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을 품은 '아리랑'

스페인을 품은 '아리랑'

2014.12.21. 오후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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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흥겨운 한국 민요를 부르고 있는 벽안의 성악가들!

이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스페인 동포 지휘자 임재식 단장입니다.

[인터뷰:임재식, 밀레니엄 합창단 단장]
"스페인 하늘아래, 유럽 하늘아래 우리나라 노래를 흥얼거리고 부른다는 것. 그래야 우리나라 문화와 노래가 더 오래오래 외국 사람들에게 심어지고 전파가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독특한 합창단 덕분에 한국 노래를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마리아, 스페인 마드리드 시민]
"한국 음악은 아주 멋있어요. 아름답습니다."

[인터뷰:마리아 테레사, 밀레니엄 합창단 단원]
"임재식 단장은 스페인에 한국 음악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이죠."

'정열의 나라' 스페인에 한국 노래를 심고 있는 임재식 단장!

그의 꿈과 열정을 만나봅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대형극장.

오늘은 '밀레니엄 합창단'의 정기 연주회가 있는 날입니다.

'밀레니엄 합창단'은 주로 한국 가곡과 민요를 부르는 합창단으로 스페인에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저녁에 열리는 공연을 앞두고 마지막 리허설이 한창입니다.

리허설도 본 공연 못지않은 긴장감이 흐릅니다.

임재식 단장의 지휘에 따라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고 합창단의 화음이 악기의 선율과 어우러집니다.

손으로 장단을 맞추며 부르는 노래는 한국 민요 '밀양 아리랑'.

모두 내로라하는 실력을 가진 프로 성악가지만 아직도 한국어 발음은 어렵습니다.

[인터뷰:호세 안토니오 까릴, 밀레니엄 합창단 단원]
"언어가 가장 어렵습니다. 멜로디도 많이 다르죠. 한국 음악은 서정적이고 시적이고 아주 매력적입니다."

[인터뷰:임재식, 밀레니엄 합창단 단장]
"가사 뜻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심어주고 싶어서 제가 조금이라도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반복해서 발음 수정을 합니다."

'밀레니엄 합창단'은 외국인 성악가들이 한국 민요와 가곡을 부르는 세계에서 유일한 합창단인데요.

합창단이 창단된 것은 지난 1999년입니다.

당시 스페인 국영방송국 'RTVE(알티비)' 합창단의 테너이자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임재식 씨가 주도했습니다.

그의 동료인 소프라노 가수가 한국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 것이 합창단을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인터뷰:루르데스, 스페인 소프라노]
"매년 콘서트 때마다 비슷한 노래를 불렀거든요. 좀 지루함을 느끼고 있었던 찰나에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당시 임재식 씨에게 한국 노래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알려주더라고요."

추천한 노래는 임 씨의 어머니가 살아생전 가장 좋아했던 우리 가곡 '동심초'였습니다.

동료 가수는 한국어 노랫말을 전혀 몰랐지만 이내 아름다운 선율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악보를 외워 '동심초'를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임재식 씨는 한국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음악을 스페인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리고 싶었던 것이죠.

[인터뷰:임재식, 밀레니엄 합창단 단장]
"한국 사람처럼 부르는 거예요. 발음도 정확하게. '이거다 이거!', 그래서 이렇게 스페인 성악가들에게 (한국 노래를)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이 루르데스를 통해서 (생기게 된거죠)."

그는 함께 노래하던 국영 방송국 'RTVE' 합창단원들에게 자신의 꿈이 담긴 합창단의 창단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80명의 단원 가운데 25명이 그의 생각에 공감해 합류했고, '밀레니엄 합창단'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인터뷰:페느난도 페르난데스, 밀레니엄 합창단 단원]
"임재식 단장은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 매우 상반된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길을 찾아냈어요."

[인터뷰:레베카 가르디엘, 밀레니엄 합창단 단원]
"한국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노래가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죠."

막상 합창단은 꾸려졌지만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임재식 단장은 한국어를 모르는 단원들을 위해 악보에 일일이 국제 음성기호로 노랫말을 적었습니다.

