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가 추억하는 서말구 "야구 참 이상하네"

김용희가 추억하는 서말구 "야구 참 이상하네"

2015.08.13. 오전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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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대호 기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구단주였던 찰리 핀리는 야구계에서 색다른 주장을 한 혁명가이자 몽상가였다. 지명주자 제도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고, 녹색 배트에 주황색 공을 사용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괴짜답게 핀리는 오클랜드 운영에 있어서도 독특한 시도를 여럿 했다. 그 중 하나가 전문 대주자 요원의 영입이었다. 1974년 미국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허브 워싱턴을 대주자로 쓰기 위해 영입했는데, 허브는 2년 동안 105경기 모두 대주자로만 투입됐다. 타석에는 단 한 번도 서지 않았고, 33득점과 31개의 도루를 성공시켰다. 특히 첫 해였던 1974년에는 92경기에 나와 29득점 29도루를 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효율성이었다. 여러 베이스를 돌아야 할 때야 단거리 육상선수의 가치가 빛나겠지만, 도루는 단순히 발만 빨라서는 성공할 수 없다. 투수의 투구동작을 읽어 스타트를 끊어야하고, 슬라이딩 기술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워싱턴은 2년 동안 도루 31개를 성공했지만 17개의 실패도 겪어야 했다. 1974년 월드시리즈에서 견제사를 당하기도 했던 워싱턴은 이듬해 시즌 중 방출됐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도를 했던 적이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한국 100m 기록보유자였던 서말구를 대주자로 영입, 1984년부터 1986년까지 등록선수로 뒀다. 빠른 발을 최대한 활용해 상대를 흔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서말구는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는 못했고, 체력코치 업무를 병행하다가 야구계를 떠났다.

SK 와이번스 김용희 감독은 롯데 원년멤버로 8년 동안 활약했다. 1982년부터 1989년까지 통산 534경기에서 타율 2할7푼 61홈런 260타점을 기록했다. 투수 쪽에서 최동원이라는 불멸의 스타가 있었지만, 타자 쪽에서는 '미스터 올스타' 김용희를 빼놓을 수 없었다.

김용희 감독은 롯데 야구선수 서말구의 시작과 끝을 모두 옆에서 지켜봤다. 그는 "구덕구장 외야쪽 구석에서 경기 전에 계속 뜀박질만 하던 서말구가 기억난다"면서 "그때 코치랑 매일 스타트 끊는 타이밍 잡는 훈련을 했었다. 그런데 단순히 빠르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떠올렸다.

서말구는 동갑내기였던 김용희 감독에게 "야구는 너무 이상하다. 100미터 달리기 할때는 중간에 넘어지면 꼴찌였는데, 야구는 잘 넘어져야 한다. 정말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김용희 감독은 "언제 스타트를 끊어야 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더라. 그래도 서말구가 정말 빠르긴 했다. 도루는 안 돼도, 1루에서 3루까지 뛰는 속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원을 크게 그리며 한 다섯 발자국만 뛰어도 한 베이스는 금방 갔다"면서 웃었다.

육상스타 출신 대주자 서말구는 결국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전문 대주자는 지금도 여전히 활약 중이다. 강명구는 대주자로만 100도루를 채웠고, 1984년 한국시리즈 MVP 유두열의 아들 유재신(넥센) 역시 전문 대주자로 전략적 가치가 높은 선수다. 발만 빠르다고 도루를 잘하는 게 아니라는 건 이와 같은 야구의 역사가 잘 말해준다. /cleanupp@osen.co.kr

<사진> 사직구장 정문 앞에 있는 1984년 우승 당시의 사진. 1군 출전경험은 없는 서말구였지만, '36번'이라는 배번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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