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곱씹을수록 쓴 맛 나는 을(乙)들의 생존기, '7호실'

[Y리뷰] 곱씹을수록 쓴 맛 나는 을(乙)들의 생존기, '7호실'

2017.11.13. 오후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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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곱씹을수록 쓴 맛 나는 을(乙)들의 생존기, '7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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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압구정 로데오 거리 뒷골목, 여기 초라하기 짝이 없는 한 DVD방이 있다. 사장인 두식(신하균 분)이 신혼집 전세금까지 털어 차렸지만 때론 손님보다 직원 수가 더 많은 상황.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는 태정(도경수 분)이 못 받은 월급만 200만원. 영화 '7호실'(감독 이용승, 제작 명필름)은 지극히 현실적여서 더 짠한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사장이라는 직책이 무색하게 두식의 처지는 암울하기 그지없다. 월세 부담에 밤에는 대리운전까지 뛰는 형편. 그런데도 1억원의 권리금과 보증금까지 다 받아 챙겨 나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루빨리 가게를 처분하려는 그가 마침내 후임 자영업자를 찾았을 때, DVD방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한다. 계약일까지 불과 이틀 남은 상황. 두식은 손님이 가장 드문 7호실에 시체를 숨기고 문을 잠근다.

태정 역시 상황은 매한가지. 두달 째 밀린 아르바이트 월급 때문에 오도가도 못한다. 그러던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형으로부터 열흘만 마약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학자금 빚으로 생긴 사채 1800만원을 해결해준다는 달콤한 제안에 태정은 결국 약이 든 가방을 챙겨 7호실로 향한다. 태정이 숨긴 마약을 찾으려는 순간 문을 열려는 자와 닫으려는 자의 기막힌 실랑이가 시작된다.

[Y리뷰] 곱씹을수록 쓴 맛 나는 을(乙)들의 생존기, '7호실'

'7호실'은 제목처럼 공간이 전부인 영화다. 숫자가 상징하는 행운과 달리 그 공간에는 불행의 기운이 엄습한다. 전작 '10분'에서 시간을 활용해 날카롭게 현실을 꼬집던 감독은 이 작품에서 폐쇄적인 DVD방을 무대로 골랐다.

보기만해도 갑갑한 DVD방의 구조는 출구 없는 현실을 그대로 축소했다. 러닝타임내내 그 복잡한 미로에서 나오는데 애를 먹는 두식과 태정의 모습은 권리금, 학자금 등 벽에 가로막혀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제로 감독은 '7호실'에 관해 "자구책을 찾지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두식과 태정은 겉으로는 노사관계 속 갑과 을처럼 보이지만 사회시스템 속 같은 을로서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맞부딪힌다.

물론 그 7번째 방이 처음부터 불행한 공간은 아니었다. 두식은 야채가게를 정리하고 인생역전을 꿈꾸며 7호실을 만들었다. 태정 역시 빚을 털고 뮤지션의 꿈에 한걸음 다가가기 위해 7호실을 찾았을 터. 하지만 결국 벼랑 끝에 놓인 이들의 모습이 행운과 불행이 공존하는 현실을 그대로 닮았다.

[Y리뷰] 곱씹을수록 쓴 맛 나는 을(乙)들의 생존기, '7호실'

영화는 '7호실' 같은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명쾌한 답을 던지지 않는다. 신하균 역시 인터뷰에서 "그 방향성을 같이 고민해 보자는 거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그런 문제의식과 함께"라고 말하며 영화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다만 감독은 그 자구책의 한 갈래로 연대를 제시한다. 두식과 태정이 각각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이 결국 함께 하면서 실마리를 찾기 때문.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도 연대가 이뤄지는 곳은 모두 '7호실' 안이다.

영세한 나머지 홀로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 자영업자 중 70%에 육박하고 시작부터 마이너스인 청춘이 즐비한 현실. 연대라도 가능한 영화 속 상황이 그나마 나은 건 아닌지. 블랙코미디 '7호실'이 던지는 메시지는 곱씹을수록 쓴 맛이 난다.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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