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윤제균이 말하는 나의 '국제시장'

감독 윤제균이 말하는 나의 '국제시장'

2015.01.08. 오후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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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윤제균 감독 초대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요새?

[인터뷰]

일단은 감사하죠.

[앵커]

막 하늘을 날 것 같습니까? 어떻습니까?

[인터뷰]

아니, 뭐 그런 느낌이 아니라 이번 같은 경우는 되게 저한테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지금은 도와주신 분들, 많은 분들 특히 관객분들한테 너무 감사한 마음이죠.

[앵커]

의미가 남달랐다는 것은 천만 영화는 지난 번에도 하셨었고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이번 영화는.

[인터뷰]

사실 해운대 같은 경우는 상업적으로 기획된 영화로 출발을 했었는데 국제시장 같은 경우는 개인사에서 출발을 한 영화예요. 그래서 제 아버님께서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평생 가족, 자식을 위해서 열심히 일만 하시다가 돌아가셔서 언젠가 제가 잘 됐을 때 꼭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다행히 해운대로 잘 되고 난 다음 부터 준비해서 한 5년간 준비해서 진정성을 가지고 개인사적으로 만든 출발을 해서 만든 영화가 관객분들한테 사랑을 받으니까 너무 행복하다, 기쁘다 이런 것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앞서는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1000만명 돌파한 영화가 우리나라 영화 중에는 10편이고 외국 영화 두 편이고 그랬더라고요. 그런데 한 감독이 1000만 영화 만든 적 없었고 이번에 되면 역사상 처음 인거지 않습니까?

[인터뷰]

그 자체도 하여튼 저한테는 되게 감사한 일이죠. 특별히 1000만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는 한데 영화를 계속 만드는 입장에서는 정말 참 운이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고...

[앵커]

만드시면서 이것도 1000만 되겠다 생각하셨습니까?

[인터뷰]

사실 이번에는 1000만을 목표로 한다거나 1000만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출발한 영화는 아니었어요. 다만 예산이 180억 정도 들어갔던 영화였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이 한 600만명정도 되거든요. 그래서 일단 저를 믿고 투자해 주신 투자자분들한테 정말 손해는 안 끼쳤으면 좋겠다 이렇게 사실 출발했던 영화였습니다.

[앵커]

600만 정도는 되겠구나 생각은 하셨던 모양이죠?

[인터뷰]

그렇게 되기를 바랐었죠.

[앵커]

지금 미국에서도 굉장히 우리 동포들 중심으로 굉장히 많이 들어 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미국에서도 아마 한 40개관에서 출발을 해서 지금 아무래도 고국에서 또 이민 1세대분들 역시도 힘들고 어렵게 살아오셨던 당신들의 또 이야기가 많이 녹아져 있어서 좋아해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앵커]

영화 감독하면 특히 엄청난 흥행을 하는 영화대작의 감독하면 예술인 같은 그런 느낌을 생각하는데 굉장히 푸근하시고 마음이 놓여지는 그런 인상이신데요. 의외인데요?

[인터뷰]

사실 감독님들마다 다 다르시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이런 말씀 드리면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모범생으로 자라왔었고 그러다가 영화를 하게 돼서 아마 그런 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앵커]

그러면 아버님 덕자 수자 쓰이는 실제 영화 주인공하고 함자가 같은, 아버님한테도 좋은 아들이었겠군요? 속 안썩이고, 잘 자라는.

[인터뷰]

그렇죠, 아버님 살아계실 때까지는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죠.

[앵커]

늘 자랑스러워하셨습니까, 아들을?

[인터뷰]

살아계실 때는 사실 잘 몰랐는데 나중에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친인척분들이나 주변분들한테 살아계실 때 제가 외아들이거든요. 장남에 장손에 외아들인데 저를 되게 자랑스럽게 또 많이 자랑을 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듣고 마음이 더 짠하고 그랬었습니다.

[앵커]

속 안썩이시고 잘 자라시고 또 명문 고려대학교 입학하시고 그런데 2학년 때 아버님이 먼저 돌아가신 것 아닙니까? 나중에 영화감독 하겠다라고 했으면 아버님이 어떠셨을까요? 반대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인터뷰]

어머니랑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아버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제 생각도 그렇고 어머님 생각도 그렇고 아마 아버님 살아계셨으면 영화감독은 못 하지 않았을까.

[앵커]

그렇죠. 그 세대 어른들이 대체로 그런 정서들을 갖고 계시니까요. 저는 아버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같은 의미로 만들었다고 얘기하는 걸 보고 굉장히 저는 공감을 했거든요.

