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메이커] '택시운전사' 박은경 대표 "영화 제작, 나를 알아가는 과정"

[Y메이커] '택시운전사' 박은경 대표 "영화 제작, 나를 알아가는 과정"

2017.09.09.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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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 '택시운전사' 박은경 대표 "영화 제작, 나를 알아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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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메이커]는 신뢰와 정통의 보도 전문 채널 YTN의 차별화 된 엔터뉴스 YTN STAR가 연재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메이커스들을 취재한 인터뷰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한 이때 창의적인 콘텐츠의 수요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수요를 창출하는 메이커스들의 활약과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 여덟 번째 주자는 [1000만] 메이커 영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의 제작사 더 램프 박은경 대표입니다.

'택시운전사'의 질주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1000만명이 넘는 관객을 태우고 광주로 향했다. 올해 첫 천만 영화에 등극했음은 물론, 9일까지 1200만명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10위를 기록하는 등 놀라운 성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박은경 대표는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면서도 "송강호 선배님의 힘이 컸다. 또 관객들이 이야기에 공감을 해준 거 같다"고 영화의 흥행 이유를 짚었다.

"많은 분들의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줬다. 시대물이긴 하지만 꼭 시대에 국한되지 않으려,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 물론 아픈 역사를 다뤘다. 힘든 이야기일 수 있지만 지금의 이야기로 잘 받아들여준 게 아닐까한다."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한 '푸른 눈의 목격자'인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제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숱하게 영화화된 소재지만 '택시운전사'는 외국인과 서울인 등 외부인의 시선으로 광주의 모습을 그려 신선함을 더했다.

정겨운 이웃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갔고, 그 참상은 꽁꽁 숨겨졌다. 외지인인 독일 기자와 서울의 한 택시운전사는 광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메시지는 현 시대에 울림을 줬다. 여기에 송강호 유해진 류준열 토마스 크레취만 등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지며 올해 최고의 흥행작에 등극할 수 있었다.

박 대표는 2003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한 위르겐 힌츠페터가 자신을 광주까지 데려다준 택시운전사 김사복을 잊지 못한다는 기사를 2014년 접한 뒤 영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영화 '맨발의 꿈' 촬영을 위해 동티모르 촬영장에 간 적이 있다. 그때 현장에 칼을 든 괴한이 나타났는데, 도망을 쳤다. 기사를 보니까 그 당시 기억이 떠올랐다. 두려워도 현장을 정확히 목도하고 맞서는 게 힘든 선택이지 않은가. 힌츠페터와 김사복씨의 행동이 굉장히 큰일이라고 느껴졌다."

[Y메이커] '택시운전사' 박은경 대표 "영화 제작, 나를 알아가는 과정"

박 대표는 힌츠페터를 만나기 위해 직접 독일로 찾아갔다. 그는 "힌츠페터의 의견을 묻는 것도 중요했지만, 일단 한 번 만나보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 영화 말미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힌츠페터가 '김사복을 꼭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는 인터뷰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당시 박 대표가 독일에서 찍은 힌츠페터의 모습이다.

"힌츠페터 부부의 집 대문에 태극기를 걸려있었다. 집을 찾기가 힘들 거 같아서 마당에 걸어놨다고 했다. 집 안에 들어서기 전부터 울컥했다. 직접 사과파이를 구워주기도 했다. 굉장히 편안했다. 사실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영화와 관련해서는 미리 내용을 전달한 상태였다. 본인도 보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광주 시민에게 큰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줬다. '김사복씨를 만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어봤고, 작은 카메라로 그 모습을 담았다. 영화에 넣어야겠다고 한 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영화에 넣게 되었다. 우리가 힌츠펜터를 본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송강호는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박 대표에게 "진짜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했다.

"지인이 시립도서관에서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책을 빌리려고 했는데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 다들 빌려간 거다. 많은 분들이 광주 망월동에 있는 힌츠페터 묘소에도 들린다고 들었다. 작지만 큰 행동들이다. 엄청난 책임감이나 의무감으로 시작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을 하고 있다. 흥행을 떠나 또 다른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다."

박 대표는 쇼박스에서 '괴물'의 마케팅을 담당하며 송강호를 만났다. 제작자와 배우로서의 만남은 또 달랐을 터. 송강호는 '택시운전사' 출연을 한 차례 거절했지만, 처음부터 송강호만을 생각했던 박 대표는 그를 기다렸다.

"송강호 선배님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도 잘 해주고 따뜻하다.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연기에 말할 것도 없고. 영화를 같이 만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내가 지금 송강호란 있는지 극 중 인물인 김만섭이랑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tvN '응답하라 1988'과 영화 '소셜포비아'를 통해 알게 된 류준열도 박 대표가 눈여겨봤던 배우였다. 그는 "난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였다. 그런데 '응답하라 1988'에서 류준열이 남편이 아니라 화가 났다"고 웃었다.

"신기하고도 감사했다. 송강호 유해진 류준열 토마스 크레취만 등 모두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캐스팅을 제안했고, 함께할 수 있었다."

[Y메이커] '택시운전사' 박은경 대표 "영화 제작, 나를 알아가는 과정"

박 대표는 제일기획, IBM을 거쳐 2003년 쇼박스에 입사해 마케팅과 투자 업무를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웰컴 투 동막골' '도둑들' 등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2012년 더 램프를 차린 박 대표는 '동창생'(2013) '쓰리 썸머 나잇'(2014) '해어화'(2015)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고 네 번째 영화인 '택시운전사'로 대중들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다.

"제작자가 원래의 꿈도 아니었고, 일하면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우연하게 '제작을 해보지 않겠나?'라는 제안을 받았다. 큰 결정인데 의외로 쉽게 했다. 이상하리만큼 쉬웠다. '이게 기회인가'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다. 잘 모르고 시작하다보니까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아! 여전히 겪고 있긴 하다.(웃음)"

영화 마케팅과 투자 그리고 제작까지. 박 대표는 어떤 큰 그림을 가지고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다들 내가 엄청난 빅픽쳐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의 일을 잘해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어떤 영화를 하고 싶다'고 지금 마음을 먹으면 시나리오가 나오기까지 적어도 2년이 걸린다. 오늘 하루를 논다면, 만약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내면 2년 뒤의 나는 할 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가 쌓이고 인연들이 쌓여야지 영화가 나온다. 열심히 살다보면 5년 뒤 즈음에는 또 다른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을까?"

회사에 소속된 직원의 시선이 아닌 제작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다보니 본인이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잘 만들 수 있는지, 아닌지를 알게 되어가고 있다. 박 대표는 영화 제작에 대해 "끊임없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한 뒤 "나를 들여다보면 스스로를 인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차기작은 또 다시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모든 말들을 모아,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말모이 작전'을 소재로 한 조선어학회의 얘기다. '택시운전사'의 시나리오를 쓴 엄유나 작가의 연출 데뷔작이다.

"사실 기획을 한다고 모든 영화가 제작까지 이어지는 건 아니다. 버티기 힘들 수도 있다. 제작자가 하는 일은 영화가 완성되기 위해 끊임없이 애정을 주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본인이 힘들다. 지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애정을 줘야 한다."

YTN Star 조현주 기자 (jhjdhe@ytnplus.co.kr)
[사진출처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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