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니 시리즈 25] 20년 된 인형, 인형병원에서 수술 해보니

[해보니 시리즈 25] 20년 된 인형, 인형병원에서 수술 해보니

2018.01.17. 오후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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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25] 20년 된 인형, 인형병원에서 수술 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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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아플 때 동물병원에 데려가듯 인형이 아플 때 가는 병원이 있다. 아픈 인형을 고쳐준다는 말에 솔깃해져 나의 22년 된 오래된 친구 김별님을 병원에 맡겨보기로 했다.

인형병원에 간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건강 염려증에 걸린 저 인간이 드디어 인형도 병원에 데려간다"고들 했지만, 별님이는 오랜 세월 나의 전폭적인 애정을 받으며 솜이 푹 꺼지고 코가 한번 떨어져 나가 얼기설기 꿰매놓았고, 입 모양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서울에 있는 인형 전문 병원이기 때문에 인형을 택배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직접 들고 가서 수술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보통은 직접 입원을 시켜도 과정은 지켜볼 수 없고, 인근에서 대기하다가 퇴원 절차를 밟는다.

[해보니 시리즈 25] 20년 된 인형, 인형병원에서 수술 해보니

인형 병원에 가면 병원처럼 입원 절차를 먼저 밟는다. 보호자의 이름과 환자의 이름, 그리고 연락처를 남기고 상담을 시작한다. 평범한 인형 회사 같지만 엄연한 수속절차가 있다.

"환자를 수술할 때는 겉과 속을 다 봅니다. 인형환자들은 누구나 솜을 넣고 마무리하는 부분이 있어요. 재봉틀로 박은 부분이 아닌 실로 꿰맨 부분을 찾아서 뜯어보면 압니다."

별님이의 얼굴 복원도를 그리고 입 위치를 자세히 그림으로 설명한 뒤 수술대에 올라갔다.

별님이의 함몰된 코에 대해서는 "코를 고정해주던 '달팽이 나사'가 있었는데 그게 부러지면서 코가 빠졌고, 그걸 모른 채 코를 겉에서 꿰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쪽에 부러진 나사 조각이 있을 것이라 말했는데 실제로 솜을 모두 빼내니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다. 플라스틱 조각 부품을 다시 넣기보단 코 부분에 솜을 채워서 원래 모습을 복원하기로 했다.

[해보니 시리즈 25] 20년 된 인형, 인형병원에서 수술 해보니

별님이의 복원과정 도중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최근에 온 손님은 어떤 손님이었나?

-최근에 온 손님은 미국에서 유학하는 23살 청년의 강아지 인형 손님. 오랜 시간 인형 등 부분을 만져서 피부가 엉망이 된 환자여서 피부 이식 수술을 했다. 우리는 한 명이 인형 하나를 붙잡고 있지 않고 '수술방' 절차가 있다. 자수를 놓고 바느질하는 부분, 피부 이식…. 저마다 전문 분야가 있어 최근 생겨나는 인형병원은 따라 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환자와 보호자는 누구였는지 궁금하다.

-가장 나이 든 손님은 30년이 넘은 인형 손님이었다. (22년 차 환자는 어린 편이다) 부산에서 할머니가 직접 올라와 수선을 부탁했는데 예쁘게 복원하는 게 아니라 원래 모습 그대로 복원시켜주기를 원해서 한 번 더 as받았다.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촉감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른 살이 넘은 사람이 인형 환자를 데리고 오는 걸 보면 어떤가? 나만 해도 아직도 인형 갖고 논다고 가족들에게 '이상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인형 만지는 일만 30년이 넘게 했다. 제 딸도 29살인데 제가 만들어준 애착 인형을 아직도 갖고 있다. 한때는 얘가 이상한가 싶어 의사한테도 물어봤지만, 정상적인 것이라고 해서 안심했다. 인형 병원에서 일한 지는 2년째인데 이렇게 많은 어른이 인형에 애착을 갖고 고치려 하는지 몰랐고 이제는 그 마음 이해하면서 인형을 치료하려 한다.

요즘 아이들은 휴대전화를 더 좋아하고 책도 잘 안 본다. 인형에 대한 수요가 줄지는 않았는지?

