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34] 비닐봉지 없이 장보기, 정말 가능할까?

[해보니 시리즈 34] 비닐봉지 없이 장보기, 정말 가능할까?

2018.06.16.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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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34] 비닐봉지 없이 장보기, 정말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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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선 잠만 자는 것 같은데 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을까. 주말 대청소를 할 때마다 두 손 가득 쓰레기를 들고 나서면서 생각한다.

지난 4월 재활용업체들이 폐비닐과 플라스틱 수거를 거부하면서 발생한 '쓰레기 대란'. 그 책임에서 나 또한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한다.

쓰레기 대란을 겪은 정부는 이르면 오는 10월부터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5대 대형마트는 올해 말부터 롤 형태의 속 비닐 사용량도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정말 마트나 슈퍼에서 비닐봉지 없이 장 보는 게 가능할까. 마트라고 하면 당장 비닐이나 스티로폼에 칭칭 감겨 포장된 제품이 나열된 모습이 떠오른다.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죄책감. 반대로 모든 물건이 비닐과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에 포장된 채 진열된 대형마트에서 진짜 쓰레기를 줄이는 게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도전했다. '대형마트에서 비닐봉지 없이 장보기.'

[해보니 시리즈 34] 비닐봉지 없이 장보기, 정말 가능할까?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보면 놀랍게도 이미 '쓰레기 제로' 장보기를 실천하는 주부들이 많았다. 그들이 올려놓은 글에서 비닐 없이 장보기 팁을 조금씩 얻었다. 이 글을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평소 마트에 갈 땐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는다. 비닐봉지나 종량제 봉투에 물건을 담아오면 그만이다. 하지만 속 비닐까지 사용하지 않기 위해선 꽤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먼저 장 볼 목록을 작성했다. 배추, 단호박, 양파, 숙주나물, 파프리카, 무, 수박, 삼겹살. 불필요한 물건을 안 사면 저절로 비닐 사용량도 줄어들 테니 말이다.

그리고 물건을 담을 면 주머니 4개와 장바구니, 플라스틱 용기 2개를 챙겨 장바구니에 넣었다. 가방이나 신발을 사면 주는 면 주머니들이 집에 몇 개 돌아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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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를 마치고 동네 한 대형마트에 들어서자 소심함이 불쑥 튀어나왔다.

비닐을 사용하지 않으면 왠지 유별나 보이거나 판매원들이 귀찮게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형마트에서 면 주머니에 채소를 담기란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침착한 척 채소 코너를 세 바퀴 정도 돌았다. 비닐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으니 마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중 비닐 포장이 안 된 파프리카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판매원에게 물었다. "혹시 이거 꼭 속 비닐에 가져가야 하나요? 제가 가져온 가방에 그냥 넣어가도 괜찮을까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판매원은 "저기 비닐 있는데 왜요?"라고 되물으며 "그냥 가져가셔도 되긴 하지만 가방도 더러워지고 손님이 불편하실 거예요"라고 걱정했다.

[해보니 시리즈 34] 비닐봉지 없이 장보기, 정말 가능할까?

그렇게 면 주머니에 물건들을 주섬주섬 담으면서 마트를 돌아본 결과.

계획했던 여덟 가지 품목 중 비닐에 포장이 안 된 채소와 과일인 단호박, 양파, 파프리카, 무, 수박 다섯 가지만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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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 코너에서 삼겹살을 비닐에 넣지 말고 미리 집에서 가져간 플라스틱 통에 담아달라고 하자 플라스틱 통 무게 때문에 계산이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판매원의 악의가 아니다. 실제로 스티로폼, 비닐랩에 포장된 제품이 아니라 고객들이 각자 가져온 외부 플라스틱 통에 고기를 넣고 다시 플라스틱 통의 무게를 뺀 뒤 금액을 매기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어패류는 아예 비닐 포장되지 않은 품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내용물이 밖으로 쉽게 새기 때문에 비닐 없이 어패류 장을 본다는 게 쉽게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자주 먹는 우유도 묶음 할인하는 제품은 비닐이나 테이프로 칭칭 감긴 상태였고, 라면류 역시 기본 포장이 비닐이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긍정적으로는 굳이 사지 않아도 될 음식을 못 사기 때문에 경제적이고 환경친화적인 장보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근데 그렇다고 매번 포장되지 않은 제품을 찾아 헤맬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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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현수막 장바구니에 담은 물건들)

강서구 한 하나로마트에서는 쓰레기 대란에 발맞춰 일회용 비닐봉지 대신 '폐현수막'을 재활용한 장바구니를 빌려주는 사업을 한다. 강서구와 강서 농협이 폐현수막 장바구니 1,600개를 제작해 매장을 방문한 주민들에게 나눠준다.

비닐 없는 가게 시범 사업을 하는 이곳에서는 얼마나 비닐을 절약할 수 있을까, 대형마트에서 사지 못한 품목을 구매하러 들렀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여전히 기존 대형마트와 마찬가지로 속 비닐을 사용했다. 속 비닐 거치대가 비교적 적어 보이긴 했지만, 육류 어류 등은 랩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대형마트에서 사지 못한 배추, 숙주나물, 삼겹살을 구매하고 폐현수막 장바구니를 받았다.

결국 마트 두 곳을 돌고 '제로 비닐 장보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비닐 사용을 최소화했다는 뿌듯함보다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포장용 비닐, 속 비닐들의 위세를 실감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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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고 비닐, 플라스틱을 줄인다는 정부 정책이 나오면서 대형마트에서도 대책을 세우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YTN PLUS에 정부 정책과 쓰레기 문제를 고려해 "속 비닐 사용량을 50% 이상 줄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 방법으로 대형마트와 익스프레스 매장에 속 비닐 사용 위치를 조정해 줄이고, 속 비닐 크기도 기존 350X450mm에서 300X400mm로 조정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홈플러스 관계자는 "매장 직원 교육을 통해서도 속 비닐 사용 자제에 대한 노력을 더 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완벽히 비닐 사용량을 줄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미 비닐 사용에 너무 익숙해졌다.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시대로 가려면 기존에 제조, 유통업체의 과대 포장된 제품을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생분해성 비닐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비닐백이 아닌, 천 가방이나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이들이 자신 있게 장을 볼 수 있게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천 가방을 들고 마트로 향할 의향이 나는 있다.

YTN PLUS 문지영 기자
(moon@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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