제가 감독님하고 연배도 같고 그리고 자라온, 살아왔던 세대들, 경험도 비슷하기 때문에 저는 우리 윗세대들에 대해서 그분들이 마땅히 누려야, 받아야 되는 존경을 아랫세대는 덜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거든요. 그런 생각은 언제 부터 하신건가요?

[인터뷰]

사실 저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살아온 환경 자체가 가부장적인 경상도에서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 한 가지만 말씀하셨어요. 어른공경해라. 그게 어떻게 보면 요즘 젊은 세대들 입장에서 보면 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 항상 어릴 때 부터 어른을 공경하라는 이야기를 저는 듣고 자라왔어요.

그래서 요즘 속된 말로 꼰대 같은 소리로 들릴 수는 있지만 여태까지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고 저 역시도 지금 제 아들들한테는 항상 어른 공경하고 부모님한테 잘해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죠.

[앵커]

그 얘기를 들으셨을 때 어른들 공경해라라는 말 말씀을 들으셨을 때 왜 어른들이라고 무조건 공경해야 되는 그런 의문이나반감이나 그런 생각은 없으셨습니까?

[인터뷰]

사실 저는 착했었거든요. 그런 반감은 없었어요. 저는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또 저희 때는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었고... 선생님한테도 절대 지금 생각해 봐도 한 번도 반항을 해 본 적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저는.

[앵커]

저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제가 사실 얼마 전까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부모님 세대들 보면서 좀 글로벌애티켓 같은 것들이 부족하고 어떻게 보면 조금 거칠기도 하고 매너나 이런 것이 그렇지 않은가. 약간은 좀 낮춰보그런 마음이 있었거든요.

우리 윗세대들이 이뤄놓은 성취라는 것은 세계사에서 봐도 유례없는 성취를 하신 분들인데 그 과정에서 입은 정신적인 상처일 수도 있고 그것이 우리가 비난하고 낮춰볼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감싸안고 어떤 면에서는 존경하고 그래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됐거든요.

[인터뷰]

분명히 이 영화를 출발했던 이유 자체가, 출발 자체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개인사적인 저희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평생 열심히 일만 하시다 돌아가신 아버님한테 정말 고생하셨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못 드렸어요.

그렇게 해서 영화가 출발을 한 영화인데 많은 젊은 세대들같은 경우에서는 우리 부모님 세대들 중에서 이해를 좀 잘 못하고 아까 말씀하신 그런 부분 때문에 안 좋게 보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사실 저 역시도 그랬어요.

저도 아버님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어려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님 성격이 국제시장 영화에 나오는 황정민 씨의 덕수 성격하고 똑같거든요. 버럭하시고 또 잔소리도 많으시고... 그때는 저도 이해가 전혀 안 됐어요.

그리고 말씀하시면 막 짜증나고 왜 도대체 저렇게 행동을 하실까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제가 2004년도에 제 첫째아이를 낳고 제가 아빠가 되어 보니까 아버님이 그렇게 또 생각이 많이 나고 아버님이 조금씩 저는 달라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떤 연민의 시선, 또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까 조금씩 아버지라는 존재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이 영화를 통해서나마 영화라는 게 큰 계기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또 젊은 세대들은 우리 부모님 세대가 얼마큼, 진짜 열심히 일만 하셨잖아요. 그렇게 고생하신 모습을 보면서 조금 이해를 하고 또 부모님 세대들도 또 이 영화를 보면서 이 영화 안에서는 당신들이 젊었을 때 치열하게 살았던 모습이 나오니까 요즘 우리 자식 세대들도 힘들게 당신들이 젊었을 때처럼 똑같이 치열하게 살고 있으니까 조금씩 소통을 하고 그러면서 소통하다 보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세대간에 조금이나마 화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에서 사실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거죠.

[앵커]

아마 우리 윗세대들이 이 영화 많이 보시는데 보시면서 위안도 되고 보상도 되고 그렇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아버님께서 지금 이 영화를 보셨다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인터뷰]

되게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 부모님 세대가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다 겪고 지금은 상대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소외되고 또 외로움을 느끼고 사회적으로 봤을 때도 많이 힘이 약해지신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 분들한테 이 영화가 조그마한, 우리 젊은 세대들이 보내는 그런 따뜻한 위로가 됐다는 걸 알아주시면 마음이 조금은 그래도 따뜻해지시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감독님,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서 불편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윗세대가 반성할 것이 있는데 반성은 부족한 것이 아니냐고 하고 뭐, 이런 고생을 다 우리 세대가 해서 다행이라고 얘기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토가 나온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고요.

