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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문가와 함께 이번 사건에 대해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예비역 대령 출신으로 군사전략가인 국민대학교 박휘락 교수, 그리고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자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범행 총기난사사건 43시간 만에 임 병장이 자해를 시도했고 지금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는데요.
출혈이 심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군이 지속적으로 생포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설득을 했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자해를 했습니다.
어떤 심리상태였다고 보시는지요?
[인터뷰]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통화를 하고 또 직접 대화도 나누고 그러면서 마음이 굉장히 최초 사건을 저질렀을 때의 마음과는 굉장히 이완되었다.
그렇게 볼 수 있고 제가 누차 설명드렸지만 이런 이완된 마음으로 인해서 두 가지로 발현될 가능성이 큰데 그 하나는 바로 손을 들고 투항을 하고 나오는 것.
또 하나는 어차피 그도 이성은 있으니까 어차피 내가 나가봐야 사형을 당하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사형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여기서 스스로 목숨을 끊자라고 하는 극단적인 선택.
이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결국 두 번째 극단적인 선택 쪽으로 선택을 했고. 그런데 K-2소총의 길이가 97cm입니다.
97cm고 방아쇠부터 총구까지는 60cm 정도 돼요.
그래서 이를테면 임 병장이 자기 스스로 자기 가슴에다 대고 방아쇠를 거꾸로 잡고 방아쇠를 당긴 것 같은데 그렇게 당기는 순간에 반동에 의해서 아마 심장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 같은데 그 순간에 반동에 의해서 좀 올라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심장과 어깨 사이에 관통이 되었고.
그 출혈로 인해서 지금 응급수송을 당하고 있다.
어쨌든 이 사건의 결말은 또 다른 제3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그리고 군이 나름대로 검거 작전에서는 잘 마무리한 것 같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앵커]
지금 강릉 아산병원 현장 화면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임 병장이 아직 병원에는 도착을 하지 않은 것으로 지금 알려지고 있는데요.
임 병장이 병원에 도착하면 응급치료를 받게 될 테고 그 이후에는 신병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을 해 주시죠.
[인터뷰]
당연히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고 그 조사 결과에 따라서 기소가 되겠죠.
그러면 또 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거는 우리가 임 병장을 이렇게 생포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가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임 병장이 진짜 과거 잘못을 회개를 한다면 자기가 진짜 있었던 일을 자기한테 유리한 일이 아니라 진정 있었던 일을, 이런 것을 솔직하게 우리 군에게 이야기를 해서 우리가 다시 이와 똑같은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앵커]
신 대표께서는 조금 전에 군의 검거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를 하셨는데.
임 병장이 처음에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 야간입니다마는 한 10km 가까이 도주를 했지 않았습니까?
그 야산쪽으로 도주를 계속했는데 우리 군의 경계상황이라든지 그런 것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거든요.
10km를 이동했다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군이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인터뷰]
그렇죠, 그 부분은 저도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사건 첫날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밤 내로 민통선을 벗어나지 힘들지 않겠는가 그런 예상을 했었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예상이었죠.
민통선 안에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또 특수대원도 아니고, 일반보병이 어떤 여러 가지 도움 없이 등산로도 아니고 완전 밀림을 헤치면서 4에서 6km가 되는 민통선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사실 상상을 못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상상을 못했던 것도 우리 군도 아마 거기까지는 상상을 못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일단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야 되니까.
그런데 이 임 병장은 아마 그 시간에 초인적인 능력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산길,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산길을 한 밤중에 다 간다.
북한의 특수부대 그런 스토리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나와버렸거든요.
실제로 그다음 날 낮에 어제 오후 2시경에 검문소 부근에서 거기가 10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런 것을 봤을 때 우리 군이 즉 22사단이 검거작전을 펼치면서 최초 진돗개 하나를 발령을 한 것도 사실 한 2시간 정도 늦게 발령됐고 그리고 검거작전의 포위망도 너무 최초에 좁게 설정한 게 아니냐.
1차포위망, 2차포위망, 3차포위망 해서 민가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공간까지 포위망을 확대해서 했었어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보는데, 어쨌든 그다음 날 오후 2시에 민가 지역에서 발견을 했기 때문에 그게 전혀 대응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기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은 1차포위망이 이미 지나가고 난 뒤에 설정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포위망을 너무 좋게 설정했다고 지적을 해 주셨는데요.
당초에 임 병장의 총기난사 사건의 정황을 봤을 때 우발적이기보다는 미리 계획한 게 아니냐라는 분석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임 병장의 도주 정황을 봤을 때 도주까지 미리 계획을 해 놨었나 이렇게 추정을 해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미리 계획했다면 당연히 도주까지 계획을 했겠죠.
예를 들어서 T까지 꺾어지는 그 교차로에서 총기를 반납하기 전에.
총기반납하고 나면 거사를 할 수 없으니까 총기 반납 하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도 총기를 가지고 있는지 그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먼저 수류탄을 터뜨린다.
그 다음에 그 중에서 내가 꼭 총을 쏘고 싶은 대상이 있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대상을 향해서 일단 총을 쏘고 그 사이에 또 그 사이에 내무반에 총을 쏘고 싶은 대상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거기는 뛰어가서 어떻게 하고 그리고 도망을 가는데 어디로 어떤 루트로 도망을 가서 목적지는 어디다.
지금 금강산콘도 근처라고 했는데 그 금강산 콘도가 바로 금강산 통일전망대 들어가는 바로 입구, 민통선 밑입니다.
거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검문소가 있어요.
금강산 콘도쪽 있는 마을로 가서 이를테면 택시를 타고 어디로 간다, 이런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을 다 설정을 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신속한 어떤 이동이 나올 수 없다고 보죠.
[앵커]
계획적인 범행, 계획적인 총기난사로 지금 추정할 수가 있다는 말씀인데요.
박 교수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앵커]
지금 현장에 응급차가 들어오고 있는데요.
[앵커]
지금 현장상황을 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 응급차가 들어왔는데 여기에 임 병장이 있는지 여부는 좀더 확인을 해 봐야 될 것 같은데요.
출혈이 심해서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민간병원인 강릉 아산병원으로 후송이 됐는데 현재 구급차는 임 병장이 있는 탑승한 구급차는 아니라고 지금 전해졌습니다.
[앵커]
조금 전 취재기자 얘기대로 도착은 지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계속 나누어볼까요.
[인터뷰]
그래서 제 생각에는 아마 주간근무를 했거든요.
그 근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은 야간근무는 많은 인원이 있습니다.
촘촘하게, 주간은 그런 많은 인원이 서지 않습니다.
좀 많이 드물게 서죠.
그러나 나중에 조사가 나오겠습니다마는 같이 근무한 그런 인원과 여러 가지에서 조금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그렇게 해서 우발과 계획이 이렇게 된 것 같고 그다음에 10km가 상당히 멀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가 통상 이동을 하면 밤에 평지는 한 5km 정도로 잡습니다, 1시간에.
그러니까 10km가 산하고 멀다고 그러지만 한 3, 4시간만 하면 사실 갈 수 있고, 병장 정도가 됐으면 그쪽 지리도 알면서 사실 야간이 주는 무서움.
그것도 조금 극복을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일단 자기는 동쪽으로 가서 일단 7번도로로 들어가서 무조건 차를 타겠다 이렇게 한 것 같고 그 방향을 정확하게 밤이라서 못 잡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동쪽으로는 무조건 가서 그쪽 7번 도로로 가야 되니까 그렇게 한 것 같아요.
[앵커]
임 병장이 자살 기도 전에 종이와 펜을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떤 내용을 썼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요.
하고 싶은 얘기는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이른바 유서를 썼겠죠.
유서를 썼는데, 유서를 쓰고 자살을 하려고 했겠죠.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반동에 의해서 또는 방아쇠를 엄지로 방아쇠를 당겨야 되기 때문에 당겨서 총구가 올라간 것 같아요.
아니면 당기는 순간에 순간적인 어떤 살려고 하는 본능이 작용을 해서 조금 비켜갔든지.
혹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지금 심장과 어깨 사이를 통과를 한 것 같은데요.
유서 내용을 보면 거기에는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라든지 이런 일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
특히나 울면서 아버지와 통화하게 해 달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아버지나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을 했을 수 있다.
