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하나 됐던 '코리아'

스포츠로 하나 됐던 '코리아'

2015.01.03. 오전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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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분단 70년, 남과 북의 체육 교류도 20여 년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가장 극적인 교두보 역할을 하며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역사에 남겼습니다.

장아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한국의 탁구 여왕 현정화, 그리고 북한의 라이벌 리분희를 그린 영화 '코리아'입니다.

사상 첫 남북 단일팀이 출전한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의 감동을 재연했습니다.

아리랑과 한반도기가 스포츠 무대에서 첫 선을 보인 것도 이 때입니다.

[인터뷰]
"국가 대신에 민요인 아리랑을 연주하고 국기 대신 한반도 지도를 게양해야 하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1999년에는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통일농구대회가 열렸습니다.

현대 남녀 농구팀이 북한의 회오리, 벼락팀과 친선경기를 가졌습니다.

4년 뒤, 평양에는 정주영의 이름을 딴 체육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첫 남북 정상회담으로 화해 무드가 최고조였던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처음으로 남북 공동 입장이 이뤄졌습니다.

[인터뷰:김운용, 대한체육회장겸 IOC집행위원]
"함께 손을 잡고 행진을 한 것은 굉장히 의의가 있고 역사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베이징올림픽 이전까지, 크고 작은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공동 입장은 계속됐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논의됐던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은 아직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북한의 미녀 응원단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인터뷰:북한 응원단]
"힘들지 않습니다. 우린 학교에서 이런 체육대회를 많이 했단 말입니다. 이것 좀 한 거 가지고 힘들면 그게 무슨 청춘이겠습니까."

이후 대구 유니버시아드,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에서도 경기보다 더 큰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2013년에는 북한에서 처음으로 태극기와 애국가가 허용됐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일부 종목을 마식령 스키장에서 치르자고 북한이 먼저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뜨거웠다 식었다를 반복하는 남북 관계와 함께 스포츠 교류도 부침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몸과 몸이 맞닿고 함께 땀흘리며 느꼈던 감동의 순간들은 분단 한국이 여전히 스포츠에 기대를 거는 이유입니다.

YTN 장아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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