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코리아 55회

더 큰 코리아 55회

2018.07.14. 오후 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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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이어진 북미 정상회담.

한반도를 둘러싼 평화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는데요.

분단과 남북한의 대립은 그동안 해외 동포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게 사실입니다.

특히 재일동포 사회는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단체도 각각 한국과 북한을 지지하는 민단과 조총련으로 분단돼 있는데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재일동포들은 최근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앵커]
안녕하십니까?

지구촌에서 답을 찾고 한민족 공동체를 확인하는 프로그램, '더 큰 코리아' 입니다.

이번주 '더 큰 코리아'는 조금 특별한 시간으로 마련했는데요.

남북 화해와 평화 분위기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시선, 그 가운데 국적을 선택하지 않은 이른바 조선적, 또는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의 입장은 어떤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겠습니다.

[김인종 / 77세, 재일동포 2세 : 남과 북의 사이가 좋아지고 교류가 활발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김일구 / 54세, 재일동포 3세 : 꿈 같은 일이죠. 시대가 바뀌고 미래가 보였다고 느끼고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김상미 / 51세, 재일동포 3세 : 우리가 이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다 하는 마음이 정말 이렇게 기쁜 일이라는 게 (일본에서) 통하지 않는 것이 참 아쉽고.]

[최지세 / 16세,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1학년 : 우리가 한반도와 일본을 이어나갈 큰 다리가 되도록 노력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최근의 흐름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일본 오사카 외곽 공장 단지.

삼십 평 남짓한 이 작은 공장은 재일동포 김인종 씨가 철가공으로 생업을 잇고 있는 현장입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이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을 합니다.

연극을 하는 아들 철의 씨가 틈날 때마다 아버지의 일을 돕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분주한 일손을 잠시 놓았습니다.

휴대폰으로 한국 뉴스를 시청하기 위해선데요.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생중계되고 있네요.

진지한 표정으로 정상회담 장면을 지켜보는 아버지와 아들.

이들에게는 감격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인종 / 77세, 재일동포 2세 : 기다리고 기다리던 것입니다. 트럼프를 상대로 어디까지 이야기가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거니까.]

김인종 씨와 아들 철의 씨는 한국과 북한, 일본 중 어느 쪽도 국적으로 선택하지 않은 이른바 조선적 재일동포입니다.

조선적이란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정부 수립 이전에 일본 정부가 재일동포들에게 편의상 부여한 가상의 국적입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조선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등의 국적을 선택하면 일본에서 살아가는 데는 훨씬 편할 수도 있을 텐데 김인종 씨가 굳이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인종 / 77세, 재일동포 2세 : 태어나면서부터 조선적이었으니까. 그때는 한국 국적이라는 게 없었잖아요. 해방돼서 조선인은 조선적이 된 겁니다. 그런데 한국과 북한으로 갈라 지고 또 (일부는) 한국 국적으로 바꾸고. 내가 생각하기엔 그건 또 다른 분단인 거야. 난 이제 얼마 안 남았지만 죽을 때까지 이 생각은 변하지 않아요.]

현재 일본에는 약 3만 명의 조선적 재일동포가 살고 있는데요.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우리 정부가 조선적 재일동포들의 입국을 사실상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친북 성향이 강한 재일조선인총연합, 즉 조총련과 관련이 많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적 동포 가운데는 이념이나 사상의 잣대로 구분할 수 없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들의 입국 기준을 완화해 적용하기 시작했는데요.

그 덕분에 아들 철의 씨가 연극 공연을 위해 한국에 갈 수 있게 됐습니다.

[김인종 / 77세, 재일동포 2세 : 그때(이명박 정권 때) 아들이 한국에 못 갔을 때 아쉬워했으니까. 극단을 하고 있는데 대표인 자기만 못 갔단 말이야. 근데 단원은 모두 (한국에) 갔어요. 그것도 두 번, 세 번 정도 갔었지. 그런데 아들만 못 갔다가 이번에 정권이 바뀌어서 갈 수 있게 돼서 (나도) 마음속으로 기뻐요.]

