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노회찬 의원 영결식 국회에서 엄수

故 노회찬 의원 영결식 국회에서 엄수

2018.07.27. 오전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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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화면으로는 이 시각 현재 국회 앞의 모습을 보고 계신데요. 조금 전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출발한 영구차량이 국회에 도착을 했고요. 영정을 앞세운 유가족과 관계자들이 영결식장에 입장하고 있습니다.

장례 일정 닷새 가운데 23일부터 25일까지 사흘을 정의당장으로 치르고 어제부터 나머지 이틀 동안은 국회장으로 승격해 치르기로 했습니다. 앞선 정의당장의 경우에는 이정미 대표가 상임장례위원장을 맡았지만 국회장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상임장례위원장을 맡아서 장례절차를 주관하게 됩니다.

이제 국회에서의 영결식이 곧바로 진행이 되겠는데요. 오늘 장지는 경기 남양주에 있는 마석 모란공원입니다. 마석 모란공원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요?

[인터뷰]
그렇죠. 마석 모란공원에는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화 투쟁을 위해서 많이 애쓰시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그러한 분들이 안식하고 있는 곳입니다. 예를 들면 문익환 목사,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그리고 노동열사 전태일 씨.

그리고 또 박종철 그리고 그때 당시 물고문의 희생자 박종철 그리고 또 용산참사의 희생자들 이러한 분들이 사실 영면을 취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아마 노회찬 의원의 마지막 영면의 장소도 아마 이곳으로 선택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앵커]
추모 열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추모 열기가 일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걸 정치적 이념으로 바라보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는 것 같고요.

아무래도 진보, 보수가 아니라 좀 책임감 있고 헌신할 줄 아는 그런 서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진보 정치를 넘어서서 저는 좋은 정치가 어떤 것인가를 노회찬 전 의원이 보여준 것 같아요. 정치라는 건 갈등과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서 우리 사회의 의미있는 희망을 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게 정의당이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인데요. 이 노동에 대한 것은 과거에 보는 불온시 했던 부분들이 유신시대라든지 독재시대 때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지만 진보 정치가 추구하는 건 결국은 국민의 삶을 질을 높일 수 있는 그러한 정치를 얘기하고. 또 단순한 이념적 진보가 아니라 저는 민생 진보 쪽의 길을 많이 걸었기 때문에 노회찬 전 대표에 대해서 많은 국민들이 아쉬워 하는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지금 진보 정치의 핵심을 이루고 전 세계에 많은 나라들이 지켜보고 있는 나라 중 하나가 이 북유럽 국가들이에요. 북유럽국가들이 여러 면에서 봤을 때, 지금도 거기는 사회당 정부가 60년 이상을 통치하고 있는데요.

국민들이 자신들이 많은 세금을 내더라도 행복해합니다. 그리고 상당히 나름대로 평등에 대한 것들을 강조하고. 타협과 더 나아가서 협조와 합의라고 하는 합의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것인데 저는 우리 노회찬 전 대표가 추구하는 핵심적인 건 저는 평등민주주의, 더 나아가서 우리가 이제는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서서 평등민주주의로 가야 된다라는 그런 쪽에서의 많은 정치활동을 했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한국이 현재와 같은 좀 퇴행된 정치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좋은 정치로 갈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다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앵커]
이 시간 현재 영결식이 시작되었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지금 진행 중에 있습니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끝나고 난 뒤 고인에 대한 묵념이 또 이어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꿋꿋하게 빈소를 지켰던 심상정 전 대표, 어제 추도식에서는 역시나 끝내 눈물을 흘렸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인터뷰]
그렇죠. 두 사람은 학생 시절에 그러니까 노동운동 현장에서 두 사람이 만난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이념을 가지고 상당히 힘든 길을 걸어오는 동안 든든한 동반자였고요. 그리고 또 동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상당히 아마 심상정 의원이느끼는 그런 상실감은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제 심상정 의원이 한 이야기 중 하나를 보면 그러니까 지금 노회찬 의원의 유서에서 나는 멈추지만 정의당은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지만 심상정 의원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노회찬 없는 정치는 나는 생각할 수 없다. 우리 대표님 모시고 나는 끝까지 가겠다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노회찬 의원이 이루지 못한 꿈을, 그러니까 정의당 당원들, 나아가서 국민들과 함께 반드시 이루겠다는 다짐을 이야기했습니다.