그것이 자기는 죽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왜 이런 일을 벌여서 죽을 것이냐라고 생각을 한다면 결국 자기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끔 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좀 진실이 담긴 그러나 그 유서가 전체가 또 증거가 돼서 다른 임 병장에 의해서 사살된 다른 병사들의 명예가 훼손돼서는 안 되죠.
왜냐하면 양쪽의 말을 들어봐야 되기 때문에 한쪽의 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단 한쪽의 말은 그 나름대로 그 사람의 진실이 담겨있는 내용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앵커]
육군중앙수사단이 이 사실을 조사하게 될 텐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겠습니까?
[인터뷰]
일단 군법대로 해야 되겠죠.
여기에는 어떤 동정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고요.
그리고 동정이 만약 있다면 제2, 제3의 임 병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임 병장의 이야기들 그리고 울먹이면서 아버지와 통화를 요청했다.
그 모습들을 상상한다면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다 가슴 아프죠.
참 오죽했으면 저랬을까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정말 무고하게 죽은 5명의 또 다른 젊은 꽃들 그리고 지금 7명의, 소대장까지 합해서 관통당한 8명의 중경상자들 이 사람들이 상태가 어느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이중에는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될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봐서 법은 엄정하게 해야 된다.
그런 것을 감안을 하고 다만 군 수사기관에서는 이것이 어떤 사례가 돼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어떤 여러 가지 소재들을 여기에서 찾아내는 그런 일이 병행이 돼야 되겠습니다.
[앵커]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철저하게 사고원인을 짚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보통 총기사고는 일병이나 이병 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임 병장 경우에는 88일 제대가 남지 않은 그런 병장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니까 해병대에 있는 기수열외라든지 일종의 군대 내에서의 왕따 때문에 이런 참극이 벌어진 것이 아니냐는 그런 원인을 짚어보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시는지요?
[인터뷰]
아마 좀 그런 점이 있을 겁니다.
사실은 그런데 아까도 제가 말씀드려서 군을 변호하는 걸로 이렇게 들으실 수도 있지만 사실은 20몇 년동안 사회에서 생활해서 자기 나름대로 퍼스넬러티가 이미 다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거를 다시 군대생활 3년을 하면서 잘 관리해서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도록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군의 간부들이나 또 동료들이 많이 노력을 하죠.
그런데 사실 우리 현 사회가 옛날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형제가 많아서 젊었을 때부터 그런 어울리면서 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사실 임 병장이나 또 옛날 해병과 같은 이런 게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사실 고참이 되면 참 어려운 게 아마 제 생각에는 이게 신참 시절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을 해 버리면 아주 자랑스러운 고참이 돼서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보호하다 보니까 이제 계급만 올라가고 자랑스러운 게 없단 말이죠.
그런 가운데서 고참이 되면 제대할 때까지도 극복을 못하고 이런 불행한 일을 저지르는 그러한 경우가 나옵니다.
[앵커]
그런데 보통 병장이라고 하면 제가 군대 다닐 때만 해도 이 정도면 말년 병장인데.
말년 병장이면 업무에서도 열외가 되고 사실상 말그대로 편하게 지내는 문화였는데 지금은 문화가 많이 달라져서 병장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해야 되는 그런 문화이고 그러다보니까 수직적인 관계.
그런 것들이 적응을 못하고 그걸 기대했던 병장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제도는 바뀌었지만 문화는 남아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방금 지적하신 대로 과도기예요.
예전에 말년 병장.
아무것도 안 하고 TV 리모컨만 들고 내무반에서 이른바 빈둥거리는 그런 모습들이 지금은 없습니다.
자기 할 일을 다 자기가 해야 되고, 자기 청소 담당구역도 다 자기가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페이퍼를 쓰면 영창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일절 말년병장이라고 해서 말년의 행세를 할 수가 없는데.
문제는 그 문화적 의식은 아직도 남아있다는 거죠.
하지 말아라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의식만은 남아 있는데 지금 박휘락 교수님이 지적하셨듯이 관심병사였지 않습니까?
처음에 신참 때는 한 상병 이전까지는 A급 관심병사였다가 상병 중반 이후쯤 돼서 GOP 근무 들어가기 7개월 전에 이제 B급 관심병사로 이른바 다운그레이드가 된 거죠.
그런데 쫄병 시절의 A급 관심병사가 가지는 부대 내에서의 자기 위축감과 최고 말년 병장이 됐는데도 아직도 B급 관심병사, A급보다 훨씬 약하지만 중점관리대상, 특별관리대상이지 않습니까?
중점관리대상으로 다운그레이드가 됐지만 그래도 말년병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관심병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의 위축감은 아마 차이가 클 거예요.
이른바 리더십이 없는 거죠.
[앵커]
혹시 그렇게 분류된 걸 동료병사들도 다 알고 있는 겁니까?
[인터뷰]
모를 수가 없습니다.
원칙은 알면 안 되는데 모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소대행정반, 중대행정반에서 그런 걸 다 만들죠.
어떤 행동 사항에 대해서 작성을 다 합니다.
[앵커]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다 안다는 얘기죠.
[인터뷰]
그걸 누가 하느냐. 행정병사가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행정병사가 지극히 명예심을 가지고 무덤까지도 가져가겠다라는 선서를 하고 그걸 지키지 않는 이상, 내무반으로 오면 다 아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말하지 마라라고 하지만 결국은 다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앵커]
소수의 병사가 근무하는 데는 병장, 그리고 그런 내부적인 문제가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더 견디기 어려운 상황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런 것들이 참 군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 부모님들께서 군에 자식을 보내고는 참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처음에.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6개월 후에는 좋은 데로 보내주도록 노력을 할게, 처음에 힘든 데를 갖다고 말이죠.
그런데 6개월만 딱 견디면 안 가려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 6개월 동안 부모들이 자꾸 걱정을 해서 예를 들어서 내가 아는 사람 해서 좀 해 줄게.
이렇게 내가 여기가 막다른 골목이다, 내가 적응 해야겠다 마음을 못 갖도록 하면 사실 평생 그걸 옛날 군대에서는 고문관이라고 했습니다.
고문관이 돼서 이렇게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들께서도 군에 보낼 때는 처음에 이등병 때 좀 용감하게 견딜 수 있도록 오히려 너 잘한다, 한번 견뎌봐라.
이렇게 자극을 해야지 자꾸 안타까워서 뭐를 도와주려고 하는 게 오히려 조금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앵커]
궁금한 것이 그렇다면 관심병사로 분류되는 것 자체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그런 지금 분위기를 짚어주셨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관심병사가 대부분 내성적이고 적응을 못하는 병사들이 분류된다고 들었는데요.
이런 병사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게 중요한 걸까요?
지금처럼 계속 관심병사로 분류가 된다면 그 문화 내에서도 따돌림이라고 그럴까요, 그런 게 가능할 수도 있고요.
[인터뷰]
따돌림 또는 약자취급을 받죠.
이를테면 남자들끼리만 한 20, 30명이 있는 세계에서 아무리 체격이 좋고 우락부락하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쟤는 관심병사야 이러면 이를테면 뭔가 마음이 약한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몸이 강해도 마음이 약하면 전체적으로 다 강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죠.
남자들끼리의 세계에서는 일단 물리적 힘이 굉장히 중요한 그런 상황인데 또 더 나아가서는 고참이 되면 후임을 챙겨주고 그러면서 요즘 또형, 동생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형, 동생이라고 하는 게 무슨 병장님, 무슨 상병님.
딱딱 이렇게 붙였는데 요즘은 형, 형. 이렇게도 얘기를 해요.
그런데 관심병사면 내가 저 관심병사에게 형이라고 왜 불러야 되지라는 존경심이 안 생기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제가 심리학 전문가가 아니고 하기 때문에 이 관심병사의 문제가 이렇게 크게 발현이 되는 이런 상황을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군인들끼리만 머리를 맞대고 해결을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 우리 군의 최고 유수한 심리학 정신의료계의 석학 이런 분들 다 초빙해서 군인들은 일절 말을 하지 않고 군인분들이 말을 하면 회의가 안 돼요.
너무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군인들 일절 말하지 않고 거기에서 나온 안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보는.
정말 황당한 아이템이 나올 수 있습니다.
너무나 자유로운 사고로 하니까.
군인 입장에서 보면.
그러나 그것이 진짜로 관심병사를 우리 조직 내에서 받아들이고 그들을 우리 조직 내에 녹아들게 만드려는.