제 생각에는 우리 윗세대들이 경험하신 역사를 큰줄기로 보면 산업화가 있고 민주화가 있고 큰 두 줄기가 있는데 산업화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표현이 됐는데, 민주화 부분에 대해서는 표현이 덜 된 게 아닌가, 불편함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 봤거든요. 그런 부분은 어떻게 해석을 하신 것입니까?

[인터뷰]

결국 질문의 요지는 왜 정치적인 부분을 거사를 했느냐 하는 게비판의 주된 내용인 것 같은데 사실 왜 정치적인 부분을 뺐습니까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이유는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처음 만들 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떤 정치적인 시각이나 사회 비판적인 시각이나 역사의식 같은 거시적인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시작한 게 아니었어요.

그냥 제 개인사적으로 평생 가족과 자식을 위해서 고생하시다가 당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돈과 시간도 못 쓰다가 그냥 어떻게 보면 불쌍히 돌아가신 저희 아버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못 드려서 그게 평생 한으로 남아있었는데 개인사적으로 아버님한테 드리는 헌사같은 영화, 미시적이고 사실 소박하게 출발했던 영화였어요.

그렇다 보니까 당연히 젊은 시절에는 고생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었던 그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가 되어야 되는데 거기에 정치적인 이야기가 들어 가게 되면 당연히 어떤 수박 겉핥기식의 그냥 끼워넣기 식의 얕은 수준으로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럴 바에는 그냥 차라리 정치적인 색깔을 빼는 게 낫겠다.

그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제가 영화 일을 십 몇 내년을 하면서 이 영화를 일단 가족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예요. 영화일을 제가 십 몇년을 하면서 영화를 기획하고 준비를 할 때 모든 투자자분들이 말씀하시는 게 항상 영화의 메인타겟은 20대예요.

결국 문화에서도 4, 50대, 5, 60대우리 세대, 부모님 세대가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정말 이 국제시장을 통해서 제가 또 하나 해 보고 싶었던 일이 극장 안에 가장이, 저 같은 가장이 우리 아들과 우리 부모님 모시고 삼대가 극장 안에서 정말 행복하게 영화를 보고 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가족영화를 만들어야 되는데 거기에 정치이야기가 또 끼어들면 너무 민감하고 또 부담스럽지 않을까 해서 뺀 이유, 이렇게 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사실 정치적인 부분은 삭제를 했습니다.

[앵커]

그렇게 삼대 손 잡고 오시는 관객들도 많습니까, 실제로?

[인터뷰]

일반 시사회 때나 요즘 개봉하고 난 다음에 가서 보면 사실 감독의 입장으로서 제일 뿌듯하고 행복한 부분 중의 하나가 여태까지 만든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극장 안에 젊은 세대들이많이 있는 것을 봤었는데 이번 국제시장은 안에서 어린 아이도 있고 또 20대 젊은 연인도 있고 또 친구도 있고, 또 머리가 하얗게 쇄신 우리 부모님세대분들이 다 같이 모여서 다양한 구성으로 극장 안에서 영화를 보시는 모습이 저는 되게 울컥할 정도로 뿌듯하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앵커]

불편한 질문 하나만 마지막으로 더 드리겠습니다. 본인의 정치 성향은 원래 보수입니까, 진보입니까?

[인터뷰]

개인적인 생각은 보수냐, 진보냐 하는 흑백논리. 편을 가르는 이런 논리들 때문에 우리의 사회가 좀더 경직되고 좀 너무 불편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개인적으로는 들어요.

그래서 유연한 생각으로 어떤 보수냐, 진보냐, 좌냐, 우냐. 이렇게 딱 흑백논리처럼 나누는 것보다는 어차피 상식적으로 당연히 우가 잘 할 때는 박수도 쳐주고, 좌가 잘 할 때도 박수를 쳐주고 우가 못 했을 때는 비판도 하고좌가 못 했을 때는 비판도 하고, 이런 유연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때로는 여당투표도 하시고 때로는 야당 투표도 하시고 그러시나보죠? 그러시는 모양이죠?

[인터뷰]

그렇죠. 당연히 국민된 입장으로서 봤을 때는 잘한 거는 잘했다고 이야기했고 못한 것은 못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또 인정할 건 인정하고 또 이해를 할 것은 이해를 하는 편이라고 생각을 해요.

