반부터 해서 북한 출신들로 공작원들을 선발을 했거든요.
그래 가지고 대량적으로 양성해 놨었는데 사실은 88년도에 올림픽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한국사회가 민주화가 되면서 활동할 수 있는 어떤 환경, 여건이 상당히 좋아집니다.
그러니까 그때 양성해 놨던 사람들을 그냥 한번씩 다 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어떤 사람들은 두 번씩 왔다 나간 사람도 있고요.
[앵커]
김 선생님도 두 번 나오셨어요?
[인터뷰]
저는 90년대에 나왔다 95년도에 나왔는데 저도 두 번 나온 건데 제가 두 번 나오기 전에 제가 알고 있건대는 두, 세 명 정도가 두 번씩 나왔다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은 영웅 칭호를 두 번 받았거든요.
[앵커]
한번 갔다오면 영웅칭호 주는 군요.
[인터뷰]
그건 아닌데 어쨌든 와서 임무수행을 완벽하게 했기 때문에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았고 그중에 한 사람은 공작에 있습니다.
있는데 그때는 많이 나왔는데 그게 95년, 96년,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에 경제난도 닥치고 그리고 특히 우리 한국에서 운동권에 있든, 말하자면 그렇게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 다 전향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여건이 안 좋아집니다.
그러면서 숫자나 비율은 상당히 줄어들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대신에 해외를 통해서 우회침투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해외에 가서 국적세탁을 해서 우회침투, 직접 들어오는 건 위험하니까요.
[앵커]
교민 비슷한 이런 타이틀을 가지고 들어오는 거죠?
[인터뷰]
그러니까 필린핀 사람으로 국적세탁해서 여권 갖고 들어오고 그다음에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마는 단국대 교수 깐수.
[앵커]
깐수 씨, 그 사람은 다 외국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하는데 잠꼬대도 아랍어로 했대요.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분도.
[인터뷰]
그 정도로 상당히 심혈을 기울이고 완벽을 기합니다, 사실은.
[앵커]
이 대표님, 지금도 지하당 조직이 있다고 보세요?
[인터뷰]
사실 일단 지금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이석기 RO그룹이라는 것이 제가 알고 있기로는 그당시 민혁당 18개 RO 가운데 이석기 의원이 관리했던 RO가 4개 정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RO를 지금 해산하지 않고 현재까지 유지하면서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이죠.
그런데 이석기 RO 말고도 또 다른 형태의 지하조직이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다만 문제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북한의 대남공작이 생각보다 많이 약화됐고 또 남한내 사람들의 분위기, 특히 학생운동이 급격히 몰랐했기 때문에 그 규모나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봅니다.
[앵커]
대남공작이 약화됐다고 보시는군요.
[인터뷰]
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앵커]
이유가 뭐죠?
[인터뷰]
북한 대남공작 자체가 과거에 비해서 많이 줄어든 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 개인적으로 판단되더라고요.
왜냐하면 유능한 공작원을 육성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이 과거에 비해서 많이 줄어 든듯하고 일단 남한에 와서 성과도 옛날 같지 않기 때문에 최근에는 굉장히 고도로 훈련된 남파공작원보다 탈북자라든가 몇몇 사람들을 단순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식으로 공작하고 있는 정도로 많이 좀 약화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앵커]
동의하세요, 대남...
[인터뷰]
동의를 합니다.
그 부분은 일부는 동의하고 그렇지만 아직도 과거에 뿌려놓은 씨앗들, 종자들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앵커]
그니까 그건 과거 지하당 조직을 말씀하시는 거죠?
[인터뷰]
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아직도 활동한다.
이게 왜 그러냐면 상대적으로 이 대표님 말씀하신 것처럼 약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경제난도 그게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저희가 95년도에 나오는데 저희는 피부로 느꼈거든요.
경제가 상당히 악화됐다는 걸, 훈련을 하려면 해상에 가서 훈련을 해야 하는데 평양에 바다가 없지 않습니까?
이동을 해야 하거든, 차를 타고. 기름이 없어서 못 갑니다.
그 정도로 훈련량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래서 고도의 훈련된 이런 인원들을 유지를 하려고 하면 그만큼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데 그게 한 사람 유지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데 그걸 다 유지할 수 없죠.
그래서 사실은 북한이 제가 있을 때 90년대 초반에 대남공작부서를 제가 있던 부서를 한 반으로 줄였습니다.
반으로 줄였고 그 이후에 제가 95년도에 나온 이후에는 제가 알 수가 없는데 나중에 온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상당히 훈련량이라든가 강도가 많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더라고요.
[인터뷰]
그런데 이런 문제는 있다고 봅니다.
[앵커]
간단하게. 시간관계상.
[인터뷰]
지하조직 자체, 모체는 예전에 비해서 예를 들면 민혁당 같은 경우 3500 규모가 2, 300으로 줄었단 말이죠.
그런데 영향력은 커졌어요.
그게 뭐냐하면 과거 386세대라고 해서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 가운데 이른바 주사파 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 많고 이들이 지금 오늘날 3, 40대로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가깝다는 거죠.
이런 것이 아이러니죠.
[앵커]
그렇죠, 알겠습니다.
두 분이랑 얘기하다 보니까 시간이 금방 지나갔어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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