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코리아] '시베리아의 난로' 최재형 선생 순국 98주기

[원코리아] '시베리아의 난로' 최재형 선생 순국 98주기

2018.05.05. 오후 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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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동포와 다문화 소식을 전해드리는 '원코리아'입니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러시아에서 큰 부자가 됐지만 개인의 삶에 안착하지 않고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 바로 시베리아의 페치카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입니다.

최재형 선생 순국 98주기 추모식 현장을 서혜연 PD가 다녀왔습니다.

[기자]

"아아, 애달프도다. 내 동포여. 원한의 그 한마디. 우수리스크 하늘 아래, 일제의 총칼 앞에. 대한독립!"

최재형 선생 순국 98주기 추모식은 위패가 모셔진 국립현충원에서 진행됐습니다.

[김수필 / 최재형 기념사업회 이사장 : 중국에 김구 선생이 있고 미국에 독립운동가 이승만이 있고 러시아에는 최재형 선생이 있다. 이렇게 세 분이 대륙별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다 이렇게들 이야기하시는 분이 많이 있어요.]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항일 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1860년 함경도에서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러시아로 건너간 뒤 군수품 납품 등으로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동의회', '권업회' 등 항일 투쟁 조직을 만들어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를 도왔습니다.

1919년 임시정부 초대 재무 총장으로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박환 /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 수많은 국내에 들어가서 진공작전, 의병투쟁, 이것에 실질적으로 무기를 댄다든가 또는 의복이라든가. 여러 가지 활동 이런 걸 전체적으로 후원해주신 분이 바로 최재형 선생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너무나 유명한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때 그러한 모든 계획이라든가 이런 것들을 최재형 선생이 후원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러시아 학교에서 처음으로 근대 교육을 접한 최재형 선생, 30여 개 학교를 세워 동포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박환 / 수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 수많은 한인 자제들한테 가능하면 많은 지식, 올바른 지식, 선진적인 지식을 가르칠 때만이 비로소 개인의 성장과 더불어서 한인사회가 성장할 수 있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이런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기념 사업회는 고려인 학생 6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추모식에는 장학생들도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렸습니다.

[최엘레나 / 고려인·최재형 장학생 : 저는 최재형 장학금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너무 행복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고려인이라서 최재형 장학금이 저한테 아주 큰 의미가 있어요.]

[김창송 / 최재형 기념사업회 명예 이사장 : 사회 빈민들이나 두만강 건너온 조선 동포들을 자기 가족같이 심혈을 기울여서 일자리 마련해주고 또 어린아이를 교육까지 이 정신을 미약하나마 승계해야 하겠다.]

난로라는 뜻의 페치카로 불린 최재형 선생, 조국과 동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희생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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