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길"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의 사연

"이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길" 세월호 미수습자 9명의 사연

2017.03.28. 오후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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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월호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맞는 세 번째 봄, 세월호를 탔지만 아직 내리지 못한 미수습자 9명.

애끓는 기다림으로 가족들은 지난 3년간 이 말을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아직, 세월호 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는 만날 수 있길... 간절한 마음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봅니다.

진도 팽목항 한 켠에는 기타와 축구화가 바닷바람을 맞으며 놓여 있습니다.

기타 연주를 즐겼던 남현철 군.

아들의 기타 사랑을 잘 아는 현철 군의 아버지가 가져다 뒀습니다.

축구화는 박영인 군의 어머니가 가져다 놓았습니다.

축구를 좋아했던 아들, 하지만 끝내 사달라는 축구화를 사주지 못한 것이 엄마의 마음에는 한이 됐습니다.

아들에 대한 애가 끓는 사랑도 기타와 축구화에 이렇게 빼곡히 새겨 두었죠.

[조은화 / 허다윤 양 어머니 : 엄마 왔다 들었을 것 같은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조은화, 허다윤 양입니다.

아침이면 엄마에게 뽀뽀를 하고 시시때때로 메시지를 보내는 살가운 딸이었던 조은화 양.

은화 양의 어머니는 딸이 그리워 지난 3년간 몸이 약해져 숱한 병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프면 딸을 못 찾는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희귀병을 앓는 엄마를 늘 걱정했던 허다윤 양.

물을 무서워해 수학여행을 가기 싫어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용돈 6만 원을 손에 쥐어주며 다독여 보냈습니다.

그리고 6만 원 중 5만7000원이 유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수학여행 전 찍은 가족사진은 다윤 양이 가족과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됐습니다.

단원고 선생님 두 분도 학생들과 함께 아직 배 안에 남아있습니다.

머리가 고슴도치처럼 짧아 '또치쌤'이라고 불렸던 고창석 선생님.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벗어 입혀 내보내고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의 곁으로 아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월호가 바다 밑에서 서서히 물 위로 올라온 지난 23일이 결혼기념일이었던 양승진 선생님.

다정한 학생주임 역할을 했던 선생님 역시 학생들을 구조하러 갑판에서 배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생계를 이어가느라 떨어져 산 아들과 함께 살고 싶다는 소원을 이뤄줄 '제주행 세월호'에 올라탄 이영숙 씨는 아들이 있는 제주로 이삿짐을 옮기던 중이었습니다.

모자(母子)는 결국... 이 소박한 소원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제주로 이사를 가던 또 다른 가족도 세월호에 있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권재근 씨와 당시 여섯 살이었던 아들 혁규 군.

혁규 군의 어머니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고, 한 살 터울 여동생은 오빠가 벗어준 구명조끼를 입고 구조됐습니다.

단란했던 가족은 그날 이후... 희생자·생존자·미수습자란 이름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아빠와 오빠를 기다리는 어린 딸은 이제 초등학생이 됐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고 이다운 군이 작곡하고, 처음 사연을 소개했던 기타를 좋아했던 남현철 군이 가사를 쓴 노래입니다.

이 가사...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하죠.

세월호가 바다 밖으로 나온 이제 9명 모두 배에서 내리길...그래서 가족들의 응어리 맺힌 마음을 하루빨리 풀어주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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