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함께 살아왔지만 이제는 '유해동물'

인간과 함께 살아왔지만 이제는 '유해동물'

2018.02.07. 오후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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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은 / 과학뉴스팀 기자

[앵커]
다양한 동물의 생태를 살펴보고 그 속에 담긴 과학을 찾아보는 시간입니다.

과학관 옆 동물원, 오늘도 이동은 기자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시간의 주인공은 어떤 동물인가요?

[기자]
오늘은 멧돼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멧돼지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앵커]
우선 무섭죠. 요즘 도심에 나타나는 경우가 워낙 많으니까 혹시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되고요.

생각보다 덩치도 엄청 크고 빠르잖아요. 마주치면 도망칠 수도 없고 죽은 척을 해야 할지 직접 만나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기자]
그렇죠. 아무래도 사람이 사는 곳까지 와서 농작물을 해치거나 심지어 건물에 침입하는 경우도 있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영상으로 만나보시죠.

[앵커 : 새해 첫날 경북 구미의 한 식당에 멧돼지가 출몰했습니다.]

[기자 : 성큼성큼 여유롭게 걸어들어온 멧돼지는 손님이 있는 쪽으로 올라섭니다. 뒤늦게 멧돼지를 확인한 남성은 깜짝 놀라 칸막이를 넘어 도망치고, 멧돼지는 뒤따라서 사람들을 향해 돌진합니다.]

[인터뷰 식당 대표 : 갑자기 시커먼 돼지가 나타나더니…. 처음에는 돼지도 여유롭게 홀 쪽으로 올라가더라고요.]

[앵커]
와, 여기 계셨던 분들 진짜 무서웠겠어요. 새해 첫날부터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기자]
다행히 한 손님이 기지를 발휘해서 멧돼지를 출입구 쪽으로 유인했고요, 멧돼지는 식당에 들어온 지 40초 만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고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앵커]
다친 사람이 없었다는 게 제일 다행이네요.

[기자]
그렇죠. 두 분 앵커도 멧돼지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셨듯이, 이렇게 멧돼지는 주로 사람에게 위협이 되거나 도심에 출몰해서 피해를 주는 나쁜 동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멧돼지는 이런 이유로 유해동물로 지정돼 있기도 하고요.

[앵커]
아무래도 좋은 이미지는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데요, 이렇게 멧돼지가 도심에 자주 나타나는 이유가 있나요?

[기자]
가장 큰 이유는 아시다시피 먹이가 부족하기 때문인데요, 멧돼지는 잡식성이라서 물고기나 개구리와 같은 작은 동물 물론이고 풀이나 열매도 먹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버섯이나 도토리 등을 다 채집해버리니까 먹을 게 없어지기 시작한 거죠.

또 도시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든 것도 원인인데요, 실제로 먹이를 찾아서 이동할 때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여러 갈래로 뚫어놓으면 우두머리 멧돼지가 방향을 잃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길을 잃고 먹이가 있는 도시로 내려오는 거죠.

[앵커]
그렇군요. 원래 멧돼지가 무리로 움직이는 습성이 있나 봐요?

[기자]
네, 보통 수컷이나 새끼가 없는 암컷은 혼자 생활을 하는데요, 암컷과 새끼들은 기본적으로 작은 무리를 이뤄서 움직입니다. 대부분 아침과 저녁에 주로 활동하고요, 다른 동물에 비해서 활동 범위도 넓은 편입니다.

[앵커]
그러고 보면 어른 멧돼지가 새끼들을 이끌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그게 암컷이었네요.

[기자]
네, 최근에는 멧돼지 새끼가 포착되는 경우도 잦은 편이죠. 호랑이나 표범 같은 천적이 없어지면서 멧돼지의 번식률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실제로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신고 건수가 2012년보다 2016년에 24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멧돼지 입장에서도 적정 서식밀도를 1.1로 봤을 때 현재 서식밀도가 4.2에 달한다고 하니까요, 거의 4배에 달할 정도로 과밀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실제로 멧돼지 수가 많아지긴 했네요.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에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뉴스를 더 많이 접하는 것 같아요.

[기자]
맞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먹잇감도 구하기가 어려워지니까 아무래도 도심 지역에 많이 나타나게 되는데요,

실제로 멧돼지의 번식기가 12월부터 1월 정도기 때문에 이를 준비하려면 아무래도 먹잇감이 더 필요하겠죠. 그래서 멧돼지가 가장 출몰하는 시기는 주로 가을부터입니다.

[앵커]
그런데 멧돼지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산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거에도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의 동물이었나요?

[기자]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확인된 동물 그림 중에 가장 오래된 그림이 바로 멧돼지인데요, 지금 보시는 이 그림이 7,000년 신석기 시대에 그려진 멧돼지 그림입니다.

[앵커]
언뜻 보기에는 멧돼지 같지 않은데요? 물고기 같기도 하고요?

[기자]
그렇죠. 하지만 이 그림이 발견된 경남 창녕의 조개무덤에서 멧돼지 뼈가 함께 나오면서 전문가들은 이 그림을 멧돼지로 추정했습니다.

[앵커]
그럼 멧돼지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기자]
그렇다면 정말 확실한 멧돼지 그림이 있는데요,

울산 대곡리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혹시 멧돼지가 보이시나요?

[앵커]
동물이 굉장히 많긴 한데 멧돼지는 잘 안 보이는데요?

동그라미 쳐진 곳이 멧돼지인가요?

[기자]
더 자세히 살펴보면 확실히 멧돼지인 것을 알 수 있죠. 고대 멧돼지 그림으로는 가장 유명한 그림일 텐데요, 이 반구대의 벽화 역시 신석기 시대 말에서 청동기 시대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앵커]
우리 문화재에 이렇게 오래전부터 멧돼지가 등장한 줄은 몰랐네요. 찾는 재미가 쏠쏠한데요?

[기자]
재미있으시다니 하나 더 보여드릴까요? 지금 보시는 문화재 뭔지 아시겠어요?

[앵커]
아, 유명하지 않나요? 금동대향로네요.

[기자]
네, 멧돼지 보이시죠? 국보 287호인 금동대향로에는 39마리의 동물이 새겨져 있는데 여기도 멧돼지가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죠.

[앵커]
와, 정말 재밌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선조들은 멧돼지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여기진 않았던 것 같아요.

[기자]
네, 이런 그림들이 말해주듯이 멧돼지는 오랜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동물이었는데요, 고기를 먹는 것은 물론이고 송곳니를 장식품이나 생활 도구로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멧돼지 그림도 그 동물이 많이 잡히기를 기원한다는 주술적인 의미에서 오랫동안 그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럼 우리도 좀 더 평화적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기자]
네, 맞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오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는지 다양한 논의를 거치기도 했는데요,

우선 멧돼지 개체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멧돼지 수 자체가 급격히 늘어나다 보니까 출몰 지역을 예상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무인카메라나 유전자 분석 등의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멧돼지 개체 수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앵커]
그럼 우선 어디에 몇 마리의 멧돼지가 사는지 알 수 있겠네요.

[기자]
그렇죠. 무조건 포획이 답이 아니라 멧돼지의 생태에 대해서 좀 더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정보가 필요하고요, 또 멧돼지가 도심이 아닌 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멧돼지와 함께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겠죠.

[앵커]
그렇네요. 제가 얼마 전에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원래 우리나라에 호랑이와 표범이 살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걸 가죽을 벗기겠다고 무차별적으로 포획해서 멧돼지의 천적이 줄어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 좀 더 평화적인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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