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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역사가 사마천이 잠실에 살았다?
    중국 역사가 사마천이 잠실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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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강 상류에 위치한 이곳은 유원지와 체육시설 등 서울을 대표할 만한 랜드마크들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잠실이라는 말은 '누에를 기르는 집'이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부터 이곳에 뽕나무를 심어 비단을 생산해 왔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

    그런데 이 잠실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이미 조선시대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는데요.

    누에 기르는 집, 잠실의 역사를 만나보시죠.

    기원전 1세기 중국 전한시대.

    학자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사령이 된 역사가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립니다.

    아버지 사마담의 꿈은 한족의 3천년 역사를 집대성 하는 역사서를 편찬하는 일.

    생전에 꿈을 이루지 못한 사마담은 아들 사마천이 자신의 뒤를 이어 과업을 완성하기를 바랬습니다.

    황실의 도서들 속에 파묻혀 역사서를 편찬하기 시작한지 5년.

    흉노족과의 전쟁에서 투항한 장군 이릉을 두고 신하들 사이에 논쟁이 시작됐는데요.

    이른바 '이릉의 난'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전쟁에서 패한 이릉을 감싼 일로 황무제의 미움을 산 사마천은 결국 궁형이라는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되었고 잠실에 갇혀 지내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나는 잠실에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불구가 된 나는 내 마음이 생각하는 바를 문장을 통해 세상에 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사마천은 그렇게 불구의 몸으로 치욕속에서 인내하며 역사서를 저술했고 8년이 지나 후 드디어 아버지의 유언대로 역사서를 완성합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서 '사기'가 탄생한 것입니다.

    사마천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그가 남긴 역작 '사기'.

    잠실에 앉아 보낸 인고의 시간이 빚어낸 위대한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