군인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지만 그게 진짜 치유책일 수 있는 것이죠.
왜, 전문가들이 만든 것이니까.
그런 대책을 한번 강구해 봐야 되겠죠.
[앵커]
박 교수님은 관심병사를 어떻게 관리하는 게 좋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저는 그 부분에 조금은 주의해야 될 부분이 있는데요.
결국은 아는 사람이 많으면 새어나가게 됩니다.
사실 지휘관들, 옛날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중대장하고 대대장할 때도 항상 소대장 나름대로 자기 소대에서 이런 부분을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중대장끼리 상의하고 또 중대장이 대대장님, 이거는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데 사실 지휘관들끼리 굉장히 비밀리에 했거든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런 옆에서 전문심리가라든지 이런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와서 또 누군가 오면 그 사람들을 집합시키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다보면 또 노출되고 하는 거니까 사실은 이거는 아까 제가 말씀드렸지만 소대장, 중대장들한테 맡기고 역할을 주고 그대신에 책임을 묻는 이런 시스템으로 가야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조금 반대되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마는 군의 문제에 민간인이 개입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군이 옛날에 군이 과도하게 이렇게 국민 위에 군림하는 그런 모습이 있을 때는 좀 그런데.
지금은 사실은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킬 뿐만 아니라 국민에 진짜 봉사하는 그런 군대입니다.
이번 조사도 굉장히 엄중하게 할 겁니다.
그런데 조사가 나와도 아마 무슨 군의문사진상위원회라든지 이런 데서 계속 의문을 제기할 것 같아요.
지난 2005년도 6월에 연천에서 있었을 때도 북한이 한 짓이다.
사실 아마 그렇게 해야 범인이 형을 덜 받고 하는 게 그런 게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군을 믿고 그렇게 해서 군은 또 이걸 떠나서 아까 제가 말했던 GOP, GP에 너무 부담이 많은 것 아
닌가.
경계 개념을 좀 바꿔야 되는 게 아닌가.
또 군의 제가 선발제도를 얘기하고 싶어요.
군이 지금 해병대도 선발해 가고, 특정부대도 선발해 가고 다 선발을 해 가요.
그리고 사실은 육군의 어려운 임무를 하는 사람들이 제일 안 선발된 사람들입니다.
저는 선발대도 좀 줄여야 된다.
그래서 꼭 필요한 사람을 선발하고 나머지는 진짜 가장 중요한...
[앵커]
교수님, 지금 현장 화면을 잠시 보죠.
지금 강릉 아산병원에 임 병장을 실은 앰뷸런스가 도착했습니다.
군 앰뷸런스가 도착했고요.
지금 뒷문을 열고 임 병장이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임 모 병장 오늘 오후 3시쯤에 스스로 왼쪽 가슴 부위에 총격을 가했죠.
출혈이 좀 많은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앵커]
비무장특공대원들이 자해를 시도하기 이전에 3시간 동안 투항을 설득했지만 듣지 않고 자해를 시도해서 왼쪽 가슴, 어깨 사이에 총을 쐈습니다.
출혈이 심해서 일반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강릉아산병원, 군병원이 아닌 강릉아산병원에 현재 후송된 상태입니다.
지금 도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지금 병원으로 도착하는 모습이 현장 화면에 나오고 있습니다.
강릉아산병원 현장상황입니다.
오늘 오전부터 긴 시간 동안 투항 설득이 있었지만 결국 오후3시에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현재 출혈이 심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앵커]
임 병장의 모습이 보이는지 볼까요.
담뇨에 쌓여서 임 병장이 내려왔고요.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습니다.
[앵커]
급하게 병원 안쪽으로 지금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요.
[앵커]
현재 의식은 있지만 출혈이 심하기 때문에 의식을 잃을 수 있다는 그런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요.
임 병장이 의식이 돌아와야지 사고 원인에 대해서 제대로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앵커]
지금 출혈이 심한 상황이기 때문에 아마도 응급처치가 지금 이뤄질 것으로 추정을 해 볼 수가 있겠고요.
상황이 나아진다면 그다음에 곧바로 조사가 이뤄지겠죠.
[인터뷰]
지금 거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기는 어려울 테고요.
일단 생명을 살려놓고 그리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놓은 이후에 왜 그랬는지를 확인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날씨가 좋지 않아서 헬기로는 옮길 수 없었고요.
이 때문에 군 구급차를 이용해서 지금 강릉아산병원으로 옮겨졌는데 현재 라이브로 들어오는 화면을 보고 계십니다.
[앵커]
조금 전에 강릉아산병원에 도착해서 병원 안쪽으로 급하게 이동이 되는 모습이 보여졌고요.
[앵커]
편집이 안 된 라이브 화면이기 때문에 다소 화면이 흔들리는 점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부에 긴박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군 관계자들도 지금 현장에 도착해서 임 병장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앵커]
임 병장을 실은 앰뷸런스가 조금 전에 강릉아산병원에 도착을 했습니다.
출혈이 좀 심했기 때문에 민간병원 그러니까 강릉아산병원으로 지금 옮겨졌고요.
지금 병원 안쪽으로 이동한 상태입니다.
[앵커]
오전 11시 25분쯤에 아버지와 형이 군과 대치하는 현장에 도착했고, 지속적으로 그 이후에 투항을 유도했습니다.
또 빵과 물을 주면서 투항을 유도했고 특수부대 요원 3명이 마지막에 투항을 유도했지만 이를 듣지 않고 자해를 시도했고요.
이 과정에서 총에 맞았기 때문에 , 스스로 총을 쐈기 때문에 출혈이 심했습니다.
[앵커]
아버지와 형까지 동원이 돼서 투항을 설득을 했지만 결국 2시 55분쯤에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조금 전에 강릉아산병원에 도착했고요.
지금 병원 안쪽으로 이동을 한 상황입니다.
[앵커]
지금 강릉아산병원,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화면을 보고 계신데요.
교수님, 이야기를 좀더 나눠보도록 할까요.
저희들이 관심병사 이야기를 지금까지 나누어봤는데 사고가 난 22사단만 해도 관심병사가 18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러다보니까 GOP에 근무하는 요원을 제외한다면 부대 운영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라는 그런 지적까지 나오고 있거든요.
이거 문제 아닌가요?
[인터뷰]
그렇죠, 군이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죠.
그래서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된다.
사실은 GOP가 옛날 60년대, 70년대부터 계속됐습니다마는 계속 철책을 보강해서 우리는 삼중철책이 다 되어 있고, 거기에 또 영상감지장비도 다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조금 GOP, GP를 기동경계 개념으로 해서 좀 줄이고.
그대신에 후방에 예비로 직결되어 있는 걸 늘려야 된다.
[앵커]
임 병장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쯤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좀더 지켜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한적이 여러 번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육군중앙수사단이 여러 가지 조사를 벌이게 될 텐데요.
부대 내의 조사라든지 책임 여부 조사라든지 이런 부분은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어떻게 이루어질 걸로 전망해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책임 이야기를 하면 저도 이야기 하기가 마음이 참 무거운데요.
지금 이런 상황 같으면 당연히 책임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어디까지, 어느 선까지 책임을 질 것이냐.
사실 저에게도 많은 언론들이 그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이를테면 지난 똑같은 22사단에서 12년도에 노크귀순 사건이 있었을 때 책임졌던 상황.
그리고 지금 상황을 똑같이 놓고 보면 안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12년도 노크 귀순 상황은 경계작전은 실패였죠.
소홀히 했으니까.
그러니까 당시에 사단장 그리고 사단장 상급 부대인 군단장 또 군단과 1군이라고 하죠, 강원도 지역의 모든 사단을 다 관리하는 데가 1군사령부인데요.
1군사령부의 작전개선, 합참 작전개선.
이런 데 모든 장군, 장교들이 상당히 많은 장교, 장군들이 이 사안에 대한 책임을 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똑같이 22사단이니까 또 엄중하기로 보면 그때 보다 더 크니까.
지금은 살인상황이 생겼기 때문에 더 크니까 지금도 사단장, 군단장, 합참작전처장 다 책임자가 되느냐, 저는 그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거는 관리의 실패지 작전의 실패가 아니거든요.
관리의 실패면 관리자가 책임을 져야죠.
관리자는 뭐냐, 해당부대 부대장입니다.
