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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회부의장이 대한민국에 국가의전서열이 9위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분들인데 누구신지 잘 모르시는 시청자 분들도 많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고, 그리고 우리 정치가 참 답답하고 꼬여있고 막혀 있는데 두 분께서는 좀 정치를 여야가 화합하고 두 분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좀 숨통을 트게 하고 싶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오늘 두 분을 모셨습니다.
다시 한 번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정갑윤 부의장님은 작사를, 트로트곡을 작사를 하셨다면서요, 최근에?
무슨 곡을 하신 겁니까?
[인터뷰]
울산에 가자라는 곡인데.
[앵커]
울산에 가자요?
[인터뷰]
제목이.
제가 원래 지난 해 하반기에저는 6.4지방선거를 대비해서 울산시장 나가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주변에서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그런 의미에서 울산에 가자라는 노래를 작사했으면 좋겠다고 작곡가를 한 분 만났어요.
그래서 그러다보니까 제가 작사를 하게 됐죠.
[앵커]
어떻게 되나요, 가사가?
[인터뷰]
간절곶에 꽃이 피면 울산에 가자.
신불산에 새가 울면 울산에 간다.
[앵커]
애향시군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저작권료도 들어오나요?
[인터뷰]
네, 저는 뭐 그냥 그러고 덮어뒀는데 아마 지난 10월, 11월 음원차트 100위 안에 들어갔나 봐요.
그러다보니까.
[앵커]
트로트 안에 100위 안에 들어갔다고요?
[인터뷰]
음악 저작권협회에서 저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앵커]
돈 찾아가라고요?
[인터뷰]
등록해야 된다고.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앵커]
그래서 좀 들어왔습니까?
입금됐습니까?
[인터뷰]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지난 금요일날 서명했으니까.
[앵커]
그래서 울산시장 그때 안 나가시고 국회부의장 되셨지 않습니까?
잘 된 겁니까, 결과적으로 어떻게 된 겁니까?
[인터뷰]
저는 원래 정치가를 하고 싶었으니까 좀 제가 바라는 길로 가게 됐으니까 잘 됐죠.
[앵커]
잘 하셨습니다.
이석현 부의장님은 국회에서 SNS의 제왕이시라면서요?
[인터뷰]
제왕이랄 것까지는 없고요.
트위터를 열심히 글 올리고 개인적 팔로어들이 언급을 하면 제가 또 맨션도 달아주고 열심히 합니다.
[앵커] 직접요, 시간을 투자해야 되잖아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시간 투자를 많이 하는데 그대신 타임라인에서 많은 정보도 얻고요.
그러다보니까 이제 SNS의 순위를 매기는 클라우트지수라고 있대요.
거기에서 상위권에 지금도 보면 문재인 의원님, 정청래 의원님, 심상정 의원님 등 같이 상위권에 많이 클라우트 지수가 있다고 합니다.
[앵커]
문재인, 정청래 이분들이SNS 라이벌이군요, 그러니까.
[인터뷰]
그분들이 저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합니다.
[앵커]
기억나는 거기에 올라왔었던 맨션이나 직접 쓰신 것 중에 기억나는 거나 그런 거 있으신가요?
[인터뷰]
가끔 제가 제 나름대로 국회에서 안 하던 말을 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그러면 호응이 뜨겁게 올라오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욕도 많이 먹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뭐하고 있는 거냐.
지난번 세월호 합의하기 전에 정국에서 지탄도 많이 듣는데 그걸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거르지 않고 있는 장점이 트위터에 있습니다.
[앵커]
저희가 오늘은 딱딱한 늘 했었던 그 쟁점토론보다는 좀 재미있는 얘기들, 국민들 잘 모르시는 것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그래도 이건 여쭤보고 넘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여야 정치 지금 말씀하신 대로 참 답답해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풀어야 된다고 두 분은 생각하십니까?
부의장님?
[인터뷰]
정치는 원래 시끄럽기 마련입니다.
정치판이 시끄럽고.
그러다보면 어느 시점에 가면 이번에 세월호 3법 통과되듯이 정말 국민들 많이 실망시키고, 뜸 많이 들였죠.
욕 다 들어먹고 난 뒤에 한 거지만 그러나 그래도 아주 적절한 시점에 마지막 골든타임에 통과시켰듯이 국민들이 보면 답답합니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들의 비난의 소리를 참고 인내하면서 또 여야 간에 서로 합의를 이뤄내야 되니까 그런 측면에서 참 노력 많이 하죠.