[앵커]
이 시간 현재 고인에 대한 묵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 노회찬 의원... 노동자들의 친구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노회찬 의원을 다시 생각하면서 묵념을 하고 있는 현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노회찬 의원은 생전에 진보 정당의 차기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실 정의당원들이 대표님이 이제 편한 곳에 가서 쉬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위로한 것도 노 원내대표가 당 안팎에서 지고 있던 책임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인터뷰]
고인의 약력을 보고하시겠습니다.

[유인태 / 국회 사무총장]
고 노회찬 의원님을 약력을 보고드리겠습니다. 고 노회찬 국회의원께서는 1956년 8월 31일부산시 초량에서 태어나셨으며 경기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셨습니다.

고인께서는 고교 재학 시절인 1973년유신 독재 반대 민주화 운동에 나서는 등 나서는 등 청년 시절부터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불의에 맞선 정의감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고 노회찬 국회의원께서는 1982년 용접공으로 근무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하셨고 1987년 인천 지역 민주노동자 연맹의 창립을 주도해 민주화와 함께 노동운동의 확산에 큰 이정표를 남기셨습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진보정당추진위원회 진보정치연합대표, 국민승리21, 정책기획위원장을 맡아 진보정당 건설에 앞장서셨습니다.

고인께서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이뤄내시고 이후 부대표, 서울시당위원장, 사무총장을 역임하셨으며 2001년 전국구방식의 국회의원 선출제에 대한 위헌 판결을 이끌어냄으로써 정당 정치 발전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고 노회찬 국회의원께서는 2004년 총선 당시 정치개혁과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 필요성을 역설하셨으며 제17대, 제19대, 제20대 국회에 걸쳐 총 세 차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셨습니다.

고인께서는 2004년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 개정안과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발의하여 여성과 장애인의 권리 확대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2005년에는 안기부 불법도청 녹취록의 검사 명단을 공개함으로써 재계와 검찰 사이의 부정한 결탁을 끊어야 한다며 사회적 경종을 울리셨습니다.

또한 사법부의 전관예우 실상을 낱낱이 드러냈음로써 사법개혁을 촉발시키셨고 노동자, 농민, 중소 자영업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해 열정적인 의정활동을 펼치셨으며 2007년과 2017년 백봉신사상 등 많은 많을 수상하셨습니다.

특히 고인께서는 2006년부터 10여 년 동안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위해 앞장섰으면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남기셨습니다. 고 노회찬 국회의원께서는 10년 동안 매일 노동운동을 활동하셨으면 조선왕조실록...

[앵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으로부터 고 노회찬 의원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정치 길을 걸어왔는지 하나하나 짚어보고 있습니다. 노회찬 의원과 관련해서는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의원직을 잃게된 게 삼성X파일 공개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앵커]
공개 자체가 그런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개했다고 봐야겠죠?

[인터뷰]
그렇죠. 앞서 유인태 사무총장의 약력 보고에도 나왔습니다마는 지금 노회찬 의원의 안기부 X파일 특히 삼성이 떡값을 줬다는 부분, 그러니까 전현직 검사들에게 당시 검찰 고위직에게 엄청난 돈을 건넸다는 부분에 대해서 그때 삼성X파일에 거론됐던 검사들의 실체 명단을 발표한 부분에 대해서 상당한 파장이 일어서 그래서 앞서 유인태 사무총장이 이야기했다시피...

[앵커]
말씀 중에 좀 말이 끊겼는데요. 영결사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하겠습니다. 영결사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희상 / 국회의장]
노회찬 의원님 노회찬 의원님!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매미 울음만 가득합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서 있는 겁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태양빛 가득한 계절이건만 우리 모두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듯 참담한 심정으로 모여 있습니다.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에서 본청 입구에서 노회찬 의원님의 모습이 보일 듯합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여유 가득한 표정의 우리 동료 노 의원님을 만날 것만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에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지 않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두했고 진보 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아파했고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못 가진 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고 생각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서슬 시퍼렇던 유신에 항거했습니다. 보장된 주류의 보장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하셨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 넥타이가 말해 주는 대중 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 정치와 생활 정치에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돼 주셨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마치 이 말씀을 온몸으로 실천하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중시하고 신중했던 삶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22일 저녁 병상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동생의 집을 들렀지만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리셨습니다.