그래서 피해는 노크 귀순보다 훨씬 컸지만 이 파장은 노크 귀순의 경계 실패로 인해서 우리가 그 경계상태를 유지했을 때 우리가 피해를 볼 수 있는 그 파장은 우리가 전쟁에서 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이 책임을 졌던 상황과 지금 이 상황은 좀 다릅니다.
관리소홀은 아니죠. 관리를 어쨌든 결과적으로 잘못된 관리니까 그러면 해당 부대장 정도가 책임을 지는 것은 맞다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 이상 작전개선이 아닌데 다른 상급부대까지 계속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을 하고요.
저는 여기에서 또 짚고 넘어갈 것은 아까 관심병사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관심병사가 원래 임 병장이 A등급이었는데 B등급으로 작년 11월달에 낮췄습니다.
낮춘 것을 가지고, 낮추는 데 어떤 다른 의도가 없었다면 그 낮추는 데 대해서 결과적으로 그걸 낮췄기 때문에 GOP로 들어갔고 GOP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 사고가 발생했잖아요.
그런 인과관계 때문에 낮춘 것에 대해서 계속 비난하고 의혹을 제기한다면 앞으로 군부대 지휘관은 그 어떤 누구도 자의적인 판단과 능동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관심병사 들어왔을 때 가만 납두면 내가 인사적인 책임을 안 지는데 괜히 책임을 지려다가 좀더 나아진 것 같아서 내가 낮췄는데, 낮추니까 이런 결과가 나오고 내가 책임을 져야 된다.
아무도 이제는 그런 능동적인 행동을 하려 하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우리가 그 지휘관의 결정을 인정해 줘야 합니다.
[앵커]
지금 조금 전에 보신 화면은 임 병장이 강릉 아산병원에 도착을 했고요.
구급차가 도착한 거는 조금 전의 화면입니다.
도착해서 치료를 받고 있고요.
교수님, 지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번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났는데 컨트롤타워인 국방부 장관이 없어서 수습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이런 말이 나오고 있거든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인터뷰]
그 사실은 지난 2005년도에 GP 사건이 났을 때 그때 야당에서 국방부 장관이 한참 국방개혁을 한다고 그랬는데 물러나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 1년쯤 있다가 어쨌든 물러났습니다마는 사실은 이 정도갖고 국방장관이 있느냐, 없느냐가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우리 군대는 소대, 중대 그다음에 대대, 연대, 사단, 군단, 군사령부 다 지휘계통이 되어 있기 때문에 국방장관이 꼭 나서야 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 신 대표께서도 말씀을 하셨는데.
국민들께서 우리가 한번 필요하다는 것이 철통경계와 병영생활 개선이 상충된다는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항상 물 샐 틈이 없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바로 들어오자마자 잡을 수 있는 철통경계를 한다면 우리 병영생활이 개선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부대가 전방으로 가야 되고 전방에서 투입이 편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규모로 전부 떨어져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국민들도 한번 논의를 해 봐야 된다는 거죠.
그렇다면 과연 예를 들어서 소총 하나 들고 예를 들어서 온 사람에 대해서는 그다음 날 아침에 발견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게 아닌가.
이게 만약에 됐을 때는 장기로 보고 그다음에 순찰로 보고 대응을 하고.
이런 논의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철통경계하라.
그러면서 병영 생활에 아무 문제 없도록 하라.
이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문제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좀 범국민적인 논의가 필요하고요.
한 가지 조금 제가 군에서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될 것이 사실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저런 행동을 하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워낙 군의 전우애가 강하지 않습니까?
군가에도 많이 나오고 영화에서도 군의 전우애라는 것은 자기 생명을 그것 때문에 바치기도 하는데.
사실은 자기 같이 근무하는 전우들이거든요.
그러면 이게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번 진짜 이 부대만 그렇다면 상관이 없는데.
만약에 좀 적은데, 전 군대에서 이렇게 전우애가 사라졌다면 우리가 좀더 원인이 뭔지를 살펴서 좀 근본적인 처방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지금 병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고.
관련 얘기를 계속 나누어보고 있는데요.
우리의 현실을 보면 이 관심병사가 정확히 몇 명인지 조차 파악이 안 되는 그런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 문제부터 짚어보겠습니다.
구수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국방부 확인 결과 이번 총기난사를 일으킨 임 모 병장이 속한 22사단에만도 임 병장과 같은 '관심병사'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터뷰:김민, 국방부 대변인]
"22사단 경우는 A, B, C급 3종류의 관심병사가 1,8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전체 병사의 약 20%에 해당합니다. 전 군에 유사한 비율로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자]
C급은 허약체질이나 100일 미만의 신병 등 사고위험이 크지 않은 병사들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진짜 중점관리가 필요한대상은 A급과 B급 병사들인데, 이 비율만 해도 10%에 육박한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입니다.
또 입대 직후나 복무 도중 심리상태 등을 이유로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는 인원도 매년 7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터뷰: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너무나 심각해서 복무 부적합으로 전역 또는 보충역으로 변경하는 그런 경우가 한 해 7천명 씩이나 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는관심병사가 매년 증가 추세라면서도 통상적으로 집계하는 통계가 아니라고 밝혀허술한 관심을 방증했습니다.
특히 군 당국은 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탄이 지급된 채 휴전선 철책을 지키는GOP 근무에 B급 이하 관심병사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결국 군의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과안일한 사병관리가,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한 병사를 참극으로 내몬 데 일조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습니다.
YTN 구수본입니다.
[앵커]
지금 관심사병, 저희 구수본 기자의 보도를 보셨는데 이런 군 내의 문제, 병영문화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꼭 고쳐야 될까요?
[인터뷰]
군도 당연히 노력을 해야 되겠죠.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 되겠지만 부모님들도 조금 도와주시면 굉장히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자식이 좀더 편안 데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항상 군대생활할 때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마는 편하게 군대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사히 군대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죠? 또 예를 들어서 군에서 좀 힘들더라도 내가 힘들면 내 동료가 편할 거니까 착한 일을 하는 거다, 그렇게 제가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부모님들께서도 자기 병사가 좋다는 거는 인지상정입니다마는 무사히 제대하는 게 그거보다 더 중요한 거니까 휴가 나와서도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진짜 지휘관한테 편지를 써서 우리 아이가 이런 것 같은데 좀 관심을 가져주세요라고 지휘관한테 찾아가서 우리 아이를 잘 봐달라고 할 게 아니라 제발 무사히 전역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좀 제가 알아야 될 일이 있고, 도와줘야 될 일이 없습니까?
이렇게 진짜 우리 부모들이 지휘관하고 같이 해서 우리 장병들 중에서 특히 관심병사로 문제점이 있는 병사들이 진짜 무사히 그때까지 잘 관리돼서 마치고 나와서 진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대표님께서도 한 말씀해 주시죠.
[인터뷰]
이 사건이 반면교사가 돼야 됩니다.
이러고 묻혀지지 안 되죠.
왜 이렇게 관심병사로 인해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느냐, 이게 방금 리포터 나올 때 앵커께서 저한테 질문을 하셨잖아요.
군기가 약해서 그러냐, 그러면 군기를 더 세게 해야 되느냐, 아니면 병역문화를 개선해야 되느냐. 저는 군기가 너무 세서 발현된 사건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아마도 22사단은 지금 현존하는 대한민국 모든 철책사단 중에서 가장 경계 군기가 셀 겁니다.
왜냐하면 전임사단장과 전임 군단장이 철책 노크귀순으로 인해서 치명적인 치명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 후임들은 이 경계에 대해서 얼마나 깊게 하겠습니까?
그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가 병사들 상호끼리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발현되다 보니까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았느냐, 그래서 너무 강력한 경계태세, 아까 철통경계를 얘기하셨는데, 상충됩니다.
그 합의점을 찾아내야죠.
[앵커]
오늘 두 분 말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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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함께 이번 사건에 대해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예비역 대령 출신으로 군사전략가인 국민대학교 박휘락 교수, 그리고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자리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범행 총기난사사건 43시간 만에 임 병장이 자해를 시도했고 지금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는데요.
출혈이 심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군이 지속적으로 생포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설득을 했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자해를 했습니다.
어떤 심리상태였다고 보시는지요?
[인터뷰]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통화를 하고 또 직접 대화도 나누고 그러면서 마음이 굉장히 최초 사건을 저질렀을 때의 마음과는 굉장히 이완되었다.
