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무조건 방 빼' 제동

법원, '무조건 방 빼' 제동

2013.11.02. 오전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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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경매를 통해 낙찰받은 집에서 원래 살던 사람이 사정이 있다며 집을 비우지 않고 버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추운 겨울이든, 중증 환자가 집에 있든,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는 게 우리의 법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행 법규에 문제가 있다며, 이례적으로 강제집행에 제동을 건 법원의 결정이 나왔습니다.

이종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 6월 연립주택 한 채를 낙찰받은 A 씨.

집주인이 대출금 3억여 원을 갚지 못해 경매에 넘겨진 걸 낙찰 받았습니다.

A 씨는 곧 대금을 납부했지만, 집주인은 두 달이 넘도록 집을 비우지 않았습니다.

결국 A 씨는 법원에서 '부동산 인도 명령'을 받아내 강제집행을 신청했고, 연립주택에 집행관들이 들이닥쳤습니다.

하지만 집행관들은 집주인을 내쫓지 못했습니다.

뇌졸중과 폐결핵으로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고, 6년 동안 투병 중인 70대 집주인 남편이 방안에 누워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강제집행이 신청됐지만 "집 밖으로 환자를 옮길 경우 병세가 악화될 수 있다"며 집행관들은 강제집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A 씨는 "법에 규정된 대로 강제집행을 통해 집을 비워달라"며, 법원에 '이의 신청'을 냈습니다.

재산권 행사와 휴머니즘 사이에서 고민하던 재판부는 결국, A 씨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채권자 보호의 필요성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채무자에게 가혹하고 선량한 풍속에 반하는 때에는 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며 A 씨의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재판부가 결정의 근거로 내세운 규정은 우리 법이 아닌, 독일의 민사소송법 조항.

우리 법에는 강제집행만 명문화돼 있을 뿐 채무자 등의 딱한 사정을 고려해줄 예외 조항 등이 없어,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해외 사례를 인용해 결정을 내린 겁니다.

법원의 기각 결정에 대해, A 씨는 이사비 지원 등 대화로 사태를 해결하거나, 특별항고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채권자의 재산권 행사를 무조건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는 아니라며, 어디까지 아량을 베풀어야 할 것인지 사회적인 공감대 형성과 이를 뒷받침할 입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YTN 이종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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