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수면위 13m 인양, 저녁에야 ③

세월호 수면위 13m 인양, 저녁에야 ③

2017.03.23. 오후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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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린 / 경제부 기자, 장창두 /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 최영일, 시사평론가

[앵커]
아까 저희가 원인 부분에 대해서 얘기를 했습니다. 아까 4가지 얘기를 해 주셨고 거기서 고박을 제대로 안 했다는 얘기까지 해 주셨거든요.

지금 모형이 있습니다마는 저 안에 굉장히 많은 화물들이 들어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차량부터 해서요.

[인터뷰]
승객의 차량, 거기에 나중에 추가적으로 목록에서 나왔습니다마는 철근도 있었고요. 거기다 또 제주도로 가는 다양한 개인화물 또 기업형 화물, 컨테이너 박스에 올라가 있는데 그것을 양쪽과 상하 균형을 맞춰서 단단하게 묶어야 되는데 말씀주신 대로 그것을 제대로 묶지 않고 관행적으로 그걸 그냥 쌓아놨다는 거죠. 그런데 그게 한쪽으로 쏠릴 때 힘이 허물어져버리니까 이거는 짐을 많이 실은 화물차가 코너를 돌다가, 코너링을 하다가 넘어지는 교통사고들 우리가 흔히 보잖아요. 다르지 않은 상황인데 수면은 훨씬 더 출렁거리는 상태이니까 확 쏠리면 넘어져버린다는 거죠.

그런데 이게 처음에는 화물은 넘어졌는데 배 안에 들어있는 화물이 있고 배 위에 쌓여있는 화물이 있습니다. 배 위에 쌓여있던 화물은 사실은 다양한 영상과 사진에서 우리가 본 바가 있거든요. 그런데 배 아래쪽 화물칸에 실려있던 화물들이 어떤 상태인지는 우리가 아직 모르거든요. 이걸 확인해 봐야 되죠.

[앵커]
이건 선체를 인양한 다음에 찾아봐야 되는 거죠.

[인터뷰]
물론 그것도 많이 상태가 더 흐트러졌겠지만 그것도 원인규명에 중요한 대목이 되는데 이런 기술적으로 왜 세월호가 가라앉았나 하는 기술적인 원인 외에 이 사고의 전개 과정을 가지고 나눠볼 필요가 있어요.

처음에는 사고가 왜 났는가, 말씀드린 네 가지, 고박 문제, 그리고 청해진해운, 이 선사의 책임이 있겠죠. 제대로 점검을 했는가, 안전관리를 했는가. 이것도 거의 날림으로 한 게 나중에 밝혀졌잖아요. 행정적인 문제입니다마는. 그러면 두 번째는 사고가 전개되던 그 당시에 결국은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생존을 위한 수습을 해야 됐을 때 승무원들의 문제, 순직한 분들 우리가 기억하고 있잖아요. 의인이라고 불렀고 의사자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퇴선 명령을 하지 않고 달아난 책임자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사고가 벌어지던 크 찰나의 순간에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생존자와 사망자의 가늠이 달라지는데 그때 제대로 행동하지 않은 일들이 있었다는 거죠. 안타까운 상황이고.

세 번째로는 이게 천천히 가라앉습니다. 우리가 보지 않았습니까, 당일에? 그런데 그다음은 그러면 누군가 구조를 해야 되는 거죠. 공공의 역할이죠. 국가의 책임이 되는 거죠. 해군은 왜 출동하지 않았는가. 통영함 문제가 나중에 또 청문회에서 문제가 됐죠. 황기철 당시 해군참모총장은 통영함 출장을 명령내렸다. 그런데 왜 출장하지 않았는가. 당시 국가안실장에게 위원이 질의했을 때 대통령에게 보고할 감도 아니다, 이런 답변이 나왔습니다. 국민들이 상당히 참담해했는데요. 이런 국가의 수습 문제가 남는 것이고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그 이후 1073일을 보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1, 2, 3단계의 전개 과정에서 우선 선사의 문제는 말이죠, 그 당시에 가장 큰 이슈여서 흔히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라고 알려진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 일가의 추격전이 있었고 결국은 백골화된 사체로 확인이 됐습니다.

