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리 5형제’ 스릴러+코미디 짬짜면 영화

‘덕수리 5형제’ 스릴러+코미디 짬짜면 영화

2014.11.30. 오전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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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심오한 철학도 간절한 메시지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102분 동안만이라도 고단하고 팍팍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오락 마취제 영화로서의 기능에만 충실할 뿐이다. 간혹 아찔한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몇몇 장면에선 생각보다 크게 웃게 되고 후반부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스릴러까지 접하게 돼 마치 짬짜면을 맛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덕수리 5형제’(전형준 감독)는 12월 극장가 빅 마켓이 열리기 전 반짝 오픈하는 새벽 도깨비 시장 같은 영화다. ‘국제시장’ ‘기술자들’ 같은 겨울방학 텐트 폴 영화들이 닻을 내리기 전 틈새시장을 노리고 개봉하는 가벼운 체급의 코미디다. 그런데 이 영화, 실력파 배우들의 활약 덕분인지 볼수록 물건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입장료가 아까울 만큼 수준 이하는 아니다.

웃기자고 만든 영화에 견고한 기승전결이나 짜임새 있는 서사 구조, 플롯에 대한 질문과 요구는 예의가 아니다. 그 보다는 얼마나 최소한의 개연성을 갖췄느냐, 또 웃음의 강약 조절은 얼마만큼 잘 안배돼 있는지, 과감히 개복한 뒤 제 시간에 수술을 마치고 잘 봉합했는지 등이 관건일 텐데 ‘덕수리 5형제’는 이 점에서 모두 나쁘지 않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폭력 장면과 모방범죄가 우려돼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부모의 황혼 재혼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섯 남매들이 어쩌다가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기게 되면서 끈끈하게 연대하게 된다는 다소 해묵은 스토리. 사건의 축이 되는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과 억울하게 피해자가 된 부모, 파키스탄 이주노동자를 맥거핀으로 활용한 감독의 재치가 신선했다.

각각 윤리 교사와 경찰 지망생인 수교(윤상현)와 수근(황찬성)은 내성적인 형제로 3류 양아치 기질이 다분한 동수(송새벽), 현정(이아이)과 법적으로 한 가족이 된다. 서로를 내키지 않아하고 경멸하는 건 양쪽 다 마찬가지이지만 동수, 현정이 드러내놓고 상대를 괄시하는데 비해, 수교와 수근은 화조차 쉽게 못 낼 만큼 극 소심한 A형 남자들이다. 만나기만 하면 늘 으르렁대던 네 사람은 부모의 실종과 중학생 막둥이 수정(김지민)을 구하기 위해 난생처음 단합해 모처럼 무서운 형제의 힘을 보여주게 된다.

모든 배우들이 각자 임무를 완수했지만 특히 송새벽과 이광수는 우리가 여전히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는 배우임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 다작으로 이미지가 소진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받는 송새벽은 3류 건달과 소녀 감성의 타투이스트를 오가는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해 영화의 중량감을 높였다. 끝까지 진짜 건달인지, 소심한 문신 아티스트인지 헷갈릴 정도로 인물 분석은 물론 이를 발산하는 수위 조절 솜씨까지 예사롭지 않았다.

순박한 박순경 역의 이광수도 표현하기 까다로운 의뭉스런 캐릭터를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알맞은 농도로 연기해냈다. 데뷔작 ‘평양성’ 때부터 감칠맛 있는 연기를 보여줘 기대하게 만들더니 필모그래피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자신만의 유니크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반갑다. 완성도에 비해 흥행이 아쉬웠던 전작 ‘좋은 친구들’에서도 흡입력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머지않아 대형 사고를 칠 배우 중 하나다.

여기에 무사고 정년퇴직을 위해 직무 유기하기 바쁜 파출소장 역의 박충선과 범인 색출에 결정적 단초를 제공하는 ‘촐싹’ 이장으로 나온 윤영걸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동숭동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답게 쿠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실제로 충남 태안군에 있는 덕수리라는 지명에서 제목을 착안했고 예산, 서산 등에서 찍었다.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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