그러다보면 결국은 다 나라를 위한 길이고 국민을 위한 길이니까 여가 야가 따로 없다고 생각 안 합니다.
[앵커]
그래도 노력은 서로 한단 말이죠, 서로 길은 다르지만.
[인터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 정치인 욕하는데 바쁩니다.
특히 이석현 부의장님 있으시지만 우리가 무슨 일 했다, 그런 걸 신문에 내고 언론에 보도하고 그럴 상황은 아니니까 특히 부 자라는 게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잖아요.
이번에도 국회가 파행을 빚을 때 우리 이석현 부의장님이나 저나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쩌면 또 다른 원내대표라고 할까, 또 다른 당대표라고 할까, 그런 역할을 줄곧 해 왔죠.
우리 이석현 부의장님도야당이면서도 아주 국회 정상화를 위한 노력많이 하시죠.
[앵커]
두 분이 친하십니까?
두 분이?
[인터뷰]
둘이 자주 만나고 여야가 특히 갈등이 생겼을 때 서로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면대화를 많이 합니다.
또 정 부의장님이 대단히 마음이 열려있더라고요, 그래서 허심탄회하게 둘이 상의를 하니까 숨어있는 원내대표 역할까지 합니다.
저희들이 양당에서.
[앵커]
부의장이라는 게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
부의장 방은 어디에 있는 건지, 그런 것들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의장실 옆에 부의장실이 다 있죠?
평소에는 뭐 하십니까?
[인터뷰]
부의장실이 국회의장님 본관 3층에 정 부의장님하고 제 방이 나란히 있어요.
평소에 아시다시피 의장님 혼자 본회의 사회보려면 힘드니까 교대로 나눠서 사회를 보고 또 책임을 같이 집니다, 의장과.
책임을 나눠지는 자리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요.
또 하나는 어떤 면에서 우리가 정당정치하는 데 여당쪽에 우리 정부의장님, 야당쪽에 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상징하는 그런 자리로 여당 한 석, 야당 한 석, 이렇게 부의장을 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앵커]
저희가 국회의장의 의전을 봤더니 비서실장 1명, 비서관 10명이 있고 관용차가 있고, 경찰청에서 파견된 경호원이 2명 있고 의장실이 400평짜리 있고요.
급여경비가 1540만원 이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부의장들께서는 어떤 예우를 받으시는지는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못 찾아봤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부의장들의 예우는.
[인터뷰]
부의장실은 저는 부의장 아닐 때 보다 비서진이 말단 여직원까지 다 해서 7명이 늘어났더라고요.
그렇게 되어 있고 또 방은 한 100평 안 되고요.
부의장 방은.
100평 안 되고 그리고 이제 아까 차, 차 얘기했는데 차는 좋은 거 주대요.
제가 2. 5짜리인가 11년 타고 다녔었는데 이번에 부의장 됐더니 바로 에쿠스를 1대 주어서 잘 타고 다닙니다.
[앵커]
관용차죠?
[인터뷰]
반납하는 겁니다.
[앵커]
부의장님으로서 답답한 거나 어떨 때는 의장, 지금은 직권상정을 잘 안 하지만 과거에는 의장 대산 부의장이 궂은 일도 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난처할 때가 없었습니까?
[인터뷰]
원론적인 것은 부의장은 사실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부 자는 있으나 마나, 의장을 도와주는 보필하는 그런 역할인데 국회법 12조에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의장이 유보시에는 직무대행을 하는 쪽으로.
그렇게 됐고 또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국민들 머릿속에 보면 옛날에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되기 전에 어떤 정부와 여당이 반드시 통과시켜야 될 법안.
야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시켜야 될 법안.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국회의장이 궂은 일을 안 하려고 하시죠.
그러다 보니 여당 부의장이 소위 총대를 메게 되는 그런 경우가 있었죠.
이제는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보고요.
또 그다음에 아까 국회부의장 의전서열 9위라는, 어떤 보도에 보면 9위라고 나오는 데도 있고, 어떤 데 보면 7위, 9위가 나오는 데도 있는데 실제 제가 보기에 그런 것은 아무데도 찾아볼 수 없더라고요.
[인터뷰]
그거 안 알아줘요.
