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치사율 100%, 남하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대대적 사냥 괜찮을까?

[와이파일]치사율 100%, 남하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대대적 사냥 괜찮을까?

2020.12.09. 오전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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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치사율 100%, 남하하는 아프리카돼지열병...대대적 사냥 괜찮을까?
강원도는 12월 14일부터 대대적인 멧돼지 소탕 작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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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만큼 무서운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사람은 걸리지 않지만, 돼지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치사율 100%, 치료제도 없고 백신도 없습니다.
발병하면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죽습니다.
ASF(African Swine Fever), 아프리카돼지열병입니다.
인류가 코로나 19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면, 돼지는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싸우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치사율, 지금도 강원과 경기 접경지역 멧돼지들은 하나둘 죽어가고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ASF(African Swine Fever), 아프리카돼지열병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돼지농장 매몰처분 모습

지난 2018년 중국을 건너 북한으로 유입됐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야생 멧돼지를 통해 민통선까지 바이러스가 퍼졌습니다. 같은 해 가을엔 결국 경기도 파주 양돈 농가에서 발병했습니다. 파주와 연천 등 경기 북부지역에 수십만 마리에 달하는 모든 돼지를 매몰 처분하고 나서야 바이러스가 더 퍼지는 걸 겨우 막았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인간들이 사육하는 돼지가 아닌 야생 멧돼지에 말입니다. 지난달까지 강원도와 경기도 접경지역에서 ASF에 감염된 멧돼지는 모두 800마리가 넘게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접경지역 2중·3중 광역 울타리…무용지물?
▲접경지역에 2중·3중으로 설치된 광역울타리

환경부는 야생멧돼지를 통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놨습니다.
경기와 강원 접경지역 240km에 달하는 구간에 야생 멧돼지의 이동을 막기 위해 설치한 높이 1.5m의 철제울타리입니다. 광역 울타리라 불리는 펜스 설치에 100억 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울타리를 넘어 남쪽으로 더 내려왔습니다. 환경부는 울타리를 더 설치했습니다. 이렇게 설치한 울타리가 벌써 3겹, 하지만 바이러스는 또다시 울타리를 넘었습니다.
▲울타리 설치로는 멧돼지 이동을 막을 수 없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가평에서 포획한 야생멧돼지 4마리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됐습니다. 삼중으로 설치한 광역 울타리 밖이었습니다. 울타리로 야생멧돼지의 이동을 원천봉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편의를 위해 국도변을 따라 설치하다 보니 빈틈이 많습니다. 민가나 마을 입구에는 어김없이 출입문을 만들어 열어놨고, 땅 주인, 집주인이 반대해 설치하지 못한 곳도 있습니다.
▲사유지라는 이유로 끊겨 있는 광역울타리

겨울이면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오는 야생멧돼지에게는 뻥 뚫린 울타리는 통로나 마찬가지입니다.
환경부 역시 광역 울타리의 허점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 일선에 선 자치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울타리의 기능은 바이러스가 빠르게 남하하는 것을 지연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이대로 가면 강원도와 경기도를 지나 양돈농가가 밀집한 충청도는 물론 전라도와 경상도까지 내려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입니다.


▶광역수렵장 운영…ASF 방역 최후 대책?
▲14일부터 전국의 엽사가 강원도로 모여 멧돼지를 사냥한다

강원도가 대책을 내놨습니다.
대대적인 멧돼지 소탕작전입니다.
오는 14일부터 내년 3월까지 수렵장을 열고 전국의 엽사들을 불러모아 멧돼지를 모두 잡겠다는 겁니다. 강원 북부 접경지역의 멧돼지는 이미 감염됐기 때문에 접경지역과 떨어진, 아직 감염 멧돼지가 발견되지 않은 강원도 중부(홍천, 횡성, 평창, 강릉, 양양) 지역의 멧돼지를 보이는 대로 사냥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경기도 파주의 양돈농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했을 때 선제 대응으로 모든 돼지를 묻어 없애버린 것처럼 병에 걸릴 수 있는 야생 멧돼지를 최대한 잡아 수를 줄이겠다는 겁니다.


▶대대적인 멧돼지 소탕 작전…변수는?

