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집총 거부' 의문사 국가배상 첫 판결

단독 '집총 거부' 의문사 국가배상 첫 판결

2010.08.04. 오전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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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군대에서 집총을 거부했다가 가혹행위를 당해 숨진 피해자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습니다.

정부는 30여 년 전 일이라 법적 시효가 이미 지났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김도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1976년, 신병 훈련을 받던 정상복 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로서 살인 무기를 들 수 없다며 집총을 거부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 씨는 폭행을 당하는 등 신병교육 6주 내내 가혹행위에 시달렸습니다.

교육 기간이 끝나고 귀가한 뒤 정 씨는 피를 토하며 응급실로 실려갔고 결국 숨졌습니다.

유족들은 가혹행위를 의심했지만, 군 부대는 부검 결과 사인은 폐병으로 나타났다며 진실을 숨겼습니다.

[인터뷰:김희수, 집총거부 사망 피해자 변호사]
"수사관들이 당시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부 알고 있었음에도, 부대에 해를 끼치거나 누를 끼칠 수 없다는 이유로 전연 수사 자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32년 뒤,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당시 저질러진 가혹행위를 밝혀냈습니다.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선 이미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패소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군 부대가 형식적인 수사만 하고 사인을 은폐해 유족들이 진상을 밝히기 쉽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인터뷰:손철우, 서울고등법원 공보판사]
"소멸시효 완성 전에 국가가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였다면 신의칙상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사례입니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정 씨의 유족들은 뒤늦게나마 1억 6,000만 원을 배상받게 됐습니다.

앞서 군 의문사위 조사 결과 정 씨 말고도 4명이 집총 거부에 이은 가혹행위로 숨진 것으로 드러나, 이번 판결이 확정될 경우 비슷한 소송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YTN 김도원[dohwon@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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