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훈·이세돌, 30일 독도서 바둑 특별 대국

김장훈·이세돌, 30일 독도서 바둑 특별 대국

2016.06.24. 오후 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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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훈 / 가수

[앵커]
여러분, 메르스 사태 다 기억하실 겁니다. 메르스 사태 때 제가 아주 유명한 가수 한 분하고 통화를 하다가 우연히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아침 라디오 진행할 때 어떤 시장 상인분하고 인터뷰를 했는데 그 시장이 메르스 때문에 지금 거의 공동화가 됐다.

바로 며칠 지나서 바로 이 유명한 가수분이 그 시장에 가서 거리공연을 했습니다. 바로 메르스 사태 때문에 신음하는 상권을 되살리기 위한 공연을 했는데요. 이런 일을 자주하시는 분입니다. 공연의 신이라고 불리우는 가수 김장훈 씨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그런데 이번에는 시장에서 거리공연하시는 게 아니라 독도에 가신다고요, 독도? 이세돌 9단하고 바둑. 그런데 바둑 9단은 아니실 거 아니에요.

[인터뷰]
그럼요. 저는 아마 6단이고요.

[앵커]
아마 6단? 바둑 잘 두시네요.

[인터뷰]
끊었다가 다른 일을 해야 하니까. 최근부터 다시 두기 시작했는데 늘어서요.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앵커]
저는 알까기 아니었다, 이랬는데. 아마 6단이시면 대단하신데.

[인터뷰]
알까기도 잘해요. 오목이나 장기나 모든 면에서는 져버릇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일 궁금한 게 긴장감이 없지 않냐. 그래서 페어바둑으로 두거든요. 복식이죠. 아시안게임에도 있었어요, 페어바둑이.

[앵커]
그러면 방식이 어떻게 돼요?

[인터뷰]
방식이 두 명이 있잖아요. 저랑 이슬아 4단, 얼짱 기사라고 하죠. 아시아 페어바둑 금메달리스트예요. 이세돌 9단과 장혜연 아마 5단이 이렇게 편을 먹으면 대충 맞잖아요. 제가 한 수 두면 저쪽 한 수 두기 때문에. 그런데 훈수를 못 둬요. 그러니까 사실 이건 몰라요, 내용을. 왜냐하면 기력이 차이가 나면 이걸 지금 잡자는 건가.

[앵커]
너무 차이가 나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으니까.

[인터뷰]
프로한테 깔고도 안 돼요, 저희가. 이걸 지금 잡자는 건가 도망치자는 건가. 되게 재미있어요. 페어바둑이 기전도 있고 해서 발전을 시켰습니다. 이게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명칭을 제1회 독도나눔배 페어바둑으로 했고요. 2회, 3회 계속해서 아마추어 16강 초청전, 나중에 한중전도 해서 계속 앞으로 독특한 기전으로 발전시킬 겁니다.

[앵커]
왜 독도예요, 그런데?

[인터뷰]
워딩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 의도는 얘기를 안 하고요.

[앵커]
일본도 가셔야 될 거 아니에요.

[인터뷰]
일본 매년 가요.

[앵커]
그런데 바둑 두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인터뷰]
왜냐하면 들어갈 수 있나 없나 궁금해서 가면 들어왔네 하고 하루 자고 그냥 와요, 밥 먹고. 들어가고요. 그래서 왜 독도에서 하냐면 워딩은 그렇게 했습니다. 한국 바둑 세계 최고의 기사와 한국바둑홍보대사 및 나눔가수인 김장훈이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관광지인 독도에서 한국 바둑 보급을 위해 바둑을 둔다. 그리고 거기에 나눔을 추가해서 팍팍한 세상에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다케시마라고 우기는... 사실 일본 대사관에 있는 분하고 친하거든요, 일본 대사관. 사석에서는 그런 것 없이 잘 지내요.

[앵커]
일본의 극우민족주의가 문제지 우리가 일본 국민 가지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인터뷰]
일본 사람들한테는 잘해 줘야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의도를 자꾸 물어보죠, 솔직히 말해서. 그거 뻔한 것 아니야 물어보면 이게 길어지니까 잠시 후에 나오면 얘기하겠지만 아베 총리 예를 들어서 얘기를 해 주죠, 역으로. 얘기할까요?

[앵커]
얘기하세요.