변수는 없을까요?
전문가들은 강원도의 대대적인 수렵장 운영 계획을 우려합니다.
사냥을 통해 야생멧돼지의 수를 효과적으로 줄인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는 겁니다. 사냥을 통해 개체 수를 줄이면 어미 멧돼지는 일 년에 번식을 두 번까지 해 개체 수를 늘립니다. 천적도 없고 산악지역형 대부분인 한반도, 게다가 민간인은 출입할 수 없는 DMZ가 있는 한 사냥으로 개체 수를 줄이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수렵인·수렵견 통한 ASF바이러스 전파도 우려된다

특히 사냥꾼이 총을 들고 쫓으면 멧돼지는 생활반경 10km를 벗어나 무려 50km 넘는 거리를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염지역과 비오염 지역을 구분하지 못하는 멧돼지가 북쪽으로 달아나 바이러스에 오염된 접경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이 멧돼지가 본래 서식지로 다시 돌아온다는 데 있습니다.
또 다른 변수는 전국에서 모인 수렵인입니다. 강원도는 애초 4천 명의 수렵인을 모집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여파로 모집인원을 절반인 2천 명으로 줄였습니다. 실제 신청인 원은 680명에 그쳤지만, 어쨌든 전국의 엽사들이 강원도로 모입니다. 감염사례가 나오지 않은 지역에서 하는 멧돼지 사냥이지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가 강원도를 남과 북으로 양분하는 소양호를 넘어서도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수렵이 끝나면 엽사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각 지역에서 다시 유해 조수 구제 활동을 벌이는데, 바이러스를 전국으로 퍼뜨리는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렵견이나 자동차에서 ASF 바이러스가 발견된 사례도 있습니다.


▶강원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수렵장 운영의 변수는 강원도 역시 알고 있다

강원도 역시 이런 변수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광역 울타리를 넘어 계속해서 남하하는 바이러스를 보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는 게 강원도 입장입니다.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가 퍼진지 1년 넘게 지났지만, 접경지역의 멧돼지 감염은 줄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야생멧돼지의 번식력과 생존력 또한 그만큼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수를 줄이기로 했습니다. 전국의 모든 엽사를 불러 짧은 시간 내에 개체 수를 최대한 줄일 계획입니다. 강원도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멧돼지 감염이 강원도의 국립공원을 타고 백두대간을 지나 퍼지는 겁니다. 강원도에는 설악산과 오대산, 치악산, 태백산 등 국립공원이 몰려 있습니다. 국립공원 내 야생동물 포획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고, 허가가 난다고 해도 산세가 험해 사냥과 덫으로 잡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국내 최대 돼지사육단지 충청도에 퍼지면 양돈산업 붕괴 우려

국내 최대 돼지사육단지가 밀집한 충청지역으로 바이러스가 퍼지면 국내 양돈산업이 붕괴할 수 있습니다. 울타리는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하고,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냥으로 개체 수를 줄이는 것만이 답이라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 방역도 코로나19 방역과 같다"

대구대학교 생물교육과 조영석 교수는
아프리카돼지열병도 최선의 방역은 코로나 19 방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코로나 19 방역의 최선의 방역이 비대면과 거리 두기 듯, 아프리카돼지열병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멧돼지는 산불이나 사냥꾼의 추격 등 돌발 위험요소가 없으면 반경 10km의 생활반경을 유지합니다. 감염된 멧돼지는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죽습니다. 울타리는 이미 쳐놨으니, 감염돼 병든 돼지가 무리해서 울타리를 넘어올 가능성도 크지 않습니다. 감염이 확인된 지역은 철저하게 격리하고, 사체만 안전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대책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유럽에서는 체코가 유일하게 2년 만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박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체코 수의학 당국 아프리카돼지열병 대응 발표 자료

멧돼지의 이동을 막고 서식지에 머무르게 유도한 후 ASF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으면 사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사냥은 저격수를 이용해 조용히 이뤄졌습니다. 민간인의 출입은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울타리는 멧돼지의 이동을 제한하기보다, 감염지역으로 들어가는 민간인을 막기 위한 목적이 컸습니다. 체코 수의학 당국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사냥은 ASF 박멸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고 명시했습니다. 모든 사냥을 중지하고 감염 지역을 진정시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달 중순이면 강원도에서는 대규모 수렵장이 열리고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수렵인들이 모입니다. 과연 멧돼지들은 어떻게 될까요? 마지노선으로 잡은 강원 중부 지역에서 치사율 100% 이 끔찍한 ASF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을까요?

취재기자:홍성욱[hsw0504@ytn.co.kr]
촬영기자:진민호
그래픽:박유동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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