[앵커]
딸 섬나 씨는 아직도 해외에 있는 거죠?

[인터뷰]
프랑스에서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는 거고요. 유대균 씨, 장남은 구속됐다가 풀려났고요. 차남이 실질적 소유주로 추정을 했었는데 유혁기 씨는 아직 수배만 돼 있지 어디 있는지 소재 파악도 안 돼 있는 상태예요. 이것도 미제로 돼 있는 거죠. 아직까지. 그래서 선사의 문제가 남아있었고 그다음에 국가의 책임인데 국가의 책임이 당시에 가장 먼저 출동했던 해경의 123정 정장 김영일 정장이 징역 3년이에요.

어찌 보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죄를 받았는데 그 외에는 국민 기억에는 한 가지 조치가 남아 있죠.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어떤 얘기를 했냐하면 이 참사에 대해서 국가를 개조하겠다. 국가 개조를 해야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조직 개편이 됐는데 국민안전처가 그해 말에 신설됐습니다. 그리고 해경을 해체한다. 해경에 책임을 물은 거죠, 대통령이. 해경이 해체됐다기보다는 국민안전처가 신설됨에 따라서 편제가 바뀌었다. 조직이 바뀐 것이다.

[앵커]
그런데 국민안전처를 만들어서 그다음에 위기관리가 잘 됐느냐. 아시다시피 메르스 사태부터 해서 지진까지 관리가 제대로 안 됐기 때문에 그 이후에 국민들이 또 여기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거든요.

[인터뷰]
메르스 사태, 경주 지진, 여러 가지 사안에서 국민안전처가 문자 발송도 늦었다, 상황 대처가 늦었다. 그리고 지진 같은 상황에서는 무슨 얘기를 했냐 하면 기상청에서 늦게 통보받았기 때문에 늦게 간 것이다. 메르스 사태 때는 뭐라 그랬는지 아세요? 보건안전 전문가들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왜 국민안전처가 생겼을까, 이런 논의가 이뤄졌습니다마는 어쨌든 국가의 책임 부분이 가장 지금 미온적으로 다뤄진 것 아니냐. 그리고 또 한 가지 안타까움은 세월호 사태가 국민 생명의 문제인데 그 이후에 매우 이상하게 돌아가면서 정치적인 사안이 돼버려요.

그래서 대통령 탄핵 이유 중에 블랙리스트가 들어있는데 블랙리스트 관련해서 세월호 관련 책을 출판했다고 해서 저 출판사는 지원하지 마시오, 이런 블랙리스트가 올랐다는 게 예를 들어 우리가 이념 논쟁으로 보수, 진보로 흔히 좌우, 여야, 이런 얘기 많이 하지만 정치적인 진영이 있는 거죠. 현실적으로.

그런데 세월호 문제에 대해서 이것을 지원하네 마네, 블랙리스트, 화이트리스트의 구분 기준이 됐다는 것은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서 아까 우리 미수습자 가족분들이 이제 시작입니다 하신 말씀을 우리 국민 모두는 이제부터 세월호를 3년 만에 다시 인양하고 있는 세월호를 기점으로 우리 국민들이 마음을 합쳐야 되는 것 아니냐. 주검들 앞에서 책임 없는 어른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마음을 크든 작든 가지고 있지 않겠습니까?

[앵커]
모두가 책임을 통감하고 있고 국가 수습에 대한 책임도 앞으로 더 밝혀야 될 부분이다, 이런 생각이 들고요. 1072일 만이죠. 수면 위로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곳곳이 긁히고 또 부식이 된 모습이었습니다. 3년 전하고 세월호가 어떻게 다른지 차현주 앵커가 비교를 해 봤습니다.

[앵커]
속절없이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하늘도 바다도 세월호 인양을 간절히 바랐던 듯, 바람도 파도도 잔잔했습니다.

