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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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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8-08-25 19:43
1970년대는 수많은 반공영화가 양산되던 시대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외국영화 수입권을 미끼로 반공영화 제작을 유도했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단순히 냉전적인 태도의 영화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한국영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유현목 감독은 언뜻 반공영화처럼 보이지만, 분단의 아픔을 탁월하게 묘사한 수작을 남겼습니다.

지금, 만나보시죠.

한국 전쟁기의 전라도 어느 시골 마을.

긴 장마가 계속되는 와중에 시집간 딸네 집에 피난 와 있는 동만이 외할머니는 괴이한 꿈을 꿉니다.

[외할머니: 꿈에 이 하나가 몽땅 나가버리더라니까.]

[막내딸: 그놈의 꿈 얘기 물리지도 않으세요? 외할머니: 너희는 모르는 소리다. 이제 곧 알게 될 테니 두고 보아라.]

할머니의 직감이 맞은 걸까요?

이날 밤 군대에 간 아들의 전사 소식이 전해지고 맙니다.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그저 콩을 까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슬픔을 삭이는 외할머니.

[외할머니: 내사 뭐 아무렇지도 않다. 진작부터 이럴 줄 알았으니까. 내사 뭐 아무렇지도 않다.]

거센 장맛비, 통곡하는 큰딸의 울음소리.

유현목 감독의 유려한 연출과 유영길 감독의 탁월한 촬영, 그리고 배우 황정순 씨의 농익은 연기가 시너지를 이루며 비극적 상황은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나 보입니다.

영화는 동만의 외갓집 식구들이 이 집에 도착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동만: 어머니, 서울서 외삼촌이 오시는구먼요.]

[길준: 동만아!]

[동만: 외삼촌!]

[순철: 형수 씨, 서울서 사돈댁이 오시네요.]

난리 중이긴 하지만 반가운 재회를 하게 된 동만의 친가와 외가.

이런 상황에서 서울에서 우익 활동을 한 전력이 있는 길준은 인민군이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은신처를 마련하기로 합니다.

[순철: 대나무 숲에 굴을 파고 숨어 있으면 될 거 아냐.]

[외할머니: 숨어?]

[어머니: 숨어요?]

[순철: 그럼요. 길준이 밤중에 도망갔다고 하고서 대나무 숲에 숨어 있으면 1년도 더 숨어 있을 수 있지요.]

[외할머니: 야야, 제발 좀 그렇게 해라.]

이런 와중에 인민군이 마을에 들이닥치고.

세상이 뒤바뀐 틈을 타 순철은 평소 마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던 사람을 골탕먹이기로 합니다.

[순철: 네 눈에는 이것이 밀주로 보일 것이여. 그러니까 이것을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자시라고.]

그런데 그만, 뜻하지 않게도 골탕만 먹이고 그친 게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순철은 아예 인민군의 부역자로 일하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선량함을 잃지 않은 그는 대나무 숲에 숨어 있는 사돈 청년을 챙깁니다.

하지만 둘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빚어지는데요.

[길준: 부역 같은 일에 너무 깊게 개입하지 마십시오.]

[순철: 부역이라? 아니 그게 뭔 소리요?]

[길준: 실례했어요. 형님.]

[순철: 나는 누구처럼 부역한다고 괜스레 빨갱이 짓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그저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서 벌 줄 사람들은 벌을 주고 남의 땅을 착취해 간 사람들은 도로 빼앗아 주고.]

한편, 다시 국군이 마을을 탈환하는 상황이 찾아오자 이번엔 거꾸로 순철이 인근 산으로 피할 처지가 됩니다.

[순철: 어머니, 저 오늘 밤 건지산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대나무 숲에서 나온 길준은 자진해서 군에 입대하게 됩니다.

[외할머니: 네 뜻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하필이면 그 잘 죽는다는 소대장이냐, 소대장이.]

[길준: 아, 어머니도. 제가 어디 그리 쉽게 죽을 것 같습니까?]

사돈지간에 한 명은 국군 소대장, 또 한 명은 빨치산이 된 기가 막힌 운명.

이런 와중에 길준이 전투 중 사망하고 깊은 슬픔에 사로잡힌 외할머니는 매서운 천둥 번개가 내려치자 사돈 청년이 숨은 산을 향해 저주를 퍼붓습니다.

[외할머니: 더 쏘아대거라, 더 퍼부어대거라. 저기 숨어 있는 빨갱이 놈들!]

[친할머니: 여기가 지금 누구 집이야? 보자 보자 하니까 눈 시려서 못 보겠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그 말이 거길 두고 한 말이야!]

서로가 적이 되고, 한 사람은 전사, 한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두 아들의 서로 다른 어머니는 그 때문에 서로 적대적인 관계로 돌변합니다.

영화 '장마'는 이렇게 전쟁이 사람들에게 남긴 증오와 적대감을 사돈지간인 두 어머니의 대립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슬픔과 눈물을 상징하는 장맛비 속 어른들의 비극적 상황은 어린 동만의 시선을 통해 오히려 더욱 극명해지죠.

분단을 화두 삼은 1970년대 영화 가운데 단연 최고봉으로 꼽히는 걸작, '장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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