몸은 일본에 살고 있지만 김인종 씨는 남과 북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날을 누구보다 간절히 꿈꿉니다.

그러면서 일본 식민 지배에 대한 확실한 청산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김인종 / 77세, 재일동포 2세 : 남과 북의 사이가 좋아지고 교류가 활발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북한은 가난하니 한국 지원도 받고. (하지만) 일본의 원조는 필요 없어요. (북한이) 한국의 원조를 받아도 일본으로부터 당연히 돈을 받을 권리가 있지요. 일단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여러 가지 청산이 안됐잖아요. 한국에서는 청산이 되었다고 하지만 (북한은) 일본에서 원조가 아니라 (보상금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북일간의) 국교가 정상화되고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본과 북한이 국교를 맺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평생 아버지 고향인 제주도를 가보지 못한 김인종 씨.

아들에 이어 그 역시 더 늦기 전에 조국 땅을 밟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재일동포 3세 김일구 씨와 김상미 씨 부부 역시 조선적 재일동포입니다.

부부는 북한도 가보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엔 한국도 방문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들 집 거실에는 한국과 북한에서 산 미술 작품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

조국은 아직 분단돼 있지만 이들의 집만큼은 통일된 셈이죠.

[김상미 / 51세, 재일동포 3세 : 여기는 한국에 여행 갔다가 산 그림이고, 그리고 이것은 북한에 갔다가 산 조각이고. 집안이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까? 아버님은 어떠셨어요? 조선적이기 때문에 불편이 많았을 텐데.]

[김일구/ 54세, 재일동포 3세 : 불편한 건 많이 있죠. 그런데 그 불편함이라는 게 (오히려) 나의 힘이 되죠. 불편할수록 국적을 바꾸려고 생각 안 하고. '왜?' 하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한국 국적을 가진 분들에 대해서 우리는 차별하거나 그런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일본 정부는 '한국 국적은 좋은데 조선적은 안된다'는 식으로 차별을 합니다. 그것이 나의 마음에 화가 나죠. 그러니까 일본 국적(을 갖는 것)에 대해서 나는 저항하는, 조선적은 왜 안 되냐는 마음도 있고. 그래서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죠.]

부부는 우리 말과 역사를 가르치는 오사카 조선학교 선후배 사이고, 네 아들 모두 같은 학교에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온 가족이 동문인 셈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뿌리를 중시하는 이들에게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반도의 해빙 무드는 더 없이 가슴 벅차게 다가옵니다.

[김일구 / 54세, 재일동포 3세 : 꿈 같은 일이죠. 시대가 바뀌고 미래가 보였다고 느끼고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잘 이해해주고 그래서 전쟁을 하지 말자는 뜻이 보여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 사회가 한반도의 최근 상황을 바라보는 데는 온도차가 있다고 말합니다.

[김상미 / 51세, 재일동포 3세 : 정말로 일본에서의 교육이 근대사를 하나도 안 가르치니까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가 이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다 하는 마음이 정말 이렇게 기쁜 일이라는 게 (일본에서) 통하지 않는 것이 참 아쉽고. 언제나 텔레비전으로 뭔가 자기들의 정치 문제에서 불리하게 되면 항상 '북한, 북한' 하고 북한 문제를 이용하면 어떻게 넘어갈 수 있다는 듯, 그럼 일본 사람들이 마비되어 갑니다.]

김일구, 김상미 씨 부부는 역사 왜곡과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미진한 태도 때문에 더더욱 뿌리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네 명의 아들을 모두 조선 학교에 보낸 것도 그 때문입니다.

[김상미 / 51세, 재일동포 3세 : 일본은 (북한을) 거짓말쟁이처럼 보도하고 있는데 일본이 더 거짓말을 많이 해왔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우리 학교에 학생을 보내는 것은 우리나라 말로 우리나라 역사를 잘 가르치고 싶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일본 정부가 북일관계 악화를 빌미로 2013년부터 고교 무상화 정책에서 조선 학교만 제외한 것은 여전히 마음 속의 큰 앙금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내 60여 곳의 조선학교들은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고요.