[인터뷰]
어디 가도 어떤 데, 예를 들어서 저 같은 경우 지방이니까 공항에 가도 전에 국회평의원때나 부의장 때나 똑같아요.
전혀 차 제공해 주는 것 그런 정도고 그다음에 판공비 일률 지급하는 것 정도.
[앵커]
조금 말하자면 음지에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좀 뒤에서 막힌 일도 있고 막후에서 중재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거군요?
[인터뷰]
정말 당으로 봐서는 국회의장이 의장 의장 되신 후에 탈당을 하잖아요.
국회직으로서는 최고위직이죠.
국회가 어떤 민원들.
그다음에 정국적으로 국내외 각종 민원이라든가 그다음에 외국인들 국회 방문했을 때 의장님 혼자서 다 못 하니까.
오늘 또 아침에 필리핀에서 국회 방문한 분들 한참 티타임을 했는데.
그런 일들이정말 바쁩니다.
주변 사람들이 농담한다고 이런 표현을 쓰죠.
우리가 보통 부 자는 있으나 마나한 부인데, 이 부 자는 정말 바쁘다고요.
[인터뷰]
맞습니다, 부자 붙은 자리치고는 참 바쁩니다.
예를 들면 세월호 3법 통과되기 전에 5개월간 국회공전될 때 그럴 때는 저도 예를 들면 여당의 김무성 대표나 이완구 대표 같은 분들하고 비밀리에 의견교환도 많이 하고 정 부의장 역시 그렇게 하고 그러면서 풀려고 노력도 많이 하지만 평소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의원님들이 토론회를 여는 것도 하루에 2건씩열어요.
거기 가서 축사도 해 줘야 되고, 그리고 외국손님 접견도 하고.
그런 일들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앵커]
저희가 역대 부의장들이 그 뒤에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살펴봤더니 부의장을 끝내고 나서 역할이 더 커지신 분들도 있고요.
이런 분들입니다.
이한동 부의장은 나중에 총리하셨고 이상득 부의장 나중에 정권 2인자의 역할을 하셨고.
놀란이 있습니다마는 홍사덕 부의장, 지금도 현역 정치인이지 않습니까?
문희상 부의장 하셨었고요.
박희태.
정의화 이분들 나중에 국회의장 하셨고요.
반면에 퇴임 후에 별로 활약을 못하시고 정계를 떠나신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 이름도 잘 기억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김태식, 김덕규 전 의원.
이윤성 전 의원, 조부영 전 의원.
두 분의 앞으로 정치적인 목표는 개인적인 정치인으로서의 목표는 어떤 것인지, 짧게 듣고 오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의장님 어떻습니까?
[인터뷰]
우선 우리 정 부의장님이 참 사회적인 기여도 많이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지난번에 보니까 또 아너소사이어티, 사회복지공동모금위원회 그런 데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그동안 1억 이상 기부하시고. 그리고 의원들을 여야 의원들과 사적인 자리를 많이 만들어요 우리가 함께 그렇게 노력해서.
사회적으로도 신뢰를 모으고 국회가.
또 국회 내부에서도 의원들간에 소통, 국회는 정치는 기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와 타협을 위한 자리들을 수없이 만들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부의장님.
[인터뷰]
우리 이석현 부의장님은 제가 전에 부친 돌아가셔서 제가 조문을 갔다왔는데 장례를 치르고 난 뒤에 언론보도를 보니까 조의금 받은 금액을 모두 장학금으로 내놓으셨더라고요.
아주 참 소리 소문없이 좋은 일을 많이 하시고 참 제가 존경할 만한 그런 분입니다.
이번에도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국회가 어려울 때 참 노력 많이 하시는 모습을 제가 직접 보았고요.
아마 제가 지금은 야당이지만 또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이 될 때 우리 이석현 부의장님은 큰일하실 거라 믿고요.
모든 정치인의 꿈은 부의장 하고 나면 의장을 해 보고 싶은 게 꿈이죠.
그러나 그 꿈을 향해서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고 또 정치가 살아숨쉬도록 하고 정치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우리 본연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인터뷰]
열심히 하겠습니다.
[앵커]
앞으로도 음지에서라도 정치 풀기 위해서 두 분 계속 역할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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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부의장이 대한민국에 국가의전서열이 9위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분들인데 누구신지 잘 모르시는 시청자 분들도 많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고, 그리고 우리 정치가 참 답답하고 꼬여있고 막혀 있는데 두 분께서는 좀 정치를 여야가 화합하고 두 분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좀 숨통을 트게 하고 싶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오늘 두 분을 모셨습니다.