[앵커]

아까 보니까 영화에 남진 씨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 시대상을 보여주는 인물 중의 한 분인데요. 남진 씨랑 직접 이야기해 보시거나 통화해 보신 적 없죠? 저희가 오늘 남진 선생님을 전화로 연결했습니다.

남진 선생님 전화 연결되어 있나요?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국제시장 보셨습니까, 선생님?

[인터뷰]

오늘 보려고 하고 있는데...

[앵커]

요새 전화 굉장히 많이 받으신다면서요?

[인터뷰]

주위에서 영화를 보고 후배들이나 친구들한테 많이 연락이 와요. 영화가 좋았고, 내 역할한 친구가 재미있게 해서 잘 봤고, 영화는 너무 감동적이고 좋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가보려고 합니다.

[앵커]

윤제균 감독님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이나 인사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얘기를 해 주시죠.

[인터뷰]

감독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시대 모든 국민들이 감동받고 또 아까 말씀하셨지만 모든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화제의 영화를 만들어 주셔서 아주 감사드리고 축하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선생님.

[앵커]

물어보실 것 있으시다면서요, 윤 감독님한테?

[인터뷰]

영화를 보니까 보신 분들이 다 얘기를 하는데 제 역할했던 친구가 있더라고요. 노래하는 친구, 누구죠. 동방신기하는 친구가 제 역할을 했다는데 보고온 친구들이 그 친구가 사투리를 너하고 똑같이 하더라고 해서 배우가 흉내를 내도 어려울 텐데 했더니 윤호 군한테 물어봤더니 알고 봤더니 고향이 광주라고 그러던데...

그러니까 사투리가 표현이 아마 저하고 똑같은 그런 느낌을 듣는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연기도 잘하고 대사가 아주 너무 또 재미있게 잘해 줬다고 그래서 감독님 좋은 기회 있으면 한번 만나서 밥이라도 한 그릇 사야겠네요.

[인터뷰]

제가 자리를 한번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인터뷰]

그리고 정말 윤 감독님께서 제 역할, 영화도 잘 멋있게 만들어주셔서 윤 감독님한테도 밥 한그릇 사야 되는데...

[앵커]

조만간 세 분이 만나셔서 밥은 누가 사시든지 하여간 즐거운 시간 밝내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시기적으로 6, 70년도인데 아까 잠만 들어보니까 우리나라가 정말 힘들던 시절에 열심히 일하고 했던 분들이 있어서 우리나라 잘 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때 어렵던 시절을 영화에 담아서 온 국민이 감동받고 이렇게 요즘 이 시대 영화가 우리 또 국제시장 영화가 돼서 윤 감독님한테 다시 한 번 감사와 정말 기대를 합니다. 하여튼 앞으로도 멋진 좋은 영화 많이 만들어 주세요.

[앵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전화연결 감사합니다.

시간이 어느새 끝날 시간이 됐습니다. 감독님, 마지막으로 아버님을 위해서 만든 영화지 않습니까? 아버님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을 영화에 하셨는데 우리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인터뷰]

개인적인 거에서 부터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한마디로 얘기하면 저에게는 가슴 먹먹한 존재가 아닌가 생각을 해요. 여러 가지 단어들로 설명하기 힘들 것처럼 그냥 생각하면 저한테는 뭉클함도 있고, 그냥 가슴 먹먹하고 짠하고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저한테.

[앵커]

지금 아버님이 살아계시다면 뭐라고 인사하시겠습니까? 한마디 인사를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인터뷰]

그 말씀은 영화 안에 아버지한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영화 안에 나와 있어요. 결국 제가 그 한 장면 때문에 저는 이 영화를 시작을 하게 됐는데 국제시장 맨마지막에 노인이 된 덕수가 돌아가신 아버지 영정사진 앞에서 했던 이야기.

당연히 저희 아버님이 돌아셨을 때도 저는 여동생이라 어머니 두 분인데 잘 건사하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래서 그 대사죠. 어머니 지금 건강하게 잘 살아계시고 여동생 결혼도 제가 잘 시켰고 아버님한테 저 약속 잘 지켰고, 또 이런 데 이렇게 제가 나와서 인터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잘 살았고... 그런데 저도 많이 힘들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런데 또 영화 안에 나오는 마지막 대사가 있거든요. 진짜 많이 보고 싶다.

[앵커]

제가 윤 감독님 아버님이라면 이렇게 윤 감독님한테 말을 할 것 같습니다.

나도 보고 싶다. 참 수고많았다. 고맙다, 자랑스럽다. 내가 영화감독 된다고 했으면 반대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습니다.

[인터뷰]

감사해요.

[앵커]

감독님,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좋은 영화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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