[인터뷰]
예를 들어 얼마 전에 G7 회의를 할 때 이세신궁으로 갔잖아요. 아베가 뭐라고 했냐 하면 이번에 G7의 무대가 된 이세시마에는 우리의 유적지인 이세신궁이 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일본의 고향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이세신궁은 침략전쟁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한 곳이잖아요. 그러니까 전범국가로서의 책임이 있는 곳인데 아베는 그렇게 포장을 했어요. 그러면 의도가 뭐냐라고 물어봤을 때 이것과 히로시마 오바마 방문을 이용해서 피해자 코스프레하고 이렇게 얘기 안 할 거 아니냐. 그런데 중요한 건 그대들은 펙트가 아닌 것을 거짓말 한 것이다.

전범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한 것을 아닌 것처럼 유적지라고 한 거고 나는 그냥 원래 실효지배하는 한국땅에서 바둑을 둔다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아베한테 물어보면 얘기하겠느냐. 그러니까 이렇게 예를 들어줄 테니 잘 한번 생각해 봐라, 그대들이. 그런데 분명히 얘기하는데 없고 그리고 독도지킴이라는 것도 내가 한 게 아니라 독도를 지킬 생각도 없다. 왜냐하면 지켜야 될 필요성이 없고.

[앵커]
우리 것이니까.

[인터뷰]
다만 그러면 왜 나서냐 하면 우리 것인데 그대들이 그대들 것이라고 얘기하니까 그게 아니라고 역사적으로 가르친 것이다, 이렇게. 내가 가르쳐 줄게. 그냥 그렇게 해요, 요즘.

[앵커]
알겠습니다.

[인터뷰]
되게 얄미울 거예요, 제가.

[앵커]
별로 신경 안 쓰시잖아요, 그렇죠?

[인터뷰]
얄미우라고 그러는 거예요.

[앵커]
글쎄요. 얄미우라는 우리 김장훈 씨에 대한 세 가지 궁금증. 저희가 판넬로 준비를 해 봤는데요. 첫 번째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울렸다, 이게 무슨 얘기냐면 울지 마, 인마.

[인터뷰]
그러니까요.

[앵커]
노래 제목이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이게 강인 씨하고 같이 한 것이죠?

[인터뷰]
네.

[앵커]
우선 왜 울지마 인마였어요?

[인터뷰]
그냥 전부 다 힘드니까 힘들지만 한번 가 보자.

[앵커]
그런데 지금 공교롭게도 강인 씨가 이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아야 될 상황이 됐어요.

[인터뷰]
그러니까요.

[앵커]
그런데 어떻게 보세요? 지금 최근에 강인 씨랑 연락해 보셨어요?

[인터뷰]
못했죠. 지금 전화 연락이 되겠습니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이슈가 잦아들면 만나서 앞으로 다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또 좋아하는 동생이고 얘기를 해야 되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까도 분노조절장애니 이런 얘기 나왔었잖아요, 패널들이랑. 그런데.

[앵커]
정치 때문에요.

[인터뷰]
정치가 제일 심하지만 보면 특히 김성민 씨도 그렇고 안타까운 연예인 사건사고가 많잖아요. 연예인 셀럽이니까 그렇게 밝혀지지만 일반인들도 많아요. 그 이유를 보면 스트레스죠. 경쟁사회에서 밀려나면 안 되고 청년실업에 정치는 짜증나고 7포세대에 헬조선, 이런 부정적인 것들만 나오잖아요. 그런데 두둔하는 게 아니라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르는 건 맞는데 이제는 시스템을 저는 바꿔야 한다고 늘 주장했던 게 아이돌 기획사들 많잖아요. SM이나 JYP,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인문학 강좌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인터뷰]
그 아이들의 인생을 보면 저는 걱정되는 게 1년에 수천, 수만 명이 지원을 해요, 꿈을 갖고. 떨어져요. 그 좌절감 그냥 방치해 둡니다. 연습생으로 수천, 수만 명이 해요. 데뷔하는 것은 문이 좁아요. 연습생만 몇 년 하다 관둬요. 그 아이들 제대로 못 삽니다. 됐다고 치자고요. 주기가 바뀌어서 1위였다 2위만 돼도 불안해지고 금방 새로 계속 올라옵니다. 못 삽니다, 그거. 그러면 인문학이 어려운 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은 어떤 가치를 두고 살아야 되나를 그 친구들은 학교에 다녀도 자고 했겠죠, 연습하고. 그 조직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것을 모르고 그것만 보고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른의 책임이라고 저는 생각해서. 물론 개인의 책임도 있겠지만. 저나 김성민 씨처럼 어른들도 사는 게 힘들어서 저도 유혹에 빠질 때도 있고 한데 이겨내죠. 그런데 그 친구들을 어여삐보고 상담선생님도 있어야 하고 매니저한테도 얘기 안 하고 그래서 저는 그런 소양을 따로 가르쳐서 너희가 만약에 음악을 관뒀을 때도 인기가 떨어졌을 때도 세상은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라는 것을 저 같은 사람을 초청해서도 하고 시스템 자체를 저는 어른들이 바꾸는 노력이지.