그 누구도 꿈 속에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차마 이 길을 선택한 노회찬 의원님의 고뇌와 번민, 회한과 고통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노회찬 의원님, 이제 평생을 짊어지셨던 무거운 짐을 내려 놓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이 한국 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은 우리 국회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2018년 7월 27일 장례위원장 국회의장 문희상.

[앵커]
문희상 국회의장의 영결사가 있었습니다. 노동계 출신 진보 진영의 별로 오랜 시간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던 노회찬 의원. 우리 정치권에 남긴 족적도 뚜렷합니다.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짚어주시죠.

[인터뷰]
가장 핵심적 사항은 일관성에 대한 정치예요. 그러니까 많은 정치인들은 실리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노회찬 전 의원 같은 경우에는 정말 진보 운동과 더불어서 노동운동이라고 하는 이 두 축을 중심으로 해서 대한민국 정치에 큰 족적을 남겼다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특히 노동운동가와 진보운동가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줄 수 있느냐의 문제죠.

우리 사회가 그동안 너무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양극화가 심화됐는데 이런 불평등 구조가 영속화된 것을 법을 통해서 막는, 저는 오히려 이 장면을 보면서 왜 국회장을 해야 하느냐는 것에 대해서 참 의미를 둡니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요구하고 새로운 사회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법을 통해서 만드는 건데 노회찬 전 의원께서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그 바로 그 장소가 국회거든요.

최근에는 특활비와 관련해서도 이거 개정을 해야 된다라는 것도 제기했었던 데도 국회이고 그래서 노회찬 의원이 추구하려고 했던 여러 가치가 결국은 법으로써 만들어져서 현실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장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라고 봅니다.

[앵커]
오늘 영결식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와 있는데 말이죠. 바로 그런 점에서 노회찬 의원이 추구했던 정치를 바로해야 될 바람들이 바로 지금 현재 국회의원들, 많은 정치인들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 번 노회찬 의원의 정치의 신념을 생각해 보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
그렇죠. 사실 노회찬 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상당히 대척점에 섰던 많은 정치인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노회찬 의원이 상당히 비극적인 선택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는 여야 정치권이 상당히 여야라는 정파적 이익이나 또는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그러한 구분 없이 다 한마음 한뜻으로 노회찬 의원이 생전 추구했던 그러한 가치나 이상에 대해서 상당히 지지와 격려를 보냈던 것이거든요.

그렇다고 한다면 앞으로 지금 노회찬 의원이 이제는 세상을 떠났습니다마는 노회찬 의원이 꿈꿨던 대한민국, 노회찬 의원이 추구했던 진보의 정치, 생활 정치, 민생의 정치,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아마 여야가 사실 상당히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는 좋은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노회찬 의원의 비보를 듣고 많은 분들이 정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의당을 입당하는 사람들도 늘었고 또 후원금도 늘었다고 하는데 말이죠. 노회찬 의원의 비보를 계기로 해서 정치를 다시 보게끔 하는 그런 자각하는 역할도 좀 했다라고 볼 수 있겠어요.

[인터뷰]
정치학 용어로 정당일체감이라는 용어를 쓰는데요. 특정한 정당에 대해서 오랫동안 갖고 있는 당파적 태도, 귀속 의식을 우리가 정당일체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정당일체감이 정의당에서 갖고 있는 일체감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이죠.

일체감이 늘어나야지만이 많은 사람들이 그 정당에 가입하는 건데요. 바로 조금 전에 발표한 한국갤럽이 7월 24일부터 26일까지 전국 1002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한 내용인데요. 그러니까 95% 신뢰 수준의 플러스마이너스 3.1% 라는 점을 말씀드리고요. 오늘 정당 지지도를 보면 자유한국당과 정의당이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112석을 갖고 있는 자유한국당과 6석에 불과한 이제 5석이 됐지 않습니까. 정의당이 11%를 갖고 있는 함축성이라는 것은 그만큼 진보정당이 앞으로 더 발전해 나가라고 하는 그런 부분 속에서 노회찬 전 대표가 유서에서까지도 자기는 멈추지만 진보 정당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런 것들이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이제는 떳떳하게 내가 진보 정당에 가입해서 진보 정치인으로서 길을 가겠다는 보여주는 상징적인 부분들이거든요.

이게 아마 오늘 발표가 났지만 다음 주가 되면 잘못하면 역전 현상이 나올 수 있는 그런 것들은 결국 노회찬 전 의원께서 평생을 외길 30년 진보 정치를 펼쳤었던 것에 하나의 반영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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