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훈·이세돌, 이달 말 독도에서 일 벌인다

김장훈·이세돌, 이달 말 독도에서 일 벌인다

2016.06.01. 오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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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훈 / 가수

[앵커]
데뷔 25년 차 가수, 독도지킴이 또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펼친 역사적인 대결의 객원해설과. 누구인지 눈치 채셨나요? 그런데 이분이 이번에는 독도에서 그것도 이세돌 9단과 특별한 대국을 펼친다고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스튜디오에 직접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앵커]
독도에서의 이세돌 9단과의 대국.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굉장히 화제가 됐었는데요. 누가 제안을 먼저 한 겁니까?

[인터뷰]
당연히 제가 먼저 제안을 했죠.

[앵커]
이렇게 제안을 하니까 이세돌 9단, 뭐라고 하던가요?

[인터뷰]
역시 사이다답게 시원하게 좀 모르는 사람들은 예민할 수 있잖아요. 독도라는 곳에 대해서는. 그런데 그냥 네, 거기다가 나눔이라는 형태가 함께 있고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이어진 이 열기가 금방 식으니까. 제가 한국기원 홍보대사거든요.

프로기사로서도 보급의 의무가 있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봤더니 그런 것도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섬에서 바둑 한판 못 둘 이유 있겠습니까?

[앵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섬에서 바둑 한판을 두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대답을 했군요.

[인터뷰]
아주 시원하게 흔쾌히.

[앵커]
원래 이세돌 9단하고 친분이 좀 있으세요?

[인터뷰]
많이 못 봤어요. 많이 못 봤는데 사실 바둑두는 기사한테는 10대한테도 말을 못 놔요. 김 사범님, 김 9단님, 이렇게 하고 말 놓으라고 해도 예의라서.

[앵커]
그게 바둑의 예의군요?

[인터뷰]
거기서는 제가 못 그래요. 그런데 한 4년 전인가 제가 미국으로 노래에 대한 설렘이 줄어서 외국으로 나가서 공연을 하러 가자고 떠나는데 이세돌 9단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나한테 웬일로 이세돌 9단이 전화하지, 받았더니 언제인가 북미 쪽에 바둑 보급을 하려는 생각이 있는데. 그래서 간다고 하시기에 만나서 그냥 차나 한잔 하면 좋겠다.

그런데 만나지 못했어요. 딱히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런데 조금 놀랐죠, 그때. 그냥 바둑 두는 사람은 바둑만 둘 줄 알았는데 전세계에 보급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구나.

[앵커]
어린 친구지만.

[인터뷰]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그래서 그런데 지금 또 전세계적인 이슈잖아요. 이세돌 9단이. 바둑을 못 두는 사람도 이세돌 9단은 거의 알 거예요, 전세계인들이. 그러니까 여기서 만약에 독도에서 바둑을 뒀을 때 얼마나 여러 가지로 효과가 좋겠어요.

[앵커]
파급력이 엄청나게 크겠군요. 원래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가요?

[인터뷰]
그래서 작년에 원래 계획한 것은 조훈현 국수님과 하려고 했는데 이번에 가셨잖아요. 아무래도 해도 되는데 조금 그렇게 적절치는 않은 것 같아서 지금 또 알파고와의 대국으로 이세돌 9단이 너 그거 하면 김장훈 새누리...

[앵커]
정치적인 색깔을 다 배제하고.

[인터뷰]
그렇게 됐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실력이 되냐. 긴장감이 없다고 하는데.

[앵커]
그러니까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인터뷰]
되게 재미있는 대국이 페어대국이에요. 저랑 얼짱 기사라고 이세라 4단이 있어요. 페어바둑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그렇게 한 편이고. 이슬아 여류 강자랑 한 편이고. 이세돌 9단이랑 여류 아마가 한 편이에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되냐면 한수씩 서로 두고 말을 해 주면 안 돼요.

그러니까 그게 더 이상한 게 프로가 딱 두면 아마추어가 받쳐줘야 되는데 그 수를 연결을 못하니까 박빙이에요. 페어바둑은 어떻게 둬도 박빙이고 아마추어에서는 그런 게 있어요. 이렇게 두면 자기 편이 이렇게 두면 야, 야, 이렇게 해요. 아니면 흠~ 이렇게 하는데 거기는 그렇게 못하잖아요. 그 긴장감은 매우 재밌어요. 페어바둑은.

[앵커]
어쨌든 아마추어 1명, 프로 1명 균형을 맞추셨잖아요.

[인터뷰]
네, 균형을 맞춘 거예요. 여류 아마기사가 저보다 조금 떨어지는 분으로 하면 아무래도 이슬아 4단이 이세돌 9단보다는 프로지만 조금은 약할 것 아니에요. 그렇게 균형을.

[앵커]
이세돌 9단 쪽에는 여성 아마추어.

[인터뷰]
저도 여류 프로. 재밌어요, 바둑이.

[앵커]
바둑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으셨던 거예요?

