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폿@아가씨] 작두 탄 박찬욱…'아가씨 3부작'의 절정(리뷰) ①

[리폿@아가씨] 작두 탄 박찬욱…'아가씨 3부작'의 절정(리뷰) ①

2016.05.26. 오전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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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상간(올드보이), 남북관계(공동경비구역 JSA), 뱀파이어가 된 신부(박쥐)…. 늘 금기의 영역에 현미경을 들이민 박찬욱이 이번엔 동성애로 시선을 옮겼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모호필름·용필름 제작)는 아름답고, 관능적이고, 놀라울만치 유머러스한 영화다.



■ 한 개의 베드신, 두 개의 시점



'아가씨'는 영국의 소설가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3부작인 '벨벳 애무하기', '끌림', '핑거 스미스' 가운데 '핑거 스미스'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의 빅토리아 시대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옮겨졌다. '아가씨'는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그의 하녀 숙희(김태리), 사기꾼 백작(하정우), 아가씨의 후견인 코우즈키(조진웅) 네 사람이 서로를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총 3부로 나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많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아가씨'는 주인공 네 사람의 엇갈린 목적과 비밀, 사랑과 질투가 팽팽하게 충돌하는 과정을 숨 막히게 유려한 미쟝센과 관능적인 에너지, 박찬욱 특유의 탐미적인 시선으로 그려냈다.



시선에 따라 미묘하게 표정이 바뀌는 아가씨의 초상화처럼, 다중 시점에 따라 사건이 달리 보이는 구성은 반전의 내용을 알고 봐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베드신 역시 마찬가지. "영화의 구성상 두 번 이상 볼수록 또 다른 재미가 보이는 영화"라는 박찬욱 감독의 말에 공감하는 바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의 재미가, 알면 아는 만큼 새로이 보인다는 점에서, 세 가지의 시점으로 하나의 사건을 풀어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떠오른다.




■ '아가씨' 3부작의 절정..동성애, 그리고 카타르시스



'아가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여성에 대한 박찬욱 감독의 애정 넘치는 시선이다. 전작들에서도 여성 캐릭터에 주도적 역할을 부여해온 박찬욱(그의 영화에서 여배우들이 새롭게 발견되고 재평가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은 '아가씨'에서 여성을 향한 존경에 가까운 마음을 담아냈다. 전작인 영화 '스토커'와 '아가씨'를 여성이 스스로의 욕망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순간을 담아낸 '아가씨 3부작'으로 분류한다면, 이번 작품은 분명 그 정점에 해당한다.



이 영화에서 남성들은 대체로 지질하고 한심하다. '아가씨'의 남자들은 폭력적이거나, 변태적이거나, 말더듬이거나, 죽기 직전까지도 그곳(?)의 안전에 안도하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애기 장난감 같은 X대가리", "현실세계의 여자는 강제로 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라고 일갈하는 아가씨들의 모습은 통쾌함을 안긴다. 후반부 히데코와 숙희가 문제의 서책들을 갈기갈기 찢는 장면은, 감독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개인의 스캔들이 여성 해방 담론까지 확장되는 순간이다. 박찬욱 감독은 칸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위대함에 깨닫게 된다"고 전했던 바다.




■ 박수받아 마땅한 김민희·김태리



단연 김민희, 김태리의 영화다. 김민희의 얼굴 잔근육까지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는 표정 연기나 극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는 역대 그가 보여준 연기 가운데 최고다. 특히 기모노를 입고 등장하는 낭독회 장면은 그 아우라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방언의 뉘앙스까지 미묘하게 살린 일본어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만개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김태리는 순수와 관능, 차분함과 당찬 기운을 동시에 내뿜는다. 강혜정, 김옥빈을 재발견한 박찬욱 감독의 안목은 역시나 탁월했다. 히데코와 백작, 그리고 제 본 마음 사이를 오가며 속고 속이는 복잡다난한 캐릭터를 가뿐히 소화했다.



김민희와 펼친 베드신도 그 온몸을 던진 열연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글과 말로 성애를 배운 두 여성이 처음으로 촉감과 체온을 느끼고 서로를 탐하는 베드신은 야하다기보다 아름답게 그려졌다. 사디스트적이고 변태적인 쾌락을 즐기는 극중 또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히데코와 숙희의 정사는 배려와 부드러운 언동으로 채워진다.



이외에도 짧지만 강렬하고 섬뜩한 존재감을 발산한 김해숙, 문소리와 히데코의 아역 조은형의 연기도 박수쳐주고 싶을 만큼 완벽하다.




■ 일제시대 고민 부재의 아쉬움



이 영화에서 1930년대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고민은 큰 관심사가 아니다. 동양식과 서양식이 공존하는 미쟝센을 발현하기 위해 선택된 소재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인상이다. 원작 '핑거 스미스'가 진보와 남녀차별, 기술 발전과 빈부격차가 공존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모순을 두 여성의 사랑으로 대변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에 대해 박찬욱 감독은 "한국 감독이 일본적인 요소, 특히 식민지 시절을 그릴 땐 복잡한 감정을 갖게 마련이다. 일제시대 인물들의 내면적이고 개인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영화가 나올만하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일문의 도식적 질문에서 벗어나 독특한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아가씨'는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다. 144분, 청소년 관람불가, 6월 1일 개봉.



김수정 기자 swandive@tvreport.co.kr 사진=영화 '아가씨' 포스터 및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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