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60주년] ③ 타이완으로 간 중국포로

[한국전쟁60주년] ③ 타이완으로 간 중국포로

2010.06.16. 오전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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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취재 오늘은 타이완으로 간 중공군 포로들 이야기입니다.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으로 참전했다 포로가 된 2만 여 명 가운데 만4,000여 명이 타이완행을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장아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60년 전 양완푸 씨는 중공군으로 한국전쟁에 참가했다가 1년도 안 돼 유엔군의 포로가 됐습니다.

지금은 여가 삼아 운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노후를 즐기고 있지만 양 씨의 젊은 날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당 군인에서 공산당 군인으로, 여러 번 포로가 됐고 수용소에 갇혔던 양 씨는 1954년, 한국에서 타이완 지룽항에 닿았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인터뷰:양완푸, 전 중공군 병사]
"정말 기뻤습니다. 지룽항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환영했습니다. 계속 길 양쪽에서 우리를 환영했습니다."

한국전 중국 포로 70%가 중국 본토 대신 타이완을 선택한 것은 자유주의 국가의 이념 승리로 해석됐고, 귀환 포로들은 영웅으로 대접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다시 타이완 군대에 들어갔고 일부는 타향 땅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해야했습니다.

타이완 영예 국민의 집에는 지금도 귀환 포로가 900여 명 있습니다.

이들은 타이완 정부로부터 매달 우리나라 돈으로 40여 만 원을 생활비로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쩌우즈왕, 전 중공군 병사]
"개인 용돈으로 씁니다. 뭘 사거나 먹을 때도 쓰고요. 거의 매달 남을 정도로 충분합니다. 안락합니다. 과일을 사 먹기도 합니다."

응급 환자를 위한 병원과 치매 노인을 위한 요양소도 따로 있습니다.

여기는 참전용사를 위한 사당입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한 달에 두 번씩 자식을 대신해서 제사를 지냅니다.

고향을 떠나 타이완에 머물고 정착한 귀환 포로들에게 정성스런 직원들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인터뷰:린홍런, 영예국민의집 당장]
"노인들을 존경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주 신경을 써서 노인들을 돌봐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공산 중국의 전략에 따라 한국 전쟁터로 내몰렸던 인민해방군인들은 지금 제2의 고향 타이완에서 쓸쓸한 황혼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YTN 장아영[jay24@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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