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사춘기 소년과 노인이 한몸에 있는 사람"[인터뷰]

"최민식, 사춘기 소년과 노인이 한몸에 있는 사람"[인터뷰]

2017.11.19. 오후 1:24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 "최민식, 사춘기 소년과 노인이 한몸에 있는 사람"[인터뷰]_이미지
  • "최민식, 사춘기 소년과 노인이 한몸에 있는 사람"[인터뷰]_이미지2
  • "최민식, 사춘기 소년과 노인이 한몸에 있는 사람"[인터뷰]_이미지3
AD

정지우 감독은 금기의 관계, 그 사이 미세한 공기의 파동을 스크린에 매혹적으로 담아왔다. 영화 '해피엔드'의 불륜, '사랑니'의 학원강사와 고등학생의 사랑, '은교'의 노인과 소녀의 이야기까지. 그가 만지고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은 늘 짙은 여운을 안기며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놨다.



그런 그가 영화 '침묵'으로 돌아왔다. 최민식과 '해피엔드' 이후 18년 만의 조우로 기대를 모은 '침묵'은 모든 것을 이룬 남자가 어느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맞닥뜨렸을 때 겪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일견 치열한 두뇌 싸움이 필요한 법정 스릴러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인물 사이 깊은 감정의 파고가 녹아들었다. 법정물 탈을 쓴 멜로 영화다.



영화의 흥행 성적표는 아쉽지만, 두 번의 반전 끝에 안긴 감동은 '역시 정지우', '역시 최민식'을 외치게 만든다. 스릴러와 히어로가 장악한 극장가에서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묵직한 감정의 후유증이다.



■ 다음은 정지우 감독과 일문일답



-법정 스릴러인 척 하는 사랑영화다.



나는 꽤 비관적인 사람이지만,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사람을 신뢰하고 믿는 태도인 것 같다. 회복하려고 하는 것, 더 나아지려고 하는 것. 연인한테든 자식한테든 말이다. 그것에 이름을 붙이면 사랑이 아닐까.



-최민식과는 '해피엔드' 이후 18년 만에 재회했다. 그 이전엔 함께 작업할 기회가 없었나.



오랜만에 함께 했는데도 여전하더라. 좋은 의미다. '침묵' 이전에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 불발됐다.



-최민식의 중년 멜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물론. 최민식은 사춘기 소년의 떨림과 죽을 고비 세 번은 넘긴 칠십 노인이 한몸에 있는 배우다. 그렇기 때문에 '침묵'은 물론이고 노년 멜로도 가능한 배우라고 본다.(웃음)




-두 번의 반전이 드러나기 전까지, 임태산(최민식)의 우격다짐 태도가 종종 웃음을 만들어낸다. 의도한 부분인가.



임태산이 웃기려고 그 대사를 내뱉은 것은 절대 아니다. 임태산은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본인의 선택에 엄청난 확신을 갖는다는 거다. 그러니 중간 과정 없이 결론부터 빨리 말해버리는 거지. 잘 살펴보면, 영화 속 인물들이 임태산을 존경하지 않는다. 반말하고 대뜸 욕하는 식이다.



-중반까지 전개가 다소 엉성하다가 후반부 들어 몰아치는 영화다. 반전에 힘이 있으려면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했다.



내게는 최민식이라는 치트키가 있었잖나. 배우들도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줬고. 반전이 관객을 움직이지 못할까 불안하진 않았다.



-박신혜는 브라운관에서 보여주지 않았던 미묘한 표정 변화가 있더라. 항간에는 정지우 감독의 디테일한 연기 주문에 박신혜가 많이 힘들어 했다던데.



감독이 배우가 뭔가를 해낼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게 좋은 의미이기도 하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한계를 돌파해야 한다는 의미이니 분명 힘들 것이다. 많이 착각하는 게 최민식 선배님은 딱 한 번 찍고 오케이(OK)컷이 나올 것 같다는 건데 전혀 아니다. 선배님도 끊임없이 탐색하신다. 매번 달라지고, 매번 다른 에너지로 돌파하신다. 박신혜도 마찬가지다. 임태산을 향해 '넌 이제 망했어'라고 하는 장면에서의 눈빛과 움직임은 영화라는 매체에 박신혜가 충분히 빠졌음을 보여준 증거다.




-이하늬는 캐스팅 1순위였나. '침묵'이 거둔 성과 중 '이하늬의 재발견'을 빼놓을 수 없다.



솔직히 1순위는 아니었다. 이하늬가 이 정도로 연기 갈증이 있는지 몰랐다. 최민식과 요트 장면에서도 대단했다. 최민식 선배가 시나리오와 조금 다른 대사를 던져도 그걸 더 풍성하게 받아치더라. 임태산이 "고맙다"라고 하자 "나 왜이렇게 서운하냐"라는 대사는 이하늬의 애드리브였다. 최초의 시나리오보다 한 단계 올라선 순간이었다. 임태산과 유나의 관계가 돈과 육체적 관계가 아닌, 다른 층위로 올라간 것을 보여주는 신이다.



-류준열은 신인 시절 보여줬던 똘기 충만한 연기를 오랜만에 펼쳤더라. '소셜포비아'의 확장판을 보는 듯했다.



맞다. 그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반가울 것이다. 류준열은 말과 말 사이에 아주 촘촘한 뭔가가 있다. 그 미묘한 타이밍을 잡아서 편집하는 게 굉장히 힘들다.(웃음)



-이수경의 에너지도 굉장했다. 그 어떤 배우와 붙어도 기죽지 않더라. 심지어 최민식 앞에서도.



'침묵'의 모든 배우들을 놀라게 한 배우다. 다들 '쟤는 뭐하는 애냐'라는 반응이었다.(웃음) 어린 나이에 그 감정을 어떻게 알고 연기하는지 대단하다. 최민식 선배가 참 예뻐라하는데, 휴식 시간 때 진지하게 관객과의 대화를 하시더라. 학교는 어디냐, 꿈이 뭐냐.(웃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한 영화다.



우리 사회는 어떤 단서를 발견하고 그 주인공을 엄벌할 때 굉장히 빨리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이면에 또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이런 사회 무드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편이다.



-한국사회의 정치적인 사건과도 맞물린 경험인가.



맞다. 정작 신속하게 결정해야 하는 일은 관료적인 이유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누가 무슨 말을 했다'라는 식의 실체적 진실과 거리가 먼 일에는 너무나 빨리 판단을 내린다. 핵심은 못 건드리고 말이다. 평소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용필름 임승용 대표가 '침묵의 목격자' 리메이크를 제안했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에 크게 공감했다.



-차기작은 결정됐나?



고민 중이다. 나는 관계에서 영화를 출발하는 편이다. 그 마음, 그 관계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때, 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을 때 영화로 만든다. 다음 작품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및 영화 '침묵' 스틸


Copyrights ⓒ TV리포트. 무단 전제 -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