- 아니다. 오히려 어릴 적보다 요즘 사람들이 인형을 더 산다. 어릴 때는 인형을 안 사주거나 살 형편이 안 되는 세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애착 인형을 부모가 잘 사주는 편이고, 인형이 주는 정서적 안정에 대해서도 잘 안다. 우리나라가 최근 캐릭터 산업이 발달하기도 했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게임이 인형을 만지는 촉감까지 만족시켜주지는 않기 때문에 여전히 잘 팔린다.

[해보니 시리즈 25] 20년 된 인형, 인형병원에서 수술 해보니

최근에는 인형뽑기방이 유행하면서 벌써 병원에 오는 최신 유행 인형들이 꽤 많다고 한다.

최근 유행하는 캐릭터 인형 중 일부는 원가 절감을 위해 봉제선이 허술해 이음매가 터지거나 열에 약한 천을 써서 헤어드라이어 열에 원단이 녹아서 오는 '화상 환자'가 많다.

모두 인형 원단이 너무 얇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인형 뽑기방에 들여놓는 인형은 개당 원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원가 절감을 하려다 보니 일부 인형들의 내구성이 떨어진다.

인형 병원 의사는 "인형을 잘 만들면 좋겠어요. 너무 금방 망가지니까... 우리가 인형을 고치긴 하지만 이게 큰돈을 바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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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방에는 많은 원단과 다양한 색깔의 실, 그리고 눈 모양 등이 갖춰져 있다. 최대한 원단과 눈, 부자재, 실 등을 확보하고 있지만 구하기 힘든 경우 직접 시장에 나가서 비슷한 종류를 고른다.

빛바랜 인형이라 원래 색과 주인이 생각하는 색이 다를 수 있어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다. 별님이도 원래 실 색과 비교해가며 실을 골랐다.

병원에 오는 손님은 제각각이지만 오래 일하다 보면 '패턴'이 보인다고 한다.
병원에 인형을 데려오는 손님의 사연도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이지만 공통점은 "돈이 얼마가 들든 내 소중한 인형을 고쳐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가 대신 들고 오는 경우는 "인형 수선이 뭐 이렇게 비싸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자기 인형을 들고 오는 사람들은 돈이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고 한다. 시대마다 생산되고 단종되는 인형들의 유행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곰 인형이 가장 수술받으러 많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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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1시간이나 걸렸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손을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섬세한 작업이라 속도를 낼 수 없다고 한다. 손상이 심한 인형은 며칠 걸리기도 하고 원단이나 부자재가 추가로 필요한 경우도 있다. 소생할 수 없는 인형 환자는 패턴을 복제해서 새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수술이 모두 끝난 뒤 마지막으로 인형 관리법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인형은 세탁기에 돌리면 천 부분이 상하니 되도록 손빨래를 권했다. 세탁 후에는 햇빛에 말리기를 추천한다. 드라이기로 말리다가는 천이 녹기도 한단다. 이렇게 다친 화상 환자는 까다로운 환자로 분류되어 수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해보니 시리즈 25] 20년 된 인형, 인형병원에서 수술 해보니

마지막으로 인형 병원에서는 인형이 공장에서 찍어낸다고만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패턴을 뜨는 것은 공장의 기계가 할지 모르지만 사람 손이 반드시 들어가고 바느질 기술은 예술이나 전문 분야인데 최근에는 배우려는 사람이 없고 기술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는 상황이 안타깝다는 말도 전했다.

인형 병원은 다른 상업적인 인형가게가 재미 삼아 갖춰놓았던 인형을 위해 청진기나 진단서, 인형 엑스레이 기계 등 환상을 채워주는 물건들은 없다. 인형 샘플들과 재봉틀, 다양한 색상의 실들만 있어 인형 놀이터 같은 병원을 생각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형을 소중하게 여기는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주고 인형을 '예쁘게'가 아니라 '내가 알던 모습대로' 고치는 의미를 정확히 알아주는 진짜 전문가가 있어 마음 놓고 내 친구를 맡길 수 있었다.


YTN PLUS 최가영 기자
(weeping07@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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