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땅이 흔들리는 것 같다" 네팔 귀국자의 증언

"지금도 땅이 흔들리는 것 같다" 네팔 귀국자의 증언

2015.04.28.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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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네팔에 머무르고 있던 우리나라 국민 100여 명이 오늘 새벽에 네팔을 빠져 나와서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 가운데 한 분을 저희가 오늘 스튜디오로 초대했습니다. 정순자 씨 모시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오늘 새벽에 귀국하셨는데 이렇게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앵커]
지금도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정신이 없으시죠?

[인터뷰]
지금 아직도 떨려서요. 그러니까 지금도 땅이 움직씨는 것처럼 계속 떨려요. 그러니까 충격을 크게 받았나봐요. 밥을 먹으면 떨려서 잘 안 넘어가고요. 조금 진정이 안 된 상태입니다, 아직은요.

[앵커]
사흘 전입니다. 사흘 전 이 시간쯤인 것 같습니다. 우리로 치면 오후 3시고 네팔이 12시였고요. 그 당시에 어디에서 어떻게 지진을 맞으셨습니까?

[인터뷰]
저희가 포카라지역에 4개 학교에 후원하는 학생이 있어요. 그래서 그 지역 전체의 학생들인데 어느 한 지역의 학생들을 만나고 그다음에 르왕지역이라는 네팔에서 세 번째 높은 산에 있는 학생들의 교장선생님을 만나러 갔었습니다.

[앵커]
학교 후원 때문에 자주 네팔에 가시고요?

[인터뷰]
두 번째 갔었습니다. 2013년에 가고 이번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아침에요. 원래는 식사하고 늦게 내려올 것인데 빨리 내려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산 꼭대기이니까 올라가니까 너무 힘이 들었는데 그래서 내려와서 아침 식사를 막 마치고 난 후 10시 반경에 조금 휴식을 취하는데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앵커]
10시 반쯤에요?

[인터뷰]
10시 반에 식사를 마치고 난 후 그때부터 막 이렇게요. 이상하게 호수에 있는 물이 막 올라와요. 호수가 아니라 잉어 키우는 잉어장 물이요. 그 물이 뱅글뱅글 돌면서 올라와요. 그래서 이상하다고 처음에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앵커]
저희는 12시로 알고 있었는데 오전부터 그런 게 있었네요.

[인터뷰]
그게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거기에서 너무 심하게 흔들리니까 12시 조금 못 돼서 그냥 안 되겠다고 해서 나가자. 큰일나겠다, 이렇게 해서 나왔습니다. 얼른 못 나온 거는 저희가 타고 들어간 차가 뒤집어질 정도로 막 흔들리고 바닥이 막 울렸어요. 그래서 제가 서 있을 수 없어서 쪼그리고 앉아 있었어요.

[앵커]
차 안에서요?

[인터뷰]
아니요. 밖에서요. 다 밖으로 나왔어요. 식당으로 밖으로 모든 사람이 나와서 그렇게 피했어요. 그런데 산도 막 울리고 아주 산이 그렇게 크게 울리는 거는 처음 봤어요.

[앵커]
산이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는 모습이 보일 정도였나요?

[인터뷰]
산과 바닥 모두 흔들렸어요.

[앵커]
그것을 겪으신 곳이 이번에 피해가 가장 많았던 그곳이 제일 피해가 많았던 곳 과는 얼마나 떨어졌나요?

[인터뷰]
거기하고는 한 40km 정도라고 들었어요. 그랬는데 거기도 나오면서 보니까 집이 다요. 흙담집은 여기저기 다 무너졌어요.

[앵커]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였나요?

[인터뷰]
사람들은 자기 정신이 아니에요. 다 밖으로 나오고 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그게 왜 이러나 이러고 있던 사람은 그 자리에서 무너진 곳에 들어가 있고 그래도 무서워서 빨리 나온 사람들은 다 길거리에 나와 있었어요.

[앵커]
지진을 보통 사람은 평생 한번도 경험을 못해 보는 것이 대부분이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들은 특히 그렇고요. 그런 순간에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인터뷰]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어요. 아무 생각이 없고 이걸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되지, 그 생각 외에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그 생각도 없어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산으로 가도 흔들리고 저희가 마당으로 나왔는데 거기도 심하게 흔들리니까 어디로 갈 데가 없어요. 정말 막막했습니다. 정말 갈 데가 없어요.

