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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개척자들 2부 한민족의 후예, 대륙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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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4-10-19 21:01
폭발력 있는 가창력과 화려한 퍼포먼스!

힘과 열정이 넘치는 무대에 관객들은 열광합니다.

러시아인들의 심금을 울리며 일약 국민가수로 떠오른 아니타 최!

그는 고려인 3세입니다.

[인터뷰:아니타 최, 러시아 국민가수]
"결국 가수가 되었죠.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어요. 항상 스타가 되길 바랐어요."

브라운관을 꽉 채우는 카리스마,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매일 오후 카자흐스탄 시청자들에게 생생한 뉴스를 전달하는 간판 앵커 블라디슬라브 최입니다.

[인터뷰:블라디슬라브 최, 카자흐스탄 국영방송 뉴스 앵커]
"생방송으로 뉴스 소식을 알리는 것이 마음에 들었어요."

강한 의지와 열정으로 소수 민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넓은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개짓 하는 젊은이들!

그들은 바로 한민족의 후예입니다.

모스크바 시내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아르바트.

허름한 담벼락 위로 낙서가 빼곡히 그려져 있습니다.

어지로운 낙서 사이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젊은이!

80년대 록 음악으로 구 소련의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이었던 빅토르 최입니다.

빅토르 최는 러시아 특유의 우울함과 아름다운 선율, 저항적이면서도 자유를 갈망하는 노래로 소비에트 전역의 젊은이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를 추모하는 벽에는 팬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루슬란, 카자흐스탄 관광객]
"빅토르 최는 대단한 가수입니다. 힘든 시절 그의 노래는 온 국민에게 힘이 됐죠."

소비에트 연방시절 문화대통령으로까지 불렸던 빅토르 초이는 여전히 러시아인들에게 전설이자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수많은 고려인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줬던 빅토르 초이의 음악 혼은 지금 또 한명의 고려인 가수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데요.

바로 러시아 국민가수 아니타 초이입니다.

모스크바 도심에 있는 한 녹음실.

청아하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작은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올해 43살, 고려인 3세 아니타 최입니다.

우리말이 서툴긴 해도 푸근한 미소에, 생김새까지 우리와 꼭 닮았습니다.

얼마 전 앨범을 발표하고 지금은 공연 연습으로 분주한데요.

노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곡도 자신이 직접 쓰는 싱어 송라이텁니다.

[인터뷰:아니타 최, 러시아 국민가수]
"다양한 장르의 곡을 씁니다. 팝, 팝 록, R&B 등을 쓰죠. 팝 록을 주로 다루긴 합니다."

지난 1997년 여름, 아니타 최는 ‘팔룟’이란 노래로 러시아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폭발력 있는 가창력과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노랫말은 단번에 러시아 젊은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많은 음악팬들은 성이 같으면서도 노래실력이 뛰어난 그녀를 보며 빅토르 최를 떠올렸습니다.

[인터뷰:아니타 최, 러시아 국민가수]
"많은 분들이 제가 빅토르 초이의 동생이나 부인이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한국에는 ‘최’씨 성이 많다고 얘기해도 빅토르 초이 팬들은 그 말을 잘 안 믿어요."

아니타 최 씨는 데뷔 6개월 만에 러시아 음반 판매 3위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또 연이어 선보인 곡들까지 히트를 치며 30대 젊은 나이에 '공훈 예술가' 칭호까지 얻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인터뷰:안드레이, 음악 프로듀서]
"정말 훌륭하고 대단한 가수입니다. 가수로서 모든 분야를 소화할 수 있고 특히 무대 위에서 빛이 나는 가수입니다."

아니타 최 씨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보였는데요.

춤과 연기, 작곡 등에 두루 능해 초등학교 시절 모스크바 예술창작 경연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는 등 각종 상을 휩쓸었습니다.

[인터뷰:아니타 최, 러시아 국민가수]
"어머니 덕분이에요.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음악 활동반과 음악 학교, 공연장에 데리고 다니셨지요. 교육적인 기회를 많이 제공해 주셨어요."

