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속으로] "그 때로 돌아가면 더 구조할 수 있을까?"

[사람 속으로] "그 때로 돌아가면 더 구조할 수 있을까?"

2015.06.26. 오전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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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사흘 뒤면 502명의 희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20년이 됩니다.

당시 참사는 세월이 흘러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희미해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슬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삼풍 참사 이후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대형 참사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YTN은 삼풍 참사 20년을 맞아 그날을 되돌아보고 경각심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참사 당시 온몸을 던져 희생자들을 구조하고 유가족들을 도왔던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보는 YTN 연속 기획, '사람 속으로' 정유진 기자입니다.

[기자]
1995년, 서울 강남의 고급백화점이 순식간에 주저 앉습니다.

급히 양복 차림으로 출동했던 소방관은 건물 재와 피가 뒤섞인 현장을 마주합니다.

[경광숙, 당시 119구조대원]
"먼지도 뽀얗고 주변에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은 하나도 없죠. 황사 바람 부는 데서 터널 지나온 사람들처럼 그랬죠."

1,500명이 매몰된 현장.

정부 인력만으로는 손이 달렸습니다.

장비가 부족하다는 뉴스를 본 30대 목수는 톱 열 자루를 챙겨 무작정 현장으로 왔습니다.

희생도 각오해야 하는 절박한 순간이었습니다.

[최영섭, 당시 민간구조대]
"이게 2차 붕괴가 될 수 있으니까 우리 인적사항이라도 남겨 놓자. 해서 라면 박스에다가 저희 연락처를 적고..."

현장 한쪽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2천 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김춘자, 당시 자원봉사자]
"우리가 밥이라도 해줘야지 이렇게는 안 되겠다. 18개 동 회원들이 윤번제로 계속 아침 저녁으로 갈라서 옵니다. 와서 밤새도록 낮 새도록 없지. 저녁조가 따로 있고, 새벽에 하다 낮에 들어가는 사람 있고 그 다음 사람 나오고..."

근처 병원은 마침 그곳에서 회의를 하던 전국 응급의학과 의사들을 투입해 필사적으로 치료에 매달렸습니다.

[김세경, 당시 서울성모병원 응급의학과장]
"그 일원이 다 올라가서 처치를 시작한 거라고요. 올라가니까 벌써 완전히 혼잡해 있고 한쪽에서는 당직 의사들이 벌써 심폐 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2층 회의실하고, 4층 회의실이 있는데 이것을 완전히 입원실로 바꾸고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는 웬만한 사람 빼서 확보하고..."

시루떡처럼 주저앉은 건물에서 9백여 명이 다쳤고 502명은 눈을 감고서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은 흘러 20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경광숙, 당시 119구조대원]
"그 부분을 3m 정도를 쫙 다 팠어요. 중간에 파는 과정에서 그 분이 아저씨 아저씨 저는 더 이상 못살 것 같아요. 라는 표현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도 '아니요 살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고 견디십시오."

참혹했던 현장은 어느 틈엔가 떠올라 마음에 생채기를 냅니다.

[최영섭, 민간구조대]
"처음에는 시체가 마네킹인 줄 알았어요. 한동안 떠올랐었죠. 지옥이 따로 없었죠."

[김춘자, 자원봉사자]
"저는 지금도 그리로 잘 안 가요. 가면 그 때 생각이 나죠. 말도 못하게 나지."

지금 가진 장비가 그 때도 있었다면 그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까.

강산이 두 번 변했지만, 당시 현장을 지켰던 이들은 '20년 전 그 날'을 지울 수 없습니다.

YTN 정유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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