[앵커]
그런 의미에서 재능기부도 하시고. 그런데 돈 기부가 누적액이 200억이 넘었대요. 월세 사시잖아요, 제가 너무 잘 알지만. 월세 사시잖아요. 그런데 200억이 되는지는 저도 몰랐어요.

[인터뷰]
저도 몰랐어요. 기자분들이 이렇게 해서.

[앵커]
그런데 이렇게 기부를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인터뷰]
그럼요. 기분이 너무 좋아지죠. 너무 좋아지고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떤 분이 그래요. 김장훈 씨는 안 지치세요, 안 힘드세요, 그러면 지치죠, 힘들고요. 늙었나 봐요. 그런데도 하세요? 하는데 그런데 한 번 사는 삶인데 여기서 멈추면 주저앉을 것 같아서 저를 갖다 몰아넣는데 다 하게 되네요. 하고 나면 그 성취감을 보면 겪어봤잖아요. 이기는 습관을 들이면 내가 힘들지만 그 깃발을 꽂았을 때 그 기쁨, 내가 그래도 좀 후지지만 괜찮은 인간인 것 같아라는 느낌도 느끼고 그걸 생각하고 그 한 지점을 생각하고 가는 과정은 겪어봤기 때문에 학습효과로 이겨낼 수 있고요. 정말 행복해집니다.

[앵커]
그런데 좀더 행복해지려면 이거 하셔야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이거 안 하실 모양이죠?

[인터뷰]
그러니까 만날 가수가 돼서 이세신궁이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고 선민사상을 하고 이런 거 해서 시스템, 인문학 경제해야 하고 기부해서 월세 살고 이런 사람이 이게 될까요? 이걸 누가... 지금 방송에서 말하는 바람에 제가 거지인 건 다 알게 됐어요, 세상이. 장모가 될 사람이. 지금은 어느 정도 연령대 되면 장모가 아마 저랑 비슷할 거예요, 연배가. 그래서 이게 되겠냐고요. 이 앞의 것을 보면 거기다 공연에 미쳐서 매일 공연하고. 저는 집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어떻게 하지, 재정파탄인데 그러고 혼자 써요. 써서 청와대 관리를 만났어요, 영향력 행사할 수 있는. 이거 망합니다. 이거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대가 들어와서, 안 됩니다, 저는. 들어가면 싸움납니다. 이거 했더니 좋대요. 이거 하십시오. 다 연구해서 런던올림픽의 성과, 나가노 올림픽의 실패, 소치 올림픽 얼마나 들었고. 그러는데 이 결혼을, 누가...

[앵커]
김장훈 씨가 제일 아끼는 본인의 노래, 그게 어떤 거예요?

[인터뷰]
저는 역시 노래만 불렀지라고요. 제가 대학교 때 과실에서 먹고 살고 했거든요. 가천대로 바뀌었는데 저는 경원대 나왔습니다. 저는 무조건 경원대고요.

[앵커]
거기에서 만든 노래군요.

[인터뷰]
그때 수배범 잡으러 오는 것 때문에 12시 되면 철창을 내렸어요. 그런데 제가 밖으로 못 나간 거예요, 그래서 감옥에 갇힌 거예요. 아, 인생 진짜 그러다가 한방에 노래가 나는 길을 떠났지, 아주 멀리 떠나고 싶었어. 슬픈 날에도 하늘만 보고 노래만 불렀고 첫사랑 떠나고 노래만 불렀어. 라라라. 제 인생 노래라고 할 수 있고요. 또 하나는 나와 같다면. 나와 같다면으로 출세 안 했으면 출연도 못했겠죠.

[앵커]
알겠습니다. 나와 같다면. 맞습니다. 그 노래도 굉장히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노래인데요. 앞으로도 저희가 독도 갔다오신 다음에 어떻게 결과가 나왔는지 저희가 물어볼게요.

[인터뷰]
감사하죠. 갔다가 또 이슈본색에 인터뷰하기로 했기 때문에.

[앵커]
어쨌든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저를 좋아하는 신율 교수님과 얘기 나눠서 너무 좋았습니다.

[앵커]
라디오스타에서도 신율의 출발새아침을 말씀하셨던데요.

[인터뷰]
막걸리나 한잔 하시죠.

[앵커]
그래야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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