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故신상옥 곁으로"…최은희, 가족+신성일 등★ 오열 속 발인[종합]

"남편 故신상옥 곁으로"…최은희, 가족+신성일 등★ 오열 속 발인[종합]

2018.04.19. 오전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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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故최은희가 영면했다.



19일 오전 9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최은희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고인의 아들인 신정균 감독을 비롯해 가족들과 신성일, 신영균, 문희, 이장호, 최하원 감독, 황기성 영화제작자 등 한국 영화인들이 참석,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줬다.



엄숙한 분위기 속 친지들이 흐느끼는 소리만 새어나왔다. 비통한 표정의 상주 신정균 감독은 그동안의 마음 고생을 느끼게 했다. 이어 고인은 장지로 옮겨졌다.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다.



최은희는 지난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2006년 4월 배우자인 故신상옥 감독을 떠나보낸 뒤 건강이 악화됐다. 별세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번씩 신장 투석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1926년생인 최은희는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입문했으며, '마음의 고향'(1949),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성춘향'(1961) 등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130여편의 작품에 출연한 최은희는 김지미, 엄앵란 등과 함께 1950~60년대 트로이카로 손꼽힌다.



이후 최은희는 1953년 영화 '코리아'를 통해 신상옥 감독과 호흡을 맞췄고, 이듬해 결혼해 영화인 부부가 됐다. 한국의 세 번째 여성감독이기도 한 고인은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등을 연출하기도 했다.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고인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을 살았다. 최은희는 신상옥 감독과 이혼 후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돼 피랍되는 사건을 겪었다. 한국의 한 영화사 홍콩지사장으로 둔간합 북한 공작원에게 당한 것. 신상옥 감독도 같은 해 7월 납북돼 두 사람은 1983년 북한에서 재회했다.



최은희와 신상옥 감독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 '사랑 사랑 내 사랑' 등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두 사람은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 미국 대사관에 진입, 망명에 성공했다. 10년 넘은 망명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귀국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영화감독 신정균을 비롯해 2남 2녀가 있다.



손효정 기자 shj2012@tvreport.co.kr/ 사진=문수지 기자 suji@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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