그렇게 볼 수 있고 제가 누차 설명드렸지만 이런 이완된 마음으로 인해서 두 가지로 발현될 가능성이 큰데 그 하나는 바로 손을 들고 투항을 하고 나오는 것.
또 하나는 어차피 그도 이성은 있으니까 어차피 내가 나가봐야 사형을 당하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사형을 당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여기서 스스로 목숨을 끊자라고 하는 극단적인 선택.
이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결국 두 번째 극단적인 선택 쪽으로 선택을 했고. 그런데 K-2소총의 길이가 97cm입니다.
97cm고 방아쇠부터 총구까지는 60cm 정도 돼요.
그래서 이를테면 임 병장이 자기 스스로 자기 가슴에다 대고 방아쇠를 거꾸로 잡고 방아쇠를 당긴 것 같은데 그렇게 당기는 순간에 반동에 의해서 아마 심장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 같은데 그 순간에 반동에 의해서 좀 올라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심장과 어깨 사이에 관통이 되었고.
그 출혈로 인해서 지금 응급수송을 당하고 있다.
어쨌든 이 사건의 결말은 또 다른 제3의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그리고 군이 나름대로 검거 작전에서는 잘 마무리한 것 같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앵커]
지금 강릉 아산병원 현장 화면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임 병장이 아직 병원에는 도착을 하지 않은 것으로 지금 알려지고 있는데요.
임 병장이 병원에 도착하면 응급치료를 받게 될 테고 그 이후에는 신병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설명을 해 주시죠.
[인터뷰]
당연히 헌병대에서 조사를 받고 그 조사 결과에 따라서 기소가 되겠죠.
그러면 또 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거는 우리가 임 병장을 이렇게 생포하고자 하는 것은 사실 사고가 어떻게 일어났는지가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임 병장이 진짜 과거 잘못을 회개를 한다면 자기가 진짜 있었던 일을 자기한테 유리한 일이 아니라 진정 있었던 일을, 이런 것을 솔직하게 우리 군에게 이야기를 해서 우리가 다시 이와 똑같은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앵커]
신 대표께서는 조금 전에 군의 검거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를 하셨는데.
임 병장이 처음에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 야간입니다마는 한 10km 가까이 도주를 했지 않았습니까?
그 야산쪽으로 도주를 계속했는데 우리 군의 경계상황이라든지 그런 것에 구멍이 뚫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거든요.
10km를 이동했다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군이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인터뷰]
그렇죠, 그 부분은 저도 동의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사건 첫날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 밤 내로 민통선을 벗어나지 힘들지 않겠는가 그런 예상을 했었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예상이었죠.
민통선 안에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또 특수대원도 아니고, 일반보병이 어떤 여러 가지 도움 없이 등산로도 아니고 완전 밀림을 헤치면서 4에서 6km가 되는 민통선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사실 상상을 못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상상을 못했던 것도 우리 군도 아마 거기까지는 상상을 못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일단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야 되니까.
그런데 이 임 병장은 아마 그 시간에 초인적인 능력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산길,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산길을 한 밤중에 다 간다.
북한의 특수부대 그런 스토리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나와버렸거든요.
실제로 그다음 날 낮에 어제 오후 2시경에 검문소 부근에서 거기가 10km 정도 떨어진 곳인데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런 것을 봤을 때 우리 군이 즉 22사단이 검거작전을 펼치면서 최초 진돗개 하나를 발령을 한 것도 사실 한 2시간 정도 늦게 발령됐고 그리고 검거작전의 포위망도 너무 최초에 좁게 설정한 게 아니냐.
1차포위망, 2차포위망, 3차포위망 해서 민가지역으로 진입할 수 있는 공간까지 포위망을 확대해서 했었어야 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보는데, 어쨌든 그다음 날 오후 2시에 민가 지역에서 발견을 했기 때문에 그게 전혀 대응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거기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은 1차포위망이 이미 지나가고 난 뒤에 설정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포위망을 너무 좋게 설정했다고 지적을 해 주셨는데요.
당초에 임 병장의 총기난사 사건의 정황을 봤을 때 우발적이기보다는 미리 계획한 게 아니냐라는 분석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임 병장의 도주 정황을 봤을 때 도주까지 미리 계획을 해 놨었나 이렇게 추정을 해 볼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미리 계획했다면 당연히 도주까지 계획을 했겠죠.
예를 들어서 T까지 꺾어지는 그 교차로에서 총기를 반납하기 전에.
총기반납하고 나면 거사를 할 수 없으니까 총기 반납 하기 전에 먼저 다른 사람도 총기를 가지고 있는지 그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먼저 수류탄을 터뜨린다.
그 다음에 그 중에서 내가 꼭 총을 쏘고 싶은 대상이 있었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대상을 향해서 일단 총을 쏘고 그 사이에 또 그 사이에 내무반에 총을 쏘고 싶은 대상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거기는 뛰어가서 어떻게 하고 그리고 도망을 가는데 어디로 어떤 루트로 도망을 가서 목적지는 어디다.
지금 금강산콘도 근처라고 했는데 그 금강산 콘도가 바로 금강산 통일전망대 들어가는 바로 입구, 민통선 밑입니다.
거기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검문소가 있어요.
금강산 콘도쪽 있는 마을로 가서 이를테면 택시를 타고 어디로 간다, 이런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을 다 설정을 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신속한 어떤 이동이 나올 수 없다고 보죠.
[앵커]
계획적인 범행, 계획적인 총기난사로 지금 추정할 수가 있다는 말씀인데요.
박 교수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앵커]
지금 현장에 응급차가 들어오고 있는데요.
[앵커]
지금 현장상황을 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 응급차가 들어왔는데 여기에 임 병장이 있는지 여부는 좀더 확인을 해 봐야 될 것 같은데요.
출혈이 심해서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민간병원인 강릉 아산병원으로 후송이 됐는데 현재 구급차는 임 병장이 있는 탑승한 구급차는 아니라고 지금 전해졌습니다.
[앵커]
조금 전 취재기자 얘기대로 도착은 지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계속 나누어볼까요.
[인터뷰]
그래서 제 생각에는 아마 주간근무를 했거든요.
그 근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은 야간근무는 많은 인원이 있습니다.
촘촘하게, 주간은 그런 많은 인원이 서지 않습니다.
좀 많이 드물게 서죠.
그러나 나중에 조사가 나오겠습니다마는 같이 근무한 그런 인원과 여러 가지에서 조금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그렇게 해서 우발과 계획이 이렇게 된 것 같고 그다음에 10km가 상당히 멀다고 하는데 사실 우리가 통상 이동을 하면 밤에 평지는 한 5km 정도로 잡습니다, 1시간에.
그러니까 10km가 산하고 멀다고 그러지만 한 3, 4시간만 하면 사실 갈 수 있고, 병장 정도가 됐으면 그쪽 지리도 알면서 사실 야간이 주는 무서움.
그것도 조금 극복을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일단 자기는 동쪽으로 가서 일단 7번도로로 들어가서 무조건 차를 타겠다 이렇게 한 것 같고 그 방향을 정확하게 밤이라서 못 잡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동쪽으로는 무조건 가서 그쪽 7번 도로로 가야 되니까 그렇게 한 것 같아요.
[앵커]
임 병장이 자살 기도 전에 종이와 펜을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떤 내용을 썼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요.
하고 싶은 얘기는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이른바 유서를 썼겠죠.
유서를 썼는데, 유서를 쓰고 자살을 하려고 했겠죠.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반동에 의해서 또는 방아쇠를 엄지로 방아쇠를 당겨야 되기 때문에 당겨서 총구가 올라간 것 같아요.
아니면 당기는 순간에 순간적인 어떤 살려고 하는 본능이 작용을 해서 조금 비켜갔든지.
혹은 여러 가지 상황으로 지금 심장과 어깨 사이를 통과를 한 것 같은데요.
유서 내용을 보면 거기에는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라든지 이런 일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상황.
특히나 울면서 아버지와 통화하게 해 달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에 아버지나 가족들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다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을 했을 수 있다.
그것이 자기는 죽는다고 생각하고 내가 왜 이런 일을 벌여서 죽을 것이냐라고 생각을 한다면 결국 자기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끔 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좀 진실이 담긴 그러나 그 유서가 전체가 또 증거가 돼서 다른 임 병장에 의해서 사살된 다른 병사들의 명예가 훼손돼서는 안 되죠.
