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약진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약진 [최광희, 영화 저널리스트]

2012.04.26. 오전 09:0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멘트]

지난 2008년 개봉한 '워낭소리' 기억하십니까?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 관객을 동원했는데요, 최근 잇따라 개봉한 한국 다큐멘터리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워낭소리'만큼은 아니더라도, 다양한 주제와 색깔 있는 감성으로 조용한 흥행 몰이를 하고 있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만나보겠습니다.

영화 저널리스트 최광희 기자 나오셨습니다.

[질문]

'워낭소리'가 당시 3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 뒤로는 그만한 흥행을 한 다큐멘터리가 아직 안나왔죠.

[답변]

'워낭소리'는 사실상 굉장히 이례적인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로서 그 정도 흥행을 했다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사실 다큐멘터리는 만들어지기도 어렵고요, 만든다 할지라도 극장에 개봉하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흥행은 더 어렵죠. 관객들이 대개 극영화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왠지 좀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도 있고요, 그래서 다른 독립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도 만 명만 관객이 들어도 꽤 성공했다, 하는 평가를 듣는데요. 이런 가운데 최근까지도 아주 활발하게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들이 개봉하고 있구요, 또 반응도 괜찮아서 모처럼 다큐멘터리계에 활력이 돌고 있습니다.

[질문]

어떤 작품들인지 궁금한데요, 요즘 영화 '건축학 개론'이 인기인데, 그와 비슷한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있던데요.

[답변]

바로 지난달 초에 개봉한 '말하는 건축가'라고 하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작품을 연출했던 정재은 감독이 연출한 건축 다큐멘터리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타계한 고 정기용 건축가의 말년과 그의 건축 철학을 담아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한달이 넘게 롱런하면서 총관객 3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독립 다큐멘터리로서 관객 3만 명이면 거의 블록버스터급 흥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작품이 담고 있는 고 정기용 건축가는, 기적의 도서관의 설계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분이고요, 보여주기 위한 건축이 아니라 인간이 실제로 삶을 일구는 공간으로서의 건축이라는 나름의 확고한 철학 속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분이죠.

정재은 감독은 정기용 건축가가 타계하기 직전에 회고전을 준비해 나가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정주 공간으로서의 건축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화두를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질문]

건축 다큐멘터리가 3만 명 동원이라니 참 대단한데요, 이밖에 장애인 부부의 사랑을 담아낸 작품도 조용한 흥행 몰이를 하고 있다면서요.

[답변]

'달팽이의 별'이라는 작품이구요, 지난달 22일 개봉해서 역시 한달 넘게 롱런하면서 만 5천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은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시청각 장애인 조영찬 씨와 그의 아내이자 척추 장애인인 김순호 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장애인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들이 대개 동정이나 연민의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보거나 장애인의 인권 문제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구요, 오히려 비장애인이 느끼지 못하는 이들만의 감각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탐색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영화 속의 조영찬 씨는 내리는 비를 손으로 느껴보거나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손으로 만지면서 느끼는데요, 비장애인들이 흔히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아주 미시적인 감각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성찰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질문]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고 이소선 여사의 말년을 담은 작품도 개봉했죠.

[답변]

제목이 '어머니'라는 다큐멘터리구요, 지난 5일 개봉해서 아주 작은 규모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영화 '어머니'는 이소선 여사가 노환으로 힘들어 하는 가운데서도 여러 노동 관련 집회에 나가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온 말년의 모습, 그리고 작고할 때까지의 상황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로서 이후 평생을 노동 운동에 헌신했던 분에 대한 감독의 존경이 듬뿍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노동 운동가로서가 아니라, 아주 자애로운 모성의 대명사와도 같은 느낌으로 한 인물의 삶을 담아내고 있어서 보편적인 울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질문]

이번주에도 또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개봉하더군요.

제목이 궁금증을 자아내는데요.

'레드 마리아'라는 작품이죠.

[답변]

마리아는 잘 알려진 성모 마리아구요, 앞에 붙은 ‘레드'는 일종의 여성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작품 '레드 마리아'는 경순이라는 여성 감독이 연출했는데요, 여성 감독 답게, 한국과 일본, 필리핀 등의 소외된 여성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여성의 몸, 여성의 노동, 그리고 여성의 실존적 조건들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감독이 상당히 많은 여성들을 취재했는데요,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와 집창촌의 성 노동자를 비롯해서 일본의 노숙 여성, 필리핀의 성노동자, 빈민가에 삶을 일구는 여성 등 주로 사회의 외곽으로 밀려나 있는 여성들과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경순 감독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가능성들을 탐색하고 있는데요.

어떤 특정한 주장을 밀어 붙이기보다, 다양한 여성들의 삶에 밀착한 가운데 그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그런 겸손하고 성찰적인 태도가 아주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우리 사회와 인간에 대한 진지하면서도 독특한 성찰이 다큐멘터리의 인기 요인인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