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72인의 이야기 '두문불출'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72인의 이야기 '두문불출'

2016.06.06.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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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불출,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회의 일이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사자성어에서 유래한 지명이 있다고 하는데요.

황해도 개풍군의 골짜기에 붙여진 이름, 두문동.

과연 두문동이란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영조가 개성으로 행차하던 어느 날 부조현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 신하에게 그 뜻을 물었습니다

"부조현이 무슨 뜻이냐?" 그러자 한 신하가 답을 합니다.

부조현이란 조정에서 실시하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는 곳이란 뜻으로 조선에 반대하는 고려 유생들이 갓을 벗어 나무에 걸어놓고 갔다고 알려진 곳입니다.

이 부조현을 지나면 두문동이 나오는데 두문동에 대한 영조의 질문에 신하는 이렇게 답합니다.

"태종께서 과거를 실시했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응하지 않고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아 두문동이라고 했습니다."

조선 건국에 반대한 고려 유신들이 모여 살았다고 전해지는 두문동.

이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두문불출'이라 부른 것이죠.

조선은 이들을 위협하기 위해 두문동 일대에 불을 질렀지만 고려 충신들은 끝내 아무도 나오지 않았고 후세 사람들은 이들을 '두문동 72인'으로 부릅니다.

고려 충신들의 이야기에 감탄한 영조는 "고려의 충신들처럼 대대로 계승되기를 힘쓰라."는 뜻의 칠언시를 짓고, 부조현이란 글을 쓴 비석을 이곳에 세웁니다.

영조는 이후 두문동 72인의 후손들을 찾아 관리에 등용토록 했고, 오늘날 전북 순창의 호계사에서는 두문동 72인의 한 사람인 임선미의 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두문불출하면 흔히 떠오르는 두문동 이야기.

아마도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72인의 이야기에 사람들이 감동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두문불출했던 곳 두문동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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