[인터뷰]
제가 초등학교 3년을 병원에서 살았어요. 몸이 약해서. 그때 책만 봤고 할 일이 없으니까 음악 듣고 그리고 바둑을 뒀어요. 뒀는데 의사 선생님이 5단 두셨는데 제가 얼마 안 돼 가지고 이겼어요.

[앵커]
의사선생님과 처음 바둑을 두신 거예요?

[인터뷰]
그 전에 기사 아저씨한테 잠깐 배웠다가 기자가 있다고 해서 그때 김수영 사범님 도장에 데려가서 뒀더니 할 만하다, 프로. 그랬는데 제가 몸이 아파서.

[앵커]
그러면 바둑기사의 꿈을 키운 적이 있으세요?

[인터뷰]
몸이 너무 약하니까 프로기사 바둑을 둬라, 이렇게 됐는데 도장에 다닐 체력이 안 돼서 못 간 거죠. 그래서 그냥 아마추어로. 잘 됐어요.

[앵커]
지난 번에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 대결 당시에 해설도 하셨잖아요.

[인터뷰]
그건 너무나 많은 방송국에서 구글이 오픈 플랫폼으로 하다 보니까 하는데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했고. 왜냐하면 저는 그때가 바둑을 모르는 어머님들도 막 보셨어요. 바둑을 아는 사람도 5시간 보면 지루해요. 그래서 약간 예능처럼 하자, 토크쇼처럼 하자. 해설할 때는 해설하고, 영광이었죠. 세기의 대결을 제가 해설을 한다는 게.

[앵커]
그렇군요. 국수의 손만 봐도 누구의 손인지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게 진짜예요?

[인터뷰]
저 그런 프로그램인 줄 알았으면... 예능인 줄 알았는데 진짜 능력자를 뽑는 거여서 제가 아프리카 가기 전이었거든요. 일주일 동안 하루에 1시간씩 잠자고 밤샜어요. 밤새고 바둑 공부했어요. 기보를 보고 알아맞힌다고 그래서 이건 대충 이런 게 나오겠지 해서.

[앵커]
공부를 하셨군요?

[인터뷰]
공부했죠, 오래 됐기 때문에. 그래서 아프리카 가서는 많이 힘들었습니다. 기온도 45도였고 일주일 동안 체력도 고갈됐고.
[앵커]
지금 아프리카 얘기를 해 주셨는데 올림픽 출전하신다면서요?

[인터뷰]
네.

[앵커]
어떻게 된 건가요?

[인터뷰]
뭘 하면 일이 커지는 그런 게 있나 봐요. 그래서 재작년에 케냐에 가서 유소년 축구단을 만들고 그때 임흥세 감독이라는 남수단의 영웅 감독님을 만났어요.

[앵커]
케냐가 남수단 인접 국가죠?

[인터뷰]
그렇죠, 바로 있죠. 그래서 의기투합했는데 남수단 올림픽에 대해서 의뢰가 왔어요, 흥세 형님이. 여기가 신생 독립해서 평화체결을 했는데 올림픽을 나가야 한다.

지난 번에 국기를 못 달고 나갔다, 그런 얘기를 해요. 그래서 그래요? 8개 종목을 만들어서 IOC에 가입을 해서 올림픽에 나가게 된 거예요. 그래서 훈련을 시켜야 되는데.

[앵커]
그러면 그게 임흥세 감독님 혼자서 다 그렇게 한 일이에요?

[인터뷰]
저랑 같이 한 거죠. 그분이 남수단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이고요. 국가대표 총감독이고.

[앵커]
어떤 자격이세요?

[인터뷰]
저는 홍보대사면서 기획단이에요. 모든 총 기획하는 거거든요.

[앵커]
남수단이 올림픽은 처음 나가는 거죠?

[인터뷰]
네.

[앵커]
그러면 리우올림픽에는 어떤 자격으로?

[인터뷰]
처음에 얘기한 거는 기수를 해 달라고, 개막식, 폐막식 때. 제가 앞에서 그건 아니지 않나. 그분들이 되게 순수하니까. 거기다 코치까지 우리가 20명을 불러서 한 달 동안 서울시 체육회가 도와줘서 연수를 해 줬어요, 코치 강화 훈련을.

그러니까 그쪽에서는 너무 고마워하는 거죠. 기수 하라고 그래서 기수는 그래도 자국에서 있는 사람이 하고 뒤에서 우리는 서포트하는 느낌으로 손 흔들면서 이렇게 들어가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계속 기수 얘기는 하고 있어요.

[앵커]
아무튼 참 기수를 할지 이것도 저희한테는 굉장히 관심이네요. 올림픽 중계 볼 때.

[인터뷰]
우리가 리퍼블릭 오브 코리아로 들어가요, 사우스 코리아로 들어가요, 입장할 때?

[앵커]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
만약에 사우스 코리아로 들어가면 사우스 수단이 그다음에 들어갈 거예요. 그러면 한국선수단 들어가고 제가 남수단에 들어가면 아마 올림픽 보시다가 쓰러지실 거예요, 아마.