이제 가수로 데뷔한 지 어느덧 17년째 접어들었는데요.

땀과 열정의 결실들은 그녀의 사무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니타 씨는 러시아 대중음악계 가장 권위 있는 상인 '그라마폰' 트로피를 2006년부터 무려 8년동안 잇따라 거머쥐었습니다.

이런 상 못지않게 소중한 것이 또 있습니다.

아니타 최 씨가 고이 간직한 한 장의 사진.

삶의 뿌리인 외할아버지입니다.

지난 1921년 외할아버지는 지겨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 땅을 밟았습니다.

다른 고려인이 그렇듯이 이후 가족들은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됐고 다시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고난의 세월을 겪었습니다.

억압과 가난 속에서도 억척스럽게 삶을 개척한 가족의 이야기는 아니타 최씨가 꿈을 포기하지 않은 힘이었습니다.

[인터뷰:아니타 최, 러시아 국민가수]
"(고려인이라는 게) 당연히 자랑스럽죠. 많은 사람들이 저를 관심 있게 지켜봤어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겼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외모만 다른 게 아니라 재능도 남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어요."

아니타 최씨는 짬짬이 시간이 날 때마다 공원을 찾습니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녀에게 공원은 삶의 활력소이자 영감의 원천인데요.

요즘 머릿속에는 2주 뒤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 공연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바쁜 스케줄에 하루 24시간이 부족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무대 연출을 자청했습니다.

[인터뷰:아니타 최, 러시아 국민가수]
"저에게도 영광스러운 자리이고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번 공연을 준비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최근에 언제 잠을 잤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입니다."

공연이 끝나면 한국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계획도 세워뒀습니다.

마지막 남은 꿈을 위한 첫 걸음이라네요.

[인터뷰:아니타 최, 러시아 국민가수]
"제 꿈 중에 하나는 한국에 가는 것입니다. 가서 완벽한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모국의 무대에서 울려 퍼질 아니타 씨의 아리랑,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중앙아시아의 최대 자원부국인 카자흐스탄에는 러시아 못지않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젊은 고려인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시시각각 변하는 카자흐스탄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는 뉴스 앵커가 있는데요.

블라디슬라브 초이를 지금부터 만나보시죠.

수도 아스타나 시내에 있는 국영 방송국.

뉴스 시작을 30분 앞 둔 뉴스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조용히 기사를 읽고 있는 친근한 외모의 남성.

이 방송국 뉴스 앵커이자 고려인 4세인 블라디슬라브 최입니다.

뉴스 시작 5분 전.

스튜디오와 부조정실 스탭들의 움직임이 빨라집니다.

이 때는 노련한 앵커인 블라디슬라브 씨도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오늘의 첫 뉴스는 카자흐스탄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 사고 소식!

30분 짜리 종합 뉴스지만 긴장감 높은 생방송이라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취재 기자로 일했던 그는 1년 전 뉴스 앵커가 됐습니다.

[인터뷰:블라디슬라브 최, 국영방송 ‘하바르’ 뉴스 앵커]
"앵커는 또 다른 직업인 것 같아요. 기자는 밖에서 취재를 하지만 생방송을 맡은 앵커는 책임감이 더 느껴져서인지 전혀 다른 느낌이에요."

지난 2001년 블라디슬라브 씨는 지방 방송 기자로 언론계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는 고려인답게 카자흐스탄에서 흔치 않은 한국 전문가로 통합니다.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향한 호기심과 애정이 취재의 원천이 되고 있는데요.

지난해에는 카자흐스탄 방송 사상 처음으로 북한을 취재한 특집물을 방송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인터뷰:재이느 알리베고브, 국영방송 ‘하바르’ 뉴스 총괄본부장]
"블라디슬라브 초이는 한국에 관해서는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취재 후 흥미로운 특집을 만들었고 시청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스타나 구도심에 있는 한국 문화원.

아무리 바빠도 블라디슬라브 씨가 일주일에 두 번 꼭 빼놓지 않고 찾는 곳입니다.

이 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요.