왜냐하면 양쪽의 말을 들어봐야 되기 때문에 한쪽의 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단 한쪽의 말은 그 나름대로 그 사람의 진실이 담겨있는 내용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앵커]
육군중앙수사단이 이 사실을 조사하게 될 텐데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해야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겠습니까?
[인터뷰]
일단 군법대로 해야 되겠죠.
여기에는 어떤 동정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고요.
그리고 동정이 만약 있다면 제2, 제3의 임 병장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임 병장의 이야기들 그리고 울먹이면서 아버지와 통화를 요청했다.
그 모습들을 상상한다면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다 가슴 아프죠.
참 오죽했으면 저랬을까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지만 정말 무고하게 죽은 5명의 또 다른 젊은 꽃들 그리고 지금 7명의, 소대장까지 합해서 관통당한 8명의 중경상자들 이 사람들이 상태가 어느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이중에는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될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를 봐서 법은 엄정하게 해야 된다.
그런 것을 감안을 하고 다만 군 수사기관에서는 이것이 어떤 사례가 돼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어떤 여러 가지 소재들을 여기에서 찾아내는 그런 일이 병행이 돼야 되겠습니다.
[앵커]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철저하게 사고원인을 짚어봐야 될 것 같습니다.
보통 총기사고는 일병이나 이병 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임 병장 경우에는 88일 제대가 남지 않은 그런 병장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니까 해병대에 있는 기수열외라든지 일종의 군대 내에서의 왕따 때문에 이런 참극이 벌어진 것이 아니냐는 그런 원인을 짚어보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시는지요?
[인터뷰]
아마 좀 그런 점이 있을 겁니다.
사실은 그런데 아까도 제가 말씀드려서 군을 변호하는 걸로 이렇게 들으실 수도 있지만 사실은 20몇 년동안 사회에서 생활해서 자기 나름대로 퍼스넬러티가 이미 다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거를 다시 군대생활 3년을 하면서 잘 관리해서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도록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군의 간부들이나 또 동료들이 많이 노력을 하죠.
그런데 사실 우리 현 사회가 옛날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형제가 많아서 젊었을 때부터 그런 어울리면서 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까 사실 임 병장이나 또 옛날 해병과 같은 이런 게 있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사실 고참이 되면 참 어려운 게 아마 제 생각에는 이게 신참 시절에 그런 어려움을 극복을 해 버리면 아주 자랑스러운 고참이 돼서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보호하다 보니까 이제 계급만 올라가고 자랑스러운 게 없단 말이죠.
그런 가운데서 고참이 되면 제대할 때까지도 극복을 못하고 이런 불행한 일을 저지르는 그러한 경우가 나옵니다.
[앵커]
그런데 보통 병장이라고 하면 제가 군대 다닐 때만 해도 이 정도면 말년 병장인데.
말년 병장이면 업무에서도 열외가 되고 사실상 말그대로 편하게 지내는 문화였는데 지금은 문화가 많이 달라져서 병장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해야 되는 그런 문화이고 그러다보니까 수직적인 관계.
그런 것들이 적응을 못하고 그걸 기대했던 병장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제도는 바뀌었지만 문화는 남아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방금 지적하신 대로 과도기예요.
예전에 말년 병장.
아무것도 안 하고 TV 리모컨만 들고 내무반에서 이른바 빈둥거리는 그런 모습들이 지금은 없습니다.
자기 할 일을 다 자기가 해야 되고, 자기 청소 담당구역도 다 자기가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페이퍼를 쓰면 영창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일절 말년병장이라고 해서 말년의 행세를 할 수가 없는데.
문제는 그 문화적 의식은 아직도 남아있다는 거죠.
하지 말아라라고 하지만 그것은 아직도 의식만은 남아 있는데 지금 박휘락 교수님이 지적하셨듯이 관심병사였지 않습니까?
처음에 신참 때는 한 상병 이전까지는 A급 관심병사였다가 상병 중반 이후쯤 돼서 GOP 근무 들어가기 7개월 전에 이제 B급 관심병사로 이른바 다운그레이드가 된 거죠.
그런데 쫄병 시절의 A급 관심병사가 가지는 부대 내에서의 자기 위축감과 최고 말년 병장이 됐는데도 아직도 B급 관심병사, A급보다 훨씬 약하지만 중점관리대상, 특별관리대상이지 않습니까?
중점관리대상으로 다운그레이드가 됐지만 그래도 말년병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관심병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사람의 위축감은 아마 차이가 클 거예요.
이른바 리더십이 없는 거죠.
[앵커]
혹시 그렇게 분류된 걸 동료병사들도 다 알고 있는 겁니까?
[인터뷰]
모를 수가 없습니다.
원칙은 알면 안 되는데 모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소대행정반, 중대행정반에서 그런 걸 다 만들죠.
어떤 행동 사항에 대해서 작성을 다 합니다.
[앵커]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다 안다는 얘기죠.
[인터뷰]
그걸 누가 하느냐. 행정병사가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행정병사가 지극히 명예심을 가지고 무덤까지도 가져가겠다라는 선서를 하고 그걸 지키지 않는 이상, 내무반으로 오면 다 아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말하지 마라라고 하지만 결국은 다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앵커]
소수의 병사가 근무하는 데는 병장, 그리고 그런 내부적인 문제가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더 견디기 어려운 상황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런 것들이 참 군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 부모님들께서 군에 자식을 보내고는 참 걱정을 많이 하십니다, 처음에.
제가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6개월 후에는 좋은 데로 보내주도록 노력을 할게, 처음에 힘든 데를 갖다고 말이죠.
그런데 6개월만 딱 견디면 안 가려고 그럽니다.
그런데 그 6개월 동안 부모들이 자꾸 걱정을 해서 예를 들어서 내가 아는 사람 해서 좀 해 줄게.
이렇게 내가 여기가 막다른 골목이다, 내가 적응 해야겠다 마음을 못 갖도록 하면 사실 평생 그걸 옛날 군대에서는 고문관이라고 했습니다.
고문관이 돼서 이렇게 문제를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들께서도 군에 보낼 때는 처음에 이등병 때 좀 용감하게 견딜 수 있도록 오히려 너 잘한다, 한번 견뎌봐라.
이렇게 자극을 해야지 자꾸 안타까워서 뭐를 도와주려고 하는 게 오히려 조금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앵커]
궁금한 것이 그렇다면 관심병사로 분류되는 것 자체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그런 지금 분위기를 짚어주셨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관심병사가 대부분 내성적이고 적응을 못하는 병사들이 분류된다고 들었는데요.
이런 병사들을 어떻게 관리하는 게 중요한 걸까요?
지금처럼 계속 관심병사로 분류가 된다면 그 문화 내에서도 따돌림이라고 그럴까요, 그런 게 가능할 수도 있고요.
[인터뷰]
따돌림 또는 약자취급을 받죠.
이를테면 남자들끼리만 한 20, 30명이 있는 세계에서 아무리 체격이 좋고 우락부락하게 생겼다고 하더라도 쟤는 관심병사야 이러면 이를테면 뭔가 마음이 약한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몸이 강해도 마음이 약하면 전체적으로 다 강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가 없죠.
남자들끼리의 세계에서는 일단 물리적 힘이 굉장히 중요한 그런 상황인데 또 더 나아가서는 고참이 되면 후임을 챙겨주고 그러면서 요즘 또형, 동생하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형, 동생이라고 하는 게 무슨 병장님, 무슨 상병님.
딱딱 이렇게 붙였는데 요즘은 형, 형. 이렇게도 얘기를 해요.
그런데 관심병사면 내가 저 관심병사에게 형이라고 왜 불러야 되지라는 존경심이 안 생기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가 제가 심리학 전문가가 아니고 하기 때문에 이 관심병사의 문제가 이렇게 크게 발현이 되는 이런 상황을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군인들끼리만 머리를 맞대고 해결을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말 우리 군의 최고 유수한 심리학 정신의료계의 석학 이런 분들 다 초빙해서 군인들은 일절 말을 하지 않고 군인분들이 말을 하면 회의가 안 돼요.
너무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군인들 일절 말하지 않고 거기에서 나온 안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보는.
정말 황당한 아이템이 나올 수 있습니다.
너무나 자유로운 사고로 하니까.
군인 입장에서 보면.
그러나 그것이 진짜로 관심병사를 우리 조직 내에서 받아들이고 그들을 우리 조직 내에 녹아들게 만드려는.