[인터뷰:임재식, 밀레니엄 합창단 단장]
"'의, 는, 을' 이게 참 어려워요. 우리 밀레니엄 합창단은 제가 국제 음성기호를 만들어서 몇 년 동안 노래를 불러서 정확한 발음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제 밀레니엄 합창단이 부를 수 있는 한국 노래는 '아리랑'과 '그리운 금강산' 등 한국 가곡과 민요 50여 곡에 이릅니다.

밀레니엄 합창단은 지난 15년 동안 스페인에서 해마다 정기 공연을 열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에는 한국과 스페인 수교 60주년을 맞아 스페인 순회공연도 열었습니다.

또 10년 전부터는 1년에 한 번 한국 관객들을 만나기 위해 내한 공연도 열고 있습니다.

[인터뷰:임재식, 밀레니엄 합창단 단장]
"우리 국민들이 한국 노래를 몰라요. 보리밭이 뭔지, 별이 뭔지…. 그래서 거꾸로 우리가 내한을 해서 우리 한국 노래가 우수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서 다시 회복해가지고 우리 노래를 다시 사랑하고 부를 수 있게 하려고..."

[인터뷰:마리아 테레사, 밀레니엄 합창단 단원]
"저는 동양 국가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요. 한국에 가본 뒤 한국을 사랑하게 됐고, 한국인을 좋아하게 됐어요."

임재식 단장은 어린 시절 플라시도 도밍고같은 세계적인 성악가를 꿈꿨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난 1983년 무작정 스페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 스페인 왕립 음악원에 들어갔지만 낯선 동양인을 대하는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인터뷰:임재식, 밀레니엄 합창단 단장]
"'동양인인 네가 와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이렇게 쳐다보면서 바보같이 대화를 했죠. 지금은 나를 빈정거리지만 훗날에는 나를 비추는 불이 될 것이다..."

외롭고 힘든 유학생활.

늘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 하루 종일 물로 배를 채워야 했던 날도 많았습니다.

임 단장은 지금도 가끔씩 찾는 장소가 있는데요.

시원한 호수 바람이 불어오는 똘레도 다립니다.

여기에 서면, 호수를 낀 고향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고향이 그립고 힘이 들 때면 이 다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이렇게 노래는 그리운 어머니의 얼굴을 싣고 호수의 물결을 따라 흘렀습니다.

[인터뷰:임재식, 밀레니엄 합창단 단장]
"외로움이라는 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든 거였어요. 그래서 눈물도 많이 흘리고…. 열심히 살아야 되겠다, 열심히 뭐든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많이 다졌어요."

방송국 일을 마친 임 단장이 서둘러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자동차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마드리드 외곽에 있는 문화회관인데요.

밀레니엄 합창단원이자 임 단장의 오랜 친구인 피페 씨가 이끌고 있는 '꼬슬라다 합창단'의 연습이 있는 날입니다.

[인터뷰:임재식, 밀레니엄 합창단 단장]
"프로 성악가들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는 좀 부족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분들이 한국 노래를 좋아하고 부르면서 너무 좋아하고 신나하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감동이 많이 됐고..."

피페 씨는 6년 전 이 합창단을 만들었습니다.

임 단장을 통해 알게 된 한국 노래를 더 많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50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원은 20대 젊은이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합니다.

직업도 학생과 주부, 변호사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다 모였고요.

공통점이라면 대부분 합창 경험이 없는 아마츄어들이라는 것입니다.

[인터뷰:피페, 꼬슬라다 합창단 지휘자]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오페라곡도 가르치고 있고, 한국 노래도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 합창단이 더 수준 높은 노래를 더 많이 부를 수 있도록 된다면 좋겠습니다."

임 단장의 깜짝 방문에 합창단은 활기를 띱니다.

단원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는 임재식 단장.

결국 이 합창단도 한국어 발음이 가장 큰 문제네요.

[인터뷰]
"이~ 강산! 이!강!산!"

임 단장의 특별 지도를 받고 나니 어색했던 한국어 발음이 한결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인터뷰:임재식, 밀레니엄 합창단 단장]
"아리랑은 한국의 두 번째 애국가입니다. 우연히 지나가다 한국 사람을 만나면 '아리랑~' 해보세요. 분명 악수를 해줄겁니다."