짙은 남색으로 보이는 세월호의 1, 2층 화물칸.

3·4층 객실, 조타실과 객실이 있는 5층까지.

세월호 오른쪽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우리가 가슴에 묻었던 하얀 세월호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듯 누런 색으로 심하게 녹슬었고 여기저기 찢기고, 긁혔습니다.

선체에 쓰여있었던 SEWOL, 세월이라는 글씨도 보이지 않습니다.

1,000일이 넘는 세월을 모진 바다에서 버티며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선체 이곳 저곳에는 구멍이 뚫렸습니다.

물과 배에 남아있던 기름을 빼느라 뚫은 구멍입니다.

선체 위에 검은색 줄이 어지럽게 얽혀있고, 선체 주변에는 그물망이 설치돼있습니다.

미수습자나 구조물 유실을 막기 위해 잠수사들이 설치한 겁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부분은 그나마 원형이 보존된 편입니다.

하지만 선체의 왼쪽 면, 그러니까 갯벌에 묻혀 있던 부분은 더 심하게 훼손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선체 내부도 훼손이 심할 것으로 전문가는 예측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쯤 세월호는 수면 위 13m까지 올라와 대략 전체적인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입니다.

흐른 세월만큼 부식되고 금 간 세월호, 하지만 바다에 가라앉은 진실만은 녹슬지 않았길, 국민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앵커]
외부 상황은 긁히고 부식된 모습을 저희가 확인을 할 수 있고, 내부도 많이 훼손이 됐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지금 했는데 내부 상황은 어떻게 짐작을 해볼 수 있을까요?

[기자]
지금 겉모습도 많이 부식이 돼 있습니다. 수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지만 상당 부분 부식이 돼서 안타까운 모습이고요. 그 내부도 어느 정도 부식이 진행됐을 것이라고 추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객실 사이의 칸막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다 부식됐을 가능성이 있고요. 앞서 정부가 밝힌 대로 900톤에 가까운 물을 빼내지 않았습니까? 기름 섞인 물을 빼냈다고 했다는 것은 그 안에 많은 부유물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 부유물들로 인해서 선체 안에 있었던 많은 것들이 부식이 돼 있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사고 당시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앞서 앵커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안에 얼마나 많은 화물이 실려 있을지는 저희가 CCTV나 이런 것을 통해 추정을 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합니다마는 저희가 세월호가 어떤 배인지 이제 다시 한 번 돌이켜보면요, 말씀하신 대로 굉장히 오래된 배입니다. 1994년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배를 개조를 했던 거죠. 그래서 개조 전에는 무게가 6586톤이었습니다. 그런데 개조 후에 6825톤으로 증축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239톤이 증가하게 되면서 여객 정원도 804명에서 921명을 실을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큰 여객선으로 거듭 나게 되면요, 그만큼 평형수는 많이 실어야 되고요. 또 평형수를 많이 싣는 만큼 화물을 적게 실어야 되는데 그 반대로 했던거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추정키로는 화물의 적재량 기준이 987톤이었습니다마는 추정되는 적재량이 2143톤입니다. 그러면 1156톤을 과적을 했다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더 많이 싣기 위해서 평형수를 1703톤을 실어야 하지만 761톤을 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942톤이 부족했던 것이죠. 그래서 앞서 말씀하신 대로 과적과 또 고박작업을 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었다면 이 부분을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그렇게 두 배가 넘는 짐을 실었는데 고박도 안 하고 사고가 났으면 여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 그런 상황인데요. 진실을 밝히려면 잘 인양을 하는 게 일단 우선 과제 아니겠습니까? 교수님, 지금부터 작업을 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주의해서 해야 될까요?

[인터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별 진전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바지선을 고정시키는 작업이 만만치 않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그것만 해결이 되면 나머지는 해오던 대로 그냥 세월호를 들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바지선 고정이 가장 첫 번째 관건일 것이다, 이런 얘기해 주셨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장창두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그리고 이하린 YTN기자와 함께 관련 얘기 자세히 나눠봤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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