매달 35만 원 정도의 학비를 내야 하는 것도 학부모들로서는 만만치 않은 부담입니다.

[김상미 / 51세, 재일동포 3세 : 초중학교 무상화 하고 고등부까지 무상화 하는 것도 다 정치가 표를 받기 위한 정책이었는데 그 속에서 단 하나, 우리 학교(조선학교)만 제외하고 그래서 채택되었습니다. 우리도 다 세금 내고 그런 환경에 있는데 우리 학교만 제외하고 있는 것 자체가 차별이지 않습니까.]

일본의 계속되는 차별 속에서도 본국만큼은 남북 화해의 시대에 걸맞는 시선으로 재일동포를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김상미 씨는 넌지시 드러냅니다.

[김상미 / 51세, 재일동포 3세 : 누가 누구를 지지한다 안 한다는 문제가 아니고 역시 자기들의 뿌리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글, 역사, 문화를 배워야 우리가 재일동포로서 그렇게 이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살자고, 우리는 그렇게 살자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살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사카 인근 문화 센터의 작은 교실.

소녀들의 목소리가 힘찹니다.

세 명의 재일동포 여학생들이 연극 연습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들은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재일동포 3세 연극인 김철의 씨에게 따로 연극 수업을 받습니다.

본격적인 대사 연습에 앞서 발성 연습이 한창입니다.

이들이 다니는 오사카 조선고급학교는 이른바 조총련계 학교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북한식 교육을 받긴 하죠.

하지만 요즘에는 예전만큼 이념적 색깔이 강하지 않고, 절반 넘는 학생이 한국 국적입니다.

어쨌든 재일동포 학교를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이들 역시 알게 모르게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을 때가 있나 봅니다.

[전서애 / 16세, 오사카조선고급학교 1학년 : 우리말로 썼던 시험 답안지를 보여 준 적이 있는데, 아마 그 (일본) 친구가 역사를 몰라서 그렇게 말했겠지만 그 친구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면 좋은데 왜 여기 있냐'고 물어서 '아, 아직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최지세 / 16세, 오사카조선고급학교 1학년 : 우리집 근처 사람과 놀 때 '나는 한국인도 북한사람도 아닌 조선사람이다' 라고 말했는데 '남과 북은 민족이 다른 것 아니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일본에서의 인식 차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정리화 / 16세, 오사카조선고급학교 1학년 : 저고리를 입고 있으니까 조금 이상한 눈으로 봤거나, 자전거에 조선학교 표시를 붙이고 있으니까 조금 눈치를 당하거나 할 때가 있었습니다.]

마침 이날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역사적인 정상 회담을 가진 날.

세대가 다른만큼 어쩌면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아버지 어머니들이 느꼈을 감흥과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세 여학생의 생각을 들어볼까요?

[전소애/ 16세,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1학년 : 북남(정상이) 만나서 통일 기세가 올라가고 있는 기회에 다시 이번에 조미 회담을 진행할 수 있어서 정말로 기뻤고, 앞으로도 통일 기세가 올라가서 통일할 수 있으면 기쁘겠다고 생각합니다.]

[최지세/ 16세,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1학년 : 태어나면서부터 국제인이니까 우리가 한반도와 일본을 이어나갈 큰 다리가 되도록 노력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최근의 흐름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정리화/ 16세,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1학년 : 우리들이 무관심하게 되지 말고 통일을 위해서 조선 학생으로서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잘 생각해서 공부라든가 조선 학생으로서의 긍지를 잘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말이 다소 서툴긴 하지만 생각만큼은 참 야무지네요.

남과 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

머지않아 이들 동포 학생들이 한반도의 미래를 더 밝게 비추는 일등공신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남과 북을 가로지른 경계는 재일동포 사회에도 경계를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분단은 재일동포의 분단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평화는 재일동포의 평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통일은 더 큰 우리의 통일입니다.

우리만큼,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간절히 통일을 바라는 동포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한겨레가 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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