'꼬슬라다 합창단'은 일주일에 한 번 모여 한국 가곡과 민요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한국 음악을 자주 접하다 보니 낯설기만 했던 한국과도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입니다.

[인터뷰:마리아 돌로레스, 꼬슬라다 합창단원]
"한국 음악을 배우면서 우리가 한국과 문화가 생각처럼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물리적인 거리는 멀지만 음악을 통해 가깝다는 것을 느끼죠."

[인터뷰:후안 까를로스, 꼬슬라다 합창단원]
"아리랑을 통해 한국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게 됐어요. 아리랑은 한국의 전통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도 아리랑을 들으면 특별한 감정을 느끼듯 저도 감동을 받습니다."

공연 시작 30분 전.

입장이 시작되자 1,600석의 넓은 객석은 설렌 표정의 관객들로 빠르게 채워집니다.

드디어 밀레니엄 합창단 정기 공연의 막이 오르고, 고운 한복을 차려 입은 합창 단원들은 한명씩 조심스레 무대에 오릅니다.

15년 째 해 온 공연이지만 매번 가장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첫 번째 공연 곡은 '밀양 아리랑'.

오케스트라 연주와 장구 장단이 어우러져 한바탕 신명나는 무대가 펼쳐집니다.

노랫말의 뜻은 잘 몰라도 음악은 관객을 하나로 만듭니다.

흥겨운 가락은 그 자체가 만국 공통업니다.

이어지는 노래는 '그리운 금강산'.

또렷한 한국어 발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넓은 공연장을 꽉 채웁니다.

애잔한 선율에 관객들의 가슴에는 진한 여운과 감동이 스며듭니다.

공연에는 특별히 스페인 어린이 합창단원 80여 명도 참석했습니다.

임재식 단장에게 한국 노래를 배운 어린이들인데요.

스페인 어린이들이 부르는 '고향의 봄'.

인종과 문화는 다르지만 노래를 통해 한국과 스페인 사람들은 모두 하나가 됩니다.

[인터뷰:루이스, 스페인 어린이 합창단원]
"이렇게 중요한 공연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과 이것을 한국인이 본다고 생각하면 정말 기뻐요."

[인터뷰:이시은, 한국인 유학생]
"한국에서 평생 살면서 들었던 노래랑은 완전 다른 느낌으로 진짜 감동 깊게 들었어요."

밀레니엄 합창단 정기 공연은 스페인 국영방송을 통해 스페인 전역에 방송됐습니다.

15년 전 첫 정기 공연 때 시범으로 시작했던 방송이 반응이 좋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터뷰:모랄레스, 스페인 국영방송 RTVE 국장]
"밀레니엄 합창단의 공연은 항상 대중들의 기대치가 높았고, TV를 통해 방영될 때마다 매우 좋아했고 흥미로워 했습니다."

2시간의 공연은 끝 났지만 관객들은 오랫동안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인터뷰:마놀로, 스페인 관객]
"아름답습니다. 다른 나라의 노래를 듣는 공연은 처음인데 최고였어요."

[인터뷰:마리사, 스페인 관객]
"아주 즐거웠어요. 한국 음악은 매우 열정적고 좋습니다."

타향에서 듣는 한국 노래에 동포들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향수를 달랬습니다.

[인터뷰:조성근, 스페인 동포]
"제가 교포인데요. 여기서 한국 노래 들으니까 소름 돋고, 감동받고. 애국가 나올 때가 제일 감동 받아서 눈물 나올 정도였어요. 한국도 가고 싶고..."

외국 문화의 홍수 속에 우리조차 잊고 지내는 한국 전통 민요와 가곡.

그 노래가 지구 반대편 스페인에서 그 곳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봉에 임재식 단장이 있습니다.

제2, 제3의 '밀레니엄' 합창단을 만들어 한국 노래를 스페인에 더 알리고 싶다는 임 단장.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오늘도 또 다른 무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임재식, 밀레니엄 합창단 단장]
"우리 한국에 가면 초등학교에 외국 노래들이 얼마나 많아요. 스페인 초등학교 음악책에 우리나라 아리랑이 나오는 것이 제 간절한 소망이고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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