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수사 오리무중, 검거율은 90%...화재 수사의 이면

방화수사 오리무중, 검거율은 90%...화재 수사의 이면

2018.09.14. 오전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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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방화로 의심되는 화재 사건들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어제 전해드렸었죠.

오늘은 경찰의 화재 수사 실태를 더 깊숙히 살펴보겠습니다. 화재 수사가 미궁에 빠지는 경우가 수두룩한데도, 경찰의 표면적인 방화수사 성적은 놀라울 정도로 좋은 편인데요.

여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함형건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년 전 이맘때 한밤 화재로 잿더미로 변한 강릉 목조 문화재 석란정.

소방관 2명의 생명까지 앗아간 안타까운 화재였지만, 경찰 수사에서는 원인 미상으로 결론 났습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이 당시의 소방 화재조사서를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방화 사건 현장에 생긴다는 불에 탄 흔적들이 세 곳의 각기 다른 지점에서 발견됐습니다.

인화성 액체가 바닥에 부어졌거나 목재 틈새로 들어가 탄 듯한 흔적입니다.

평소 내부에 보관하던 시너통과 페인트통을 이용해 누군가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소방 당국은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불이 난 원인을 직접 판단할 수 있는 특이한 연소형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감정했습니다.

경찰도 탐문 수사 결과 방화의 물증을 찾지 못해, 화재 원인은 수수께끼로 남았습니다.

[경찰서 관계자 : 굉장히 더운 날씨에 (석란정 내부에 보관하던 농산물이) 기화할 수도 있잖아요. 국과수에서 방화 가능성이 없다고 한 건 아냐, 자연 발화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광주에서 발생한 3남매 사망 화재 사건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20대 엄마의 방화 사실이 밝혀졌지만, 이에앞서 경찰은 담뱃불을 이불에 끄려다가 일어난 화재라고 결론을 내 혼선을 빚었습니다.

당시 소방 화재조사서의 사진에선 인화성 물질이 바닥에 튀긴 상태에서 붙이 붙은 듯한 연소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소방조사관 : (담뱃불 화재가 아니라고 경찰에 왜 얘기 안했나?) "경찰은 수사하는 입장이고 저희는 조사하는 입장이다 보니까,국과수도 나와서 조사하기 때문에 저희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더라고요.]

소방과 경찰의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때, 화재 수사는 미궁에 빠지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하죠.

YTN 데이터 저널리즘팀이 최근 10여년간 소방 데이터에서 방화비율이 급감한 6개 소방서 관할구역을 살펴봤습니다.

소방서가 방화가 의심된다고 통지한 화재에 대해, 경찰은 그 3분의 1 이상을 피해가 작다는 이유 등으로 아예 다루지 않거나, 조사했지만 범죄 혐의점이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경찰서 당 평균 2달에 1번꼴로 방화 사건을 처리하는데, 그나마 수사한 사건 중 3분의 1은 실제론 불이 나지 않은 방화미수 사건이었습니다.

방화 수사엔 구체적인 물증이 필요하다보니, 범인은 현장에서 바로 잡거나, CCTV를 통해 검거한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YTN이 전국의 지방경찰청에 화재 감식과 감정 등 과학수사로 방화범을 잡은 경우를 알려달라고 정보공개청구하니 그같은 성공 사례를 찾을 수 없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화재 현장에선 방화범의 단서를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건데, 처음엔 방화로 의심된 사건이라도 물증이 안나오면, 조사만 하다 사건을 종결처리하는 경우가 자주 생깁니다.

여전히 불이 난 정확한 원인을 모르는데도, 이른바 내사종결되는 순간, 해당 화재는 방화사건이 아니라, 일반 화재로 분류됩니다.

미국 연방수사국 FBI가 매년 발표하는 방화범 검거율이 20% 정도에 머무는데 비해 한국 경찰은 방화범 검거율 90%대란 놀라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데요.

일종의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입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 실제 방화범을 잘 잡아서 방화로 가는게 아니고, (주로) 방화범을 잡아서 기소한 경우에 방화처리가 되다 보니까 방화범을 잘 잡는 거죠. 결과적으로는 실제 방화범은 그것보다 월등히 많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자체 과학수사팀이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화재 감식 감정과 이에따른 내사종결 내역은 통계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YTN 함형건[hkhahm@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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