군인 입장에서 보면 황당하지만 그게 진짜 치유책일 수 있는 것이죠.
왜, 전문가들이 만든 것이니까.
그런 대책을 한번 강구해 봐야 되겠죠.
[앵커]
박 교수님은 관심병사를 어떻게 관리하는 게 좋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저는 그 부분에 조금은 주의해야 될 부분이 있는데요.
결국은 아는 사람이 많으면 새어나가게 됩니다.
사실 지휘관들, 옛날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중대장하고 대대장할 때도 항상 소대장 나름대로 자기 소대에서 이런 부분을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중대장끼리 상의하고 또 중대장이 대대장님, 이거는 관심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데 사실 지휘관들끼리 굉장히 비밀리에 했거든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런 옆에서 전문심리가라든지 이런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와서 또 누군가 오면 그 사람들을 집합시키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다보면 또 노출되고 하는 거니까 사실은 이거는 아까 제가 말씀드렸지만 소대장, 중대장들한테 맡기고 역할을 주고 그대신에 책임을 묻는 이런 시스템으로 가야 된다.
그런데 한 가지 조금 반대되는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마는 군의 문제에 민간인이 개입하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군이 옛날에 군이 과도하게 이렇게 국민 위에 군림하는 그런 모습이 있을 때는 좀 그런데.
지금은 사실은 군은 정치적 중립을 지킬 뿐만 아니라 국민에 진짜 봉사하는 그런 군대입니다.
이번 조사도 굉장히 엄중하게 할 겁니다.
그런데 조사가 나와도 아마 무슨 군의문사진상위원회라든지 이런 데서 계속 의문을 제기할 것 같아요.
지난 2005년도 6월에 연천에서 있었을 때도 북한이 한 짓이다.
사실 아마 그렇게 해야 범인이 형을 덜 받고 하는 게 그런 게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군을 믿고 그렇게 해서 군은 또 이걸 떠나서 아까 제가 말했던 GOP, GP에 너무 부담이 많은 것 아
닌가.
경계 개념을 좀 바꿔야 되는 게 아닌가.
또 군의 제가 선발제도를 얘기하고 싶어요.
군이 지금 해병대도 선발해 가고, 특정부대도 선발해 가고 다 선발을 해 가요.
그리고 사실은 육군의 어려운 임무를 하는 사람들이 제일 안 선발된 사람들입니다.
저는 선발대도 좀 줄여야 된다.
그래서 꼭 필요한 사람을 선발하고 나머지는 진짜 가장 중요한...
[앵커]
교수님, 지금 현장 화면을 잠시 보죠.
지금 강릉 아산병원에 임 병장을 실은 앰뷸런스가 도착했습니다.
군 앰뷸런스가 도착했고요.
지금 뒷문을 열고 임 병장이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임 모 병장 오늘 오후 3시쯤에 스스로 왼쪽 가슴 부위에 총격을 가했죠.
출혈이 좀 많은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앵커]
비무장특공대원들이 자해를 시도하기 이전에 3시간 동안 투항을 설득했지만 듣지 않고 자해를 시도해서 왼쪽 가슴, 어깨 사이에 총을 쐈습니다.
출혈이 심해서 일반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강릉아산병원, 군병원이 아닌 강릉아산병원에 현재 후송된 상태입니다.
지금 도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지금 병원으로 도착하는 모습이 현장 화면에 나오고 있습니다.
강릉아산병원 현장상황입니다.
오늘 오전부터 긴 시간 동안 투항 설득이 있었지만 결국 오후3시에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현재 출혈이 심한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앵커]
임 병장의 모습이 보이는지 볼까요.
담뇨에 쌓여서 임 병장이 내려왔고요.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습니다.
[앵커]
급하게 병원 안쪽으로 지금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요.
[앵커]
현재 의식은 있지만 출혈이 심하기 때문에 의식을 잃을 수 있다는 그런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요.
임 병장이 의식이 돌아와야지 사고 원인에 대해서 제대로 짚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앵커]
지금 출혈이 심한 상황이기 때문에 아마도 응급처치가 지금 이뤄질 것으로 추정을 해 볼 수가 있겠고요.
상황이 나아진다면 그다음에 곧바로 조사가 이뤄지겠죠.
[인터뷰]
지금 거의 생명이 경각에 달린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기는 어려울 테고요.
일단 생명을 살려놓고 그리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놓은 이후에 왜 그랬는지를 확인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날씨가 좋지 않아서 헬기로는 옮길 수 없었고요.
이 때문에 군 구급차를 이용해서 지금 강릉아산병원으로 옮겨졌는데 현재 라이브로 들어오는 화면을 보고 계십니다.
[앵커]
조금 전에 강릉아산병원에 도착해서 병원 안쪽으로 급하게 이동이 되는 모습이 보여졌고요.
[앵커]
편집이 안 된 라이브 화면이기 때문에 다소 화면이 흔들리는 점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부에 긴박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군 관계자들도 지금 현장에 도착해서 임 병장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앵커]
임 병장을 실은 앰뷸런스가 조금 전에 강릉아산병원에 도착을 했습니다.
출혈이 좀 심했기 때문에 민간병원 그러니까 강릉아산병원으로 지금 옮겨졌고요.
지금 병원 안쪽으로 이동한 상태입니다.
[앵커]
오전 11시 25분쯤에 아버지와 형이 군과 대치하는 현장에 도착했고, 지속적으로 그 이후에 투항을 유도했습니다.
또 빵과 물을 주면서 투항을 유도했고 특수부대 요원 3명이 마지막에 투항을 유도했지만 이를 듣지 않고 자해를 시도했고요.
이 과정에서 총에 맞았기 때문에 , 스스로 총을 쐈기 때문에 출혈이 심했습니다.
[앵커]
아버지와 형까지 동원이 돼서 투항을 설득을 했지만 결국 2시 55분쯤에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조금 전에 강릉아산병원에 도착했고요.
지금 병원 안쪽으로 이동을 한 상황입니다.
[앵커]
지금 강릉아산병원,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화면을 보고 계신데요.
교수님, 이야기를 좀더 나눠보도록 할까요.
저희들이 관심병사 이야기를 지금까지 나누어봤는데 사고가 난 22사단만 해도 관심병사가 18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러다보니까 GOP에 근무하는 요원을 제외한다면 부대 운영 자체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라는 그런 지적까지 나오고 있거든요.
이거 문제 아닌가요?
[인터뷰]
그렇죠, 군이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죠.
그래서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된다.
사실은 GOP가 옛날 60년대, 70년대부터 계속됐습니다마는 계속 철책을 보강해서 우리는 삼중철책이 다 되어 있고, 거기에 또 영상감지장비도 다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조금 GOP, GP를 기동경계 개념으로 해서 좀 줄이고.
그대신에 후방에 예비로 직결되어 있는 걸 늘려야 된다.
[앵커]
임 병장의 지금 상태가 어떤지는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언제쯤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좀더 지켜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한적이 여러 번 있지 않습니까?
앞으로 육군중앙수사단이 여러 가지 조사를 벌이게 될 텐데요.
부대 내의 조사라든지 책임 여부 조사라든지 이런 부분은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어떻게 이루어질 걸로 전망해 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책임 이야기를 하면 저도 이야기 하기가 마음이 참 무거운데요.
지금 이런 상황 같으면 당연히 책임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어디까지, 어느 선까지 책임을 질 것이냐.
사실 저에게도 많은 언론들이 그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이를테면 지난 똑같은 22사단에서 12년도에 노크귀순 사건이 있었을 때 책임졌던 상황.
그리고 지금 상황을 똑같이 놓고 보면 안 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12년도 노크 귀순 상황은 경계작전은 실패였죠.
소홀히 했으니까.
그러니까 당시에 사단장 그리고 사단장 상급 부대인 군단장 또 군단과 1군이라고 하죠, 강원도 지역의 모든 사단을 다 관리하는 데가 1군사령부인데요.
1군사령부의 작전개선, 합참 작전개선.
이런 데 모든 장군, 장교들이 상당히 많은 장교, 장군들이 이 사안에 대한 책임을 졌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똑같이 22사단이니까 또 엄중하기로 보면 그때 보다 더 크니까.
지금은 살인상황이 생겼기 때문에 더 크니까 지금도 사단장, 군단장, 합참작전처장 다 책임자가 되느냐, 저는 그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거는 관리의 실패지 작전의 실패가 아니거든요.