다시 한 번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정갑윤 부의장님은 작사를, 트로트곡을 작사를 하셨다면서요, 최근에?
무슨 곡을 하신 겁니까?
[인터뷰]
울산에 가자라는 곡인데.
[앵커]
울산에 가자요?
[인터뷰]
제목이.
제가 원래 지난 해 하반기에저는 6.4지방선거를 대비해서 울산시장 나가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까 주변에서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그런 의미에서 울산에 가자라는 노래를 작사했으면 좋겠다고 작곡가를 한 분 만났어요.
그래서 그러다보니까 제가 작사를 하게 됐죠.
[앵커]
어떻게 되나요, 가사가?
[인터뷰]
간절곶에 꽃이 피면 울산에 가자.
신불산에 새가 울면 울산에 간다.
[앵커]
애향시군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저작권료도 들어오나요?
[인터뷰]
네, 저는 뭐 그냥 그러고 덮어뒀는데 아마 지난 10월, 11월 음원차트 100위 안에 들어갔나 봐요.
그러다보니까.
[앵커]
트로트 안에 100위 안에 들어갔다고요?
[인터뷰]
음악 저작권협회에서 저한테 연락이 왔더라고요.
[앵커]
돈 찾아가라고요?
[인터뷰]
등록해야 된다고.
그래서 알게 됐습니다.
[앵커]
그래서 좀 들어왔습니까?
입금됐습니까?
[인터뷰]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지난 금요일날 서명했으니까.
[앵커]
그래서 울산시장 그때 안 나가시고 국회부의장 되셨지 않습니까?
잘 된 겁니까, 결과적으로 어떻게 된 겁니까?
[인터뷰]
저는 원래 정치가를 하고 싶었으니까 좀 제가 바라는 길로 가게 됐으니까 잘 됐죠.
[앵커]
잘 하셨습니다.
이석현 부의장님은 국회에서 SNS의 제왕이시라면서요?
[인터뷰]
제왕이랄 것까지는 없고요.
트위터를 열심히 글 올리고 개인적 팔로어들이 언급을 하면 제가 또 맨션도 달아주고 열심히 합니다.
[앵커] 직접요, 시간을 투자해야 되잖아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시간 투자를 많이 하는데 그대신 타임라인에서 많은 정보도 얻고요.
그러다보니까 이제 SNS의 순위를 매기는 클라우트지수라고 있대요.
거기에서 상위권에 지금도 보면 문재인 의원님, 정청래 의원님, 심상정 의원님 등 같이 상위권에 많이 클라우트 지수가 있다고 합니다.
[앵커]
문재인, 정청래 이분들이SNS 라이벌이군요, 그러니까.
[인터뷰]
그분들이 저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합니다.
[앵커]
기억나는 거기에 올라왔었던 맨션이나 직접 쓰신 것 중에 기억나는 거나 그런 거 있으신가요?
[인터뷰]
가끔 제가 제 나름대로 국회에서 안 하던 말을 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그러면 호응이 뜨겁게 올라오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욕도 많이 먹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뭐하고 있는 거냐.
지난번 세월호 합의하기 전에 정국에서 지탄도 많이 듣는데 그걸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거르지 않고 있는 장점이 트위터에 있습니다.
[앵커]
저희가 오늘은 딱딱한 늘 했었던 그 쟁점토론보다는 좀 재미있는 얘기들, 국민들 잘 모르시는 것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그래도 이건 여쭤보고 넘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여야 정치 지금 말씀하신 대로 참 답답해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풀어야 된다고 두 분은 생각하십니까?
부의장님?
[인터뷰]
정치는 원래 시끄럽기 마련입니다.
정치판이 시끄럽고.
그러다보면 어느 시점에 가면 이번에 세월호 3법 통과되듯이 정말 국민들 많이 실망시키고, 뜸 많이 들였죠.
욕 다 들어먹고 난 뒤에 한 거지만 그러나 그래도 아주 적절한 시점에 마지막 골든타임에 통과시켰듯이 국민들이 보면 답답합니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들의 비난의 소리를 참고 인내하면서 또 여야 간에 서로 합의를 이뤄내야 되니까 그런 측면에서 참 노력 많이 하죠.
