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리뷰] '아이캔스피크' 희극의 목소리로 비극의 역사를 조명

[Y리뷰] '아이캔스피크' 희극의 목소리로 비극의 역사를 조명

2017.09.09. 오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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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리뷰] '아이캔스피크' 희극의 목소리로 비극의 역사를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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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크게 2가지가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화려한 휴가’처럼 당사자를 통해 참혹한 실상을 그대로 옮긴 정공법이 있는가 하면, ‘택시운전사’와 같이 관찰자의 시각을 강조한 측면 접근도 가능하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 제작 영화사시선)는 후자에 가깝다. 위안부 문제를 다뤘지만 고증만을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극 중 위안소에서의 참상을 그리는 장면은 119분의 러닝타임 중 10분 남짓. 그동안 일제의 만행을 재현해 시대의 아픔을 전달하고자 했던 타 영화와는 다른 신선한 접근이다.

이야기는 일년 내내 민원을 넣는 탓에 구청 블랙리스트 1호에 오른 시장 상인 나옥분(나문희 분)의 등장과 함께 시작한다. 다양한 민원으로 새로 부임한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 분)를 괴롭게 만든 이 할머니는 급기야 민재를 따라다니며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 상극의 캐릭터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낄 무렵, 옥분이 영어를 배워야만 했던 이유가 밝혀지며 영화는 변곡점을 돈다.

[Y리뷰] '아이캔스피크' 희극의 목소리로 비극의 역사를 조명

소재가 가진 무거움에도 상극인 두 주인공이 만드는 유쾌한 웃음, 주변 인물과의 에피소드는 관객을 뻔하지 않게 역사의 현장으로 초대한다. 비극의 역사는 희극을 만나 가혹하지 않게, 허나 강력하게 다가온다. 덕분에 그 과정은 결코 뻔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김현석 감독이 “할머니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다”고 밝혔듯, 영화는 옥분을 바라보는 변화된 주변인들의 시각에 집중한다. 자연스럽게 젖어 드는 감동과 영화 같지 않은 현실에 대한 갑갑함은 관객 역시 주변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일부기에 가능하다.

김 감독의 코미디 활용법은 광주항쟁을 다룬 전작 ‘스카우트’에 이어 이번에도 나쁘지 않다. 재미와 의미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지 않길 바란다는 감독의 바람이 통했을까. 사랑, 정, 그리고 인간애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바탕에 둔 웃음 덕분에 각 에피소드는 결을 같이하며 관객에게 짙은 페이소스를 남긴다.

[Y리뷰] '아이캔스피크' 희극의 목소리로 비극의 역사를 조명

휴먼 코미디라고 해서 이 영화가 고증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극 중 옥분의 대사는 실제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했다. 특히 미 의회 청문회에서 옥분이 위안부의 참상을 국제 사회에 처음 알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단연 백미다. 동시에 한층 고조된 긴장감을 희극적 장치로 이완함으로써 아픔을 어루만질 뿐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성까지 제시한다.

영화는 끝까지 웃음을 놓지 않는다. 곳곳에 미소 짓게 만드는 장치를 설치해 자연스럽게 아픔을 공감하고 깊숙이 여운을 남긴다. ‘희극에서 진리가 싹튼다’고 강조한 아리스토텔리스의 말은, 크레딧이 올라도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처럼 귓가를 맴돌게 될 것이다.

YTN Star 반서연 기자 (uiopkl22@ytnplus.co.kr)
[사진제공 = 리틀빅피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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