관리의 실패면 관리자가 책임을 져야죠.
관리자는 뭐냐, 해당부대 부대장입니다.
그래서 피해는 노크 귀순보다 훨씬 컸지만 이 파장은 노크 귀순의 경계 실패로 인해서 우리가 그 경계상태를 유지했을 때 우리가 피해를 볼 수 있는 그 파장은 우리가 전쟁에서 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이 책임을 졌던 상황과 지금 이 상황은 좀 다릅니다.
관리소홀은 아니죠. 관리를 어쨌든 결과적으로 잘못된 관리니까 그러면 해당 부대장 정도가 책임을 지는 것은 맞다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 이상 작전개선이 아닌데 다른 상급부대까지 계속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을 하고요.
저는 여기에서 또 짚고 넘어갈 것은 아까 관심병사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관심병사가 원래 임 병장이 A등급이었는데 B등급으로 작년 11월달에 낮췄습니다.
낮춘 것을 가지고, 낮추는 데 어떤 다른 의도가 없었다면 그 낮추는 데 대해서 결과적으로 그걸 낮췄기 때문에 GOP로 들어갔고 GOP로 들어왔기 때문에 이 사고가 발생했잖아요.
그런 인과관계 때문에 낮춘 것에 대해서 계속 비난하고 의혹을 제기한다면 앞으로 군부대 지휘관은 그 어떤 누구도 자의적인 판단과 능동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관심병사 들어왔을 때 가만 납두면 내가 인사적인 책임을 안 지는데 괜히 책임을 지려다가 좀더 나아진 것 같아서 내가 낮췄는데, 낮추니까 이런 결과가 나오고 내가 책임을 져야 된다.
아무도 이제는 그런 능동적인 행동을 하려 하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우리가 그 지휘관의 결정을 인정해 줘야 합니다.
[앵커]
지금 조금 전에 보신 화면은 임 병장이 강릉 아산병원에 도착을 했고요.
구급차가 도착한 거는 조금 전의 화면입니다.
도착해서 치료를 받고 있고요.
교수님, 지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번 총기난사사건이 일어났는데 컨트롤타워인 국방부 장관이 없어서 수습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 이런 말이 나오고 있거든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인터뷰]
그 사실은 지난 2005년도에 GP 사건이 났을 때 그때 야당에서 국방부 장관이 한참 국방개혁을 한다고 그랬는데 물러나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 1년쯤 있다가 어쨌든 물러났습니다마는 사실은 이 정도갖고 국방장관이 있느냐, 없느냐가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닙니다.
사실 우리 군대는 소대, 중대 그다음에 대대, 연대, 사단, 군단, 군사령부 다 지휘계통이 되어 있기 때문에 국방장관이 꼭 나서야 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까 신 대표께서도 말씀을 하셨는데.
국민들께서 우리가 한번 필요하다는 것이 철통경계와 병영생활 개선이 상충된다는 겁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항상 물 샐 틈이 없이,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바로 들어오자마자 잡을 수 있는 철통경계를 한다면 우리 병영생활이 개선될 수가 없습니다.
모든 부대가 전방으로 가야 되고 전방에서 투입이 편하도록 하기 위해서 소규모로 전부 떨어져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국민들도 한번 논의를 해 봐야 된다는 거죠.
그렇다면 과연 예를 들어서 소총 하나 들고 예를 들어서 온 사람에 대해서는 그다음 날 아침에 발견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는 게 아닌가.
이게 만약에 됐을 때는 장기로 보고 그다음에 순찰로 보고 대응을 하고.
이런 논의가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철통경계하라.
그러면서 병영 생활에 아무 문제 없도록 하라.
이것은 사실 있을 수 없는 문제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좀 범국민적인 논의가 필요하고요.
한 가지 조금 제가 군에서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될 것이 사실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저런 행동을 하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워낙 군의 전우애가 강하지 않습니까?
군가에도 많이 나오고 영화에서도 군의 전우애라는 것은 자기 생명을 그것 때문에 바치기도 하는데.
사실은 자기 같이 근무하는 전우들이거든요.
그러면 이게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번 진짜 이 부대만 그렇다면 상관이 없는데.
만약에 좀 적은데, 전 군대에서 이렇게 전우애가 사라졌다면 우리가 좀더 원인이 뭔지를 살펴서 좀 근본적인 처방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지금 병영문화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고.
관련 얘기를 계속 나누어보고 있는데요.
우리의 현실을 보면 이 관심병사가 정확히 몇 명인지 조차 파악이 안 되는 그런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 문제부터 짚어보겠습니다.
구수본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국방부 확인 결과 이번 총기난사를 일으킨 임 모 병장이 속한 22사단에만도 임 병장과 같은 '관심병사'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터뷰:김민, 국방부 대변인]
"22사단 경우는 A, B, C급 3종류의 관심병사가 1,8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전체 병사의 약 20%에 해당합니다. 전 군에 유사한 비율로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기자]
C급은 허약체질이나 100일 미만의 신병 등 사고위험이 크지 않은 병사들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진짜 중점관리가 필요한대상은 A급과 B급 병사들인데, 이 비율만 해도 10%에 육박한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입니다.
또 입대 직후나 복무 도중 심리상태 등을 이유로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는 인원도 매년 7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터뷰: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너무나 심각해서 복무 부적합으로 전역 또는 보충역으로 변경하는 그런 경우가 한 해 7천명 씩이나 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 관계자는관심병사가 매년 증가 추세라면서도 통상적으로 집계하는 통계가 아니라고 밝혀허술한 관심을 방증했습니다.
특히 군 당국은 병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탄이 지급된 채 휴전선 철책을 지키는GOP 근무에 B급 이하 관심병사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결국 군의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과안일한 사병관리가,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한 병사를 참극으로 내몬 데 일조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습니다.
YTN 구수본입니다.
[앵커]
지금 관심사병, 저희 구수본 기자의 보도를 보셨는데 이런 군 내의 문제, 병영문화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꼭 고쳐야 될까요?
[인터뷰]
군도 당연히 노력을 해야 되겠죠.
할 수 있는 걸 다 해야 되겠지만 부모님들도 조금 도와주시면 굉장히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 자식이 좀더 편안 데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가 항상 군대생활할 때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마는 편하게 군대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사히 군대생활을 하는 게 중요하다,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죠? 또 예를 들어서 군에서 좀 힘들더라도 내가 힘들면 내 동료가 편할 거니까 착한 일을 하는 거다, 그렇게 제가 이야기를 했습니다마는 부모님들께서도 자기 병사가 좋다는 거는 인지상정입니다마는 무사히 제대하는 게 그거보다 더 중요한 거니까 휴가 나와서도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진짜 지휘관한테 편지를 써서 우리 아이가 이런 것 같은데 좀 관심을 가져주세요라고 지휘관한테 찾아가서 우리 아이를 잘 봐달라고 할 게 아니라 제발 무사히 전역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좀 제가 알아야 될 일이 있고, 도와줘야 될 일이 없습니까?
이렇게 진짜 우리 부모들이 지휘관하고 같이 해서 우리 장병들 중에서 특히 관심병사로 문제점이 있는 병사들이 진짜 무사히 그때까지 잘 관리돼서 마치고 나와서 진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대표님께서도 한 말씀해 주시죠.
[인터뷰]
이 사건이 반면교사가 돼야 됩니다.
이러고 묻혀지지 안 되죠.
왜 이렇게 관심병사로 인해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느냐, 이게 방금 리포터 나올 때 앵커께서 저한테 질문을 하셨잖아요.
군기가 약해서 그러냐, 그러면 군기를 더 세게 해야 되느냐, 아니면 병역문화를 개선해야 되느냐. 저는 군기가 너무 세서 발현된 사건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아마도 22사단은 지금 현존하는 대한민국 모든 철책사단 중에서 가장 경계 군기가 셀 겁니다.
왜냐하면 전임사단장과 전임 군단장이 철책 노크귀순으로 인해서 치명적인 치명상을 받았기 때문에 그 후임들은 이 경계에 대해서 얼마나 깊게 하겠습니까?
그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가 병사들 상호끼리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발현되다 보니까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았느냐, 그래서 너무 강력한 경계태세, 아까 철통경계를 얘기하셨는데, 상충됩니다.
그 합의점을 찾아내야죠.
[앵커]
오늘 두 분 말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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