그러다보면 결국은 다 나라를 위한 길이고 국민을 위한 길이니까 여가 야가 따로 없다고 생각 안 합니다.
[앵커]
그래도 노력은 서로 한단 말이죠, 서로 길은 다르지만.
[인터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 정치인 욕하는데 바쁩니다.
특히 이석현 부의장님 있으시지만 우리가 무슨 일 했다, 그런 걸 신문에 내고 언론에 보도하고 그럴 상황은 아니니까 특히 부 자라는 게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잖아요.
이번에도 국회가 파행을 빚을 때 우리 이석현 부의장님이나 저나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쩌면 또 다른 원내대표라고 할까, 또 다른 당대표라고 할까, 그런 역할을 줄곧 해 왔죠.
우리 이석현 부의장님도야당이면서도 아주 국회 정상화를 위한 노력많이 하시죠.
[앵커]
두 분이 친하십니까?
두 분이?
[인터뷰]
둘이 자주 만나고 여야가 특히 갈등이 생겼을 때 서로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면대화를 많이 합니다.
또 정 부의장님이 대단히 마음이 열려있더라고요, 그래서 허심탄회하게 둘이 상의를 하니까 숨어있는 원내대표 역할까지 합니다.
저희들이 양당에서.
[앵커]
부의장이라는 게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
부의장 방은 어디에 있는 건지, 그런 것들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의장실 옆에 부의장실이 다 있죠?
평소에는 뭐 하십니까?
[인터뷰]
부의장실이 국회의장님 본관 3층에 정 부의장님하고 제 방이 나란히 있어요.
평소에 아시다시피 의장님 혼자 본회의 사회보려면 힘드니까 교대로 나눠서 사회를 보고 또 책임을 같이 집니다, 의장과.
책임을 나눠지는 자리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요.
또 하나는 어떤 면에서 우리가 정당정치하는 데 여당쪽에 우리 정부의장님, 야당쪽에 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상징하는 그런 자리로 여당 한 석, 야당 한 석, 이렇게 부의장을 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앵커]
저희가 국회의장의 의전을 봤더니 비서실장 1명, 비서관 10명이 있고 관용차가 있고, 경찰청에서 파견된 경호원이 2명 있고 의장실이 400평짜리 있고요.
급여경비가 1540만원 이렇게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부의장들께서는 어떤 예우를 받으시는지는 자료를 아무리 찾아봐도 못 찾아봤습니다.
어떻게 됩니까?
부의장들의 예우는.
[인터뷰]
부의장실은 저는 부의장 아닐 때 보다 비서진이 말단 여직원까지 다 해서 7명이 늘어났더라고요.
그렇게 되어 있고 또 방은 한 100평 안 되고요.
부의장 방은.
100평 안 되고 그리고 이제 아까 차, 차 얘기했는데 차는 좋은 거 주대요.
제가 2. 5짜리인가 11년 타고 다녔었는데 이번에 부의장 됐더니 바로 에쿠스를 1대 주어서 잘 타고 다닙니다.
[앵커]
관용차죠?
[인터뷰]
반납하는 겁니다.
[앵커]
부의장님으로서 답답한 거나 어떨 때는 의장, 지금은 직권상정을 잘 안 하지만 과거에는 의장 대산 부의장이 궂은 일도 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난처할 때가 없었습니까?
[인터뷰]
원론적인 것은 부의장은 사실 아까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부 자는 있으나 마나, 의장을 도와주는 보필하는 그런 역할인데 국회법 12조에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의장이 유보시에는 직무대행을 하는 쪽으로.
그렇게 됐고 또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국민들 머릿속에 보면 옛날에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되기 전에 어떤 정부와 여당이 반드시 통과시켜야 될 법안.
야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시켜야 될 법안.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국회의장이 궂은 일을 안 하려고 하시죠.
그러다 보니 여당 부의장이 소위 총대를 메게 되는 그런 경우가 있었죠.
이제는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은 거의 없을 거라고 보고요.
또 그다음에 아까 국회부의장 의전서열 9위라는, 어떤 보도에 보면 9위라고 나오는 데도 있고, 어떤 데 보면 7위, 9위가 나오는 데도 있는데 실제 제가 보기에 그런 것은 아무데도 찾아볼 수 없더라고요.
[인터뷰]
그거 안 알아줘요.
