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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우드] 한국영화 걸작선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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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7-11-12 00:48
한국 영화 역사에서 1960년대는 이른바 '문예 영화의 전성기'로 불립니다.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어느 때보다 많이 만들어졌는데요.

이 문예 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사람이 바로 김수용 감독입니다.

앞서 잠깐 보신 영화 '안개'는 김수용 감독이 연출한 100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대표작입니다.

명배우 신성일과 윤정희의 젊은 시절 모습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만나보시죠.

제약 회사 상무 기준은 꽤나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권태로움에 빠져 지냅니다.

회사 소유주의 딸이자 기준의 아내는 그에게 고향 무진에 가서 좀 쉬었다 오라고 하죠.

[기준 아내 : 당신 요즘 안색을 보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아요. 어머님 성묘도 하실 겸 좋잖아요. 저도 같이 갔으면 좋겠지만 이번 주주총회 작전에는 아버님 곁에 제가 꼭 붙어서 다져야 할 것 같으니 푹 쉬시다 오시면 대 제약 주식회사의 전무 이사님 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밤 열차에 몸을 싣고 무진으로 향하는 기준.

창가에 자신의 초라했던 과거 모습이 떠오릅니다.

[기준 : 풍부한 것이라고는 뜨거운 태양과 숨 막히는 안개와 가난에 쪼들려 삐뚤어진 마음들뿐. 자라날 때 나의 가장 큰 소원은 무진을 떠나서 사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그 소원을 조금 성취했지만, 그렇지만 타향에서의 성공에 때때로 나는 실패했고 무언가 인생을 새로이 설계해야 할 기회에 부닥치고 말았다.]

사실 기준에게 무진은 병역기피자이자 폐병 환자로 고통스러운 젊은 시절을 보냈던 곳입니다.

[기준 모 : 아이고 야. 민수가 죽었다는 통지가 왔대. 너도 나갔으면 큰일 날 뻔했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품고 있는 고향 무진.

거기에서 안식을 취하고자 하는 기준의 의도는 처음부터 모순에 빠집니다.

이런 가운데 기준은 고향에서 세무서장을 지내고 있는 중학 동창 한수의 집을 찾아갑니다.

[기준 : 일심...여기다 한 자 더 새겨 넣지 그래. 고진감래라고 말이야.]

[한수 : 잊어버리지도 않고 들춰내는군. 어서 앉아라.]

화투판이 벌어진 한수의 집에서 한 젊은 여성이 기준의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이 지역 학교에 부임한 음악 교사 인숙.

[기준 : 처음 뵙겠습니다.]

[인숙 : 하인숙이에요.]

뒤이은 거나한 술자리에서 성악을 배운 인숙은 유행가를 부릅니다.

[인숙 :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뭔가 당돌해 보이는 인숙에게 묘한 호감을 갖게 되는 기준.

술자리가 끝난 뒤, 마침 두 사람은 어둠이 내린 시골 길을 함께 걷게 됩니다.

[인숙 : 처음 뵙는데도 뭐라고 할까요. 서울 냄새가 난다고 할까.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이상하죠?]

[기준 : 유행가.]

[인숙 : 네?]

[기준 : 유행가는 왜 부르십니까? 성악 공부한 사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유행가를 멀리 한다는데요.]

[인숙 : 그 사람들은 항상 그것만 부르라고 하거든요.]

[기준 : 부르지 않으려면 거길 안가면 될 거 아닙니까?]

[인숙 : 정말 앞으론 가지 않을 작정이에요. 너무너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에요.]

[기준 : 그럼 여태까지는 왜 놀러 다녔죠?]

[인숙 : 심심해서요.]

기준과 인숙이 밤길을 걸으며 나누는 이 대화는 영화 '안개'의 주제 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속물스러움에 대한 혐오, 권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 이 두 가지 감정이 뒤엉켜 있는 곳이 바로 무진이라는 시공간인 것이죠.

[인숙 : 앞으로 오빠라고 부를테니 절 서울로 데려가 주시겠어요?]

[기준 : 서울에 가고 싶소?]

[인숙 : 아!]

[기준 : 무진이 싫은가요?]

[인숙 : 미칠 것 같아요. 정말 미칠 것 같아요.]

무진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인숙은 과거 기준이 가졌던 욕망의 투영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기준은 결국 인숙과의 불장난 같은 사랑에 빠져들고 말죠.

[기준 : 몇 해 전 나는 이 바닷가에서 더러워진 나의 폐를 씻어내고 있었다.]

김수용 감독은 인물을 멀찌감치 찍는 롱쇼트를 자주 구사하면서 시적인 영상 미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지역은 전라남도 순천인데요.

원작 소설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의 눈과 김수용 감독의 카메라에 비친 순천만은, 짙은 안개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당대인들의 방황과 공허를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권태가 충돌하는 도돌이표 인생의 짧은 한 페이지.

영화 '안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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