[앵커]
김장훈 씨인데? 보시던 분들이. 한국 선수단 다 지나갔는데 김장훈 씨가 나오네. 이렇게 놀라실 것 같은데요. 아무튼 저희가 올림픽 당일 개회식 화면에서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참 좋은 일 많이 하시는데요. 지금 누적 기부액이 200억 정도 되시죠? 그런데 아직도 월세 사시나요?

[인터뷰]
네.

[앵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부를 사재를 털어서까지 하시는 거예요?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인터뷰]
사재를 털어야지 남의 돈, 관재를 털어서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앵커]
그렇죠. 관재를 털면 안 되니까요.

[인터뷰]
그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까도 얘기했지만 집이 차압 3번 들어와서 부자였다 망해도 보고 단칸방도 갔다가 어린 나이에 세상에 뛰어들어서 바닥생활도 해 보고 하다 보니까 그러다 이렇게 되니까 돈이라는 게 불행을 막을 수는 있지만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는 걸 알거든요.

그래서 그냥 제 돈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 오는 이 행복이 다 갖기에는 두려웠어요, 처음에는. 제한테 오는 인기와 이런 것을 제가 다 가지면 뭔가 처음에 다른 불행이 올 것만 같았어요. 그래서 이건 내놔야 내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부터 시작한 게 지금은 그냥 DNA처럼 그냥 습관처럼.

[앵커]
김장훈 씨 하면 기부가 가장 먼저 떠오르죠.

[인터뷰]
그런데 당분간 3년 동안은 목돈을 모아서 가족들의 평생을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정리를 해 놓고 그래야 좀 자유롭게 살지.
[앵커]
결혼도 하셔야 하잖아요.

[인터뷰]
이번 세상에는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앵커]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요. 본업이 가수시잖아요. 그런데 너무 다른 활동을 많이 하시다 보니까 가수로서 조명받기보다는 다른 쪽의 일로 조명을 받은 일이 많은데 이런 부분은 좀 서운하지 않으세요?

[인터뷰]
서운하다는 단어보다는 서운한 것은 제가 한 것이니까 서운할 일은 없죠.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알죠. 그런데 한편으로 공연이나 음악을 좀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계기 같은 건 생겨요.

그래서 좀더 노래를 열심히 해야 하고 그게 한때는 아팠어요. 세상을 등지고 노래만 하자니 심장이 허락을 안 하고 세상에 뛰어들자니 내 음악을 사람들이 작게 보는 느낌이 들고. 세상도 무대고 무대가 세상이다.

그냥 내 심장이 허락한다면 이 세상에 뛰어들어서 모든 것들을 다, 비바람을 맞고 그대로 무대에 올라가서 그거를 노래하자고 해서 저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노래는 성대로 부르는 게 아니라 성대를 통하여 가슴을 노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앵커]
그런 느낌이 전해져요, 25년 차이신데.

[인터뷰]
26년차니까. 올해가 25주년이어서 지금 올해 가을에 노래도 내고 25주년 투어를 돌아보려고요.

[앵커]
지금 보다 가열차게 하십니까?

[인터뷰]
어제 과학사랑 콘서트도 제가 갔다 왔거든요. 그래서 YTN 직원보다 YTN 많이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을부터는 제가 연출한 제 공연에 많이 오시지 않을까.

[앵커]
가을에 그러면 저희가 공연도 볼 수 있고 새 음반도 만나볼 수 있는 건가요?

[인터뷰]
가을에는 의외로 25주년 같은 것은 크게 하잖아요. 초심으로 돌아가서 소극장으로 해 보고 싶고 파리도 잡혀 있고 상해도 있고 도쿄도 추진하고 있는데 잘 안 돼요.

[앵커]
알겠습니다. 풍성한 활동 기대를 해 보고요. 독도에서의 특별대국, 이게 정확하게 날짜는 정해졌습니까?

[인터뷰]
감사하게도 되게 속이 깊은 게 이세돌 9단 형이 프로예요. 입도가 힘들다는 것을 알더라고요.

[앵커]
날씨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인터뷰]
28, 29, 30일을 잡아놓고 그중에 날씨가 되는 날 울릉도에 우리는 있다가 되는 날 가서 하는 걸로 해서 대국을 3일을 빼줬어요.

[앵커]
너무 감사하네요.

[인터뷰]
아직 말씀은 안 드리지만 이세돌 9단과 함께 나눔에 대해서 얘기가 아름다운 게 많아요. 차차 조금씩 조금씩 좋은 뉴스를 전달할 수 있도록.

[앵커]
알겠습니다. 6월 28일부터 30일까지는 날씨가 쾌청하기를 저희가 좀 바라보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인터뷰]
다음 번에는 1000만 명인데 축제 때문에 1000만 명 줄고 이런 뉴스 말고 좋은 뉴스 제가 드릴 수 있도록 더 좀 아름다운 것 많이 만들어 보겠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아름다운 뉴스도 기대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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