지난 7월 특집 취재를 위해 한국 대통령을 만나고 온 뒤로는 한국어 공부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습니다.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한류에 푹 빠진 10대 소녀들이 많은데요.

어린 학생들 틈에서 공부하는게 쉽지 않을 것도 같지만 블라디슬라브 씨의 열정만큼은 뒤지지 않습니다.

[인터뷰:류 자 미, 아스타나 한국문화원 한국어 교사]
"발표도 열심히 하고요. 쓰기 연습을 시키면 제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문장을 쓰기도 하고 질문을 하게 되면 블라디슬라브 같은 경우는 대답을 열심히 잘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언젠가 한국에서 특파원으로 일하고 싶은 꿈도 생겼습니다.

[인터뷰:블라디슬라브 최, 국영방송 ‘하바르’ 뉴스 앵커]
"한국어를 잘 하면 나중에 한국에서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스타나 시내에 있는 한 아파트.

블라디슬라브 씨 부부와 개구쟁이 세 아들이 살고 있는 보금자립니다.

역시 고려인 4세인 올가 씨와는 12년 전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요.

그 당시 올가 씨는 한국 문화원의 한국어 선생님이었습니다.

한국어 선생님과 학생이 만났으니 '한국'이 두 사람을 연결해 준 셈이죠.

[인터뷰:올가 초이, 블라디슬라브 씨 아내]
"한국어를 많이 배우고 싶고 한국어를 많이 좋아한다고 했어요.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핑계로 올가 씨를 만나려 했던 건 아닐까요?) 네."

세대는 바뀌어도 고유의 입맛은 바뀌지 않는 모양입니다.

블라디슬라브 씨의 식탁에는 한국 음식이 빠지지 않습니다.

주방에도 된장, 쌈장, 멸치, 김 등 우리 먹을거리가 가득한데요.

한식에 익숙한 초등학생 큰 아들은 시래기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뚝딱 비웁니다.

[인터뷰:블라디슬라브 최, 국영방송 ‘하바르’ 뉴스앵커]
"고려인들과 한국인들의 음식은 거의 비슷하죠. 저도 예전에 한국음식을 먹는 재미에 할머니 댁에 갔었어요."

아이들도 한민족의 뿌리를 잊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에서일까요?

얼마 전부터는 큰아들과 둘째 아들에게는 한국 전통 무예인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영락없는 철부지였는데 태권도 사범의 구령에 맞춰 발차기를 하는 모습이 제법 의젓합니다.

블라디슬라브 씨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흐릅니다.

[인터뷰:블라디슬라브 최, 국영방송 ‘하바르’ 뉴스 앵커]
"저는 아들들에게 항상 한국인임을 강조해요. 자녀들이 태권도도 열심히 하고 잘 배워서 훌륭한 국제 전문가, 예술가가 되어 저희 선조들의 명성에 해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블라디슬라브 씨가 고려인 친구들과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젊은 고려인들은 카자흐스탄에서도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하는 일은 다르지만 고려인이라는 공감대가 이들을 끈끈하게 이어 줍니다.

유명 뉴스 앵커인 블라디슬라브 씨는 친구들에게도 큰 자랑거립니다.

[인터뷰:따냐 김, 고려인 4세(통역사)]
"아주 성공적이고 앞으로도 전망도 있고 블라디슬라브 씨가 하는 일이 정말 재미있기도 한 것 같고. 좀 부러워요."

젊은 고려인들이 모일 때면 으레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국 이야긴데요.

한국은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로서 살고 있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뿌리를 설명해줄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들에게 한국은 언젠가 가봐야 할 마음의 고향같은 곳입니다.

[인터뷰:예까체리나 양, 고려인 4세(회계사)]
"우리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인터뷰:안젤라 한, 고려인 4세(변호사)]
"젊은 세대가 한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배우려 노력하고 한국인과 하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꿈과 열정으로 대륙을 개척해 나가는 젊은 고려인들!

150년 전 선조들이 이국 땅에서 겪었던 고난의 역사는 이제 후손들을 거치며 희망의 불꽃이 돼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한민족의 저력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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