[앵커]
그냥 정신적으로 공황상태가 되는 군요?

[인터뷰]
네. 그냥 백지상태가 돼요. 어떻게 해야 될 지를 몰라요, 서로요. 이리 와야 돼, 저리 와야 돼 하고 막 뛰기만 하고 대책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앵커]
그래서 그다음에는 어디로 대피를 하셨나요, 어떻게 하셨어요?

[인터뷰]
대피를 했어요. 조그만 식당 앞에 있는 낮은 담 밑으로 대피를 했는데 같이 가신 분이 그 담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이쪽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진짜로 그 담이 무너졌어요.

그래서 밖으로 나왔는데요. 그게 30초 정도 막 흔들리다가 지나니까 차가 흔들림이 이렇게 되던 게 조금씩 흔들림이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제 차로 나가자 해서 그 차로 갔어요.

그러니까 교장 선생님의 집으로 전화를 해 보니까 어디서 400명이 죽었다고 이런 얘기들을 하니까 현지를 가야 되겠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해서 거기에서 나왔어요.

[앵커]
현지를 가야 되겠다고요?

[인터뷰]
카트만두를 가야겠다는 겁니다.

[앵커]
피해가 큰 곳으로 가야 되겠다, 네팔 현지 선생님들이요?

[인터뷰]
그 선생님들이 그쪽으로 가야지 이게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다, 가보자 이러고 하시는데요. 저희는 정말 떨었어요. 그래도 가야 되니까 갔어요.

[앵커]
가야 된다는 것은 거기에서 구호도 해야 되고 그래야 되니까 가야 된다고 생각을 하신 건가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갇혔는지 살았는지 막 이런 게 걱정이 되니까 그냥 무조건 카트만두로 가야 된다. 그래서 거기에서 막히지 않으면 7시간을 버스를 타고 와요.

그런데 거기로 가는 고속도로가 거기밖에 없어요. 2차선인데 여기 높은 산이고 이쪽은 낭떠러지인데 너무 무서운데 여기는 뿌연 강물이 흐르고 그런데 오다가 산사태가 다 나서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앵커]
그래서 카트만두까지 가셔서 거기에서 이틀 가까이 머무르셨잖아요. 그때 상황은 어땠습니까?

[인터뷰]
카트만두를 처음에 들어가니까 어두워졌잖아요. 일찍 들어갔는데 너무 길이 막혀서 어두워졌는데 아무것도 안 보이고 불빛이 가끔 보이고 물은 안 나오고 불은 안 켜지고 전기도 안 되니까 암흑 세계에요.

버스니 이런 거는 전혀 없고요. 그러니까 이제 쾌쾌한 먼지 그 냄새만 막 진동을 했어요. 하여튼 뭔가 팍 터지는 것과 같은 그 냄새이니까 다 입들을 막고 하면서 갔어요. 그러니까 암흑천지라고 하고 싶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거요.

[앵커]
정순자 선생님은 그 지역의 아이들 특히 학교를 후원하기 위해서 가셨다가 생명을 구하셨고요. 지금은 그 아이들이 제일 눈에 밟히겠어요.

[인터뷰]
걱정이 되죠. 거기에서는 통신기지국이 다 무너졌다고 하더라고요. 그 나라 거 하나만 있다고 하는데요.

이제 통신이 전혀 안 됩니다. 누구하고 집전화도 핸드폰도 잘 안 되고 일단 통신이 안 되니까 어디에서 얼마만큼 사망자가 났는지, 우리 학생들이 어떻게 됐는지 이게 알 길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게 답답하고 지금도 통화가 안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그게 걱정입니다.

제가 여기에 와서 있어도 거기에서는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서 여기를 왔는데 여기서는 또 그쪽이 어떻게 됐는지 걱정이에요, 지금.

[앵커]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다 떠오르겠어요.

[인터뷰]
기억이 나죠. 이름은 외국 아이들이라서 잘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그러는데요. 너무 참혹했어요. 예쁜 아이들이 그렇게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 아이들이 가난하게 사는 곳이 다 무너졌기 때문에 그게 문제입니다. 피해가 가장 컸을 거예요.

[앵커]
모쪼록 아이들이 무사했으면 좋겠고 정 선생님도 몸과 마음 추스르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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