[인터뷰]
어디 가도 어떤 데, 예를 들어서 저 같은 경우 지방이니까 공항에 가도 전에 국회평의원때나 부의장 때나 똑같아요.
전혀 차 제공해 주는 것 그런 정도고 그다음에 판공비 일률 지급하는 것 정도.
[앵커]
조금 말하자면 음지에서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좀 뒤에서 막힌 일도 있고 막후에서 중재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거군요?
[인터뷰]
정말 당으로 봐서는 국회의장이 의장 의장 되신 후에 탈당을 하잖아요.
국회직으로서는 최고위직이죠.
국회가 어떤 민원들.
그다음에 정국적으로 국내외 각종 민원이라든가 그다음에 외국인들 국회 방문했을 때 의장님 혼자서 다 못 하니까.
오늘 또 아침에 필리핀에서 국회 방문한 분들 한참 티타임을 했는데.
그런 일들이정말 바쁩니다.
주변 사람들이 농담한다고 이런 표현을 쓰죠.
우리가 보통 부 자는 있으나 마나한 부인데, 이 부 자는 정말 바쁘다고요.
[인터뷰]
맞습니다, 부자 붙은 자리치고는 참 바쁩니다.
예를 들면 세월호 3법 통과되기 전에 5개월간 국회공전될 때 그럴 때는 저도 예를 들면 여당의 김무성 대표나 이완구 대표 같은 분들하고 비밀리에 의견교환도 많이 하고 정 부의장 역시 그렇게 하고 그러면서 풀려고 노력도 많이 하지만 평소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의원님들이 토론회를 여는 것도 하루에 2건씩열어요.
거기 가서 축사도 해 줘야 되고, 그리고 외국손님 접견도 하고.
그런 일들을 참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앵커]
저희가 역대 부의장들이 그 뒤에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살펴봤더니 부의장을 끝내고 나서 역할이 더 커지신 분들도 있고요.
이런 분들입니다.
이한동 부의장은 나중에 총리하셨고 이상득 부의장 나중에 정권 2인자의 역할을 하셨고.
놀란이 있습니다마는 홍사덕 부의장, 지금도 현역 정치인이지 않습니까?
문희상 부의장 하셨었고요.
박희태.
정의화 이분들 나중에 국회의장 하셨고요.
반면에 퇴임 후에 별로 활약을 못하시고 정계를 떠나신 분들도 있습니다.
아마 이름도 잘 기억 못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김태식, 김덕규 전 의원.
이윤성 전 의원, 조부영 전 의원.
두 분의 앞으로 정치적인 목표는 개인적인 정치인으로서의 목표는 어떤 것인지, 짧게 듣고 오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의장님 어떻습니까?
[인터뷰]
우선 우리 정 부의장님이 참 사회적인 기여도 많이 하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지난번에 보니까 또 아너소사이어티, 사회복지공동모금위원회 그런 데도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되어 있더라고요.
그동안 1억 이상 기부하시고. 그리고 의원들을 여야 의원들과 사적인 자리를 많이 만들어요 우리가 함께 그렇게 노력해서.
사회적으로도 신뢰를 모으고 국회가.
또 국회 내부에서도 의원들간에 소통, 국회는 정치는 기본적으로 대화와 타협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화와 타협을 위한 자리들을 수없이 만들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부의장님.
[인터뷰]
우리 이석현 부의장님은 제가 전에 부친 돌아가셔서 제가 조문을 갔다왔는데 장례를 치르고 난 뒤에 언론보도를 보니까 조의금 받은 금액을 모두 장학금으로 내놓으셨더라고요.
아주 참 소리 소문없이 좋은 일을 많이 하시고 참 제가 존경할 만한 그런 분입니다.
이번에도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국회가 어려울 때 참 노력 많이 하시는 모습을 제가 직접 보았고요.
아마 제가 지금은 야당이지만 또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이 여당이 될 때 우리 이석현 부의장님은 큰일하실 거라 믿고요.
모든 정치인의 꿈은 부의장 하고 나면 의장을 해 보고 싶은 게 꿈이죠.
그러나 그 꿈을 향해서 우리는 부단히 노력하고 또 정치가 살아숨쉬도록 하고 정치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우리 본연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인터뷰]
열심히 하겠습니다.
[앵커]
앞으로도 음지에서라도 정치 풀기 위해서 두 분 계속 역할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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